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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6
by 최승원

날 것 그대로의 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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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9-16작성자  by  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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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 1집 앨범이 초판과 재판으로 나뉘어 두 번 발매됐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김민규 : 처음에는 가방 이미지로 된 앨범 커버로 초판이 나왔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회수하여 지금의 재킷이 됐어요. 스파게티 이미지로요. 아마 가방 이미지는 내부적으로 알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초판 하나는 갖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웃음) 여하튼 다시 작업한 것은 아니었어요.

 

- 영화 <후아유> 곡 삽입 이전에도 미디어 출연을 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셨었나요?

 

김민규 : 라디오, 심야 라디오 게스트로 나갔고요. TV는 <이소라의 프로포즈>. 또 MBC에서 <수요예술무대>에 나갔어요. 그런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인 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거 다 나가면 성공. (웃음) 그런 방송에 나가면 성공이었어요. 우리 이번 앨범의 프로모션은 성공.

 

- 초창기 인디 신의 멤버셨는데, 미디어에 대한 반감에 대해서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민규 : 많이 불편했죠. 불편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가족들이 인정을 해주고요. 왜냐하면 미디어 활동을 안 하면, “쟤는 뭘 하는 애니? 집에서” 이러기도 하고, 왜냐하면 어르신들은 홍대 클럽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시니까. 그래도 방송을 하면, “아, 음악을 하는구나”라고 알죠.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는 무척 중요했던 활동이었죠.

 

- TV 첫 방송 기억하시나요?

 

김민규 :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너무 떨렸던 것밖에.

 

- 미디어에서 델리스파이스를 찾은 건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김민규 : 조금이나마 대중 친화적인 부분이 있지 않았나. 다른 팀들에 비해 어느 정도 길들여진 모습? (웃음) 그래도 인디 신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으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겠죠.

 

- 그때도 PC 통신이 활발하던 시기였나요?

 

김민규 :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메탈이라는 장르 자체가 소수의 서브 컬처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안에서 있는 모던록 모임은 더 소수였죠.

 

- 사실 그즈음 시기에 미디어에서 인디 음악을 많이 찾았거든요. 왜 그렇게 미디어에서 인디 음악을 찾았을까요?

 

김민규 : 미디어에서 인디 음악을 찾았다고 생각이 안 드는데. (웃음) 적절한 대안이 뭐 주위에서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글쎄요. 거기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네요.

 

- PC 통신에서 모여서 팀을 결성하신 건데, 그때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셨어요?

 

김민규 : 스물다섯 살이었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요. 그즈음 PC 통신이 나왔던 것 같아요. 저는 조금 늦게 접했던 것 같고, 저보다 빨리 PC 통신하셨던 분들이 있어서. 저는 조금 늦었죠.

 

- 또래분들 중 PC 통신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김민규 : 신기했었죠. 전화선을 연결해서 하는 것이. 신문물 같았죠. 스마트폰보다 그때는 전화와 삐삐였으니까. 전화선을 연결해서 글을 볼 수 있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죠.

 

- 활발히 PC 통신을 이용하셨나요?

 

김민규 : 저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음악에 관한 정보가 올라오는 것이 너무 재밌고, 그때는 기껏해야 월간 잡지가 전부였잖아요. 그거보다도, 빠르게 정보가 올라오고, 잡지에 없던 정보도 PC 통신에 있다 보니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PC 통신에서 그냥 음악을 듣는 사람들일 텐데, 잡지에 기고하는 기자보다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던 것이 아무래도 놀라운 부분이었죠.

 

- 혹시 동호회에서 유명하셨던 분 기억나세요?

 

김민규 : 언니네이발관 이석원 씨 같은 경우 날리는 필자였죠. (웃음) 이석원 씨의 음악 리뷰도, 제가 처음 들어보는 음악을 소개하기도 했고, 저는 엄청 신선하게 글을 봤어요.

 

- PC 통신 소모임에서 결성된 그룹들이 또 있나요?

 

김민규 : 글쎄요. 많이 있었지 않았을까요?

 

- 결성 이후에 PC 통신은 계속하셨죠?
 

