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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by 우정호

학전, 김민기, 그리고 김광석에 대한 조규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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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9-11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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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 1980년대는 특히 ‘소극장 공연’이 활발했던 시대였습니다. 조규찬 씨도 소극장 공연을 많이 하셨나요?

 

조규찬 : 소극장 공연 많이 했죠, 대학로에서. 제가 솔로 앨범을 내기 전부터 대학로라는 곳을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앨범 활동을 본격적으로 할 때도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을 많이 했죠. ‘라이브’라는 소극장이 있었어요. 개관 공연도 했었고, 꾸준히 그쪽에서 공연을 했고요. 그 공연장이 잘돼서 학전 옆에 조금 더 큰 규모의 ‘라이브 2’가 생겼죠. 거기서도 했고, 또 ‘충돌 소극장’이라는 곳에서도 했고, 많이 했어요. 그리고 그 외에도 극장들이 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 지금도 대학로에는 소극장들이 많이 있나요?

 

조규찬 : 제가 몇 년 전에 대학로를 간 일이 있는데요, 거의 없었던 분위기였어요. 이전에는 소극장들 위주로 가게나 식당, 소담스러운 찻집 정도들이 듬성듬성 있었고. 거리가 그런 분위기였거든요. 근데 지금은 완전히 소비 위주의 많은 업소들이 들어서 있는 번화한 거리가 돼 있죠. 

 

- 소극장 공연의 메카인 학전에서도 공연하셨나요?

 

조규찬 : 데뷔 전에 전에 ‘낯선 사람들’이라는 팀이 있었어요. 이소라 씨가 속해있는 팀이었는데, 그 팀도 데뷔 전이었고 저도 데뷔 전이었던 그런 상황에서 조동진 선배님, 김민기 선배님께서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셔서 같이 연습해서 조인트 콘서트를 한 바가 있고요. 그 이후에도 하나음악에서 공연으로 많이 섰죠, 그 자리에.

 

- 소극장 공연하셨을 때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조규찬 : 소극장 공연이라는 게 지금도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의 클럽 공연의 다른 형태가 예전으로 치면 바로 그 소극장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거기 오시는 분들은 나의 시간과 돈과 애정과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해서 오는 분들이잖아요. 당연히 그분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 나누면서 노래하는 게 너무 행복한 일이었어요. 그때는 음악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시절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듣는 이들에게도 그렇고, 만드는 이들에게도 그렇고. 

 

지금은 음악이 어떤 부가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써 존재하는 경우가 많죠. 또, 빨리 소진되고 빨리 새것으로 교체되는, 어찌 보면 사이클이 빨라졌단 생각을 해요. 음악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발현되기 전부터 발현되는 과정. 그것이 완성된 음원으로 만들어져서 대중에게 전달되고, 어떻게 소화되고, 어떻게 대중에 의해서 계속 사랑을 받느냐. 그런 여러 단계들이 있는데 그 사이클이 굉장히 짧아진 거죠. 물론 다 그렇다고 일반화할 순 없겠습니다만. 소극장의 분위기라는 건 좀 달랐어요. 

 

그때는 일단 내 시간을 투자해서 레코드 샵에 가서, 엘피, 카세트테이프를 사기 위해 내 지갑을 열고, 그걸 사서 내 방 턴테이블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꺼낼 때부터 조심하죠. 거기다 엘피 바늘을 이렇게 올려놓고, 엘피 노이즈가 처음 잠깐 짧은 동안 아무 소리 없이 노이즈가 느껴지다가, 음악이 시작될 때의 그 설렘을 전부 느꼈어요. 그리고 그걸 아주 애지중지하던 그 마음의 연결선상으로, 듣던 음악의 아티스트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시간을 내 보러 가는 거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셨던 거죠. 그분들이. 

 

그래서 자리를 메우시고 기다리시고 함께 즐기고. 어찌 보면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준비되어 있는 관객들. 그 관객들과 만나는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었던 거죠. 소극장의 기억을 전 그렇게 가지고 있어요. 

