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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1
by 박세회

아파트 국가의 아이돌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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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21작성자  by  박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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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샤이니의 ‘링딩동’과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가사를 비교한 글이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있다. ‘링딩동’ 가사야 다들 알 것이라 믿는다. 한편 신해철이 21살 때 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가사는 이렇다. 

 

(전략)

 

세상이 변해가듯 같이 닮아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후략)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창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하던 때, 미국의 급식 청소년으로 보이는 한 유튜버 사용자가 퀸의 공연 영상에 단 댓글이 밈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이건 불공평하잖아. 우리 엄마는 퀸을 듣고 자랐는데, 난 카디비나 들어야 한다고?”(“It is not fair my parents got this and I got Cardi B.”) 엄마 시대의 팝 음악은 진동하는 자아의 찰나를 예술적 영감으로 낚아채 그에 맞는 멜로디와 자못 시적인 가사를 붙였는데, 요새 음악 가사는 대체 왜 이따위냐는 얘기다. 

 

나는 종종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는 서울의 랜드스케이프를 보며 K-POP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떠올리곤 한다. 강변북로에서 잠실대교 남단 서쪽을 바라볼 때 보이는 그 거대한 장벽은 남들이 좋다는 것이라면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마는 한국인의 ‘인싸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모뉴먼트다. 다산 정약용 선생마저 유배 중이던 때 두 아들에게 대략 ‘아무리 힘들어도 한양을 십리 이상 벗어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지 않은가. 서울의 좁은 땅에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이 넘치니 저런 풍경이 나올 수밖에. 그러나 나는, 그 랜드 스케이프가 조금 갑갑하긴 해도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오명’ 따위의 말로 아파트라는 주거의 가치를 얕잡아 보고 싶진 않다. 오히려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실 수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아파트야말로 지금 서울에 사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집합 주거 방식이라고 말한다. 특히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는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주택과 비교했을 때 시공의 완성도, 에너지의 효율성, 주거의 쾌적성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경제의 논리다. 큰 회사에서 지었으니 시공의 완성도가 높고, 여러 채의 집이 붙어 있으니 냉난방의 효율이 뛰어나며, 여러 조합원의 의견에 거슬리지 않도록 배려해 설계했으니 살기에 쾌적하다. 

 

아이돌 음악으로 대표되는 K-POP도 마찬가지다. 원래 팝은 팔기 위해 만든 음악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록 음악이 진본성 혹은 진정성(authenticity)의 칼날을 들고나와 팝의 전위에 서며, ‘노래는 락 아니면 다 팝’이라는 이상한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결국 락이고 팝이고 따질 것 없이 대중음악의 본질은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한 상품’이다. 그런 면에서 K-POP이 만들어낸 전략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탁월했다. 생각해 보라.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흥겨운 비트의 음악을 작곡 혹은 편곡할 수도 있으면서 춤까지 잘 추고, 말까지 잘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온갖 인류 상위 호환적인 매력을 한 몸에 지닌 스타는 좀처럼 태어나기 힘들다. 스타의 탄생을 기다리느니 만드는 게 빠르지 않겠나? 뉴키즈 온 더 블록, 백스트리트 보이즈, TLC와 스파이스 걸스의 시대가 서구에선 저물었지만, 한국의 기획사들은 곧 터질 것 같은 우물을 꾸준히 파기 시작했다. 유년기를 이제 막 지난 재능 넘치는 매력적인 외모의 아이들을 연습생으로 모았고, 처절한 서바이벌 게임을 견뎌낸 아이들을 팀으로 묶었다. 이 아이들에게 인디 음악계부터 재즈와 클래식계를 아우르는 송 라이터들이 기획사가 주최한 송 캠프에서 뽑아낸 최고의 곡을, 안무 비딩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선정된 가장 매력적인 춤을 추며 부르게 했다. 에드 시런이 존 메이어의 외모를 빼앗아온다고 해도 BTS와 블랙핑크를 탄생시킨 이 확고한 시스템을 이길 수는 없다. 현대 K-POP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한국의 1980~90년대의 싱어송라이터들의 넘버들이나 2000년대의 인디 뮤직과 비교해 봤을 때, 많게는 10명이 넘는 작곡 팀이 만들어낸 사운드 스케이프의 완성도,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직원들이 전략적으로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홍보 및 마케팅 전략의 효율성, 수천 명의 아이들 중 살아남은 서바이버들이 모여 발산하는 매력 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K-POP이야말로 상품으로서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최적의 시스템인 셈이다. 

 

신해철은 자신의 노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샤이니의 ‘링딩동’과 비교한 글이 커뮤니티에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콘서트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가사는 21살 때, 아직 소년과 성년 사이에 있을 때 자의식 과잉 상태에서 쓴 것이다. 즐겁게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 노래 가사의 가치가 자의식 과잉 상태에서 쓴 내 가사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콘서트에서 그가 남긴 뒷말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넥스트를 하면서 흔히 말하는 '유행가 이상의 음악을 만들고 있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우리가 해온 작업도 조금 더 수명이 긴 유행가를 만드는 것이다.”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철저하게 산업적인 음악’이라는 해석을 조금 바꿔 생각하면,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대중문화를 가장 활발하게 소비하는 계층과 세대에게 가장 잘 팔리도록 기막히게 잘 만든 음악’이 아닐까? 아파트만 K-POP인 것은 아니다. 서귀포시 연돈 돈까스집 앞에 텐트를 치고 날밤을 새우는 사람들, 대치동 학원가에 저녁마다 늘어선 세단과 SUV들, 빈자리 없이 ‘#가오픈’ 해시태그를 달고 영업하는 레스토랑들도 비슷한 욕망의 주체이거나 그 욕망을 이용하는 주체다. 나는 지금 기타 소년들이 전부 기획사 송 캠프에 들어가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로 도시 전체를 채울 수는 없다. 개발이 제한된 내밀한 감정들은 여전히 작은 주택 같은 싱어송라이터의 목소리나, 삼삼오오 모인 빌라 같은 밴드 음악으로만 노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모인 경관이 K-POP을 포함한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이룰 것이다. 당신이 그 경관이 아름답다고 여기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 

 

[사진출처=터틀 출판사]

 

 

박세회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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