김민규 : 인터넷으로 대체되기 전까지는 계속했죠. 나중에는 델리스파이스 팬클럽도 생기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곳에 각각 모임이 생겼죠.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팬클럽이 생겼어요. 밤새 채팅하기도 하고 밤새 글을 보기도 했고, PC 통신을 통해 여러 사람과 동시에 이야기한다는 것이 신선했어요.

 

- 2000년대, 델리스파이스 활동을 하기 전에 독립 레이블에 계셨었는데, 어쩌다가 하게 되신 건가요?

 

김민규 : ‘문라이즈’ 레이블이었고요, 인디밴드에 대해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데, 저 같은 경우 자본으로 독립하는 것도 있지만, 녹음실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었거든요. 이를테면 녹음하시는 분들이 제가 원하는 대로 잘 안 해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면 결국, “내가 녹음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거기에 의존하면 결국은 내가 원하는 걸 할 수가 없구나. 그래서 기계도 사게 되고 그러면서 내가 녹음한 걸 발매를 직접 해보자는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 그 ‘문라이즈’라는 레이블로 델리스파이스로 한 것이 아니라, 개인 혼자 하셨던 거예요?

 

김민규 : 제 생각들을 다 공유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집에서 녹음하고, 음질이 안 좋아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런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기 때문에, 팀에 강요할 수는 없죠. 그래서 따로 개인 활동으로 하게 된 거죠.

 

- 그럼 녹음 방식을 아예 바꾸신 거예요?

 

김민규 : 녹음 방식을 바꿨다기보다 기본적인 원리는 똑같아요. 그냥 녹음실이냐, 집이냐, 조금 더 트랙이 많냐, 적냐의 차이가 있었는데 저는 그렇게 적은 트랙 안에서 작업하는 것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녹음을 위한 공간과 방음은 없지만, 그냥 방에서 하는 거죠. (웃음) 나름대로 집중되는 맛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마이크 세팅을 하고 잤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갑자기 노래를 불러 좋은 것이 나왔을 경우, 그것을 채택해서 쓰기도 했죠.

 

녹음실 가면 약간 경직되기도 하고, 시간에 쫓기고 그런 부담 때문에 100% 재연이 안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집에서 하면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어떤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도 하고.

 

- 그렇게 해서 내신 앨범이 ‘스위트피’ 1집이죠? 왜 ‘스위트피’였나요?

 

김민규 : 당시 피천득 선생님 수필 중 ‘인연’이라는 수필에 ‘스위트피’라는 단어가 나와요. 그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프로젝트 이름으로 쓰게 됐죠. 그리고 델리스파이스보다 조금 더 잔잔한 음악이 많았고요. 어쿠스틱 사운드와 가사와 멜로디가 더 중시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 지금도 스위트피 활동은 하시잖아요?

 

김민규 : 그런데 스위트피는 이제 끝났습니다. (웃음) 박스 세트가 나오면서 끝냈고, 이제 스위트피 활동은 안 하기로 했습니다. 

- 앨범 만들 때 남들과 다른 시도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뭔지 본인은 아시는지? (웃음)
 

김민규 : 독립 레이블 할 때는 방에서 녹음하다 보니, 개 짖는 소리도 들어가고요. (웃음) 그런 소리를 실제로 막 쓰기도 했죠. 자연스럽게. 피자 배달이 오면, 개가 짖잖아요. 그러면 그 짖는 소리가 중간에 들어가서 그것을 그대로 살려서 음악에 쓰기도 하고, 아무래도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용납되는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 독립 레이블 하면서 음악 유통은 어디에 맡기셨나요?

 

김민규 : 그때는 자체 제작한 음반들을 유통해 주시던 곳이 있어서, 잘 유통이 됐었죠.

 

- 보너스 CD는 무엇인가요?

 

김민규 : 그러니까 지금 말하면 컴필레이션인데요. 보통 컴필레이션이 히트곡이나 알려진 곡들을 게스트 형식으로 내잖아요. 그런 컴필레이션 앨범을 어떤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차원으로 만들어서 알려보면 좋을 것 같아서 기획했었던 것 같아요.

 

- 신인을 알려주는 측면에서 새로운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김민규 : 주변에 저와 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은 자기 곡을 홍보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이 있잖아요. 그런데 컴필레이션을 함께 해보자는 의견에 흔쾌히 동의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같이하게 됐죠.

 

- 실제로 효과가 있었나요?