 

- 관객분들은 주로 여성이 많았나요? 남성이 많았나요?

 

조규찬 : 저의 경우는 한 반반이셨던 거 같아요. 남자 관객분들이 굉장히 많으셨던 걸로 기억을 해요. 그것도 앞줄에. 

 

- 나이대는 보통 어느 정도?

 

조규찬 : 제 나이쯤 되는. 20대 중반부터 제가 솔로 공연을 했으니까요. 제 또래 되는 분, 혹은 저보다 조금 더 나이 있으신 분들? 그런 분들이 오셨던 거 같아요.  

 

- 앞서 말씀하셨든,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도 아닌데 매진되는 공연도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조규찬 : 저도 소극장 공연을 하게 되면, 리허설하기 위해 주차를 하고 나서 공연장 입구에 들어가야 하는데. 공연 시작 훨씬 전인데 관객분들이 이미 그때부터 줄을 서 계신 거예요. 지금처럼 인터넷 예매도 없고 전부 현장 구매잖아요. 

 

그 앞에 줄 서 계신 분들이 저를 보시고 인사하시고, 사실 굉장히 신기했어요. 저분들이 어떻게 이 공연에 대해서 알고 오셨으며, 저분들이 어떻게 내 공연을 보려고 시간과 모든 걸 투자해서 이렇게 와주셨을까. 신기했던 거죠. 감사하고. 그리고 그 신기하고 감사함이 큰 만큼 공연 무대에 오르는 제 설렘도 커지는 거죠. 음악을 하면서 그때 같은 설렘은 이젠 좀 없는 거 같아요. 그런 만남, 접점이라는 게 지금은 많이 차단돼 있고, 굉장히 제한돼 있죠. 그런 기억이 나네요. 

 

- 그때 공연들 중 특별한 경험도 있었나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공연장 문을 뜯었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조규찬 : 문을요? 글쎄요. 그런 건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보조석이라고 하잖아요. 지금 같아선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컴플레인이 들어오겠지만, 그때는 인터넷 예매도 없고 정확하게 내 자리가 지정되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공연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공연을 보고 싶은데 '자리가 다 찼습니다'하면 '입석이라든지 아니면 보조석밖에 없다'고 공연장에서 얘기하고 관객분들이 그런 상황들을 아셨어요. 

 

조금 불편하지만 들어가서 서로 어깨 부딪히면서 보는 것도, 소극장의 낭만이다, 즐거움이다, 오히려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걸? 가수와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걸?'이런 생각을 하셨던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소극장 공연할 때 어떤 때는 좀 민망할 정도로 관객분하고 가까운 그런 상태도 연출이 됐던 거죠. 

 

- '관객과 민망할 정도로 가까운 상태'에서 공연하면 어떤 느낌이었나요?

 

조규찬 : 나름의 장단점은 있을 거예요. 어느 정도 격의를 갖고 만드는 무대의 특성이 있을 거고, 거기서만 또 통용되는 어떤 예술적인 미덕이 있겠죠. 하지만 그 장소가, 그리고 그 장소에 의해서 정해지는 관객과의 거리가 어떠하든 간에 그 눈빛은 똑같죠. 관객이 가수를 바라보는 그 눈빛. 예컨대 <나는 가수다>에서 청중평가단의 눈빛하고는 달라요. 

 

- 어떻게 다른가요?

 

조규찬 : 그 방송에서 제가 경험했던 걸 말씀드리면, 그 청중평가단 분들은 굉장히 애정을 갖고 음악을 들어주시기도 하셨고, 그분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었지만, 그분들이 절 선택해서 그 자리에 오신 건 아니고요. 그 자리에서 절 만나신 거죠. 그리고 객석에 계신 분들이 평가를 하실 입장이었죠. 그렇지만 좀 전에 질문 주셨던 그 시절의 무대. 그게 뭐 소극장이건 아니면 큰 규모의 극장이라서 물리적으로 멀건, 아님 아주 민망할 정도로 가깝건, 그분들은 나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의 시간과 모든 걸 투자해서 그 자리에 오신 분들이거든요. 저와 함께 느낀 준비가 돼 있으신 거죠. 눈빛이 다른 거죠. 

