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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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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2
by 장유정

1990s 1999.03. 전국민의 가수화를 이끈 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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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1-12작성자  by  장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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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새로운 대중문화가 꽃을 피었고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노래들이 나왔던 시대다. 포스터모더니즘, 페미니즘과 같은 용어가 등장했고, 신세대들의 문화를 상징하는 X세대나 오렌지족과 같은 신조어도 나왔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댄스음악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때 전국적으로 유행한 것이 ‘노래방’이다. 노래방은 ‘방음이 되어있는 곳에서 기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장소’다. 통상적으로 ‘노래방’이라고 하면 주류(酒類)를 팔지 않는 곳이다. 2001년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기본법’의 개정에 따른 노래방의 법적 명칭은 ‘노래연습장’이다.

 

일본에서 연주가 출신의 이노우에 다이스케(井上大佑)가 처음 발명했다는 반주음악 기계인 ‘가라오케(カラオケ)’가 1990년대 초반에 부산으로 유입되어 점차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즉 노래방의 원조는 일본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노래방은 부산 동아대학교 앞에 있었던 ‘로얄전자오락실’이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노래방에서 술을 팔았지만 미성년자 출입이 문제가 되면서 원칙적으로 술을 팔지 않게 했다. 하지만 주류를 판매하거나 노래를 하며 흥을 돋우는 이른바 ‘노래방 도우미’마저 등장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노래방 기계는 계속 진화했는데, 처음에 가사를 보면서 노래하는 ‘음성형’이었던 기계가 영상을 보며 노래하는 ‘영상형’으로 발전했다. 컴퓨터 노래 반주기가 출시되기 전에는 주로 레이저디스크나 CD-G를 사용했다. 현재는 반주기를 구매할 필요 없이 컴퓨터 프로그램,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TV의 애플로케이션, 셋톱박스 등을 통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서비스형, 노래방기기의 반주를 녹음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웨이브형, 컴퓨터의 미디 음원이나 소프트웨어 음원 등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디형’ 방식도 있다.

 

한국에서 청소년(18세 미만이거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사람)에게는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노래방 출입을 할 수 없는 심야 시간 이용 제한이 있다. 일본 가라오케에서는 서비스가 전혀 없는 것과 달리, 한국은 노래방에 따라 종료 10분 전에 10분 또는 20분 정도의 서비스 시간을 주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처음에는 친목을 도모하고 사교를 위한 목적으로 노래방을 찾았으나 점차 순수하게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래방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두 명 들어갈 수 있는 협소한 공간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구성한 ‘코인 노래방’도 출현했다.

 

1991년 12월 기준 서울에서만 400여 개소의 노래방이 문을 열었고, 매일경제 1991년 12월 30일자에는 “규제 방안의 추진과 함께 건전하게 여흥을 즐길 수 있는 노래방 등의 업종을 신설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노래방이 성업했던 1990년대 당시 두 사람에 한 명꼴로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92년 12월 노래방은 그해 ‘10대 히트 상품’에 선정되었고, 노래방 특수에 힘입어 1992년 동안 12만 대 이상의 노래방 기기가 팔렸으며, 7만 대의 기기를 수출했다. 이는 1991년과 비교해서 15배 이상 급증한 판매실적이었다. 실제로 1992년 당시 주부 노래방이 인기를 얻었으며, 회식 후 2차로 노래방에 가는 것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1992년부터 급증한 노래방 관련 기사 중에는 부정적인 내용도 많았다. 전국적으로 6천여 개소의 노래방이 성업 중인데, 소음 공해를 일으키고, 노래방 조명이 이용자의 눈 각막을 해친다는 기사마저 실렸다. 또한 노래방에서 청소년 탈선 문제가 심각해져서 노래방이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는 기사도 수록되었다. 노래방이 인기를 얻고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각종 범죄마저 일어나자 이에 대한 비판도 일었다. 노래방을 일러 ‘황홀경을 갈망하는 인간들의 자아도취 공간(조선일보 1992년 6월 21일)’이라고도 했고, 노래방의 음악이 기성곡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거나 왜곡시켜 노래의 질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린다는 의견(동아일보 1992년 4월 24일)도 있었다.

 

노래방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있기는 했으나 노래방이 전 국민의 가수화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노래방에서는 두 가지 욕구가 교차하고 공존한다. 표현 욕구와 인정 욕구가 그것이다. 나를 표현하고 싶은 자기표현의 욕구와 노래로 타자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곳이 노래방이다. 어디 그뿐인가! 누군가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억눌렸던 불만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노래방은 어떤 면에서 이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데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안정적이라는 말이 언제나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노래방은 2022년 현재 여러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한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노래방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고 전문 가수가 되기도 했다. 아울러 노래방은 케이팝(K-pop)을 해외에 알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부르고 싶은 노래의 반주가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감사할 일이다. 물론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노래방에도 양지와 음지가 공존한다. 하지만 노래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노래방은 계속 진화하며 전 국민의 가수화에 일조할 것이다.

 

 

장유정(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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