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09. 조성모 ‘To Heaven’ : 20세기 마지막 스타 탄생, 그 비결 > 대중음악실록 아카이브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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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5
by 임희윤

1990s 1998.09. 조성모 ‘To Heaven’ : 20세기 마지막 스타 탄생, 그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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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1-15작성자  by  임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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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H.O.T., 1997년 젝스키스와 S.E.S.의 등장으로 케이팝 연대기가 시작되고, 댄스 아이돌의 시대가 열렸다. 쿨, 김현정, 엄정화 등 비(非) 아이돌형 댄스 가수들의 기세도 여전했다. 그러나 한국의 청중은 늘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를 갈구했다. 1998년, 디지털 전환이라는 폭풍을 목전에 두고 절정으로 치닫던 가요 시장에 감성 핵폭탄이 투하됐다. 바로 조성모다.

 

조성모는 미성의 발라드에 얼굴 없는 가수 전략을 결합해 성공 가도를 열었다.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가 촉매제 역할을 했다. 데뷔곡 ‘to. Heaven’은 이병헌, 김하늘, 허준호가 주연했고 짧은 영화를 방불케 하는 줄거리와 영상미를 자랑했다. 뮤직비디오의 개념과 인식이 한 번에 바뀌었다.

 

돌아보면 20세기 발라드 가수는 사실상 준수한 외모와 중독성 있는 노래, 단 두 개의 피스톤으로 질주해야 했다. 홍보가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서태지와 아이들(1992~1996) 이후 댄스 가수 위주로 재편된 가요시장에서 TV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고 빠른 호흡의 뮤직비디오로 승부를 거는 이들과 맞대결하기 힘들었다.

 

조성모의 데뷔 앨범은 그런 면에서 입지전적이었다. ‘to. Heaven’의 속편 격이자 일본 삿포로에서 촬영한 ‘불멸의 사랑’까지 이어가는 대작 비디오 전략으로 극장과 안방, PC통신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정서적으로 허물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정작 출연하지 않지만 당대의 배우를 모은 초호화 캐스팅, 누아르 분위기의 범죄물을 뼈대로 생사를 오가는 극한 로맨스, 원곡에 없는 무음 구간이나 별도의 스코어까지 추가해 6분을 훌쩍 넘기는 재생시간…. 이는 이후 스카이(최진영), 브라운 아이즈까지 이어지는 ‘얼굴 없는 가수+대작 뮤직비디오’ 전략의 효시가 됐다.

 

장르적으로 보면 조성모의 히트곡들은 록 발라드였다. 록 발라드는 종전까지 말 그대로 로커들의 전유물이었다. 신성우, 이덕진, 김종서 등 장발에 거친 매력을 지닌 가수가 비장미를 기반으로 가요판에 던지는 극적인 도전장이었다. 조성모는 미성에 어울리는 앳되고 청초한 얼굴, 짧고 단정한 머리와 싱그러운 미소로 록 발라드의 우중충함을 상쇄했고 이는 대작 비디오와 함께 그를 마니아의 영웅이 아닌 대중적 스타로 추동했다. 비장미 구축은 명배우들의 열연과 비디오의 ‘막장’ 스토리가 대신 해주면 될 일이었다. 즉, 조성모는 트로트 시대부터 한국인이 환영한 한(恨)의 정서를 담은 비장한 발라드라는 음악적 우성(偶性), 영상 세대의 감각적 감성, 대중 스타의 속성이 모두 절묘하게 이종교배 된 20세기 마지막 솔로 대형스타였다.

 

이런 막강한 기획력의 뒤에는 소속사 GM기획의 김광수 대표가 있었다. 김 대표는 김완선 인순이의 로드 매니저로 출발해 신인 시절의 김민우 손무현 윤상 등과 동고동락하며 연예계의 생태, 세기말 영상 세대를 위한 홍보·마케팅 감각을 다듬었다. 몇 년 뒤, 여러 가수의 발라드 모음집에 불과한 [이미연의 연가]를 밀리언셀러로 만든 것도 스타의 이미지와 음반 산업계의 흐름을 감지하고 결합한 그의 마케팅 덕이었다. 비록 이에 대한 평가는 당대에도 갈렸지만.

 

조성모의 데뷔 음반은 100만 장 이상 팔렸다. 조성모는 변진섭, 신승훈의 대를 이어 새로운 세대의 발라드 제왕 자리에 올랐다. 조성모는 이후 TV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건강하고 반듯한 이미지를 더함으로써 대중 연예인으로서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임희윤 (음악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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