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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by 김경진

‘벚꽃 엔딩’이 세상에 나온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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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01작성자  by  김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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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 버스커의 데뷔작 발매는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이 독특한 3인조 밴드는 2011년 CJE&M 산하의 케이블 TV 엠넷에서 제작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세 번째 시즌에서 준우승을 거둔 팀이다. 2009년 시작되어 방송가에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을 불러일으킨 「슈스케」의 인기는 「슈스케3」에서 사실상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톱11 개개인의 매력과 그들의 이야기가 전에 없이 돋보였던 탓이다.

 

그중에서도 버스커 버스커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그해에 대단한 화제가 됐던 MBC의 「나는 가수다」는 가수의 최고 덕목이 오직 가창력(=고음 소화력)일 뿐이라고 웅변하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여기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무렵 어쩐지 어설퍼 보이지만 특유의 발랄한 에너지와 순수한 정겨움을 전해 준 버스커 버스커의 퍼포먼스와 무대 매너는 단숨에 관객과 시청자의 마음을 매혹했다. 어찌 보면 버스커 버스커는 ‘준비된 신인’이었다. 이미 「슈스케」를 통해 적지 않은 사람들을 자신의 팬덤으로 이끌고 있었으니 말이다.

 

CJ E&M이 「슈스케」를 단지 방송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던 건 아니다. 당시 CJ E&M은 음악 투자와 유통, 온라인 서비스(엠넷닷컴), 공연 등 기존 음악 사업에 더해 자체 제작과 매니지먼트 부문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제작 사업의 관점에서 「슈스케」는 더할나위 없는 신인 발굴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슈스케」의 아티스트들을 직접 전속으로 거느리기보다는 조금은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그 방식은 말하자면 ‘시장 내 선순환 구조 확립’이었다. 방송 종료 후 일정 기간 트레이닝을 통해 참가자들의 기본 역량을 높인 후 기획사와 계약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단 전제는 당사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그들의 의지를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2011년 여름부터 소위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가동되었고 가창과 연주, 안무 등 트레이닝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업계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지만 이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어떤 이는 “그럴 듯한 명목을 내세워 단물 다 빼먹고 방출하겠다는 거 아니냐”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도 그 럴 것이 「슈스케」에 참가하는 이들은 프로그램 출연과 광고, 행사, 방송 기간 중 싱글 녹음 등과 같은 활동을 해야 했고, 방송의 인기에 비례하여 매주 방영 직후 출시되는 음원의 차트 성과 또한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시스템은 큰 문제 없이 애초 계획한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2011년 11월 1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슈스케3」의 마지막 생방송이 성황리에 끝났다. 제작진과 관계자들, 본선 진출자들에게는 이날 스케줄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말도 탈도 많았지만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난 시즌을 자축하는 종방연이었다. 몇 개월 동안 쉴 새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출연자들은 팽팽한 긴장에서 벗어나 그간 쌓인 회포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그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에서는 왁자한 대화와 웃음이 터져 나왔고 행사장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여흥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졌다. 출연자들이 한 팀씩 무대에 나가 자신들의 「슈스케3」 대표곡을 가볍게 노래하는 시간이었다. 그날 다른 이들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커 버스커, 아니 장범준 때문이다. 술을 거의 못 마시는 장범준은 그날 분위기에 휩싸여 맥주 한두 잔을 마시고 얼굴이 벌게진 상태였다. “브래드하고 형태는 그냥 있어, 내가 나갈게.” 그는 살짝 비틀거리며 기타를 들고 무대로 향했다. 그러고는 예의 어눌한 말투, 환한 미소와 함께 살짝 혀가 꼬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요. 맨날 듣던 거 말고 새로운 노래 하려고요. 한 번도 안 한 건데, 예전에 쓴 곡이거든요.” 목을 가다듬은 그는 어쿠스틱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시작했다. “…봄바람 휘날리며/흩날리는 벚꽃 잎이/울려 퍼질 이 거리를/둘이 걸어요…” 좌중에서는 소곤거리는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내게는 그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가성이 마치 출력 높은 앰프를 통해 쿵쿵 쏟아지는 비트라도 되는 양 온몸을 강렬하게 때리는 것만 같았다. 이때 처음으로 장범준의 천재성을 엿보았다.

