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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7
by 우정호

“처음부터 발라드였다”…‘발라더’로서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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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27작성자  by  우정호 

본문



  

(2부에서 이어집니다.)

 

 

- 가수가 되기 위해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은 있나요?

 

조성모 : 너무 받고 싶었죠. 그런데 저희 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웃음) 없죠. 아마 그때 보컬 관련 연구 서적도 성악이나 클래식 관련해선 있었는데, 대중음악, 재즈 관련해선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 그럼 어떤 방법으로 연습하셨나요?

 

조성모 ; 그냥 오래 하는 거죠. 일단 뭐 그렇잖아요. 사람이 방법을 모르면 일단 무조건 해 보잖아요. 9시간, 10시간씩 그냥 불렀던 것 같아요. 다 부르고 뭐 적어 놓고 또 적어 놓은 대로 따라 부르고. 진짜 무슨 소리꾼분들 득음하는 것처럼 폭포수 밑에서 노래하다 기절한 적도 있어요. 복식호흡을 할 줄 모르니까. 아직 서툰 복식호흡으로 그걸 또 해 보겠다고 갖은 시도를 다 해보다 보니까 들숨과 날숨이 순환이 안 맞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 하다가 기절하고. 참 별별 일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 발라드 가수로서 높은 레벨의 가창력이 필요했기에 그만큼 혹독하게 연습했던 건가요?

 

조성모 : 모르겠어요. 아마 댄스 가수였어도 똑같았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발라드 가수는 다른 퍼포먼스가 없기 때문에 노래 매달려야 되는 건 사실이니까 더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방법을 좀 알았더라면 더 현명하게 연습할 수 있었을 거고, 조금 더 빨리 갈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까 그냥 혼자 연구하고 이겨내고 제 몸에 시도해 보고. 노래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계속 이겨내야 되는 거예요. 누가 방법을 찾아줄 사람도 없고. 

 

- 트레이닝을 진행하다 보면 그저 ‘잘’ 부르는 게 아니라 ‘내 목소리를 내겠다’는 방향까지 나아갔을 것 같네요.

 

조성모 : 네. 맞죠. 그러니까 저는 지금 1집을 들으면요, 제 목소리 같지 않아요. 아직 제 목소리가 저한테 어색할 때인데, 헤드폰을 통해 듣는 제 목소리랑 실제로 저한테 들리는 제 목소리랑 다른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제 목소리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그 노래를 소화해내기도 바빴을 시점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완전히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거겠죠. 야구의 투수로 따지면 구질 자체가 다양하지 않으니까, 뭘 내 볼 수가 없었던 거죠. 

 

활동하면서는 본격적으로 진짜 제 목소리를 만들어 갔고, 그러다가도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노래가 안 되는 시점도 진짜 막... 아유, 페이스 잃은 것 같다는 시점도 오고. 어떻게 보면 가수가 된 다음에 연구할 수밖에 없었어요. 트레이닝 경험도 없고, 그냥 노래 연습 혼자 해보다가 바로 데뷔하고.. (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움은 진짜 있어요. 그럴 수 없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지금 알고 있는 정보들을 가지고 해볼 텐데 하는 생각들을 하죠. 활동하면서 평가받아 가며 제 소리를 만들어 가야 했기 때문에 힘이 몇 배로 드는 거죠. 

 

- 조성모라는 가수의 목소리가 가장 잘 표현된 곡은 어떤 곡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성모 : 1집 때 저의 목소리는 그냥... (웃음) 우리끼리 노래방 가서도 그런 얘기 하잖아요. ‘생목’이라고 생목. (웃음) 정말 생목입니다. 호흡도 모르고 발성도 없이 그냥 낼 수 있는 소리를 낸 거고요. 앞으로 무대도 많이 서게 되고 콘서트도 해야 되는데 노래를 세 곡 이상 해 버리면 목이 쉬어요. (웃음) 그 정도로 방법을 몰랐던 거죠.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하면서 2집 때 조금씩 방법을 터득해 나간 것 같아요. 

 

그러다 ‘가시나무’ 들어가 있는 2.5집 때 조금씩 제 목소리가 제 귀에 익숙하더라고요. ‘아, 이 목소리가 내 목소리다’ 마이크를 타고 나가는 이 목소리가 ‘맞다’하는 확신이 조금씩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수 조성모의 목소리를 만드는 과정이 어느 정도 접어들었다고 느꼈을 때는 3집이었던 것 같아요. ‘아시나요’ 때부터.

