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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2
by 최승원

인디를 뛰어넘는 ‘1인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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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9-02작성자  by  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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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 [잭 어 소울] 이라는 앨범 반응은 어땠나요?

 

카더가든 : 좋았던 것 같은데. (웃음) 그런 반응은 있었어요. 이후 제가 몇몇 힙합 뮤지션들의 곡에 피처링하기 시작했어요. 음반을 내고 나서 뮤지션들이 저를 R&B 소울 싱어로 인식을 하셨는지, 팔로알토 씨라든지 크루셜스타, 그 외 여러 래퍼분이 피처링 제안을 주셨고, 빈지노 씨도 자기 음반에 피처링 제안을 주셔서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힙합 피처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사람들한테 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음반부터. 

 

- 유명한 뮤지션들이 왜 그렇게 카더가든을 찾았을까요? 

 

카더가든 : 저는 농담으로 그런 얘기 하거든요. “아, 후렴이 좋구나 괜찮은데?” (웃음) 그리고 혹시 어디 가서 제안했다가 다른 곳에서 거절당해서 나한테 왔나?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분들도 그냥 제가 필요하겠다, 괜찮겠다고 생각하셔서 저를 찾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아니지만 2013년 ~ 2015년도 시즌의 힙합 노래를 생각해 보면 그때 후렴에 노래가 나오는 경우가 매우 많았어요. 지금은 거의 없는데 그래서 저도 약간 거기에 좀 편승해서, 제가 싱어니까 목소리를 들었을 때 살짝 특이한 게 있고, 제가 요즘 제 노래의 가창 방식과 그 당시 가창이 아주 다르거든요.

 

- 어떤 식으로 다른가요?

 

카더가든 : 그 당시에는 곡의 음역이 훨씬 더 높았고, 그런 느낌으로 편집을 많이 했었어요. 더 도드라지게. 그래서 그렇게 찾아주시지 않았나. 

 

- 힙합계 피처링 1순위였다고.

 

카더가든 : 제가 1순위였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잘못된 정보입니다. 2.5순위 정도는 돼요.

 

- 주석 씨와 함께 앨범을 내고 힙합퍼들이 찾게된 것이 신기한데,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죠?

 

카더가든 : 제가 요즘에 가끔 만나는 사람들 얘기하는 거 보면, 제 주변에 힙합을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 알게 됐기 때문에. 그래서 그랬다고 얘기 들으면 같은 반응이 나오죠. “어? 원래 힙합 피처링도 하셨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게 됐냐고. 그런데 저도 생각해 보면 신기할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흘러갔는지.

 

이후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 정규 앨범을 내셨죠?

카더가든: ‘포토그래퍼’라는 음악 듣고, 거기서부터 점점 이제 록 구성의 곡들을 많이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정규 앨범을 만들다 보니까 조금 생각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힙합계에서 카더가든 님을 찾는 이유가 록적인 성향이 묻어 있어서 독특해서 인 것 같은데.
 

카더가든: 빈지노 씨나 팔로알토 씨는 그런 얘기를 하셨었어요. 보통 R&B 보컬이 가창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들었던 얘기는, 빈지노 씨 ‘Up All Night’라는 곡에 참여했을 때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대요. 그런데 그냥 기성 가수들은 알지도 못하고 맞는 목소리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할지 몰랐는데, 제 노래 피처링을 해 주셔 놓고서는 저를 잊었던 거예요. 그래서 누가 제 노래를 틀었는데 어? 이거 누구냐고. 그렇게 된 거예요. 

 

- 앨범 [포토그래퍼]를 내셨는데, 회사를 옮기셨죠?

 

카더가든 : 그 직후에 바로 옮겼고, 그때 오혁을 만났어요. 거기에 혁이라 같이 참여한 노래도 있고. ‘Bushwick’라는 곡인데, 이 곡의 느낌은 요즘 잘 안 나오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오혁이라 얘기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어마어마한 분들이랑 어떻게 작업을 많이 하셨나요?

 

카더가든 : 그게 아니라 좀 알게 된 사람이 나중에 굉장히 잘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천천히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쓱 본 사람들은 최근에도 잘 되고 있고.

