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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by 박세회

사운드라는 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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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0-18작성자  by  박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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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50(이오공)의 뽕끼로 아이돌 일변도의 음악 신의 멱살을 살짝 쥐었던 레이블 바나(BANA)가 얼마 전,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조웅의 새 앨범 소식을 전했다. 앨범 발매에 앞서 나는 <에스콰이어>의 에디터로 그를 섭외해 인터뷰했다. 그의 작업실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2019년 정규앨범 [모래내판타지]의 주무대인 모래내 시장 안에 있었다. 빨간 불빛이 가게 주변을 비추는 정육점 건물 2층. 지붕 덮인 아케이드 형태의 시장도 아니고, 마른 생선과 건어물을 소쿠리에 담아 파는 오래된 형태의 시장 한복판 건물 2층이었다. 인터뷰의 다른 내용은 <에스콰이어>를 통해 공개되겠지만, 내가 가장 놀란 건 녹음과 믹싱의 과정에 관한 얘기였다. 조웅은 이번 앨범에서 드럼이 들어가지 않는 거의 모든 넘버를 믹서를 거친 2트랙 테이프로 레코딩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메트로놈도 없이 프리템포로. 그렇게 레코딩 된 트랙들은 편집을 할 수가 없다. 보컬만 따로 콕 집어서 오토튠을 할 수도 없고, 기타와 보컬의 박자가 조금 엇나갔다고 해서 따로 밀거나 당길 수도 없다. 유일한 편집의 방법은 실수한 부분부터 다시 부르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앞까지 불러 놓은 트랙의 박자를 들으며 대략 감으로 따라가야 하니, 그야말로 모래내시장 같은 재래방식이다. “난 원래 컴퓨터 소리가 싫었어. 그동안 밴드를 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트랙을 여러 개 써야 하니까 컴퓨터로 믹싱을 해야 했지만, 뭐랄까 그 차가운 소리가 싫었어.” 오랜 친구이기도 한 조웅이 말했다. 그런데, 어차피 마스터링은 거쳐야 할 게 아닌가. 마스터링은 대략 볼륨이나 주파수 특성 등 소리의 최종 값이 여러 기기에서 기타의 상용 음원과 지나치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재생될 수 있도록 맞추는 최종 편집의 과정이고, 그러자면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디지털 컨버팅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다르더라고. 들어봤잖아. 달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약 10년 전까지, 지금도 그때도 아는 사람을 찾기 힘든 썬스트록이라는 밴드로 활동했다. 소속 레이블은 흔치 않게 홍익대학교 인근에 녹음실을 가지고 있는 음반사였고, 심지어 그 작업실에는 니브(NEVE)사의 콘솔이 있었다. 대표 형은 매번 “내가 10년 된 차를 끌고 다니지만, 작업실 콘솔은 벤츠 E 클래스보다 비싸다”라며 음악에 대한 자신의 투자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때 작업한 우리의 앨범을 다시 들어보면 니브 콘솔에게 무척 미안하다. 풍성한 음원만 있었다면 마법을 부렸을 그 믹싱 보드를 가지고 내 목소리 따위를 서밍(summing)하게 했다니. 얼마 후 공개된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의 마음은 더욱 침울해졌다. <사운드 시티>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1969년부터 영업을 게시한 캘리포니아 반 누이스에 있는 동명의 스튜디오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아니다. 정확하게는 그 스튜디오에 있는 니브 믹싱 콘솔의 운명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그 스튜디오에 있는 니브사의 8028 믹싱 콘솔로 닐 영의 [After The Gold Rush], 플릿우드 맥의 [Fleetwood Mac],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Working Class Dog] 등 수많은 명반들이 녹음, 믹싱됐다. 