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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by 고종석

1990s 1998.03. 소리바다 서비스 시작- ‘음반’에서 ‘음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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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1-02작성자  by  고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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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은 헌정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여·야 정권 교체를 이뤘다. 1998년 진행된 취임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 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하겠다.”라고 밝혔다.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출범했던 국민의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 정책으로 ‘사이버코리아21’이라는 정보화정책을 통해 IT인프라 구축과 IT산업에 대한 육성을 공표했고 지식기반 국가건설의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1998년 당시까지 국내 인터넷 가입자 수는 1만 5천여 명에 불과했고, 국민 대다수는 전화선을 이용한 PC통신에 의존해서 정보를 얻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는 KT와 SKT, LG 등 통신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고, 이들 기업 간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유도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어렵잖게 이동통신과 인터넷에 가입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2002년 국내 인터넷 가입자 수는 1998년의 700배에 달하는 1,040만 명에 이르렀다. 또한 인터넷 보급률과 IT산업 규모는 급속도로 성장, 2000년대 초반 국가 GDP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때를 같이해서 전국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24시간 동안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PC방이 자리 잡았고, IT 관련 기업들은 게임과 커뮤니티, 포털 서비스 등을 통해 국가 성장 대전환의 발판을 마련했다. 음악 산업 역시 IT기술과 관련 서비스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새로운 영역을 다져가기 시작했다.

 

음악 산업은 저장매체와 깊은 관련을 맺으며 발달해 나왔다. 1998년 한국에서 IT산업의 토대가 마련되던 당시에 음악을 담아낸 저장매체는 CD와 LP, 카세트테이프, LD가 주를 이뤘다. 음악이 피지컬 매체가 아니라 파일로 유통될 수 있다는 개념은 MP3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MP3는 1988년 독일에서 처음 개발되었고, 1995년 ‘.mp3’라는 확장자가 정의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한 파일명이다. MP3는 음향 데이터 중에서 가청주파수가 아닌 영역대의 소리를 삭제하고 남은 정보만을 모아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파일의 크기가 작다. MP3의 등장으로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파일로 변환해서 손쉽게 감상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MP3는 음악에 대한 재생과 저장매체의 혁신을 가져왔고, FLAC이나 MQA, MQS, ALAC와 같은 고음질, 무손실 파일로 고도화되며 하이파이 기기와 연관된 산업 구조도 확산해 냈다. 전 세계인이 MP3로 음악을 즐겨 듣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에 한국은 이미 IT를 활용한 음원서비스가 안착될 수 있는 제반 사항을 갖추고 있었다. 음악 산업 측면에서 MP3의 등장은 음반과 음원의 분리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곧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변환과 확장을 위한 기반으로 이어졌다.

 

1999년부터 2000년에 걸쳐 고속 통신망이 급속도로 보급되던 시점에서 ‘스타크래프트(StarCraft)’ 못잖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서비스는 P2P(Peer To Peer) 파일공유 프로그램 ‘냅스터(Napster)’였다. 1999년 노스이스턴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숀 패닝(Shawn Fanning)은 음악파일을 쉽게 전송하고 저장할 수 있는 공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냅스터라고 이름 붙여진 이 프로그램은 다른 사용자의 컴퓨터 안에 담겨 있는 MP3 등의 파일을 검색해서 자신의 컴퓨터로 자유롭게 가져올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곧장 냅스터의 성장 가능성을 점친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졌고 서비스 개시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냅스터는 음악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서비스라는 문제가 있었다. 냅스터를 이용해서 수많은 음악이 인코딩, 배포됨으로써 음악 저작물의 저작권 침해와 불법복제 시비가 야기되었다. 메탈리카(Metallica)는 곡당 10만 달러를 요구하며 냅스터를 고소했고, 닥터 드레(Dr. Dre) 등의 뮤지션들까지 줄줄이 소송을 제기했다. 반대로 이 사태를 반기는 뮤지션들도 나타났다.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척 디(Chuck D)는 ‘냅스터는 새로운 라디오다.’라며 음반사의 손해보다 음악을 듣는 이들의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냅스터는 오픈 3개월 만에 서비스 중지 판결을 받게 된다. 결국 2001년 8월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에 의해 서버가 폐쇄되었고, 2002년 불법 요소를 배제하며 유료서비스로 전환해서 서비스를 재개했지만 같은 해 파산하고 말았다. 2000년 전후 국내에서도 저작권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적잖은 P2P, 스트리밍, 다운로드 서비스 업체가 등장하게 된다.