 

- 곡을 소화할 때 어디에 가장 주안점을 두나요?

 

조성모 : 저는 간단한 방법을 갖고 있는데요. 일다 곡을 받았을 때 첫 느낌이나 감정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그런 다음 연습에 들어가는데, 피아노 치면서도 해보고, 반주 틀어놓고도 해봐요. 가사를 외우는 데 중점을 두지는 않고요. 그렇다고 멜로디를 어떻게 정확히 내는가를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건 어차피 디렉터가 잡아주거든요. 그렇게 연습을 하다가 제 눈에 눈물이 톡 떨어지면 그때 녹음을 잡아요. 노래를 하는데 눈물이 나야 되는 거예요. 그때 제 게 된 거예요. 

 

어떤 노래는 그 시점이 굉장히 굉장히 빨리 오기도 하고요. 어떤 건 정말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해요. 그런데 눈물이 주르르륵 나고 있으면 바로 전화해요. “형, 잡아주세요. 때가 된 것 같이요.” 그러면 굳이 녹음실 가서는 감정을 쥐어짜내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이미 다 울어서. 그런데 또 그 감정이 남아서 또 울기도 하고요. 지금은 그건 자연스러워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녹음에 앞서 하는 루틴이 됐어요.

 

-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가요?

 

조성모 : (웃음) 저는 발라더들이라면 아마 그런 생각들을 거의 다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저희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같아요. 왜냐하면 보여지는 걸로 승부가 나지는 않잖아요. 제가 아무리 옷을 너무너무 멋있게 입고, 지금보다 뭐 더 잘생겨진다고 해도 저희는 끝내는 소리로, 노래로, 감성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이거든요. 

 

- 무대에 올라갈 때도 비슷한 루틴인가요?

 

조성모 : 무대는 진짜 준비가 다인 것 같아요. 오늘 내가 필링이 좋아서가 아니라. 무대는 라이브잖아요. 수많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고, 때로는 카메라 기록도 되고 있고. 정말 그 순간을 위한 건데 그리고 실제로 불러야 되는 거잖아요. 립싱크가 아니잖아요. (웃음) 그건 실은 평소에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냐, 준비를 얼마나 많이 했냐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참 부끄러운 무대도 있거든요. 아, 그 무대는 정말... (웃음) 너무너무 죄송스러웠고. ‘내가 왜 이렇게 컨디션 관리를 못 했지?’하기도 하고. 

 

뭐 여러 핑계야 댈 수 있겠지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럼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죠. 참 돌이켜 보면, 무대는 준비 잘하는 사람, 관리 잘하는 사람, 그 무대를 향해 얼마나 영정과 에너지를 쏟아 준비했는지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게 충분히 몸에 준비가 됐으면서 뭔가 관객과의 교감이 탁 제대로 됐을 때 아, 그때 한 방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감정이 정말 더 격해져가지고 페이스 오버 되더라도 그때 한번 정말... 그런 말 있잖아요. (웃음) 신 들어왔다고. 그게 진짜 라이브 무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충분히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감정을 쥐어짜내는 건 실은 관객분들도 아시거든요. 발라더들끼리도 그런 말 하곤 하는데, 무대 위에서 눈물을 쥐어짜면 가장 하수라고 그러더라고요. 발라드를 부르다가 부르다가 보면 눈물을 의도적으로 흘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웃음) 나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꾸 눈물을 쥐어 짜내는 거예요. 설득하기 위해서. 저도 어렸을 땐 몰랐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까 관객과 분위기 교감을 통해서 공감해서 나는 눈물은 모르겠지만 아, 내가 쥐어짜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그런 비슷한 말씀을 다른 발라드 가수들도 하시더라고요.

 

조성모 : 한 번씩 겪어 봤을 거예요. 억지로 쥐어도 짜 보거든요. (웃음) 그러고 나서 또 '아, 이게 아니구나' 그러고. 그때 보면 부끄럽구나 생각도 들고.

 

- 조성모 씨는 발라드 가수 중에서도 음역대가 높은 축에 속하지 않나요?