그중 가장 유명한 앨범은 젠지 세대에게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너바나의 [Never Mind]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너바나의 드러머였고, 지금은 푸 파이터스의 리더인 데이브 그롤이 사운드 시티가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듣고, 이 콘솔을 사다가 자신의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606’으로 가져가는 에피소드와 그 콘솔을 거쳐간 수많은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닐 영이, 믹 플릿우드가, 릭 루빈이 이 콘솔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기술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수많은 전설들은 사운드 시티의 아날로그 콘솔을 사랑했다. 물론 우리가 밴드가 녹음했던 석기시대 스튜디오에 있던 콘솔이 오리지널 니브 8028은 당연히 아니다. 와이어 케이블을 연결해 믹싱하는 ‘진또배기’ 아날로그 믹싱 콘솔인 니브 8028은 현재 전 세계에 스무 개 남짓 남아있다고 하니, 벤츠 E 클래스 정도로 살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니브 8028의 손주격 되는 ‘신삥’ 아날로그 콘솔이더라도 내 목소리를 받아야 할 만큼 벌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넉살과 함께 ‘당신께’를 낸 밴드 까데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까데호는 밴드 포맷에 넉살의 파워풀한 랩핑까지 얹어진 곡들을 메트로놈 클릭 없이 프리 템포로, 모든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며 녹음했다. 그렇게 녹음하면 아무리 공간을 분리하고 마이크를 여러 개 사용한다 한들 소리에 간섭이 생겨 트랙별로 편집할 수가 없고, 실제로 편집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태훈은 “까데호의 음악은 즉흥 음악이다 보니 드럼, 베이스, 기타가 계속 다른 걸 치니까 음악의 맥락이 미묘하게 혹은 크게 계속 바뀐다”라며 “한 번에 연주한 걸 끝내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셈이다. 이번에 한 연주 부분과 다음번에 한 연주의 다른 부분을 연결해놓으면 저희 입장에서는 다른 곡 두 개를 붙여놓는 셈이니까. 저희처럼 연주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런 곡은 죽은 음악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각자의 음악을 특별한 방식으로 녹음하는 데는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요즘 뮤지션들은 믹싱을 마친 음원들을 보고 종종 ‘소시지’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시퀀싱 프로그램에는 음원의 파장이 이미지의 형태로 표현되는 창이 있는데, 이 이미지들이 온갖 소리로 가득 차 마치 소시지처럼 원통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대중가요 곡들은 온갖 소리의 이퀄라이징을 요리조리 잘 만져서 가득가득 여의도의 스카이라인 혹은 방배동 아파트 단지의 빌딩 숲처럼 조밀한 사운드를 만든다. 그 편이 사람의 귀를 사로잡기엔 합리적이다. 넉살과 까데호처럼 녹음을 했다가는 소리의 간섭들을 종이 오리듯 잘라내 조밀하게 맞출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는 고층 빌딩 스카이 라인을 뽐내는 양질의 사운드 소시지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조웅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투 트랙으로 테이프에 녹음한 음원의 소리가 과연 디지털로 믹싱한 후 테이프 필터를 입힌 소리보다 더 자연스러울까? 나는 알 수 없다. 니브 콘솔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적으로 서밍 이후 파형의 손실 따위를 측정해 보면 어쩌면 사운드 시티의 니브 콘솔은 현대의 첨단 장비들보다 뛰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한 피아니스트와의 대화 도중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피아니스트들 중엔 긴 박자의 음표가 나오면 건반에 올린 손가락을 비브라토 하듯 흔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상한 얘기죠. 피아노는 타건 악기라 아무리 흔들어도 한번 울린 음은 움직이지 않아요. 그런데, 손가락을 흔들면 이상하게 음이 흔들리는 것만 같거든요. 관객들도 그걸 느끼고요.” 나는 손가락을 흔들고, 테이프에 녹음하고, 합주 사운드를 한 테이크에 녹음하는 선택들이 합리적이라거나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시대에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낭만이라고 느낀다. 소리란 그런 것이다. 기술적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는 공간과 우연과 마음의 주술이다.

 

 

[사진출처=Studio 606]

 

 

박세회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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