 

- 오혁 씨랑은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거예요?

 

카더가든 : 누가 소개해 줬어요. 특이한 사람이 있다고. 그 당시에 만나서 혁오가 준비 중이었던 ‘위잉위잉’이라는 노래 스타일 들어보고 음악에 센스가 있구나. 스타일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제가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친분이 있고 나서 이렇게 참여를 하시게 된 건가요?

 

카더가든 : 네 좀 알게 되고 나서였어요. 오혁은 착한 친구예요. 마음이 따듯한 부분도 있고. 음악적으로는 자신만만하죠. (웃음) 음악적으로도 작년에 유아인 씨가 SNS 혁오의 음악에 대해서 ‘서울의 미래’라고 트윗했던 것을 제가 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서울의 미래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많은 행보를 보고.

 

- 회사를 옮기게 된 계기도 오혁 씨의 영향이 있었나요.

 

카더가든 : 네.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고, 대표님도 만나 뵙고 했는데 같이 옮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소속 아티스트들 얘기를 들었을 때 강산에 선배님 계셨고 장기하와 얼굴들도 있었고 혁오도 있었고, 그 당시에는 조금 더 팀들이 더 많았었어요. 다 각자 멋있는 음악들 하는 팀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노래를 듣고 음악을 하면 배울 것도 많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장르적인 이유도 있었고, 작업 방식 등을 배워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어요.

 

- 음악인으로서 느낀 건 언제쯤이었어요?

 

카더가든 : 처음으로 느낀 건 단독 콘서트였던 것 같아요. 그냥 오롯이 저만 보러 오는 관객들을 상대하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내가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책임감이나, 생각을 아무래도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카더가든 이라는 이름으로 느끼신 건지?

 

카더가든 : 네 두 장 정도 싱글을 내고, 정규 앨범 [APARTMENT]를 내면서죠. 제가 레이블을 옮겨서 그 시스템 안에서 제가 원하는 것들을 지원받고 의견 조율하면서 만들었던 첫 정규 음반인데, 그 음반을 정규 1집이라고 생각해요. 

 

- 싱글을 먼저 내셨죠? 어떤 싱글이었나요?

 

카더가든 : 싱글은 이제 [리틀 바이 리틀]이나 [투게더]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 두 싱글까지 미디로 작업을 끝냈던 곡들이에요. ‘리틀 바이 리틀’ 같은 경우는 전자음악 사운드 곡이기도 하고 ‘투게더’는 발라드 트랙을 만들고 싶었는데 미디로 하는 게 더 세밀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두 곡을 미디로 작업했습니다.

 

‘리틀 바이 리틀’은 가수 카더가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앨범인가요?

 

카더가든 : 네. 저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공연하면 굉장히 인기 많은 곡 중 하나인데, 이 곡으로 조금 더 팬층이 더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노래 나오고 나서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이 좀 있나? 이 정도의 어떤 생각을 했었어요. 많은 관심은 절대 아니지만, 내가 노래를 발매했을 때 생기는 관심 같은 거죠. 그때 탄력 받아서 싱글 시리즈를 여러 가지 냈었고 그때 정규 앨범까지 만들기 시작을 했어요. 

 

- ‘리틀 바이 ’리틀에서 ‘투게더’까지 미디로 작업하셨다고 했는데, 레코딩은 어떻게 하셨나요?

 

카더가든 : 레코딩도 그냥 작업실에서 다 했던 것 같아요. 따로 녹음실 안 내고. 요즘도 보면 혼자서 작업하시는 분들이 되게 잘해 놨어요. 마이크 준비해서 추후 작업할 때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게 했던 것 같아요. 

 

- 홈 레코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카더가든, 메이슨 더 소울 시기에 미디로 작업하시면서 홈레코딩을 했을 때, 음질이나 퀄리티가 별로였던 적은 없었나요?

