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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7
by 이충걸

음색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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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9-27작성자  by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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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거리를 걷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멈추고 인사할지, 그대로 가버릴지는 그 사람의 목소리에 달렸다. 몇 초 만에 특정 주파수가 내이(耳)에 닿을 때, 헤어지고 싶은 건지, 헤어지기 싫은 건지 우리는 다 안다. 음색은 서로 다른 소리의 색깔을 구분하는 청각적 속성이라서. 

 

수선스러운 파티에서 기타리스트가 메탈릭 톤을 연주하는 소리, 초보 밴드 학생이 심벌즈를 부수는 소리, 펜이 교실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 분별없는 자동차 경적 소리, 모든 게 다른 형태의 음색이다. 한 단어도 모르겠는 몽골 노래가 친숙하게 들린다거나, 피지의 호텔 스태프가 정체 모를 노래를 불러줄 때 덮어놓고 밤새 듣고 싶은 것은 마음을 끌어당기는 음색의 마법이다.

 

악기도 똑같다. 일렉트릭이든 어쿠스틱이든 음색은 유형 따라 차이가 나고, 같은 곡을 연주해도 다른 사운드가 난다. 사실, 음표의 깊이는 음의 길이와 관련돼 있다. 피아노에서 가장 음이 낮은 건반을 두드리면 육신의 저 깊숙한 내부에서 가장 긴 현이 진동한다. 사람 호흡도 목 안의 긴 관을 따라 더 멀리 갈수록 피치가 깊어질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가수들은 앨범을 낼 때마다 키도 커지고 성대도 그만큼 길어질 것이다.)

 

음악과 음색의 공통점은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느리고 조용하며 낮은 음조는 차분하게, 빠르고 시끄럽고 높은 음조는 화난 듯 들리는 건 음악적 의인화, 즉 소리가 감정과 비슷하게 해석되기 때문 아닌가. 가혹함이란 왜곡된 일렉트릭 기타와 스네어 드럼과 심벌즈의 충돌, 그리고 톱처럼 마음을 써는 파도 소리이다. 부드러움이란 리코더와 조용한 피아노 음표와 호른이 합작한 소리이다. 밝음이란 피콜로와 트럼펫과 오보에의 음향이다. 쇳소리란 트롬본과 튜바에서 나는 맛이다. 바람의 느낌이란 오보에와 클라리넷과 바순이 풍기는 향이다.

 

한편, 보컬은 가장 넓은 범위의 음색이기도 하다.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가수를 알아채는 건, 가수에게 음색은 제2의 천성이자 재능을 드러내는 제1원소이기 때문에. 코드 몇 개만 들었는데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무서워지는 건 음색이야말로 감정을 전하는 특정한 사운드라서 일 것이다.

 

목소리에는 집이 없다. 몸도 목소리의 집은 아니다. 그러나 가수의 목소리가 청자 앞에서 색깔을 입을 때, 그들 몸 안에 머무는 작은 기적이 생긴다. 적극적인 비브라토 없이 음색만으로 감정을 실어 나르는 ‘님의 계절’의 나미처럼, 밝고 재미있는 음색으로 펑키하고 에너제틱한 분위기를 만드는 ‘업타운 펑크’의 브루노 마스처럼, 허심탄회하고도 어둑한 음색으로 슬픔과 후회를 불러일으키는 ‘헬로’의 아델처럼.

 

노래는 목적 없는 음색의 집합이 아니다. 가끔 너무 궁금하다. 가수는 어떻게 노래의 전체 인상을 만들까? 그 음색은 어디서 생성되어 입으로 방출되는 걸까? 다른 음파를 끌어오는 비밀은 입안으로 빨아들이는 공기의 속도일까? 아니면 입자의 질감? 어쩌면 구강 크기와 모양, 성대의 길이와 두께 자체가 필시 우리와 다른 게 분명해.

 

가수 음색의 스펙트럼 특성은 말 그대로 백이면 백 다 다르다. 블랙커피를 처음 맛본 것처럼 타오르는 뒷맛을 남기는 제니스 조플린, 정의할 수 없는 유기체의 김정미, 마루에 칠한 바니시가 벗겨진 듯 모래가 섞인 초기 조용필, 조용한 힘을 발산하는 카렌 카펜터스, 청량한 발포성의 이승미, 감미로운 듯 숨 가쁘고, 취약한 듯 부드러운 채 타고난 낙관주의의 올리비아 뉴튼 존, 나른한 듯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젊음의 유재하, 노래 부르기보다 소리 지르고 으르렁거리고 혐오스러우면서도 절대적으로 안정적인 찰리 패튼...

 

어떤 의미로 음색은 대중음악의 고전적 관습과 현대적 진부함을 결합하는 방식이 되었다. 현인과 전영이 따로 부른 ‘서울 야곡’을 들을 때 스타카토와 소쇄한 음색이 서로의 창법과 맞물리면 노래가 의미하는 것은 약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 잡힌 과거, 불가능했던 것이 바뀌는 현재, 다가온 미래.

 

조금 전, 조니 캐시의 ‘Hurt를 들었다. 내가 항상 들었던 목소리였다. 용접공의 손처럼 불길을 자르고, 공중에 호를 그리고, 결코 다다르지 못할 끝을 상상하는 바로 그 노래를.

 

 

이충걸 (에세이스트, GQ KOREA 초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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