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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6
by 조동희

어쩌다 마주친 청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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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9-06작성자  by  조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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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거짓말처럼 재결성한 송골매 공연에 갔다. 친구가 자기 자신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송골매 공연 티켓을 두 장 샀다며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송골매의 노래를 듣고 자란 나는 거의 모든 곡을 다 외우고 있었다. (아니, 입력된 거라고 해야겠지.)

 

초등학생 때 ‘젊음의 행진’이라는 음악 프로를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배철수 님의 노래 <그대는 나는>의 전주가 흐르기에 설레는 맘으로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는데, 그 순간 배철수 님이 직각으로 훅 넘어지시는 거다. 모두들 ‘꺅-’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 방송사고! 알고 보니 감전 사고였다. 기타를 잡은 왼손에서 마이크를 잡은 오른손까지 심장을 통과해 전류가 흘렀다고 했다. 무슨 일 났겠다 싶어 몹시 걱정했는데 다행히 배철수 님은 곧 회복해 일본 공연에 참가하셨고 어린 나이에 그 모습이 불사조처럼 보였다.

 

송골매 공연장에 온 관객들 평균 연령이 5~60세는 돼 보였지만, 38년 만에 열리는 송골매의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에 공연자도 관객들도 모두 한껏 들뜬 듯이 보였다.

 

내 추억의 노래들을 모두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연장에 들어서니 해외 아티스트를 방불케 하는 규모와 조명, 사운드, 미디어 장비와 꽉 찬 관객들에 가슴이 엄청 뛰었다. 아이처럼 흥분한 ‘초등학생 조동희’가 거기에 앉아있었다.

 

공연 시작과 함께 타임머신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영상이 나오고, 배철수, 구창모 두 분이 양쪽에서 나오며 ‘크로스!’ 한때 밴드 해체와 함께 불화설이 루머로 돌았었기에 더 찡했던 장면이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그 익숙한 기타 리프! ‘짜자자잔짜자자자잔~~ 어쩌다 마주친~’ 하며 30년 전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그 목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관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2시간 40분을 함께 공연했다. 거의 첫 곡부터 끝 곡까지 모두가 따라 불렀으니 함께한 공연 맞다.

 

연주자들도 국내 최고였으니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배철수 님의 목소리도 시간을 충분히 거스를 정도로 멋있었다. 마치 데이빗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가 다시 만난 핑크 플로이드 공연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집에 돌아오는데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고 이란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아... 이렇게 멋진 록밴드가 있었는데 나는 추억 속에 그 좋은 노래들을 덮어두고 살았구나’ 

 

언젠가 배철수 님의 인터뷰 중 “송골매라는 밴드는 연주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역사다”라고 말씀하신 기사를 보았다. 공연 이후 몇 날 며칠을 송골매만 들었는데 당시엔 모르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십 대 청년들의 조금은 치기 어린 인생론, 곡마다 입체적인 기타 리프, 엄청 신경 쓴 악기톤, ‘그저 그렇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밴드 편곡, 심지어 수트에 갖춰 신은 하얀 스니커즈까지. 지금 들어도, 보아도 너무 세련된 프로페셔널의 모습.

 

1기 배철수, 이응수, 이봉환, 지덕엽으로 시작한 송골매는 추후 구창모가 탈퇴하기 전까지 배철수, 구창모, 김정선, 이봉환의 라인업을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배철수에 못지않게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구축한 이봉환의 오랜 활동도 눈에 띄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한국의 청년문화는 대마초 파동 이후 가요 탄압으로 인해 시들시들해졌다. 나 또한 그 시절에는 라디오를 부여잡고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자유로운 가사와 멜로디에 심취해있었다.

 

그랬기에 이 시절 등장한 호기로운 산울림, 송골매 같은 밴드들은 한국 청춘들의 갈증에 빗물 같은 존재들이었다. 송골매는 각종 광고, 몇 편의 영화에도 단골손님으로 출연했으며 그들의 인기는 전에 없던 것이었다.

 

최근 배철수 님의 영상들을 찾아보며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내가 평소에 자주 하던 말 “쌀로 밥 짓는 얘기하지 마라.” 하나 마나 한 얘기 뭐 하러 하느냐는 이야기. 영혼 없는 위로나 틀에 박힌 희망 강박,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오는 거짓 공감 같은 건, 마치 수만 개의 똑같은 가사 위에 똑같은 가사 하나를 더 얹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싫어하는 거다. 무난하게 평범한 사람 말고, 자신만의 것, 대체 불가능한 사람. 

 

밴드의 리더에서 물러나 찾은 자리, 배철수 님의 30년 DJ 장수 비결은 그 지혜를 일찌감치 깨달으셨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위치보다 낮추어 자리하는 겸손함, 칸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일관적인 생활 패턴. 그런 걸 시스템이라 부른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조각해가는 시스템.

 

“돌아올 수 있는 한 가장 멀리까지 가봐라.” 방송에서 믹 재거의 말을 인용하시기도 했는데, 이건 너무나 공감되어서 내 메모장에 바로 적어놓았다.

 

‘젊음’이란 물리적인 것이고, ‘청춘’이란 그 영혼의 상태인 것 같다. 요즘의 배철수 님을 보면 나도 반짝이는 은발을 날리며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 세월은 원망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선물 같은 것이니까.

 

오늘은 어쩌다 마주친, 내 청춘의 푸른 노래들로 하루를 채운다.

 

 

조동희 (작사가,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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