 

조성모 : 네. 고음이에요. 어떻게 보면 제가 참, 시대의 피해일 수도 있는 게, 음악 변혁기였단 말이에요. LP에서 CD로 넘어와서 CD에서 MP3로 또 넘어가는 그때. 그리고 또 록발라드가 막 또 인기를 끌고, 또 그 틈에 아이돌 문화가 확 팬덤이 막 형성돼서 정말 춘추전국시대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발라드만 부르면서 감성을 터치만 해서는 그 아이돌 틈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던 거지요. 

 

그 당시에 아이돌들이 또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HOT, 젝스키스, 핑클, SES는 기본이고요. 베이비복스, 영턱스클럽. 진짜 지금도 전설적으로 남아들 있고. GOD에... 그런 그룹들 사이에서 저 혼자 (웃음) 발라드로서 딱 뭔가 승부를 보는 거지요. 같은 무대에 선단 말이에요. 어떤 날은 진짜 발라드 가수도 저 혼자밖에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저도 뭔가 보완이 필요했던 거겠죠. 그러니까 자꾸자꾸 노래는 올라가고 뭔가 좀 그런 거 있잖아요. '내 얘기 좀 들어줄래?' 그러면 진짜 들리겠어요? 그 사람 많은, 그 넓은 공간에서? (고음으로) '내게 준~!!' (웃음) 이러다 보니까 점점 높아지기만 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저도 웬만큼은 그때 프로듀서 형님과 대표님과 말씀 나눴을 때 "이 곡은 좀 낮춰줬으면 좋겠다. 낮춰야 내가 좀 내 소리를 더 낼 수 있을 것 같다"하고 말씀드려도 아유, 씨알도 안 먹혀요. "그냥 이 키로 해야 들려. 그리고 이 키로 해야 딱 귀에 꽂혀" 딱 이러고 그냥 아... (한숨) 그냥 묵살이에요. 

 

그런 곡들 많아요. '아시나요'도 조금 낮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따지면 성시경 씨 발라드. 진섭이 형, 변진섭 선배님 발라드 정도로 좀 안정적인 느낌을 갖고 가는 발라드로 하고 싶었는데... (웃음) '하이하이, 하이하이하이~!' (점점 고음으로) '하이하이~ 하이~!' 계속 이렇게 가는... (웃음) 또 사람이 그렇더라고요. 옷을 사면 그 옷에 몸을 맞춘다고 하잖아요. 또 자꾸 해 버릇하니까 노래에다 맞추더라고요, 제가. (웃음) 

  

- 1999년, 무려 가요대상 4관왕을 하셨습니다. 쟁쟁한 가수들이 넘쳐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성모 : 네. (웃음) 그 틈에서 또 대상까지 제가... 아마 다른 동료 가수들은 그 당시에 제가 굉장히 어둡고 침침한 걸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왜냐면 그때 다른 팀들은 5명, 6명, 3명씩 같이 있는데, 저는 맨날 혼자 이러고 앉아 있잖아요. 실은 외롭고 쓸쓸해서 그랬던 거였거든요. (웃음) 오죽했으면 예전에 제 댄스곡들 담당해주신 댄서 단장 형을 만났는데, 제가 그때 그러더래요. "형, 나 ‘투 헤븐’에 안무 좀 만들어줘" (웃음) 댄서들이라도 좀 같이 다니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고. 자기도 그 말이 정말 너무 웃겼대요. 오죽하면야 저런 말을 했을까. 

 

활동하면서 지금이야 다른 가수 친구들이랑도 많이 친해졌지만, 처음에 그 틈바구니 들어가느라고 좀 어색하고 힘들었어요. 이제 괜히 같이 막 있으면 지나가다가 쓱 끼려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그렇잖아요, 먼저 껴야 되잖아요. 5~6명 있는데 그쪽에서 저 한 명한테 먼저 말은 안 걸어주더라고요. 그럼 그쪽으로 제가 가는 거죠. 괜히 이제 뭐 선물 들어온 거 있으면 '나눠 먹자' 그러면서 끼기도 하고. 리허설 좀 길 때 우리 이제 배달 음식 같은 거 시켜 먹으면 뭐 먹겠냐고 괜히 말도 걸고. 그러면서 스미는 거예요. 

 

- 발라드에서 가사의 중요성은 얼마나 될까요?

