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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4
by 차승우

세기말, 대한민국 인디신의 태동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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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0-04작성자  by  차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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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취업, 진로... ‘공부’만이 청소년의 본분이라는데,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었다. 고교 입학과 동시에 사고를 쳤는데, 학교가 큰 비리 사건에 휘말린 바람에 처벌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더랬다. 학교 자체는 더럽게 시시했지만, 죽이 맞는 친구 몇 놈 덕에 역시 중퇴를 면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노란 선을 따라 걸어가는 행렬에 줄을 서고, 나는 행복한 낙오자가 되기로 했다. 졸업하자마자 머리를 핑크색으로 물들인다면 꽤 멋질 거라 생각했다.

 

또래 아이들이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던 96년 가을. 나는 나대로 인생의 첫 밴드 ‘크라이 베이비’의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밴드의 레퍼토리라 해봐야 지미 헨드릭스와 야드버즈, 크림, 마운틴 따위의 구닥다리 로큰롤 커버가 대부분이었지만, 거기에 더 클래시와 섹스 피스톨즈, 라몬스 같은 펑크 넘버들을 추가했다. 그간의 개인적인 취향의 변화도 그러하거니와 같은 무대에 서게 될 드럭 밴드들을 의식한 나름의 전술이었달까.

 

공연 당일, 리허설을 하러 가는 길은 꽤나 긴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몹쓸 공연 전 음주벽은 아마 그때가 시작이었으리라. 캔맥주를 목구멍에 짜넣고, 기합을 ‘악’ 넣고 노천극장에 들어서니 야외 계단에 눈에 익은 한무리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알록달록 제각각의 헤어스타일, 바지엔 주렁주렁 체인을 매단 채, 몇몇은 옹기종기 앉아 가락을 맞추고, 또 몇몇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드럭 밴드들이 먼저 도착해서 리허설을 하는 중이구나. 

 

무리에게 다가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니, 몇몇은 나를 알아보곤 놀라워하는 기색이다. “사실 나도 밴드맨인데, 여차저차 오늘 무대에 서게 됐다.” 다들 공연 보러 오겠다며 호들갑이다. 크라잉넛, 옐로우 키친, 위퍼, 갈매기의 멤버가 다 모여 있었다. 

 

대낮부터 델리 스파이스, 초코크림롤스 등등의 공연이 이어졌고, 곧 해 질 녘이 되어 하늘이 붉은 빛깔로 물들기 시작했다. 일생일대의 대규모 공연. 시시한 청소년 경연 무대나 지린내 나는 압구정의 클럽 무대에 설 때와는 또 다른 에너지가 와닿았다. ‘이 모든 기운을 압도해야 한다.’

 

간단히 사운드 체크를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뭔가 그럴싸한 첫마디를 해야겠는데, 긴장이 되니 도무지 뇌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수많은 관중 사이에 드럭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제기랄, 안녕하세요. 저희는 고교생인데요, 원래 4인조인데, 어제 보컬리스트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세 명이서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순간 연대 노천극장은 얼음이 돼버렸다.

 

이윽고 웅성거리는 소리. “뭐야, 죽었다는 거야?”, “어쩜, 어떡해.” 

몇 초가 흘러, 나는 다시금 운을 땠다. 

“뻥이예요.”

 

아아, 지금 생각해도 최악의 멘트였거늘, 다행히도 좌중은 폭소 대잔치가 되었다. 여새를 몰아 연주를 시작했고, 마지막 섹스 피스톨즈의 커버 <No feelings>를 연주할 땐, 드럭 밴드들이 무대에 난입해서 아주 아수라판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고교 시절 첫 밴드의 마지막 무대가, 또한 첫 번째 대규모 야외무대가,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첫 무대가 끝이 났다. 

 

 

차승우 (뮤지션/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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