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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0
by 차승우

세기말, 대한민국 인디신의 태동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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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30작성자  by  차승우 

본문



 

(2부에서 이어집니다.)

 

 

1996년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있어 펑크록 원년이라 해도 좋으리라. 상수동의 지하에서 암약하던 어떤 움직임이 곧 바깥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클럽 드럭이 제작한 컴필레이션 앨범 [아워네이션 1]의 발매는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타인의 자본에 의탁하지 않은 채 철저한 자급자족/가내 수공업 형태로 만들어진, 제대로 마스터링도 거치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그러한 조악함이 되려 미학적으로 다가왔다. 당시 시점으론 ‘족보도 없던’ 크라잉넛과 옐로우 키친의 매치업은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상업주의 일변도인 종래의 음악 산업, 소위 엘리트 음악인들의 구태의연한 프로페셔널리즘, 더 나아가 온갖 엄숙주의와 부조리에 조롱과 야유를 날리지만, 왠지 모를 애수와 처연함이 공존한다. 그렇게 먹고살기도 팍팍한 시대를 관통한 거침없는 일갈은 자신을 낙오자라 자처하던 수많은 청춘들의 송가가 되었다. 

 

내가 크라잉넛이라는 새로운 밴드에 대한 소문을 처음 접한 것은 1996년 여름 즈음으로 기억한다. 수능을 앞두고 또래의 (정상적인) 아이들은 대학 입학과 진로 문제로 고민할 시기였다. ‘말 달리자’를 듣고, 또 그들의 아수라장과도 같은 공연을 목도하곤, 나의 최종 행선지는 결국 클럽 드럭이 되어버렸다.

 

초기의 드럭. 그 공간에 처음 발을 들인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곳엔 그 이전 어디에서 볼 수 없었던 아수라도가 펼쳐져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피어싱을 한 아이들이 1층 입구에서 지하 클럽으로 이어지는 난간도 없고 비좁은 계단에 줄줄이 늘어앉아 있는 통에 입장하는 것 자체가 꽤나 기 빨리는 일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욱이 상상을 초월하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이 지옥인가.’ 들어가자마자 훅 끼쳐오는 열기와 습기.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무리가 무자비한 비트에 맞춰 서로 몸을 부딪히며 고래고래 아우성을 친다. 그리고 제대로 된 무대도, 조명도 없이 연주인지, 노이즈인지도 모를 굉음을 만들어내는 밴드. 집단 발광이 이런 것이구나. 그저 의식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던 어떤 상이 눈앞에 실시간으로 전개되니 강렬한 카타르시스, 해방감이 느껴졌다. 나는 즉각적으로 그 지저분하고 쾌쾌한 공간에서의 특별한 의식에 매료됐고, 곧 드럭의 열성 지지자가 되었다. 

 

고교 졸업 시즌이 다가옴에 따라 나의 밴드(크라이 베이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행색부터 완연한 펑크 키드 자체였고, 당시 드러머였던 이상민(훗날 밴드 ’긱스‘의 드러머로 활동하게 되는)은 재즈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결국 시한부 유닛이 된 채로 드럭 밴드 오디션을 보려 했으나, 이미 하우스 밴드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방과 후 귀갓길 마을버스 안에서 나를 부르는 뜻밖의 인물. 문인이자 음악 평론가였던 성기완 형과의 뜻밖의 조우였다. 

 

그는 당시 음악 비평 모임 ‘얼트 바이러스’의 일원으로 대규모 공연을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일찍이 시나위 콘서트의 오프닝으로 선 크라이 베이비의 무대를 보곤 좋은 느낌을 받았다나. 이미 공연의 얼개는 다 짜인 상태이니 특별 출연 정도로 참가할 의사가 있냐고 물었다. <소란>이라 명명한 그 공연은 대한민국 록 페스티벌 최초의 형태로, 당대의 비주류 음악신이 총결집했다. 시도 자체도, 라인업도 획기적이었다. 당시 막 활동을 시작한 델리 스파이스, 자우림의 전신인 초코 크림 롤스, 그리고 드럭 밴드(크라잉넛, 옐로우 키친, 위퍼, 갈매기, 벤치)도 포함돼 있었다. 

 

뜻밖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합니다. 하고 말고요.” 마을버스 안의 우연한 만남 이후로 상황은 급 전개. 당시의 나로선 연대 노천극장의 규모와 수많은 관중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드럭 밴드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오디션에서 실력도 보이지 못하고 ‘뺀찌’를 먹은 바 있지 않던가. 한번 본때를 보여주자 싶었다. 

 

(4부에서 계속.)

 

[사진출처=한경록 트위터]

 

 

차승우( 뮤지션/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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