 

조성모 ; (한숨) 가사의 중요성. 저는 곡과 가사가 50:50이라고 늘 생각해 왔거든요. 시간이 지나서 보니 가사가 70이에요. 물론 멜로디도 중요하죠. 그런데 가사가 좋았을 때 멜로디가 좋게는 느껴지는데, 멜로디가 좋은데 가사가 좋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발라드는 들으면서 생각하는 음악이잖아요. 듣고 나에게 공감이 돼야 하고 내 마음 같아야 하고. 

 

물론 음으로만 마음에 어떤 위안을 줄 수 있고 어떤 감정을 줄 수 있지만, 거기에 말이라는 건 단어로서 나의 신경을 대변해 주는 듯한 그 노래를 만났을 때야말로 정말 내 노래다. 아, 이건 완성곡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저도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가수 데뷔 이전에 음반을 구입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도 늘 가사에 조금 더 많이 이끌려 가지 않았나. 

 

- 발라드 가수로서 충격적 이미지 반전을 보여준 댄스곡 ‘다짐’에 대해서도 질문드리고 싶네요. 발라드로서 충분히 인기를 얻은 때인데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조성모 : (웃음) 제가 시간이 지나서 이런 질문을 안 받고 싶었어요. (한숨) 참 그것도 사연이 많아요. 당시에 제가 모 CF를 하나 찍었는데 그게 사회적으로 굉장히... 매실 CF가 있잖아요. (웃음) 아니, CF 한 편이 그렇게 사회적으로 파장이 클 줄 몰랐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이제 그쪽으로 좀 가니까 안 되겠다. 이제 그거 때문에 계속 어디 가든 자꾸 그거 패러디하고 약간 좀 놀림도 받고 하니까 강한 이미지를 하나 내보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렇다고 모든 일을 할 때 저 혼자 결정하지는 않잖아요. 대표님도 그렇고 프로듀서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뮤직비디오 감독님도 그렇고, '안 되겠다 강하게 하나 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신 거죠. 그때 마침 음반에 '다짐'이라는 곡이 있으니까 이걸 뮤직비디오화시키고 세상에 내보내면 좀 어떻게 그 앞의 파장이 있었던 것들이 좀 줄어들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해 본 것 같은데. (웃음)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뭐 그렇게 크게 영향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건 그거고 저거는 저거더라고요. (웃음) 

 

- 이미지 변화의 폭이 굉장히 컸습니다.

 

조성모 : 그런데 돌이켜 보면요, 그때는 제 입장에서도, 머리도 이렇게 노랗게 하고 눈빛도 막 강렬하게 힘을 주는데 제가 저를 보는데도 막 너무 어색하고. 아니, 하라고 해서 했긴 한데, 아, 이거 자칫 나는 발라드 가수인데 가는 길에 좀 영향이 있겠다. 잘못한 것 같다는 그런 후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 인생이 끝까지 가봐야 알아요. 그 이후 20년이 지났단 말이에요. 그럼 저를 무대 공연에 초대해 주시는 분들이 곡 리스트를 조금 요청해 주실 거 아니에요.  꼭 그 곡은 해 줬으면 좋겠어요. '다짐'은 안 빠져요. (웃음) 

 

아니, 심지어 웃긴 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무대에서도 '다짐'을 맞춰 놓으세요. 그래서 어떤 날은 그냥 저 차에 가죽 재킷도 갖고 다니거든요. (웃음) 어떤 부분으로는 이거 때문에 먹고사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끝까지 가 봐야 되는 거예요. 저조차 망했다고 했던 건데 지나서 이 덕분에 무대라도 한 번 더 서고, 한 번이라도 불러주고, 여러분들이 또 반가워해 주고. 

 

- ‘가시나무’가 수록된 2.5집 [Classic]은 리메이크 앨범의 역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조성모 : 그 음반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시작이 생각보다 참... 간단했어요. 그러니까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야기하고 어울리고 하는데, 문득 툭 누가, '야, 원래 있는 노래인데 사람들이 네 목소리로 좀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 성모야, 그거 꼭 해 봐.' 어떤 작곡가 형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듣고 '아, 그래?'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무슨 노래를 좋아하고, 무슨 곡을 연습해 왔고, 또 내 목소리로 듣는 기존의 다른 가수 곡들은 어떨지 진짜 궁금해해 주면 참 좋겠다. 

