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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3
by 우정호

‘품격’과 ‘저렴’의 경계, 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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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0-13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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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매 의상에 불친절한 외모, 무거운 새처럼 퍼덕대는 쇼킹한 퍼포먼스. ‘당신 갖긴 싫고 남 주긴 아까운 거야 10원짜리야’와 같은 파격적 가사와 함께 등장한 싸이(PSY)는 2000년 전후로 유행한 ‘엽기’라는 표현에 적확한 존재였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엽기’는 사어가 됐지만, 그 본질만은 ‘강남스타일’이 명맥을 이었다. 게다가 싸이는 K-POP의 표상으로 간주되는 뛰어난 비주얼과 퍼포먼스, 혹은 마음을 적시는 가창력이 아닌 ‘기이함’으로 BTS, 블랙핑크보다 앞서 K-POP 가수로서 세계를 호령했다.

 

 

(아카이브 K는 싸이와 2020년 11월 인터뷰했다.) 

 

 

- 소위 ‘해외파’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는데 음악 공부는 미국에서 시작했나요?

 

싸이 : 사실 좀 남사스러웠던 게 입학을 했던 건 맞는데 열심히 다니지 못해가지고요. 다닌 적은 있습니다. (웃음) 너무 예전 얘기인데 또 이렇게 말하다 보니까 머쓱해지네요.

 

- 처음부터 음악을 하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한 게 아니었나요?

 

싸이 : 네, 처음에는 음악이 아니었고요. 그냥 일반적인 학과. 경영학과였죠. 입학을 했다가 아예 음악을 전공으로 하는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됐었죠. 그리고 특별히 ‘미국에서 음악을 해야지’라는 의지가 없이, 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시작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막 뭔가를 노리고 간 것도 아니었고 되게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그런 케이스입니다. 

 

- 처음부터 가수가 목표였던 건 아니었군요.

 

싸이 : 네. 그전에는 코미디언을... (웃음) 그러니까 사실은 가수를 꿈꿨던 적은 아예 한 번도 없었고요. 그리고 외모적인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다만 음악 혹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고, 그러면서 학교를 옮기게 됐어요. 그런데 특별히 학교를 옮기면서 음악에 더 빠지게 된 건 아니었고요. 독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역사적으로도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독학을 해왔고, 저 또한 혼자서 처음에는 어떤 노래에 빠졌다가 그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빠졌고, 그러다 그 가창자는 이 음악을 왜 했을까, 이 음악은 어디서 시작이 됐나, 어떤 시대상에서 시작이 됐고, 그 시대에는 이 음악을 왜 했으며 어떠한 문화로부터 비롯됐나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음악이 너무 좋아서 듣고 소비를 하다가 너무 매료가 되니까 그 배경에까지 관심을 막 가지게 된 거죠. 그러다 내가 만약 음악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가지게 된다면 그중 어떤 것부터 해볼까?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돼보면 어떨까? 출발은 그랬습니다.

 

- 어떤 음악들에 큰 영향을 받았던 건가요?

 

싸이 : 최근 몇 년 간 영화 때문에 다시 많이 회자가 됐지만 저는 중2 때부터 현재까지 ‘퀸’ 외길 인생이고요. 퀸의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접한 후로 아직까지 저에게 아주 그냥 유일하게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고요. 그리고 제가 96년도부터 대학을 다녔는데 힙합이 굉장히 뜨거웠던 시기였어요. 막 동서가 분쟁이 있고 아티스트가 명을 달리하는 그런 사건들이 있던 투팍(2pac), 비기(The Notorious B.I.G) 시절이었어서. 그때 저뿐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미국은 힙합이 아주 뜨거웠었죠. 그러니까 훨씬 어렸을 때는 퀸을 좋아했기 때문에 록을 많이 듣다가 대학교 다닐 무렵에는 여러 가지 열풍들 때문에 힙합에 아주 빠져 있었고요. 그때 투팍이 사고가 나서 죽게 됐고, 그런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미국에선 힙합이 메인스트림이었고, 지금 같이 온라인에서 음악을 찾아들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코드점에 가서 헤드폰으로 굉장히 음악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도 제가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요. 힙합의 문화도 너무 좋아했지만 하나 특이했던 점은 어렸을 때부터 그때까지 그냥 사석에서 춤추는 걸 워낙 좋아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춤을 출 수 있는 힙합 기반의 음악을, 한국 정서에 잘 맞는 대중적인 후렴구를 지닌 힙합 정서를 기반으로 한 흥이 있는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가 돼보자고 하면서 시작했죠.