 

공연은 무대 위에 있는 사람. 연주자나 가수가 그 사람들만이 만드는 주체는 아닌 거 같아요, 확실히. 관객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느냐, 그들과 어떻게 소통이 이루어지느냐. 그것이 무언의 소통이건 아니면 정말 표현되는 무엇이건 간에 서로 간에 소통이 반드시 있는 것이거든요. 거기서 달라지는 거고 결정되는 거죠, 그 시간이. 공연의 매력이 그래요. 

 

분명히 같은 큐시트를 가지고, 어찌 보면 선곡을 가지고 준비되었던 공연인데, 오늘 했던 공연의 내용과 내일 하는 공연의 내용,  그다음 날 하는 공연의 내용이 다 각양각색이에요. 그날그날 그 객석의 분위기가 또 약간씩의 미묘한 차이가 있고, 그것에 의해서 또 일어나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해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는 거죠. 

 

- '학전' 무대 최고의 스타는 누구라고 생각하셨나요?

 

조규찬 : 일단 저는요. 이게 인터뷰에서 기대되는 대답으로는, 지금 말씀하신 질문에 어떤 하나의 답을 드리고, 거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제 대답을 편집하다가 못 쓰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최고는 없는 거 같아요. '최고의 스타' 이런 건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외려 그 학전을 거쳐간, 학전이라는 무대에 서서 나의 예술혼을 거기에 쏟아 넣었던 모든 아티스트들이 최고의 스타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최고의 스타는 없는 것이고요. 그냥 그 자체인 거죠. '학전에 섰던 모든 분들이 학전의 스타다' 그렇게 저는 생각을 해요. 

 

- 그럼 다시 질문드려서, 학전 하면 떠오르는 가수가 있을까요?

 

조규찬 : 저는 개인적으로 김광석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아마 그걸 바라고 질문을 하신 거 같은데, 왜냐하면 제가 학전 무대에 서기 위해 학전에 갔던 것보다, 김광석 선배님 공연 구경하러 간 게 더 많았으니까. 뭐 놀러도 가고요. 그리고 실제로 가서 또 구경도 하고. 그래서 학전은 약간 그런 느낌이 있어요. 내가 언제든 놀러 가면 거기에 선배님 중 어떤 분들이 공연을 하고 계실 거 같은 그런 분위기? 실제로 김광석 선배님은 공연을 많이 하셨죠. 

 

- 김광석 씨가 학전에서 공연을 얼마나 많이 하셨나요?

 

조규찬 : 아마 1,000회 정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과장일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짐작건대 1,000회 정도에 육박하는 공연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늘 하셨으니까요. 뭐 특별히 '나 공연한다' 이런 말씀을 일부러 안 하셨던 거 같아요. 왜냐면 스스로에게는 늘 있는 일이니까. 

 

- 그럼 김광석 씨 무대가 있는 날 무작정 학전에 가시는 건가요?

 

조규찬 : 그렇죠. 

 

- 연락 없이?

 

조규찬 : 예. 공연하는 시즌인 건 아니까 가는 거죠. 그냥. 

 

- 가면 김광석 씨가 항상 있어요?

 

조규찬 : 가방 둘러메고 가서. 또 거기 가면 매니지먼트 하시는 분들, 이렇게 오가시는 연주자분들 아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럼 그분들하고 인사하고 들어가는 거죠. 대기실 들어가서 인사하고 말씀 좀 나누고 그러다가 공연 올라가시면 객석 뒤에 가서 공연하시는 거 보고, 끝나고 밥도 같이 먹고 그랬던 거고. 

 

- 김광석 씨 공연 분위기는 어땠나요?