 

카더가든 : 아, 그 노래도 지금 들어보면 아유 끔찍하죠. 그런데 저는 어쨌든 그걸 발매했으니까 후회가 되는 부분도 있죠. 조금 더 생각했어도 되는 건데. 그래도 뭐 나왔으니까. 생각을 안 하려고... (웃음)

 

- 홈 레코딩을 하신 큰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유통은 어떻게 하시나요?

 

카더가든 : 돈이 없죠. 돈을 아끼기 위해서. 아끼는 정도가 아니라 없기 때문에 그렇죠. 레코딩에 쓰는 비용이 사실 다른 데 쓰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거든요. 사실 제로로 끝낼 수 있죠. 홈 레코딩을 하게 되면 순수하게 음악을 제작하는, 한 곡을 만드는 데 드는 돈이 제로가 될 수도 있죠. 유통의 경우에는 또 다른 일들이 있겠지만 노래를 완성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통은 유통사를 컨택해서, 음원을 발표하는 편이에요.

 

- 카더가든 씨는 미디어에 꽤 접점이 있는데, 슈퍼스타 K3에 나가게 됐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카더가든 : 네. 제가 휴가 나갔을 때예요. 군대 휴가 나갔는데 친구가 나가보자고 제안해서 나갔는데, 갑자기 합격한 거예요. 그리고 부대로 복귀했는데 제 친구한테 부대로 연락이 왔어요. “야, 너 합격했대.” 한 번 더 보러 오라는 거예요. 그랬더니 제가 그때 보직이 씨피병이었는데, 부대장님이 “그래? 그럼 나가. 나갔다 와.”라고 하셨어요. 또 나갔는데, 또 합격한 거예요. 그다음에는 전역하고 나서 나갔는데, 바로 합격했죠. 나간 이유는 진짜 없어요. 그냥 나가본 거예요. 주변에서 막 다 전국에 많잖아요. 노래 좀 한다고. 추천하고 싶은 친구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죠, 저도. 

 

-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는 어떻게 나가셨나요?

 

카더가든 : 그때가 이제 ‘리틀 바이 리틀’ 노래 나오고, 제가 이름을 바뀌고 나서 처음으로 TV 프로그램을 나간 거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달의 신인 선정을 해서, 한 달 정도 계속 밀어주는 코너에 제가 선정돼서 운 좋게도 몇 번 나갔었어요. 스케치북이 처음으로 미디어에 한 번 출연했던 거였죠.

 

- 제대로 TV에 나가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네요?

 

카더가든 : 네. 오래 걸렸죠. 왜냐하면 정말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못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못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그때는 생각했었어요.

 

출연 후 반응이 좀 있었나요?

 

카더가든 : 아니요. 없었어요. 많이 없었어요. 3주간 밀어주셨는데, 그래서 그때 제작진분들이 좀 속상해하셨죠. (웃음) 

 

- <유희열의 스케치북> 처음에 나갔을 때 어땠어요?

 

카더가든 : 처음에 유희열 선배님이 소개를 해주시면 뒤에서 걸어 나와요, 관객에게 쭉 나오는, 정말 긴장되고 지금도 긴장되거든요, 스케치북은. “카더가든입니다.” 하면 사람들이 박수 치면서 나가잖아요. 그 길이 너무 긴장되는데 처음 나갔을 때는 말도 못 했죠. 기억도 잘 안 나고.

 

섭외됐을 때 어땠어요?

 

카더가든 : 너무 기뻤죠. 걱정도 많이 되고. 

 

그럼 그 무대에서 ‘리틀 바이 리틀’을 하셨던 건가요?

 

카더가든 : 그때 제작진분들이 음악을 좋게 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이전에 제가 했던 것도 보셨던 것 같고. 어쨌든 프로그램 취지에 맞으니까 같이해 보자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은데, 기대에 부응을 못 했지만... (웃음) 못 했죠. 

 

- TV에 나가기 전에도 어느 정도는 반응이 있으셨던 것 같았는데 어떠셨나요?