 

김민규 : 일단 하는 데 의의가 있었고, 저희가 되게 재미있었고요. (웃음) 음반을 사는 사람도 보너스 CD라고 받게 되니까, 그때는 CD가 되게 가치가 더 있던 시절이기도 하고. CD를 한 장 더 갖는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독립 레이블을 유지하는 게 힘들지 않으셨나요?

 

김민규 : 아마 다른 분들도 더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인디 레이블이 자체 녹음부터 홍보까지 잘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냥 녹음까지만 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지속하기 힘들었죠. 그 두 가지를 겸하는 것이 버겁기도 했었고. 오래 가지는 못했어요. 그러니까 한계라는 것이 확실히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확장성의 한계가 있었죠.

 

-  사실 되게 많은 활동을 하셨어요, 음악적으로도. 밴드, 솔로, 그다음에 레이블 운영, 영화

나 드라마 음악. 엄청나게 많이 하셨는데. (웃음)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였어요?

 

김민규 : 글쎄요. 뭐 공연장에서 그래도 제일 보람 있고 재미있죠. 같이 노래해 주고 연주하고.

 

-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뒤, 홍대 라이브 클럽 무대에서도 계속 활동하셨나요?

 

김민규 : 지금의 홍대가 예전의 대학로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저도 많이 가 보지 못했지만, 예전 초창기의 라이브 클럽의 형태는 지금은 없는 것 아닌가 싶어요.

 

- 지금의 홍대를 보면 어떠세요?

 

김민규 : 자본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변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죠. 아마 지금 음악 하는 친구들은 그래서 거리로 나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친구들은 설 곳이 없으니까요.

 

-  홍대 라이브 클럽 이야기를 해볼게요. 드럭에서 크라잉넛보다 먼저 무대에 서셨어요?

 

김민규 : 크라잉넛이 먼저죠. 이석문 대표님은 델리스파이스가 먼저라고 하는데, 저는 분명히 크라잉넛 공연을 먼저 본 기억이 나거든요. “와~” 이러면서. 아마 거의 비슷한 시기였을 것 같아요.

 

- 1995년에 밴드 너바나 (Nirvana)의 커트 코베인 추모 1주기 공연에 대해 아세요?

 

김민규 : 아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가지는 않았어요. 저는 얼터너티브 줄기에서도 그런 쪽 음악 줄기가 아니었어요. 물론 너바나도 좋아하지만, 제가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공연은 재미있었다고 들었어요.

 

- 같은 맥락인데, 혹시 ‘스트리트 펑크 쇼’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김민규 : 네. 지나가면서 잠깐 봤던 것 같아요. 분위기는 좋았겠죠. (웃음) 아마.

 

- 버스킹이나, 페스티벌은 나가보셨어요?

 

김민규 : 버스킹은 안 해 본 것 같네요. 페스티벌은 많이 있었죠. 제 기억으로는 ‘쌈지사운드페스티벌’ 아니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이전에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개최를 취소한 것으로 전해 들었고, 저는 쌈지사운드페스티벌 무대에 섰어요. 그때가 1회였는데,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했던 걸로 기억해요.

 

- 당시 페스티벌 분위기는 어땠나요? 
 

김민규 : 사실 저는 심지어 무섭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이 다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뛰고 했으니까요. 그때는 페스티벌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있었어요. ‘모싱 (Moshing)’ 이라고. (웃음) 중요한 것은 아닌데, 남자들끼리 서로 몸을 부딪치던 것을 말하는 건데, 점프해서 부딪히고 그런 모습을 봤어요.

 

저희 음악이 그런 음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페스티벌에서 곡 ‘차우차우’를 하는데도 모싱하기도 하고 (웃음). 그런 것들로 인해 저희도 에너지를 얻고, 집이나 음악을 할 때도 페스티벌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죠. (웃음)

 

- 실제로 초창기 그런 열기 덕분에 페스티벌도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도 페스티벌 무대에 참여하셨나요?

 

김민규 : 저희는 방송이 낯선 무대라면, 페스티벌은 참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는 그런 무대가 됐어요. 기억에 남는 페스티벌은 비 오는데 했었던 기억이 많네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도 기억나고요. 지산에서도 비가 엄청나게 오는데 사람들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모습들을 무대에서 보면 되게 감동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기억나네요.