 

조규찬 : 김광석 선배님은 '제 노래를 들어요' 하는 거 같지 않아요, 분위기가. 좀 표현이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공연을 하는 사람이고 저의 노래와 연주를 여러분은 들으세요. 그게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고, 지금 저는 기타를 이렇게 이러한 템포로, 이러한 느낌으로 스트로크를 하고, 핑거링을 하고, 그리고 이 정도의 호흡으로 한번 음악적인 얘기를 하다, 잠깐 입을 앙 다물고 내가 쉬는 동안 여러분은 저하고 같이 그 호흡을 맞춰서 다음에 제 호흡이 소리가 나갈 때까지 한번 그 리듬을 맞춰보시겠어요?'라는 식이죠. 

 

관객과 정말 그야말로 무언으로 소통을 하지만, 관객도 그 흐름에 마치 파도처럼 함께 따라가는? 그래서 정말 같이 하나가 돼서 만드는 그 시간을 목격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공연을 늘 가서 보면, 연주자, 다른 반주자 없이 기타 하나 가지고 당시에 혼자서 기타 치면서 그 공연 전체를 그렇게 하신 적이 많았거든요. 그게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악기 하나로 내가 반주를 하면서 아무런 반주자 없이 그게 공연 한 회를 하면 적어도 열 몇 곡을 하잖아요. 열 몇 곡을 악기 하나로 나 혼자 연주하면서 노래한다는 게. 그러면서 관객이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고 몰입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입장이 돼요, 공연을 해본 입장에서. 

 

근데 제가 관객의 입장이 됐죠. '그게 과연 어떤 걸까. 혼자 연주하면서 노래를 한다는 것이' 그 공연 내내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연주자 없이 혼자 하고 있다는 걸 인식을 못 했어요. 다른 연주자의 부재를 느끼지 못했던 거죠. 그만큼 어찌 보면 함께하는 연주자로서의 역할도 관객이 했던 거예요. 

 

- 김광석 씨 공연은 다른 가수들과 분명한 차이점이 있던 걸로 들리네요.

 

조규찬 : 네 일단 이런 거 있잖아요. 음악인에 따라서 자신의 음악적인 빈틈을 관객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음악적 연출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고요. 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그 둘 중에 어떤 것이 공연할 때 음악적으로 바람직하냐. 그건 재단할 수 없죠. 김광석 선배님은 후자에 가까웠어요. 무슨 말이냐면, ‘내가 정말 에누리 없이 완벽하게 연주하고, 완벽하게 노래해서 관객을 감탄하게 할 테야’라는 그런 집념이 있으신 건 아니었어요. 제가 느끼기에. 그냥 ‘이게 저예요’하시는 것 같았죠. 

 

지금 이렇게 기타 치는 게 ‘나’고 이렇게 아르페지오 하는 게 ‘나’고 또 이렇게 노래하는 게 ‘나’예요. 때론 거친 목소리도 나오고 때로는 템포가 일정하게 가지 않고 느려졌다가 많이 빨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나게, 필요 이상으로 격정적일지도 모르지만, 또 때로는 훨씬 더 극단적으로 아주 조용한, 정말 사람들의 호흡마저도 다 빨아들일 정도의 그런 아주 조용한 상태에서의 아주 미세한 소리의 아르페지오도 들려주고. 그런 모습들이었지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공연을 위해 가공된 연출로 감탄하게 만드는 그런 음악으로는 다가서지 않는 거죠. 오히려 김광석이라는 아티스트가 혼자 노래하는 어떤 장소에 관객들이 모여드는 것 같거나, 혹은 술 한잔 기울이면서 삶을 얘기하면서 친구들하고 모여서 ‘아 근데 내가 지금 노래하고 싶은 기분이야. 들어봐.’라고 노래하는 걸 목도하는 듯한 그런 자리였던 거죠. 그런 점이 가장 달랐어요.

 

- 김광석 씨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을까요?

 

조규찬 : 저는 김광석 선배님 노래 중에서 ‘서른 즈음에’를 좋아해요. 다른 곡도 다 좋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좋아지는 특징이 있어요. 그때도 참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어렸던 거 같고요. 그래서 조금 덜 알아봤거나 못 알아봤던 그런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곡 중의 하나가 ‘서른 즈음에’라는 곡이에요. 

