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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9
by 박세회

고음병과 노래방과 발라드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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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7-19작성자  by  박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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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피트니스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다가 흠칫 놀란 적이 있다.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선지도 한참 지난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그것도 압구정동(집은 압구정동이 아님)의 피트니스센터에서 ‘뱅크’가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노래가 나왔던 1995년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떠올리자, 어쩔 수 없이 날카로운 첫사랑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눈물이 또로록 흘러버렸다. 술도 제대로 마셔본 적 없으면서 좋아하는 누나를 앞에 두고 노래방에서 ‘술에 취한 네 목소리 문득 생각났다던 그 말’이라는 가사에 흠뻑 젖어 목에 핏대를 세우던 중딩 때의 가슴 저릿한 흑역사가 생각나며, 어린 내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를 웹에서 검색하고는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가 DK(디셈버)의 ‘심(心)’,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IVE(아이브)의 ‘I AM’ 등과 함께 코인 노래방 인기차트 10위권 안에 들어 있었다. 몇 년 전 얘기가 아니다. 2023년 5월에 일어난 일이다. 1990년대 발라드의 유행이 돌아온 것이다. 


난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가 기묘하게 재유행한 사실과 한국의 유서 깊은 노래방 문화가 꽤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엄밀히 말해 당시 노래방은 청소년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정부는 노래방이 폭증하자 1992년 6월 풍속영업규제법을 발동해 미성년자의 노래방 출입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성호르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춘기의 중고딩들에겐 이성과 갇혀 있을 공간이 반드시 필요했고, 결국 하루가 멀다 하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노래방 문을 두드렸다. 다 함께 듀스나 DJ DOC 혹은 영턱스 클럽의 노래를 서너곡 쯤 신나게 부르고 나면 누군가 꼭 발라드를 예약 목록에 올렸다. 예약 목록에 오른 발라드는 같은 방에 있는 이성에게 나의 끼와 가창력을 보여주기 위한 최선의 무기였다. 집에선 너바나나 오아시스를 듣는 ‘팝 중딩’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쉬는 시간이면 여느 교실에서나 수컷 꾀꼬리들이 그날 저녁 학원을 땡땡이치고 노래방에서 부를 발라드를 귀청이 떨어져 나가라 진성으로 연습했다. 당시 내 친구 중 하나는 샤워를 하며 하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서 옆집 아주머니께서 ‘제발 그 집 아들 노래할 때 화장실 창문 좀 꽉 닫아 달라’고 집으로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친구들이 열을 올리던 것은 항상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는 고음 파트에서였다. 그러니까 김경호의 노래로 따지자면 ‘약속~해 줘~’(김경호 - 금지된 사랑 *편집자 주)라며 샤우팅 하는 파트를 얼마나 깔끔하게 뽑아낼 것이냐에 심혈을 기울였다. 고음, 그것은 잘생긴 얼굴, 긴 팔다리, 탄탄한 가슴 근육만큼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3옥타브 D’까지 목소리가 올라가는 보컬 선배가 있었는데, 구 단위에서 그 이름을 떨칠 정도로 유명했다. 그러니까, 뱅크, 김민종, 김경호, 김종서, 이지훈, 임창정 등의 고음 가수들이 엄청난 인기와 성호르몬의 노예가 되어버린 1980년대 생들의 가창력 상향 평준화 사이에는 떼어놓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나는 이 노래방 부흥기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고음병’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고음’병’이라는 단어가 이미 고착화되어 ‘병’이라 쓰긴 했지만, 이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매우 중요한 특징일 뿐이다. 가창력 중에서도 지표화하기 가장 좋은 고음을 사랑하는 우리나라이기에 <나는 가수다>나 <복면가왕> 등의 프로그램이 성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마 엑스 재팬의 ‘엔들리스 레인’과 스틸 하트의 ‘쉬즈 곤’, 스트라이퍼의 ‘투 헬 위드 더 데블’ 같은 노래가 전 국민이 따라 부를 정도로 유행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출장으로 찾은 포틀랜드에서 가라오케에 간 적이 있다. 얼마 전엔 오사카에 갔다가 일부러 일본 사람들은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궁금해 ‘락 가라오케 바’라는 곳을 찾기도 했다. 두 곳 모두 건전한 음악팬들이 모여서 맥주를 마시고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곳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정말 더럽게 노래를 못한다는 것, 그리고 노래를 못하면서도 무척 신나한다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의 노래방에서 아무 남자나 한 두 명쯤 데려다가 포틀랜드나 오사카의 가라오케에서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를 부르게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깜짝 놀라 “어메이징”을 외치며 가수 데뷔를 권하진 않을까? 보통의 사람들이 이렇게 노래에 열심인 나라가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얼마 전 필리핀에 사는 내 전화 영어 선생과 이런 얘기를 하다가 큰 반발에 부딛혔다. 내 영어 선생인 신시아 씨에 따르면 필리핀 사람들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저니(Journey)의 새로운 전성기를 함께 만들어낸 필리핀 출신 보컬리스트 아넬 피네다 같은 사람이 마을마다 한 사람씩은 꼭 있다고 한다. 어쩌면 ‘가창의 민족’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한국과 싸워야 할 상대는 이제 필리핀 정도만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노래방 부흥기를 거쳐 이제 다시 코인노래방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노래방에서 야다의 ‘이미 슬픈 사랑’을 부르고 있은 십대 꾀꼬리들에게 응원을 전한다.

 

[사진출처=KBS]

 

 

박세회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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