 

이후 톱3 팀들은 연일 이어지는 광고와 행사 때문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연말에 일이 터졌다. 버스커 버스커가 일종의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슈스케」와 관련하여 사전에 협의된 광고 일정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유관 부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입장이 서로 엇갈렸다. 방송 측은 애초 맺은 계약에 근거하여 아티스트에게 남은 의무 이행을 촉구해야 한다고 했고, 밴드는 계약 자체가 불합리하며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둘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양측의 갈등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회사 또는 음악 제작팀의 입장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말이다. 2012년 초 무척 추웠던 어느 날 버스커 버스커를 만났다. 우선 그들이 처한 상황, 서명을 한 계약서의 구속력 따위를 말해 주었다. “네, 다 알고 있어요. 회사 입장도 이해하고요.” 장범준이 또박또박 답했다. “저희는 슈스케에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런 기회를 주셨잖아요. 근데 저희를 좀 더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버스커 버스커는 얼결에 결성이 돼서 여기까지 온 거라 음악적으로 도 취약하고 더 배우고 쌓아야 할 게 많은데 사실 너무 불안해요.” 그럼 다 그만두겠다는 건지, 뭘 하고 싶은 건지 물었다. “아뇨,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반대예요. 우린 음악을 더 잘하고 싶어요. 그냥 온전히 음악만 할 수 있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커 버스커 개개인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광고와 행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적지 않은 수입을 마다하고 음악만 하고 싶다니. “좋아, 그럼 아예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해 볼래? 싱글 이런 거 말고 정규 앨범을 만드는 거야.” 그제야 그들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애초 계획되지 않은 앨범 작업이었지만, 내부적으로 이렇게 물의를 일으키고 시작하게 된 프 로젝트였기에 반드시 성공을 거두어야만 했다. 장범준이 기존에 써 놓은 곡 수가 100곡이 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건 앨범의 색깔과 방향성, 그에 따른 선곡과 편곡이었다. 「슈스케」 방송과 ‘인큐베이팅 시스템’에 함께했던 프로듀서와 편곡자, 세션 팀이 곧바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아직은 미숙했던 밴드의 연주와 가창 솜씨는 약 두 달간 녹음 작업이 진행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버스커 버스커의 데뷔 앨범은 크게 두 파트의 각기 다른 역량이 적절하게 결합하고 시너지를 이룬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감각적이고 독특한 매력을 지닌 싱어송라이터 장범준의 타고난 재능과 그에 더없이 잘 조화되는 꾸밈없고 소박한 김형태와 브래드의 리듬이 자리한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며 전체적인 콘셉트를 제시하고 거친 원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만들어 준 프로듀서 김지웅(그는 이후 기획사 ‘청춘뮤직’을 설립하여 2013년 버스커 버스커의 두 번째 앨범을 제작한다)과 편곡자 배영준, 김지수와 세션 뮤지션들을 비롯한 크루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출발점과 이후 거둔 성공의 핵심 요인은 결국 곡의 힘이었다.

 