 

- 싸이 음악에 강렬한 락과 힙합이 혼재하는 것은 그러한 영향이었군요.

 

싸이 : 네, 그렇죠. 저는 록 기반의 굉장히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죽기 전에 한번 해볼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무의식적으로 곡들에 반영이 돼 있는 것 같더라고요. 많이 아실 만한 제 노래 중에는 ‘Right Now’가 좀 그런 접근이 아니었나 싶네요.

 

- 싸이가 2001년 데뷔했을 때 다들 ‘처음 맛보는 컨셉’이라고들 했습니다.

 

싸이 : 네, 매운맛이였죠. 

 

- 어떤 계기로 데뷔하게 됐나요?

 

싸이 : 작곡가를 하려고 방학 때마다 한국에 나와서 데모 CD를 유수의 기획사들에 돌렸는데 그때 한 곡도 안 팔려서 ‘음악에 재주가 없나’ 생각했죠. 그리고 어렸을 때를 돌이켜 보면, 제가 음악하는 걸 부모님이 굉장히 좋아하시지는 않으셨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계속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계속하기가 쉽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이런 생각들을 동시에 갖게 되면서 정말 사즉생의 마음으로 이래저래 음악을 접을 거라면 만들어놓은 노래 아까우니까 이거 불러나 보고 끝을 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불러줄 사람 없는데 제가 뭐 뛰어난 가창력이 있는 것도 전혀 아니었지만 내가 부르고 하얗게 태우고 끝내자라는 마음으로 데뷔를 했죠. 저는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어요. 

 

- 그때 퍼포먼스나 표정이나 컨셉이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었는데 이미 기획을 하셨던 건가요?

 

싸이 : 그러니까 요즘 연습생 과정을 거친 케이팝 아이돌들은 항상 거울을 보고 춤을 춰버릇 하니까 본인이 어떤 표정인지 알잖아요. 저는 제가 첫 방송을 하고 나서 아직도 너무 놀란 게 제가 춤출 때 그런 표정인지 몰랐어요. (웃음) 입을 왜 그렇게 벌렸는지. 뭔가 굉장히 느끼는 표정 같기도 하고 목말라 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저는 막 전문적인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약간 날 것처럼 데뷔를 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제가 춤출 때 그런 표정인지는 잘 몰랐었어요. 

 

- 본인의 방송을 직접 보고 나서야 아신 거였군요.

 

싸이 : 많이 놀랐습니다. 시청자분들만큼 저도 놀랐던 것 같아요. 왜 저러지, 표정이? (웃음) 그러니까 사실 그런 건 있는 거죠. 처음에는 제가 그런 표정으로 춤을 추는지도 몰랐었고.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니까 그때부터는 일단 당분간은 이 표정으로 춰야겠다. 그런 거.

 

- 세계를 중독시킨 ‘강남스타일’ 안무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싸이 : 저와 데뷔 때부터 함께했던 안무팀이 주로 짰고요. 그런데 여지껏 제가 발표했던 곡 안무 중 일부는 제가 짠 동작들도 있거든요. 안무팀들은 몸매가 저 같지가 안잖아요. 그래서 이분들이 짠 안무는 되게 멋있어요 처음에. 그런데 그걸 제 몸에 맞게 변환을 해야 되는 과정들이 좀 있어요. 왜 우리가 해외여행 가면 220볼트도 있고 110볼트도 있잖아요. 그렇게 변환 과정들을 거치면서 춤이 조금 달라지는 거죠. 그런데 강남스타일 말춤은 처음 안무팀이 짠 걸 보자마자 수정 없이 바로 오케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외모하고 다르게 약간 좀 편집증 같은 게 있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게 세상에 없는 걸 알면서도 그걸 해내고 싶은 마음이 좀 강해서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곡 쓸때건, 안무건, 뮤비 편집이건 그게 뭐든. 그런데 딱 보자마자 ‘우와~ 이건 너무 좋다’했던 건 그 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 그 안무를 만드신 안무가는 어떤 분인가요?

 

싸이 : 이주선 씨라고 저랑 ‘새’ 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해 주신 안무가. 저보다 형인데 아직도 무대에 서요. 제가 못 내려가게 해가지고 죽을라 그러고 있죠. 무대 위에서 이제 저랑 그 형만 40대니까 둘이 뭐 헐떡헐떡거려요. 숨소리 딱 두 사람 들려요. 

 

- ‘강남스타일’을 처음 기획했을 때 해외 진출 역시 염두에 두었던 건가요?