 

카더가든 :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 조금의 흐름이 조금 있었던 게, 혁오나 이런 팀들 필두로 저희도 약간 또래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 연년생의 뮤지션들이 재미있는 음악을 막 하기 시작한 타이밍에 저도 거기에 속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빨리 치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저처럼 이렇게 그때 미디어 연락도 받아봤던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아요, 주위에. 그런 팀들이 지금은 이제 더 이제 많이 발전되기도 하고.

 

- <더 팬>은 어떻게 나가게 되셨나요?

 

카더가든 : <더 팬>은 제가 그 이후에 말씀드렸다시피 ‘리틀 바이 리틀’ 이후에 정규 음반을 내고 나서 전국 투어도 해 보고 조금 더 파이를 넓혔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노력도 더 많이 해 봤고. 관객 수도 훨씬 더 늘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뭔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더 많이, 더 관객도 많이 모으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이 내 노래를 좀 알면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 생각이 음악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든 것 같아요. 

 

그전에는 마냥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좀 있었다면, 그 시점에는 제가 그 앨범을 너무 만족스럽게 만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지금 뭔가 음악을 만드는 자세가 준비돼 있는데 사람들한테 나를 좀 알려야겠는데 그 방법이 좀 너무 또 힘에 부치더라고요. 그 찰나에 <더 팬>이라는 프로그램이 섭외가 들어왔어요.

 

사실 그 포맷 자체가 저한테는 좋을지 안 좋을지 얘기를 나눴다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무조건 좋게 생각했거든요. 그걸 나가서 내가 노래를 못하지 않는 이상 나한테 해가 되거나 그럴 일은 없다고 봤어요. 주말에 하는 프로그램이고 SBS인데 도대체 이게 뭐가 나한테 해가 끼칠 것이냐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대표님도 반대하셨는데 저는 거의 무조건 이거 해야 한다. 사람들한테 좋은 홍보를 해야 하지 않겠냐. 나가서 노래 잘해야겠다, 이 생각만 하고 고민 하나도 없이 그냥 한다고 그랬어요. 

 

- 대표님은 원래 반대하셨어요?

 

카더가든 : 네. 대표님이 “네가 싱어송라이터로서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기 나가서 심사를 받거나 평가를 받는 것이 조금 그렇겠네.”라고 보는데 저는 완고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죠. 

 

- 대표님 반대 외에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카더가든 : 우려하는 친구들이 있었죠. 어쨌든, 서바이벌이기 때문에 중간에 탈락하면 어떡하냐. 저 이외의 다른 참가자들이 경력자가 거의 없는데. 나가서 제가 탈락하면, 실제로 처음에 1라운드에서 탈락 후보가 되기도 했고. 친구들이 그런 우려도 많이 좀 했었죠.

 

- 10년 이상 인디 신에 있던 아티스트 중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에 거부감이 큰 경우가 있던데, 카더가든은 어땠나요?

 

카더가든 : 저는 생각이 완전히 달랐죠. 그래서 사실 주변 뮤지션들하고 그런 관념이 아주 달라요, 지금도. 저는 미디어를 많이 보고 자란 세대거든요. 많이 보고 자랐고 그걸 유독 재미있어했던 유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뮤지션들이 음악 프로그램을 많이 꺼리는 이유가 거기에서 원하지 않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거나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데, 저의 경우는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제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든 크게 개의치 않아서 저한테는 굉장히 거부감이 없었죠.

 

- <더 팬> 나가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뭔가요?

 

카더가든 : 가장 기억에 남는 곡들. 아무래도 ‘명동콜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던 게, 저는 그 프로그램 나갈 때 제가 좋아하는 팀들의 노래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그래서 검정치마, 잔나비, 크라잉넛 노래도 그렇게 선택을 계속했었는데, 그 ‘명동콜링’이라는 노래는 제가 원래 엄청 좋아하는 노래예요. 홍대 인디 떼창가의 거의 끝이라고 볼 수 있는. 그동안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쨌든 제 방식으로 한번 바꿔서 불러 보니 반응이 되게 좋았었어요. 기억에 남는 곡이에요. 

 

- 크라잉넛이 대체로 언급되는데 카더가든에게 크라잉넛은 어떤 뮤지션이예요?

