1989.10.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 조규찬, 유희열, 루시드 폴로 이어진 유재하의 정신 > 대중음악실록 아카이브K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대중음악실록

대중음악실록

2023.12.08
by 김광현

1980s 1989.10.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 조규찬, 유희열, 루시드 폴로 이어진 유재하의 정신

페이지 정보

작성일 23-12-08작성자  by  김광현 

본문



 

일찍 세상을 떠난 위대한 음악가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요절하지 않고 활동했다면 어떤 음악이 있었을까 생각을 한다. 해외에서는 27세에 사망한 아티스트를 묶어 ‘27 Club’이라고 한다. 블루스의 거장 로버트 존슨을 비롯해 ‘3J’(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이 클럽 멤버들이다. 그러니 두 살이나 더 어린 25세에 떠난 유재하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넘어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한양대 음대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던 유재하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건반을 연주했다. 1986년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와 함께 김현식의 세번째 앨범 작업 중 팀을 탈퇴, 자신의 독집을 준비해 다음 해 발매했다. 1987년 8월에 발표한 [사랑하기 때문에]는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노래를 홀로 소화한 유재하의 모든 것이 담긴 앨범이다. 하지만 발매 당시에는 지금처럼 박수를 받지 못했고 방송국에서는 가창 미숙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 라디오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어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11월 1일, 이른 새벽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렇게 유재하는 갑자기 떠났지만, 그의 음악을 이어가는 후배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유족(아버지 유일청)은 재산을 출연하여 1988년에 재단법인 유재하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이듬해인 1989년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가 개최됐다. 유재하 장학재단은 음악대학에서 교수추천을 받은 우수 학생과 경연대회를 열어 선발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대학생으로 참가 자격을 제한했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출전 조건은 자작곡이었다. 유재하가 표방한 싱어송라이터의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2012년부터는 대학생 1인을 포함한 구성으로 조건이 완화됐다.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자금난으로 인해 2005년 가요제의 개최가 불투명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희열, 김연우, 스윗소로우 같은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 가수들을 중심으로 기금마련 공연이 열렸다. 자우림, 박정현 등도 함께 했다. 다행히 이듬해 싸이월드의 후원을 통해 개최되었지만 2013년에 다시 한번 고비를 맞았다. 후원 기업의 부재로 2005년도처럼 무산될 뻔한 대회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건 ‘유재하 동문회’였다. 이 가요제를 통해 음악계에 데뷔한 이들이었다. 2014년 대회는 CJ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무사히 열렸으며 이후 2018년부터는 CJ문화재단이 공동 주관사로 ‘CJ와 함께하는 유재하음악경연대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 행사는 1차 심사를 통과한 약 40여 개 팀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2차 오프라인 예선, 그리고 본선 대회로 진행된다. 총 장학금은 2,000만 원(2021년 기준)이고 앨범 제작과 발매,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 수상 부문은 대상,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을 기본으로 후원사에 따라 특별상(싸이월드 음악상, 유재하 동문회상, CJ특별상, CJ문화재단상)이 있다. 1999년에 열린 제20회 대회에서는 대상 이하 부문을 작곡상, 작사상, 연주상, 가창상으로 나눠 시상했는데 길게 가지 못하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는 1989년 10월 28일 임백천의 사회로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지금은 형식에 제약없이 출전할 수 있지만, 초기에는 피아노나 기타를 참가자가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총 10명의 싱어송라이터가 참가했고 심사위원은 조동진, 송창식, 김민기, 이주호, 이호준, 김창완, 박문영, 조동익이 맡았다. 금상(대상)은 동국대 서양학과 1학년생인 조규찬이 ‘무지개’로 받았다. 이미 고등학생 시절부터 싱어송라이터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조규찬은 ‘늴리리 맘보’, ‘청포도 사랑’, ‘열아홉 순정’을 작곡한 나화랑의 아들로 어머니는 가수 유성희이다. 형인 조규천, 규만도 싱어송라이터로 3형제는 조 트리오를 결성해 ‘눈물 내리는 날’, ‘먼 훗날’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조규찬은 이후 MBC 강변가요제에서 ‘귀로’로 은상을 받은 박선주의 ‘소중한 너’를 만들고 듀엣으로 불러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김정렬, 이준과 함께 새바람이 오는 그늘을 결성, 1990년에 1집을 발표했다. 이 트리오는 오래가지 못하고 조규찬은 1993년 데뷔작 [따뜻했던 커피조차도]를 발표했다. 이후 1990~2000년대에 완성도 높은 앨범을 선보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자리잡았다. 조규찬의 뒤를 이어 은상을 받은 이는 ‘나의 하늘’을 부른 정혜선으로 1992년 하나음악 1호 앨범의 주인공이 되어 [오, 왠지]를 발매했다.

 

이후에도 걸출한 음악인들을 배출했다. 1990년에 열린 2회 대회에서 ‘거리 풍경’으로 창작뿐 아니라 탁월한 기타 연주를 선보인 고찬용은 후일 보컬 팀 낯선사람들의 리더로 활동했다. 이소라가 데뷔한 팀이기도 하다. 4회 대회에서는 ‘달빛의 노래’를 부른 유희열이 대상을 받고 ‘키 작은 나무’를 부른 심현보가 은상을 수상했다. 1993년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열린 제5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의 면면도 화려했다.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 중인 말로가 본명 정수월로 참가해 ‘그루터기’로 은상을 받았고, 동상은 이규호가 부른 ‘당신의 눈빛의 의미’가 차지했다. 이한철과 윤영배가 ‘겨울이 오면’이라는 연주곡으로 참가했고 조윤석(루시드폴)이 ‘거울의 노래’를 불러 수상했다.

 

6회 대회는 하이브 의장 방시혁이 ‘연가’를 불러 동상을 받았고 7회 대회에서는 나원주가 ‘나의 고백’으로 대상을 받았으며 김연우는 본명 김학철로 참가해 금상을 받았다. 8회 대회에서 ‘네가 날 볼 수 있게’을 불러 대상을 받은 정지찬은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나원주와 자화상을 결성해 활동했다. 1997년 제9회 대회에서는 김혜능이 부른 ‘아이처럼’이 대상을 받는다. 김혜능은 이후 작곡가 이승환과 이은구가 만든 프로젝트 그룹 ‘더 스토리’의 객원 가수로 참여해 숨은 명곡 ‘미망’을 부른다. 이후 아카펠라 그룹 그린 티를 결성해 이끌기도 했다.

 

11회 김정범(푸디토리움), 15회 임헌일(메이트), 16회 스윗 소로우, 정준일, 17회 Heavenly(오지은), 19회 박원(아르페지오), 박세진(옥상달빛), 22회 김거지 등을 통해 유재하의 유지는 세기가 바뀐 후에도 이어졌다. 가수의 유입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유재하음악경연대회의 명성이 예전과 같기는 힘들어졌다. 하지만 싱어송라이터의 등용문으로서 유재하음악경연대회가 가진 의미는 충분히 기록해둘만 하다.

 

 

김광현(월간 재즈피플 편집장)



공유하기

© www.archive-k.com


Total 69 / 1 page
검색 열기 닫기
게시물 검색

대중음악실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