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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by 차승우

세기말, 대한민국 인디신의 태동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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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02작성자  by  차승우 

본문



 

(1부에서 이어집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홍대 일대는 비교적 조용한 지역이었다. 일반적인 대학가 상권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무언가는 있었달까. 언제부터인가 카페 골목이 형성되더니, 곧 개성적인 바나 클럽이 골목 사이사이에 터를 잡으며, 다양한 부류의 몽상가, 보헤미안들 또한 각자의 둥지를 찾아 홍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시대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였던 압구정에서도, 혹은 신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부류의 출현이었다. ‘부류’라 표현했지만, 그것은 범 홍대라는(점차 신촌 지역으로 확대) 서식지 아래에서 여러 갈래의 양상으로 구분되었다. 

 

테크노 클럽 <발전소>와 <황금투구>, 또는 <명월관>의 레이버들, 브릿팝이나 얼터너티브 뮤직을 향유하던 <스팽글>과 <클럽 빵>의 병약하고 예민한 청춘 군상들, <마스터플랜 (구 푸른굴 양식장)>의 힙합 키드 등, 홍대 앞은 여타 여러 서브컬처가 한데 섞인 용광로와도 같았다.

 

<드럭> 또한 1995년 5월, 홍대 주차장 길과 명동에서 양일간 벌였던 ‘스트리트 펑크쇼’를 시발점으로 ‘펑크 공동체’라는 인식을 공공히 했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나는 또래의 친구들과 <크라이 베이비>라는 밴드를 꾸려 막 공연 활동을 시작한 무렵이었다. 나름 강남 인근에서 날고 기던 아이들이 모인 덕에 밴드는 지자체 주최 밴드 경연 따위의 무대를 휩쓸며 급기야 압구정의 <록 미 아마데우스>라는 클럽에 정기 출연, 이미 레전드였던 시나위의 오프닝 무대에 서기도 했다. 

 

‘꽤 야무진 고딩 밴드가 있다’는 입소문 때문인지, 이런저런 음반 제작자들의 콜이 있었지만, 그들이 제시하던 모든 것이 시시껄렁하게만 느껴졌다. 밴드는 그간의 지미 헨드릭스나 크림, 야드버즈 등의 고색창연한 커버에서 벗어나 무언가 격정적이고 유니크한 나만의 이야기로의 변화가 절실했다. 꼰대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닌, 지금 또래의 아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것. 입에 발린 근사함이 아닌, 엉망진창의 상태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 운명이 문을 두드리듯, 그렇게 펑크록이 찾아왔다. 

 

(3부에서 계속.)

 

[사진제공=차승우] 

 

 

차승우( 뮤지션/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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