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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5
by 차승우

세기말, 대한민국 인디신의 태동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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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7-05작성자  by  차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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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언저리의 풍경은 불길한 징후로 가득했다.

 

1993년의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를 필두로, 아시아나 항공 추락, 서해 훼리호 침몰, 94년과 95년에 이르러서는 한강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헬게이트’가 열려버렸다. 1997년의 IMF 사태로 새천년을 목전에 둔 대한민국은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외환 위기는 곧 실물 분야의 위기로 전염되어, 둑이 무너지듯, 극히 짧은 시간 사이에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가정이 붕괴되고, 자살자가 속출했다. 양극화, 고용불안, 청년실업 등 이전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다시피 했던 사회의 일면이 짙은 어둠 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패배와 허무의 시기. 서브컬처의 태동은 필연적이었다. 당시 나와 같이 성난 청춘들에게 있어, 더 이상 기성세대가 제시할 것은 없었고, TV 따위의 매체에서 새로운 경향이라 호들갑 떨며, 젊음을 표상하던 그 모든 것이 역겹기만 했다. 

 

당시 세계 청년 문화의 흐름을 주도했던 미국에서 시작된 ‘얼터너티브 무브먼트‘는 이내 전 세계적인 유행을 맞았고, 이는 그간 문화적 동토의 땅이었던 대한민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계적 청년 문화의 동시대적 수용이라는 점에 있어서,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래의 청년들, 소위 ’X 세대‘는 그 첫 번째 수혜자가 되었다. MTV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 전문 채널과 타워 레코드 같은 대형 음반 매장, 그리고 인터넷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는 PC 통신을 통해 저마다의 취향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새로운 흐름의 중심에 ‘너바나’가 있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그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곤, 곧바로 일렉 기타를 구입한 녀석들이 내 주위만 해도 여럿 있었는데, ‘70년대 펑크록의 재래‘ 따위의 시시껄렁한 미사여구는 아무래도 좋았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대를 위한 무언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불안과 혼돈으로 상징되던 세기말 시대정신의 청사진이다. 그런 그의 사망 1주기가 되던 1995년, 홍대 모처의 작은 클럽에서 추모 공연을 연단다. 원래 ‘레게빠’로 문을 연 그곳은 그날의 추모공연을 기점으로 정기적으로 공연이 열렸고, 그 소문을 들은 아마추어 밴드 크라잉넛이나, 옐로우 키친 같은 밴드가 합류하게 되면서 명실상부 라이브 클럽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PC 통신이나 ‘핫뮤직’ 따위의 음악 잡지, 혹은 입소문을 통해 ‘어떤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한’ 아이들이 홍대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각기 배경은 다르되, 같은 정서적 온도를 공유하는 십 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아이들에게 상수동 86-35 지하는 일종의 해방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2부에서 계속)

 

[사진출처=드럭레코드] 

 

 

 차승우( 뮤지션/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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