 

카더가든 : 솔직히 제가 크라잉넛을 완전히 느끼고 자란 세대도 아니거든요. 제가 90년생이니까 형님들이 한창 활동하실 때는 제가 진짜 어렸죠. 초등학생이었는데. 형님들이 어떻게 구축해 놓고 만들어 놓은 클래식들을 저는 나중에 보고 들으면서, 음악 생활을 같이 지금도 하고 있잖아요. 제가 펑크록을 즐기지 않아도 무조건 알아야 하는 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이나 그런 펑크. 계속 저는 어렸을 때부터 듣기도 했고. 약간 인디라는 말 자체가 돈이 없고 안 유명해서 인디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자기들이 하고 싶은, 장르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발라드여도 되고 트로트여도 되고요. 내가 이 노래 만들고 싶어서 이 노래 내야겠다. 본인의 자주적, 자체적으로 생각하는 게 방식이 인디인 거지. 그래서 우리 회사도 돈이 없는 회사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인디 레이블이거든요. 

 

그러니까 방식이 뮤지션이 어떤 노래를 만들어 놓고 어떻게 해야겠다고 자주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이나 다들 멋진 팀인데, 델리스파이스 같은 팀들은 보면, 저희 같은 뮤지션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모든 팀이 제작된 과정에서 음반이 나왔다면, 저 같은 뮤지션이 혼자 뭘 해 보겠다는 생각을 잘 안 했을 것 같고, 무조건 오디션을 봐야 할 것 같은데, 크라잉넛,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와 같은 그런 팀들 덕분에, 나중에 나온 저희 같은 팀들은 직접 음악을 만들어서 한번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명동콜링’ 가사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카더가든 : 슬프다... 누군가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는데. 말투도 “오라오라”, “예쁜 그대” 이런 가사라서 저는 마냥 슬프다고 생각했었어요. 아마 제가 ‘명동콜링’을 당시에 했을 때 제 주변에 이별한 친구도 있었던 것 같고,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이별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경연에서는 어떤 노래를 했어요?

 

카더가든 : 첫 번째 경연에서 제 노래 ‘홈 스윗 홈’, 그다음은 잔나비의 ‘쉬’, 검정치마의 ‘기다린 만큼’, 혁오의 ‘톰보이’ 순으로 했고, 그리고 제 노래 ‘투게더’, 신해철의 ‘안녕’을 했어요.

 

- 경연 당시 많은 분들이 커버곡을 많이 했는데, 1라운드에서 자작곡을 하셨어요.

 

카더가든 : 네. 처음에 뭘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저는 커버 곡을 하려고 생각했었거든요. 가창을, 제 노래 중에 가창을 엄청 보여주는 노래가 없었거든요. 그래도 제가 저를 알리려고 거기 나간 거니까 다른 노래보다 사람들이 조금 감동이 떨어지더라도 제 노래를,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자작곡을 불렀던 것 같아요.

 

- 그 노래들이 그럼 앨범에 다 실렸던 곡인가요?

 

카더가든 : ‘그대 나를 일으켜 주면’은 실린 곡은 아니었어요. 거기서 그거 때문에 만들어진 곡이에요. 그 경연 프로그램에. 경연하기 전 스케치 정도로만 만들었던 곡이었는데. 그때 그걸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곡을 경연에서 발표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웃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 경연에서 어떻게 신곡을 할 생각을 하셨나요?

 

카더가든 : 그런데 제작진분들이 용기를 많이 주셨어요. 괜찮을 것 같다. 저도 이제 안 된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리스크가 있잖아요. 위험성이 많이 있는데 피디님이 좋다고 하셨어요. ‘명동콜링’이나 그런 곡들도 사실 잘 모르는 노래니까 경연 프로그램에서 쉽지 않았는데 제작진들이 다 괜찮다고, 목소리에 잘 어울리면 된다고 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신곡을 부르고 싶다라는 마음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카더가든 : 애착은 다 있는 곡들이었어요. 경연에서 불렀던 곡들이 전부 다 애착이 있었는데, 즐겨 불렀던 곡들이었고. ‘그대 나를 일으켜 주면’은 미완성이었지만, 언젠가 꼭 마무리를 짓겠다고 생각했었고, 마침 기회가 찾아왔죠.