 

- 구체적으로 ‘서른 즈음에’의 어떤 부분이 마음을 흔들었나요?

 

조규찬 : 일단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서른 즈음에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마지막 부분이 있어요. 저도 싱어송라이터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좋은 가사를 추구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는 걸 느끼거든요. 지금도 저는 아직 그러한 가사는 써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언젠가, 어느 한순간에 ‘나도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거든요. 

 

일단 가사에서 느끼는 게 가장 크고요. 그리고 그 가사들을 담아낸 소리 자체가 애써 가공하지 않은 소리예요. 그니까 김광석이라는 아티스트를 이해하려면 음악을 듣는 여러 방향 중 한 가지 기준만 가지고 들으면 안 되는 상황인 거죠. 예컨대 저는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라는 뮤지션을 굉장히 좋아해요. 이 뮤지션, 프로듀서가 만든 음악들은 굉장히 구조적이고 아주 이성적이고 철저함이 있기에 음악적 연출로는 거의 뭐 끝까지 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취향을 가지고 김광석이라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만약 ‘서른 즈음에’를 듣는다면 그런 기준하고는 맞지 않는 거죠. 

 

그렇지만 김광석이라는 아티스트 그 자체의 목소리, 그리고 연주하는 손길, 그렇게 해서 자아내진 소리, 비어있는 부분들, 그 공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듣는 이가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는 거죠. 마치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우리가 시선을 얹어놓고 보면 그 독특한 시각적 마티에르가 있잖아요. 그게 약간 숭늉 같기도 하고, 아랫목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품 같기도 하고, 또 오래전 누나와 함께 별을 보며 노래를 부르던 어느 여름밤 같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음악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비유하고 싶어요. 

 

김광석이라는 아티스트의 소리는 그런 독특한 마티에르가 있는 거죠. 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김광석의 음악만이 품고 있는. 그걸 만약에 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것이고. 저도 이제 그런 걸 조금 볼 수 있게 된 그게 시작된 시점인 거죠.

 

- 다시 소극장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예전만큼 소극장들이 많지 않지만 학전은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그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조규찬 : 극장이라는 게 문화공간이긴 합니다만 경영을 하는 게 전제가 돼야 하잖아요. 극장이 없어졌다는 게 뭘까요? 상식적으로 봤을 때 경영상 문제가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더 이상 버티지 않고, 혹은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간 거겠죠. 학전이라는 그 극장은 그 모든 현실 위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예술이라는 이상을 결국 포기하지 않은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져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희생이 있었을 거고요. 어려운 시간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극장이 그 자리에 서있다는 건 우리가 아주 깊은 산속에서 정말 길을 잃고 저체온증에 시달리던 상황일 때, 아주 깊은 산속에서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발견한 거 같은 안도감을 들게 할지도 몰라요. 아무도 없는 그곳에 어느 오두막이 있는 거예요. 거기서 몸을 녹일 수 있는 거죠. 그 오두막을 지키고 있는 이는 산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살 순 없어요. 그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삶의 원칙이 있겠죠. 그걸 위해서 희생해야 될 것도 필요했을 것이고, 참아야 될 것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만 거기에 있는 거죠. 그렇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길을 헤매다가 정말 힘들 때 그곳을 발견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거기서 다시 온기를 얻을 수 있고. 학전이라는 그 공간은 단순히 경영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져볼 문제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차원이 아니고 어떤 문화적으로 중요한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 공간이었고, 지금도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우뚝 서 있는 것이고. 감사한 거죠. 음악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극장이 존재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건지, 제가 그 극장에서 당장 뭘 하지 않고 있더라도 분명히 상징하는 바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 게 있는 거죠. 

 

- 김민기 씨는 학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신가요?