 

싸이 : 전혀 아니었고요. 누군가 저한테 “너의 롱런의 비결은 뭐니?” 그러면 저는 “주제파악을 잘해서요”라고 대답을 하거든요. 한 번도 해외진출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그냥 사석에서 농담으로 “나는 해외에서 터지면 크게 터질 거야” 이런 얘기만 했었는데. 주로 제가 했던 역할은 국위선양을 하고 돌아오는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주는 역할이었었지. 제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저는 또 그냥 우리나라에서 제가 구축해놓은 영역에 몹시 만족을 하고 지내고 있었던 때였거든요.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되게 생각나는 순간들이 많은데, 강남스타일이 처음 나올 당시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거든요. 저희 직원분이 저한테 “형, 이거 비디오 유튜브에 좀 올리겠습니다.”, “그게 뭔데?”, “네. 뭐 이러이러한 거다.”, “거기 왜 올리는 건데?”, “그래도 해외팬들이 요새는 들어와서 되게 많이 본다”그러더라고요. 이제 제가 그 당시 소속사가 YG였으니까. “야. 그건 빅뱅, 2NE1이지. 나는 해외에서 아무도 모르고 걔네가 내 걸 왜 보냐. 쓸데없는 짓하지 말자. 애쓰는 것 같아 보이면 안 되는 연차의 가수다, 나는. 나는 그냥 내가 구축해 놓은 기반대로 콘서트에 집중하고 이제 그 길로 나는 가야지. 여기서 무슨 뭔 제4의 도약을 하려고 뭐 이렇게 기웃기웃 거리냐. 싫다.” 그렇게 이 친구랑 저랑 굉장히 설전을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올리자 그래서 “마음대로 해” 해서 올렸고요. 그 당시 또 회사에서 ‘트위터를 하자. 페이스북을 하자’ 그러는데 SNS를 하나도 안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거 왜 해야 되냐”그러니까 “지금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 분위기가 너무 좋으니까 그걸 좀 이렇게 퍼다 나르고 쉐어도 하고 해외 사람들하고 소통을 해달라. 영어도 할 줄 알지 않느냐.” 그래서 “아, 뭘 그렇게 굳이 해” 그렇게 얘기할 정도로 아예 아무런 정보도, 지식도, 의지도 없었어요. 

 

- 해외 팬들에게 ‘강남스타일’이 닿기 시작한 게 산다라박 트위터에 올라간 트윗이 리트윗되면서 부터인가요?

 

싸이 : 맞아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2NE1 팬들이 굉장히 많이 서포트를 해줬고 빅뱅팬들도 그랬고. 제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첫 장면이 있어요. 브리트니스피어스(Britney Spears)가 제 뮤직비디오를 트윗을 했다 그러길래 “누구?”, “브리트니 스피어스”. “그 브리트니 스피어스? 와~ 왜?” 그러니까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었어요, 그 당시에. 누가 뭐 했다 그러면 “에이, 뻥” 이러고. 그리고 SNS와 유튜브 같이 국적에 상관없는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잘 몰랐었기 때문에. 내 뮤직비디오를 그렇게 리트윗 하는 건 무슨 의미인지도 솔직히 처음에 잘 몰랐었고... 

 

- 그렇게 미국 엔터테인먼트의 큰 손 스쿠터 브라운(Scooter Braun)에게 까지 닿은 거였군요.

 

싸이 : 강남스타일 나오고 한 달이 안 됐을 때였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 빨리 연락이 왔던 거죠.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직접 전화가 왔어요. 제가 2000년도 이후로는 영어를 써본 적이 없으니까 누가 갑자기 전화 와서 영어를 막 하는데 자기 저스틴 비버 제작자라고. 정말 농담이 아니고 제가 그사람한테 “니가 저스틴 비버 제작자면 나는 저스틴 비버다” 그랬어요. (웃음) 저도 참 웃기죠. 외국인이 장난 전화를 걸 일은 잘 없잖아요. (웃음) 그랬는데 그분이 자기를 구글 검색 해보고 얼굴을 확인을 해보라고 페이스타임으로 다시 걸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검색을 해서 보고 페이스타임이 왔는데 진짜 그 사람인 거예요. ‘이제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처음에는 그냥 강남스타일의 가창자로 알고 연락이 온 게 아니라 강남스타일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작곡가를 컨택하려다 저에게 왔던 거예요. 그 노래를 리믹스를 하고 싶어서 판권을 사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던 거였어요. 

 

- 리메이크가 아니고 리믹스요?