 

2000년 양정환, 양일환 형제가 ‘한국의 냅스터’로 불리는 음악파일 공유사이트 ‘소리바다’를 오픈했다. 음악 파일 재생 프로그램인 소리통에 P2P 기능을 붙이는 개념으로 시작했지만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유저들에게 배포되었다. 당시까지 국내에는 음원이라는 개념이 그다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변환된 음악 파일을 공유하며 원하는 곡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특성으로 소리바다는 냅스터 못잖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모았다. 벅스(현재의 벅스와 다른 사업체), 맥스MP3, 뮤즈캐스트, 푸키, 아시아뮤직넷, O2뮤직 등 음원서비스 사이트들 역시 회원 유치에 공을 들이며 사업의 확장을 도모했다.

 

하지만 소리바다 역시 냅스터와 마찬가지로 음반사들과의 저작권 문제로 위기를 맞았다. 2002년 7월 수원지방법원은 ‘음반복제 등 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소리바다는 제한적인 서비스를 진행했다. 이후 저작권 보호를 위한 필터링 기술을 자체적으로 적용했지만, 저작권 관련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음반사들의 고소장은 줄줄이 접수됐다. 오랜 기간 동안 부분적인 서비스를 반복하며 버텨낸 소리바다였지만, 본질적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았다. 2007년 소리바다는 필터링 기능을 강화한 ‘소리바다6’ 서비스를 시작하며 음원 서비스에 집중했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진화를 거듭하며 성장한 벅스, 멜론, 펀케익, 튜브, 도시락 등의 음원서비스에 밀려나고 만다. 서비스와 사업의 전환점에서도 불법이라는 주홍글씨와 유저 이탈이 끊이지 않았다. 소리바다는 음원 유통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병행하며 새로운 국면을 모색했지만 2021년 여름,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소리바다의 예에서 보듯, 한국에 음원 서비스가 뿌리내리기까지는 많은 마찰이 있었다.

 

2003년 2월 신나라레코드와 도레미레코드 등 25개 국내 음반사와 BMG코리아, EMI코리아 등 한국 직배 5개사는 10여 곳의 음원서비스 업체를 상대로 형사 고소를 진행했다. 피고소 업체들은 저작권 관련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회원을 유치하고 있었다.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 사용료에 대한 정산과 서비스 음원들에 대한 계약 체결이었다. 해당 업체들은 과거 서비스분에 대한 정산과 정식 서비스 계약에 적극적이었다. 문제는 과거 사용분에 대한 정산을 위해 합리적인 계산이 도출되기 쉽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서비스되던 수많은 음원들에 대한 직접 계약을 체결하기에 접촉해야 할 당사자들이 너무 많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관광부는 음반회사협의회 함용일 회장(당시 YBM서울음반 사장)과 위즈맥스의 금기훈 사장 등을 협상의 실무진으로 내세웠다. 음원서비스 업체들은 ‘케임스(Keims, 한국인터넷음악서비스업체협의회)’를 구성해서 협상에 임했다. 결국 변준민 회장(맥스MP3 사장)을 위시한 뮤즈캐스트, 나인포유, 아이뮤페, 송앤닷컴, 푸키 등 8곳의 케임스 회원사는 과거 서비스분에 대한 보상을 해결하며 기존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중 일부 업체들은 음반사와 직접 계약은 물론 한국음원제작자협회, 만인에미디어와 같은 저작인접권 대행사를 통해 계약을 체결하면서 서비스를 보강해 나갔다. 또한 맥스MP3 등 몇몇 업체는 축적된 회원정보와 메타DB를 인수 기업에 넘겨주는 대가를 받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당시를 기점으로 음악 산업은 음원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곧이어 서비스사들은 정산분배의 투명함을 위해 정산시스템을 개발해서 음반사 및 저작권 관련 협회들과 정보를 연동시켰다. 정확하고 빠른 정산 정보 공유로 인해 음원 서비스와 업계와의 갈등도 종식단계에 들어섰다. 소리바다 이후, 음원 산업이 음반 산업보다 월등한 수익을 내기까지는 이처럼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고종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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