 

- 혹시 요즘 페스티벌과 이전 페스티벌은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요?

 

김민규 : 우선 쾌적해진 점이 좋아요. 예전에는 불편했거든요. (웃음) 진흙이 많았고, 지금은 음향도 좋아지고, 전반적으로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 다시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예전보다는 여전히 줄었지만, 아직 인디 뮤지션이 모이는 곳은 여전히 홍대거든요. 요즘 음악을 시작하는 친구들도 홍대로 가는데, 왜 아직도 홍대일까요?

 

김민규 : 글쎄요. (웃음) 홍대가 사람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 같아요. 홍대에 오면 여기에서는 어떤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 또는 편안함이 있으니까. 저한테 홍대는 뭔가 편안한 고향 집 같은 곳인 것 같네요. 물론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만, 어떤 건물들은 그대로 있거든요. 요즘은 지나는가도, 홍대 거리를 직접 걸어 다니지는 않아요.

 

- 요즘은 인디의 경계가 많이 약해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민규 : 주류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예전에는 음악적으로 많이 달랐어요. 일단 기타 소리가 되게 크고. (웃음) 방송국에서 싫어하고, 기타 소리가 크니까. 지금 인디 음악은 기타 소리도 얌전해지고 좀 많이 절제돼 있다고 그럴까?

 

- 김민규 씨가 생각하시는 ‘인디’의 정의는 뭘까요?

 

김민규 :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가감 없이 숨기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인디 음악이지 않을까. 한편으로 요즘 친구들은 뭔가 억눌려 있는 아쉬움은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웃음) 더 개방된 시대를 살았을 텐데, 뭔가 억눌려 있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꼭 음악 하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세대들이. 이건 그냥 제 느낌이에요.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로 “야, 그냥 디스토션 한번 밟아!” 이런 것이 안 되는 느낌?

 

- 크라잉넛, 노브레인, 자우림, 데이브레이크, 잔나비, 새소년, 옥상 달빛과 같은 밴드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민규 : 넓게 말해서 일단 자우림과 크라잉넛, 노브레인은 동시대에 활동을 했으니까 친분도 있고. 데이브레이크는 페스티벌에서 오며 가며 자주 뵀어요. (웃음) 같은 무대에 서기도 했고요. 잔나비는 제가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있을 때 잔나비 음악이 정말 많이 나오더라고요. (웃음) 어떤 한 음악에 계속 꽂힐 때가 있는데, 그 음악에 꽂혀서 나중에 찾아봤더니 잔나비 음악이더라고요.

 

새소년은 뭔가 억압되지 않은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옥상달빛은 저 개인 작업할 때 가사를 써주시기도 하고. 특히 옥상달빛은 감성이 너무 좋으시고, 노래를 할 때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같이 작업한 곡은 뭔가 가사가 힐링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 크라잉넛은 초창기에 어땠어요?

 

김민규 : 초창기 크라잉넛은 그 에너지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내심 부러워했던 적이 있고요. 저희는 낯가림이 있다고 할까요? 그런데 크라잉넛은 거침이 없었죠. 그 펑크의 에너지가 잘 맞닿아 있었고, 너무 잘 어울렸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연주를 들어보면 정말 잘해요. (웃음) 그 난리 통에서. 그래서 신기했었어요.

 

- 노브레인은 어땠어요? 
 

김민규 : 노브레인도 생각해 보면 비슷하겠지만, 에너지로 따지면 뒤질 게 없는 팀이었고, 심지어 노브레인은 나중에 감성적인 곡도 무척 잘 해서 (웃음) 감동했던 적이 있죠.

 

- 인디 신에서 자우림은 원래 알고 있었나요?

 

김민규 : 자우림도 잘 알았죠. 많이 마주쳤고, 멤버들과 친분도 있어요. 그때 자우림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팀이라고 생각했어요. 뭔가 홍대 팀들에게 없는 세련된 느낌. 음악도 그렇고, 모습들도 그렇고, 어떤 태도들도 우리랑 다른 결이기는 하지만, 좋다고 생각했었어요. TV에서 자우림이 나왔을 때 보고, 우리는 저렇게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웃음) 좌절감 같은.

 

 

[사진출처=멜론뮤직]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최승원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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