 

그래서 앨범을 만드는데 참 생각이, '그러니까 이 앨범은 많이 안 나갈 거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잖아. 그냥 내 욕심으로, 게다가 정규 앨범도 아니고. 그래, 마음껏 좀 재미있게 만들어 보자' 그래서 여러 시도를 했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고르고, 주위에서도 추천을 받고, 사장님하고 프로듀서하고 정리를 해서 녹음에 들어갔죠. 

 

그래서 되게 어렵지 않게 만들었어요. 모든 작업을 했는데 딱 한 달 걸렸어요. 그러니까 제 앨범들이 거의 다 그래도 2년 정도는 준비한 앨범들이거든요. 그리고 그때 막 활동이 너무 많을 때였거든요. 2집 때 활동 끝나고 대상 타고 그래도 막 부르는 데가 많고 콘서트도 연결돼 있는 상태라 스케줄도 되게 많았어요. 그럼 목이 쉰 날도 되게 많았을 거 아니에요. 그럼 목을 쉬게하고 그다음 날 녹음을 하잖아요. 그런데 '쉰 목소리도 느낌 괜찮은데? 쉰 목소리로 일단 같이 가죠' 그냥 그걸로 녹음도 하고, 쉽게 재미있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믹싱이라든지 음악 질감도 기존에 있던 대중음악, 제가 만들었던 거에서 좀 하기 힘든 시도들도 해보고. 리버브라고 하잖아요. 에코 좀 빼자. 악기도 좀 빼고 더 감정 전달에 충실하기 위해서 공간감이 전혀 없이 좀 진짜 귀에 탁 이렇게 가까이 말하듯이 만들어 보자. 그래서 아, 그러자. 너무 좋겠다. 속삭이듯 귀에 꽂히는 그런 식의 음악 디자인을 하면 너무 좋겠다. 그런 이런저런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계속 더 나오고. 

 

그래서 앨범이 나왔는데 갑작기 슬슬슬슬 사랑을 받기 시작하더니 또 너무 큰 사랑을 받은 거죠. 원래는 2.5집이기도 했고, 2집 때 활동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또 다음 앨범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방송 한두 번 하려고 했는데. '가시나무'라는 곡이 또 사랑을 받으면서 활동을 또 해야 되는 거예요.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참... (웃음) 

 

- ‘가시나무’ 성공 뒤로 리메이크 앨범 붐이 일었습니다.

 

조성모 : 그러니까 잘 되니까 그랬던 거죠. 리메이크 앨범은 그전에 제일 많이 나갔던 게, 8만 장, 10만 정 수준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기록의 차원에서 남기는 앨범이었으니까. 저도 그러니까 기대도 많이 안 했고. 어쨌든 이전의 예시라는 것들이 있잖아요. (웃음)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가시나무]가 그 당시 180만 장 정도 꽤 나갔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감사했지만 좀 의아하기도 했고. ‘아, 역시 이렇게 재미있게 즐겁게 작업한 건 여러분도 알아주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 조성모라는 가수의 목소리를 찾게 된 시점이 3집 [Let Me Love] 타이틀곡 ‘아시나요’부터라고 했는데, 그 곡이 각별하겠군요.

 

조성모 : 아니에요, 뭐 특별히 그렇게 각별한 곡은. 아니나요는 힘든 곡이에요. 그러니까, 중간 없이 그냥 밑에서 위로 튀어 올라가는 곡이라서 실은 이 곡은 지금도 연습한다고 보시면 돼요. (웃음) 굉장히 어려운 노래예요, 진짜. 데뷔 노래인 ‘투 헤븐’은 어쩔 수 없이 각별한 거고요. 제가 부른 노래 중에 지금도 부르면 눈물 나는 곡은 ‘가시나무’에요. 리메이크지만 거의 ‘제 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사가 주는 그 힘이 달라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여러 생각을 만들고, 어떨 때는 좀 부족한 제가 자꾸 보이고. 걱정한다고 걱정한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닌데, 걱정 많아지는 제가 보이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게 총체적으로 담겨 있는 그 가사가 ‘가시나무’라는 곡이고, 그게 더욱더 공감 가는 것 같아요. 제가 스물셋이나 스물넷에 그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 과연 제가 가시나무란... (웃음) 노래 가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부른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좀 웃겨요.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은데.

 

- 리메이크 곡이 아닌 곡 중에선 어떤 곡들에 애착이 가시나요?