앨범의 타이틀곡은 처음부터 〈벚꽃 엔딩〉으로 정해져 있었고 여기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이 곡을 중심으로 앨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봄’이 되었다. 여기 걸맞은 곡을 소거법으로 추려 내어 9곡으로 압축한 결과물이 앨범에 담겼다. (앨범의 인트로 역할을 하는 〈봄바람〉은 〈벚꽃 엔딩〉의 주선율을 왈츠로 변주한 연주곡이고, 정겨운 골목길 풍경을 소리로 묘사하는 〈골목길〉에서 브래드가 부는 휘파람은 이어지는 〈골목길 어귀에서〉의 멜로디를 변주한 선율이다.) 봄은 계절이지만 동시에 인생의 봄 즉 ‘청춘’을 의미하며 이는 앨범을 관통하는 테마이자 20대의 일상이며 화두인 ‘사랑’으로 이어진다. 장범준이 경험하고 느낀 사랑의 감정은 아직은 애틋하기만 하다. 그래서 비록 사랑에 서툴고 때로 아쉽고 많이 아프다 해도, 내게는 특별한 ‘너’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그저 떨리는 손을 잡고 여수 밤바다를, 벚꽃 날리는 거리를 함께 걷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할 뿐이다. 청춘에게 사랑은 완결된 과거가 아니다. 끊임없이 넘어지고 상처 입고 눈물을 흘리고는 아픔을 반복하더라도 다시 시작하고 애태우는 현재 진행형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우울하거나 슬픈 것 또한 아니다. 사랑은 늘 알 수 없는 떨림이지만 동시에 멈출 수 없는 강렬한 에너지를 솟아나게 한다. 밴드와 프로덕션 팀은 이 어찌할 수 없는 감정과 아련한 느낌을 고스란히 사운드에 담아내고자 했다. 쉽게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순수하고 산뜻하고 기발한 노랫말, 풋풋한 목소리의 연가는 가장 잘 어울리는 포크 록의 옷을 갖춰 입게 되었다. 2012년 3월 초,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의 막바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홍보와 마케팅이었다. 가장 곤란했던 점은 버스커 버스커의 ‘출신 성분’이 방송 프로모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상파 방송 3개사 어디에서도 이들을 반기지 않았고 어떤 프로그램의 출연 스케줄도 잡을 수 없었다. 경쟁사, 그것도 ‘한낱’ 케이블 TV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배출한 뮤지션이라는 게 암묵적 이유였다. 그 장벽을 넘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TV의 영향력이 줄고 있긴 했지만 신인이 지상파 방송 노출 없이 케이블 방송만으로 대중에게 다가간다는 건 쉽지 않다. (당시 엠넷과 tvN 등의 시청률은 1~2%에 불과했고 개국한 지 얼마 안 된 종편은 존재감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청률 10%를 훌쩍 넘긴 「슈스케」는 지상파가 경계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버스커 버스커가 아무리 「슈스케」의 스타이고 기본적 인지도와 팬덤을 갖추고 있다 해도, 또 음악적으로 충분히 자신이 있다 해도 갈 길은 멀고 험난하게만 보였다. 전략을 바꿔야 했다. 흔한 바이럴 마케팅이나 광고가 아닌, 이들의 브랜드와 콘텐츠 자체의 힘을 활용하여 뭔가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사전에 관심을 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네이버의 담당자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디어가 하나 나왔다. 그림 실력이 어느 정도 알려진 장범준이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 결국 버스커 버스커가 일상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담은 웹툰을 앨범 출시 1주 전부터 네이버 뮤직을 통해 연재하기로 합의를 했다. 미국인 브래드가 겪는 문화적 차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소한 이야기는, 괴발개발 쓰고 그린 듯 허술해 보이지만 멤버들의 특징을 잘 표현한 정감있는 캐릭터와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상황과 대사로 표현이 되어 4일간 연재가 되었다. 장범준의 이 만화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그리고 2012년 3월 29일, 버스커 버스커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었다. 통상적으로 ‘버스커 버스커 1집’으로 불리는 이 앨범에는 ‘버스커 버스커’라는 밴드명 외에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그 이름과, 장범준이 그린 자신들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깔끔하게 다시 디자인한 세 멤버의 귀여운 캐리커처, 그리고 점점이 흩날리는 ‘벚꽃 잎’이 전부였다. CD 패키지는 우둘투둘한 질감을 담은 ‘텍스처드 커버’의 디지팩으로 마무리했다. 앨범이 출시되고 음원 사이트에 공개된 후 벌어진 놀라운 상황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물론 이 앨범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누구의 음악에서도 느낄 수 없는 밴드의 독특한 감수성과 신선한 아마추어리즘이 보편적 정서를 자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들을수록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새로운 힐링으로 이끌어 주는 각 곡들의 싱그러운 매력에 사람들이 반응할 거라고 예상했으며, 무엇보다 〈벚꽃 엔딩〉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웹툰의 반응도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모든 조심스러운 예측의 범위를 단숨에 깨 버리고 나날이 새로운 기록을 쌓아 가는 앨범의 위세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엄청났다.

 

출시와 동시에 연주곡을 포함한 모든 수록곡이 주요 온라인 음악 사이트의 차트를 도배(올 킬!)해 버렸고 기존의 유명 가수와 아이돌의 인기가 무색해질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곡이 차트 10위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음반 판매량 또한 놀라운 성과였다. 이 앨범의 CD는 신인으로서는 경이로운 숫자라 할 수 있는 15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갔다. 그해 여름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열풍이 불어닥치기 전까지 라디오에서, 거리에서, 매장에서, 카페에서, 술집에서, 식당에서, 노래방에서,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에서 〈벚꽃 엔딩〉과 〈여수 밤바다〉, 〈꽃송이가〉가 흘러나왔다. (거의 신드롬에 가까웠던 현상과 달리 지상파 방송에서 버스커 버스커는 단 한 번도 1위를 하지 못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데뷔작 발매 후 1년이 지난 2013년 3월 마지막 주, 가요계 최초의 ‘이변’이 일어났다. 〈벚꽃 엔딩〉이 각종 음원 차트를 또 다시 휩쓸며 1위에 오른 것이다. 신보 즉 새로 발매된 앨범이 아닌 구보의 수록곡이 1위에 오른 이 유례없는 상황은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은 ‘노래’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명쾌히 말해 주고 있었다. 이후 〈벚꽃 엔딩〉은 매년 봄마다 차트 상위권 진입을 반복하며 ‘봄의 캐럴’, 죽지 않고 등장한다는 의미의 ‘벚꽃 좀비’ 또는 발생하는 저작권료에 빗댄 ‘벚꽃 연금’ 같은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 노래는 단순한 유행가의 범주를 벗어나 이 시대의 ‘클래식’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사진출처=CJ E&M]

 

 

김경진(팝시페텔 대표/전 CJ E&M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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