 

- ‘그대 나를 일으켜 주면’ 이 곡에 사연이 있나요?

 

카더가든 : 그게 별 사연이 있다기보다, 그때 마음이 힘들어서 사연 있는 가사가 나왔던 것 같아요. 그 노래에 설명도 했지만, 엄마랑 아기가 가다가 아기가 확 넘어지면 엄마가 이렇게 올려주시는 그런 것처럼, 누가 나를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 사실 저의 마음 상태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거든요. 왜냐하면 경연이라는 게 시작이 됐기 때문에 진짜 이상했어요. 

매일 주말마다 기쁘기도 했어요. TV에 내가 나오니까. 검색어에 1등도 했지만, 너무 힘든 거예요, 또 경연을 준비해야 하니까. 그래서 마음이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 <더 팬>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나요?

 

카더가든 : 굉장히 많이 달라졌죠. 초반에는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새는 잘 못 알아보시는데. 제가 <더 팬>을하고 나갔던 머리를 그대로 하고 나가고, 식당 같은 데 가면. 어른분들이 되게 좋아해 주셨어요. 횟집 가면 회가 대자가 하나 더 나왔어요. (웃음) 하면서 공연도 훨씬 많이 생기게 됐어요. 공연도 훨씬 많이 있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많아졌고. 진짜 저는 기뻤어요, 그거 마치고 나서. 그리고 같이 고생했던 참가자 친구들이 제작진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컸고 제가 원하던 대로 된 거잖아요. 무척 기뻤죠.

 

-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어땠어요?

 

카더가든 : 저는 제가 만취된 상황이 아니면 사실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막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이는 것도 아니었었고. 그 당시에 제가 받았던 관심은 딱 제가 기분 좋은 그런 관심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경연 프로그램이 좋았었어요. 제가 웃겨서 사람들이 저를 알게 된 게 아니잖아요. 노래를 잘 불러서 노래를 잘 들었다고 얘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어디 가서 만났을 때. “아유, 노래 좋아, 집에서 맨날 들어.” 이런 얘기해 주시거든요. 그거는 좀 다르죠. 

 

만약에 제가 어쩌다 어떤 예능에 나가서 웃겨서 한번 관심받았으면, 웃긴다고 얘기해 주셨을 텐데 노래 잘 들었다고 얘기해 주시니까 기분은 좋더라고요. 

 

- 인디 신에서 미디어가 하는 역할이 뭘까요?

 

카더가든 : 저는 공생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필요로 할 수도 있고 무조건 필요한 게 미디어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한숨) 그렇다고 내가 이 미디어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또 관련이 없는 것 같지도 않고 무조건 연관이 돼 있는 것 같아요. 과정에 있어서 그런데 어떤 미디어를 선택할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거죠. 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본인은 미디어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을 하세요? 

 

카더가든 : 그렇죠. 미디어를 통해서 제가 더 성장했다고 생각하죠. 왜냐하면, 뮤지션으로서 저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든가 순수 예술하는 사람이든 사람들이 저를 알아야지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 음악을 노출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는데, 사운드 클라우드 같은 곳에 곡을 자주 올리세요?

 

카더가든 : 아니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 미디어 사용법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사실 TV 나가야지 유명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계속. 그래서 사실 요즘 유튜브나 사운드 클라우드의 활용에 대해서는 공감을 잘 못 하고 있어요. 그래서 뒤처지나 이런 생각도 하는데 그래도 계속 TV 나가야 잘 되는 거 아니야? (웃음) 이렇게 생각을 계속했었어요. 요새는 저도 거기에 맞춰서 하고 있기는 하거든요. 사운드 클라우드는 아니어도 유튜브는 이용하고. 

 

- 그럼 인디 신 전반적인 몇 가지를 여쭤볼게요. 버스킹 해보셨어요?

 

카더가든: 해본 적은 없어요. 버스킹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버스커버스커.

 

 

(3부에서 계속)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최승원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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