 

조성모 : 제 노래인데 잘 불러 보고 싶은 곡은 ‘아시나요’고요. 애증의 노래는 ‘불멸의 사랑’이에요. (웃음) 제 키가 아닌 곡을 점핑을 팍 쳐가지고 어떻게든 만들어서 해냈던, 해내야 했던 곡. 즐겁지만 부르기 싫은 곡은 다짐이고. (웃음) 

 

- 유독 한국에서는 발라드 장르가 꾸준히 인기를 가지는데, 발라드 가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조성모 : 발라드는 그냥 ‘한국’과 같아요. 한국의 감성이에요. 뭐 트로트는 엔카잖아요, EDM은 팝이고. 재즈는 재즈로서 장르가 있고, 힙합은 흑인 음악이고, 그런데 발라드는 외국 어디에서 갖고 온 게 아니라 우리 거가 돼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알앤비나 힙합, 재즈, 블루스, 소울은 흑인들이 자기네들의 애환을 녹여낸 거고, 다른 팝 장르들도 각자 특성이 있는데, 발라드라는 음악은 세계 어디 가도 비슷한 음악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거죠. 

 

저는 발라더로서 자부심이 있어요. 뭐 외국의 어떤 가수를 보고 음악을 해서 발러다가 된 게 아니고, 정말 우리나라에 있는 선배님들이 해 오셨던 그런 감성을 본받아 해온 거고. 덧붙여서, 그런 음악을 창조해 내신 작곡가분들도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우리나라에 꼭 맞는 그런 발라드 음악을 만들어 오신 거잖아요.

 

- 발라드 작곡가 중 특히 존경하는 분이 있나요?

 

조성모 : 1대는 이영훈 선배... 선생님이시죠. 와아, 정말... 제가 ‘광화문 연가’라는 뮤지컬을 또 1년 정도 했었거든요. 이문세 선배님이 부르신 곡인데, 뮤지컬을 통해서 제가 더 곡에 대해 자세하게 한번 짚어보게 된 계기가 됐고요. 그 곡 가사도 이영훈 선생님이 직접 다 쓰셨으니까. 와, 이렇게 위대한 아티스트셨다는 걸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발라드라는 건 그때 다 틀이 잡힌 것 같아요. ‘대한민국 발라드 감성은 이런 것이다’라는 게. 정말 어마어마하세요.

 

일단 가사말이요. 그렇게 한 편의 시 같으면서도, 어려운 단어가 들어가고 어려운 말로 풀어내거나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도 아닌데도 너무 전달이 편한. (한숨) 그러니까 저도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가장 작업해 보고 싶은 작곡가 선생님이 이영훈 선생님이에요. 한 곡만 받아 봤으면, 제발.

 

- 이영훈 작곡가를 직접 만난 적은 없나요?

 

조성모 : 없었어요. 사모님은 한 번 뵀죠. (웃음) 이런 말씀을 전해 드렸는데. 한 곡만 진짜 받아 봤으면... 그래서 제가 이문세 선배님 리메이크 한 거잖아요. (웃음) 물론 제가 이문세 선배님의 노래를 듣고 자랐기도 했지만, 이영훈 선배님의 감성도 정말 너무너무 사랑했던 거지요.

그런 영향도 있어요. 듣고 자란 이문세 선배님의 노래이기도 했지만 이영훈 선배님의 감성도 진짜 너무너무 사랑했던. 아날로그 세대 때는 어떤 가수가 좋아지면, 그 작곡가도 좋아지고, 또 그 작사가까지 알게 되는. 이게 참 저희 때만의 낭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미 많이 받으신 질문이겠지만 꼭 드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조성모에게 발라드란 무엇인가요?

 

조성모 : 저에게 발라드란? 너무 맨날 같이 있어서 생각을 안 해 봤네요. (웃음) 그냥... 매일 함께했네. 듣고 부르고 듣고 부르고. 이미 발라드는 내가 돼버렸네요. 발라드를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시작도 발라드를 통해서였고. 마음의 위로를 받고 사랑을 알고. 이별의 아픔도 발라드 덕에 조금 덜 아프면서 떠나보내고. 제가 하고 있는 음악의 한 부분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제 삶 그 자체가 돼 버린 것 같네요.

 

 

[사진출처=아프로뮤직]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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