 

조규찬 : 당연히 그렇겠죠. 김민기 선생님께서 당연히 그 역할의 중심에 계신 거죠. 사실은 학전이라는 극장이 김민기라는 아티스트하고 동일시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분이 그곳을 꾸려오신 거니까. 제가 그분을 독대하거나, 그분이 뭘 하시는데 제가 불려가는 그런 행복한 상황은 아직은 없었습니다만. 먼발치에서 나마 뵐 수 있었고요. 제가 태어난 해에 1집을 내신 그런 선배님이시거든요. 1971년에 1집을 내셨으니까. 그러니까 정말 제가 바라볼 수도 없는 분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대에 제가 설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도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셨다는 건 그런 굉장히 열려있는 마음이신 거잖아요. 그런 선배님이 거기 우뚝 서 계시다는 게, 그리고 그 온기가 어찌 보면 지금도 매달 꾸준히 음원을 발표할 수 있는 저에게 힘으로도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 김민기 씨는 왜 그렇게 학전을 계속 지키고 있을까요?

 

조규찬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에게도 질문을 했거든요. 이 인터뷰에서 분명 그 질문을 하실 거 같았고, 왜 그 자리를 그렇게 지키고 계실까 나름 여러 가지 유추도 해보고, 당연히 답변도 생각을 해봤어요. 근데 오히려 그 답변들을 생각해 내면 생각할수록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창한 말로 어떤 명분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꾸며서 말씀드릴 순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분은 아마 제가 생각한 바를 이 인터뷰에서 말씀드리면 거기에 대해서 전혀 공감 안 하실 거 같아요. 

 

그분은 그냥 원래, 원래 그러신 분이란 생각을 해요. 그 존재 자체가 학전 소극장. 학전 극장이라는 것을 이렇게 꾸며오시면서 ‘지하철 1호선’ 공연도 올리고, 또 주변의 좋은 음악인들, 후배들이 설 수 있는 어떤 장을 마련해놓고, 그냥 그분의 삶이 자체가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게 이유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 조규찬 씨가 데뷔 이전에도 학전에 설 수 있던 기회가 있었다고 하셨듯, 학전의 공연을 기획하는 김민기 씨에게도 특정한 기준 같은 게 있었던 건가요?

 

조규찬 : 저도 사실은 김민기 선생님께 그게 꼭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기도 해요. 그때 제가 어떻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꼭 여쭤보고 싶어요. 아직 못 여쭤봤거든요. 근데 하나 확실한 건, 상업적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건 아니었던 거 같아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아직 앨범도 안 나온 정말 어린 친구들인데, 그 친구들이 막 그것도 한 쪽은 아카펠라 팀이고 한쪽은 솔로로 자기 꺼 하는데 반반씩 곡 수를 나눠서 자기들끼리 막 뚝딱뚝딱 연습해가지고 공연을 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그걸 어떻게 공연을 올려줄 수 있겠어요. 쉽지 않죠. 하다못해 오디션이나 그런 것도 없고 그냥. 

 

하나음악의 조동진 선배님, 조동익 선배님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저와 낯선 사람들 멤버를 다 아셨고, 저희들도 그곳에 자주 가 있고 소속돼있고 뭐 이랬죠. 그래서 거기서 저희끼리 노래하는 거 보신 거죠. 보시고 “공연 한번 해볼래?” 하신 거죠. 아무런 계약서도 없고, 특별히 그런 거 없이 바라는 것도 없으셨고, ‘너희들이 노래를 하고 싶다면 노래를 하게 해줄게’였어요. 그렇게 그분들끼리의 어떤 음악적 신뢰라든지 저로서는 범접하지 못하는,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거기에 있었겠죠. 그런 것들이 학전 공연에 설 수 있는 기준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짐작하고 있어요. 

 

- 만약 그러한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 만약 자리를 잃는다면 어떤 생각이 드실 것 같나요?

 

조규찬 :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깃발이 내려가는 걸 바라보는 느낌일 거 같아요. 그 깃발만큼은 서 있었는데,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 깃발마저 이제는 내려가는구나. 그걸 이렇게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런 느낌일 거 같아요. 

 

(3부에서 계속.)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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