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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2
by 조동희

‘그것만이 내 세상’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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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7-12작성자  by  조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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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내리쬐는 중학교 교실은 지루함과 반항심과 설렘이 혼재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우르르 매점으로 달려가거나, 도시락을 꺼내 먹거나, 어제 새벽까지 귀가 뜨겁도록 수다를 나누었어도 미처 다 못한 ‘했던 말’들을 또 하는 무리들로 분주했다. 작은 표정, 무심히 흘린 말 한마디에도 수백 가지 의미가 가득하던 시절, 나는 그 시간에 주로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었다.

 

당시의 아이들은 TV만 틀면 나오던 이선희의 ‘갈바람’이나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 그리고 김완선의 압도적 카리스마에 열광했다. 

 

구창모의 솔로 앨범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가 기존 송골매 팬들에겐 야속하리만치 히트를 치고 있었고, 조용필도 ‘허공’같은 곡을 들고나와 역시 ‘조용필이야’ 소리를 듣던 때였으며, 이광조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가요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어덜트 뮤직 선두주자 최성수의 매끄러운 ‘남남‘은 막연하지만 어른의 맛을 알게 해주었고, 해외파 가수 임병수의 ’하얀 갈대‘라는 노래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밤 시간 라디오를 틀면 정말 많이 나오던 노래가 따로 있었다. TV에서는 한 번도 못 보던 사람들, 팝스러운 사운드와 대체 불가능한 보컬 톤. 무엇보다 너무나 반항적인 저 가사!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이 노래처럼 그 질풍노도의 마음에 강한 돌을 던진 노래는 없었다. 처음 이 노래를 듣고는 계속 듣고 또 듣고 싶어 급히 수소문했다. 이 괴물 같은 노래는 누구의 것인가. 동네 레코드 샵에 가서 아저씨께 노래를 해가며 설명을 해 알아낸 그 이름 ‘들국화‘.

 

지금도 그렇겠지만 ‘나만 아는 뮤지션‘에 대한 쾌감이란, 친구에게 알리고도 싶고, 알리고 싶지 않기도 한 비밀 같은 것이었다.

 

1985년, 동아기획에서 발표한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지상파 방송 없이 소극장 공연만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가요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각자 음악 활동을 하던 전인권, 허성욱, 최성원은 이런저런 우연과 필연으로 만나 팀을 만들었고, 팀명 후보로 '코스모스', '들장미', '들국화'가 있었다고 한다. 3인조였던 그룹에 마지막으로 조덕환이 참여해 완벽한 라인업이 완성되었고, 1985년 9월, 이토록 완전한 데뷔 앨범을 발표한 것이었다. 

 

만일 이 3인조 그룹 이름이 ‘코스모스’였다면? 이토록 묵직하게 들국화 한 송이 가슴에 던지는 음악은 아니었을 것 같다. 

 

들국화는 최구희, 손진태, 주찬권이 함께한 [들국화 2집]까지도 여전히 강한 향기의 들국화였고 차츰 멤버들이 들고나며 그 색을 달리하였다.

 

몇 장의 명반들이 있었어도 1집의 그 폭발력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1집 수록곡들은 한 알 한 알 보석처럼 빛난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더 이상 내게’, ‘축복합니다’, ‘사랑일 뿐이야’,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당시 80만 장 판매되었다는 들국화 1집은 모든 공연이 매진이었고, 후에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라는 타이틀로 증명되었다.

 

나는 이 노래들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소리소리 치며 불러댔다. 학교 운동장에서, 장롱 안에서, 때때로 반 장기 자랑에서.

 

중학생 때, 종로2가 파고다예술극장 공연에 가기 위해 돈을 모았고 생애 첫 공연표를 샀다. 당시에는 소방법도 없던 시절이어서 좁은 극장의 무대 위까지 꾹꾹 관객들이 들어찼다. 내 자리는 허성욱의 건반 옆자리였다. 무대 위의 관객인 셈이다.

 

당시 관객들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무대 위로 던졌는데 그 종이비행기를 나 또한 함께 맞으며 공연을 보았다. 아니, 들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릿한 노래의 전주들, 자유로운 애드립들, 시적인 가사들, 세련된 멜로디들, 전무후무한 보컬의 에너지들을.

 

내 질풍노도의 시기는 들국화가 8할이다. 내 안의 불안과 불만과 슬픔은 들국화 꽃잎처럼 날아가고 ‘진정성’이라는 씨앗을 내 안에 남겼다. 작은 유리병 속 ‘그것만이 내 세상’이던 십 대 시절, 나는 덕분에 견고한 ‘작은 우주‘를 품을 수 있었다.

  

 

조동희 (작사가,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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