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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by 조동희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그런 내가 쉬었던 곳, 하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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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0-11작성자  by  조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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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내심을 사회생활이 아닌 하나음악에서 배웠다.’ 누군가 쓴 글을 보고 주위 동료들과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음악. 느리고도 느린, 하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강줄기 같은 노래들이 있던 곳.

 

스무 살, 논현동 어느 주차장 셔터문을 열고 들어가면, 비밀조직 아지트처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열 계단 정도 내려가면 육중한 문이 있고 왼쪽으로 향해 있던 그 문을 열면 쿵쾅쿵쾅 음악 소리가 들리고 담배 연기로 눈이 매웠다.

 

한쪽에선 술을 마시고 있고 한쪽에선 토론을, 한쪽에선 게임을 하고 있고, 연습실에선 누군가 연주하고 있다. 바로 녹음할 수 있는 녹음실과 부스가 있고, 드럼 부스엔 빨간 카펫도 깔아두었다. 통유리로 된 작은 회의실이 있었으며, 둥근 원탁이 있는 응접실도 있었다. 나는 그 응접실에서 신윤철, 고찬용 오빠들과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27시간을 깨어있은 적이 있다.

 

많은 음악인들이 하나음악을 들으며 감수성과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고 얘기하듯, 나 또한 그 안에 속한, 그중 한 사람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자연스레 그곳에 가서 노래하고 놀았으며, 그곳 사람들에게 술을 배웠고, 음악을 함께 들었다. 학교에서 내가 만든 영화의 음악을 거기서 녹음했으며, 거기서 잠들었다.

 

당시 하나음악은 유재하 가요제를 주관하고 있었기에 재능 있는 신인들이 자연스레 유입되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다 보석 같았다. 조규찬, 유희열, 고찬용... 3회 동안 같은 나이의 천재 작곡가들이 배출됐고, 하나음악의 연습실에는 김현철, 이소라, 김장훈, 박학기, 하덕규, 함춘호, 최성원, 강인원, 박인영 등 당시 한칼 하는 음악가들이 모여 놀고 있었다. 영화감독, 배우, 문학가들도 자주 출몰했다.

 

그때는 그저 친한 언니, 오빠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참 보석함 같은 곳이었고, 불꽃같은 시간들이었구나 싶다.

 

‘하나뮤직 - 푸른 곰팡이 : 대한민국 최강의 작가주의 음악 공동체’ 어느 지면에서 본 이 문장은 내게 그리움과 자랑스러움을 주면서 무게 또한 안겨주었다.

 

하나음악은 주옥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의 앨범뿐만 아니라 1992년부터 ‘하나 옴니버스 시리즈’를 시작으로 조동진 타계 전인 2015년 [강의 노래]까지 수많은 옴니버스 앨범을 발매했다.

 

그 시작인 [하나 옴니버스 1집]은 조동진, 하덕규, 김광석, 조동익, 장필순, 조규찬, 이병우 등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이 자신의 곡을 선보인 앨범으로 총 10개의 트랙이다.

 

나는 그중 하덕규가 재편곡해 부른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마음에 와닿았다. 저 멀리서 들리는 교회 종소리가 바람 소리를 만나고, 그중 울리는 의연한 피아노 사이로 가시나무를 안고 있는 소년처럼 하덕규의 미성이 울린다.

 

시인과 촌장의 버전과는 또 다른 ‘하나음악표’ 가시나무. 나는 이 편곡이 참 좋았다, 실상 하나음악의 색깔은 당시 편곡 장인으로 엄청난 활약을 하던 조동익의 색깔이 가장 짙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하덕규 <가시나무>

 

 

당시 나는 스무 살, 가시나무를 안고 가시밭길을 뒹굴던 청춘이었기에 더더욱 이 노래가 좋았다. 이런 가사를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도 많이 했다. 우리를 보면 “기도하자~”하며 손잡아주시는 하덕규 목사님(후에 그는 목사님이 되었다)의 사람 좋은 웃음처럼 따스하게 기억된 노래다.

 

하나음악, 푸른곰팡이는 내 앞의 선배들과 동료들이 맨발로 가꿔온 정원의 역사다. 나는 그것을 내 안에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변색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음악, 푸른곰팡이를 스쳐간 음악가들에게 진심의 존경과 감사, 응원을 보낸다. 누구든 어디에 있든,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추억을 가지고, 아름다운 음악 정신을 나눈 채, 멋지게 자기 길을 가기를 기도한다. 따로 또 같이.

 

아래는 6년 전 추모 공연이 되어버린 ‘하나음악 연합공연’의 시작 글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그만 둘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어둡고, 쓸쓸한.. 희망이 없는 곳일지라도, 

누군가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2017. 조동진 -

 

 

조동희 (작사가,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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