 

싸이 : 네, 강남스타일을 리믹스를 하려고. 그러니까 미국 시장은 바이럴로 터진 노래를 그런 메이저한 가수들이 리믹스를 굉장히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막 얘기를 하다가 “그런데 너 그러면 이 노래 부르는 사람들 알고 있냐”고 해서 “내가 걔다” 그랬더니, “너 영어도 할 줄 아네?” 뭐 어쩌고 하다가 “그러면 네가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 춤추는 통통이냐”, “내가 그 통통이다”, “그러면 너는 이 곡도 니가 썼고, 그 비디오에 나오는 사람도 너고, 영어도 할 줄 아냐”, “그렇다” 그랬더니 “혹시 잠깐 와볼래? 얼굴 좀 보자” 이렇게 된 거죠. 그래서 미국에 갔어요. 겸사겸사. 뭐 그때만 해도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갔던 것도 아니었고. 대단하신 분이 보자니까 겸사겸사 그렇게 해서 갔죠. 

 

- ‘강남스타일’의 저작권자가 퍼포머라고 생각을 못하고 연결이 됐던 거군요?

 

싸이 : 그렇죠. 이 사람도 저랑 처음 통화를 하는데 제가 좀 재밌었나 봐요, 말을 하다 보니까. ‘니가 저스틴 비버 제작자면 나는 저스틴 비버다’ 이거부터 너무 웃겼나 봐요, 그 사람이. 그리고 제가 영어도 한국말하고 비슷하게 하거든요. 툭툭툭 이렇게 던지는 편이니까 그냥 영어도 그냥 하는 사람이 있고 좀 웃기게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한국말처럼. 그렇게 영어를 웃기게 어쩌고 저쩌고 하니까. 그냥 겸사겸사 저한테 곡을 사든 아니면 자기가 봤을 때 해외에서도 연예인으로서 가치가 있는지를 보고 싶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겸사겸사 보자 그랬던 것 같고 저도 겸사겸사 가봤던 거죠. 

 

- 세계적인 프로듀서인데 전화통화만으로 정확한 촉을 보였던 거네요.

 

싸이 : 그렇죠. 그분은 미국에서도 아주 촉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어 가지고. 

 

- 그렇게 당도한 미팅 자리였지만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고요.

 

싸이 :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가수를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었고, 그리고 해외진출도 꿈꿔본 적이 없었고. 그러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좀 제 스스로를 희망고문을 하지 말자는 주의거든요. 그러니까 그 연락을 받고 YG 분들과 함께 미국을 가던 날도, ‘뭐 뭔 일 있겠냐’ 이런 마음으로 갔었기 때문에. ‘그냥 그냥 겸사겸사 갔다 오자. 이번에 노래도 잘 됐으니까’ 그런 정도였지, ‘뭐 무슨 일이 벌어지나. 나는 진짜 이번에 가서 죽어도 뭔가를 이루겠어’ 이런 마음 상태로 갔던 건 아니었어요. 

 

- 미국 진출 계약과 관련해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수가 1억 뷰가 채워지기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계약을 조금 딜레이 시켰다고요.

 

싸이 : 네. 그건 맞습니다. 그 당시 강남스타일 조회 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 그대로 가면 1억 뷰는 찍겠는데 계약을 미리 해버리면 그분들이 본인들 때문에 1억 뷰가 됐다고 말씀하실까봐. 그러니까 어차피 미국에서 뭔가 해볼 거라면 당연히 그분들 손을 타야겠지만, 이게 다 그분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우리가 맨땅에서 시작해서 어느 정도 바람이 불고 있었던 상태였다는 방증을 남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1억 뷰가 될 때까지 계약을 조금 차일피일 미뤘죠.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지금 강남스타일이 현재 시점으로 38억 뷰인데(*2023년 10월 현재 49억 뷰) 그때는 1억뷰가 되면 그게 다일 줄 알았거든요. 이미 그때 4천만, 5천만 뷰 갈 때도 너무너무 비현실적인 숫자였기 때문에 ‘5천만 뷰? 이야~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인데’이런 얘기를 동료들하고 되게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그대로 가면 1억 뷰를 곧 찍는다고 하니, 그걸 넘긴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어떤 헤게모니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죠.

 

- 스쿠터 브라운이 활로를 만든 미국진출 활동 중 어떤 영향이 가장 컸나요? 

 

싸이 : 이미 8년 전이기 때문에 현재하고 조금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마는. 그 당시 미국의 상징적인 프로그램들, 시청자가 많은 메인 프로그램들에 저를 출연 시킨 게 컸죠. 그러니까 사실 음악이 바이럴을 잘 탄 것도 있었고, 뮤직비디오의 힘이 셌던 것 같지만. 활동 중반부부터는 현지 프로모션이 굉장히 동반이 잘 됐어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게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던, 한두 달 사이의 일들이었기 때문에. 만약 제가 혼자 알아서 하고 있었다면 그런 일들이 아마 원할히 처리가 안 됐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제가 YG에 있었고 거기서는 ‘야, 이거는 다 달라붙자’ 그렇게 확 붙어가지고 한 번 갈 때마다 정말 많이씩 다녔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미국 가서 계약했다는 국내 보도가 나갔는데, 그때 이미 유튜브 조회 수 1억 뷰가 넘어 있었고 또 해외에서도 음원순위가 쭉쭉 올라가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그래서 이제 좀 본격적으로 짐을 싸러 한국에 돌아왔던 날이 기억 나는데, 정말 무슨 올림픽 메달 딴 사람처럼, 저는 평생 이 직업을 하면서 기자분들의 그렇게 환하고 밝은 표정을 처음 봤어요. 정말 기특해 하면서 찍어주시더라고요. 아침 새벽 6시 도착이었는데 정말 많이 나오셔가지고. 

 

- 미국 진출 시 ‘강남스타일’을 번안하지 않고 한국어 원곡 가사대로 부르기로 계약했다고 들었습니다.

 

싸이 : 그러니까 저도 그 지점이 좀 중요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이 노래가 이미 구전으로 타고 있던 상황이어서 어렵지 않게 드는 생각은, 이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가사가 주는 재미도 분명히 있는데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곳에서는 이 가사가 주는 재미가 배제가 되어 있으니까 이걸 영어로 부를까 말까에 대한 스쿠터 측과 YG와 저와의 굉장히 고민이 있었죠. 그랬는데 모두가 어렵지 않게 합의를 했던 게 이건 이대로가 맞다는 거였어요. 이미 구전이 돼 있는 상태였고, 외국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그 발음을 막 따라하면서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거를 굳이?’ 하는 느낌이 있었고. 또 미국 프로모션을 하는 사람들도 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발음이 너무 재밌다고 해서 그냥 그대로 진행하게 됐죠. 스쿠터도 한국말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고요. 저희끼리는 그 당시에 농담으로 그런 얘기 했어요. 내가 만약 영어로 랩을 하면 미국에서 랩을 잘하는 순위로 천등 안에나 들까? 그런데 만약 한국말로 랩하면 미국에서 한국어로 랩 제일 잘하는 사람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여담입니다만 ‘국뽕’이라고 있잖아요. 뭐 외국 가면 불고기 알아? 김치 알아? 싸이 알아? 강남스타일 알아? 이런 얘기 한다고 한참 있었거든요. 저는 참고로 국뽕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한번 선언적으로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국뽕을 좋아합니다.

 

- (웃음) ‘국뽕’이 좋다는 건 어떤 취지의 말씀이신지.

 

싸이 : 아니, 그러니까 그 국뽕이 결국은 뭐냐 하면 한국 사람이 한국적인 걸 해외 사람들이 알아주는 걸 너무 뿌듯해 하는 게 조금 보기 불편하다라는 취지가 이제 국뽕의 콘셉트인데, 저는 우리나라 게 널리 알려지는 게 정말 자랑스럽고, 그걸 선언적으로 떠드는 것도 동의하는 주의거든요.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케이팝뿐만 아니라 삼성, 현대 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런 취지에서. 

 

-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한국어 가사로 해외시장에서 승부하는 K-POP 가수들 역시 많아지는 추세인데요. 한국어 가사만의 ‘맛’이라는 게 있는 걸까요?

 

싸이 : 그러니까 이건 극히 제 주관인데요. 일단 저는 한국어의 발음들 중에 된발음이 굉장히 많고, 치찰음도 굉장히 많고. 그러니까 대략 한국어를 쓰지 않는 모든 분들이 듣기에 이게 발음이 좀 세요. 약간 부산 사투리처럼 팍팍팍팍 센 된발음들이 많단 말이죠. 그런게 주는 듣는 재미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가수 입장에서, 제가 영어를 할 줄 아는 거지 영어를 진짜 한국말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케이팝이라고 규정이 되는 모든 장르에서의 한국 작사 곡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이 한국말만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들이 정말 많아요. ‘노랗다’도 있지만 ‘노리끼리하다’도 있고. ‘누렇다’, ‘애매모호’, ‘아사모사’, ‘시꺼머리죽죽’ 이런 거 있잖아요. 그리고 합성어도 많고, 중의어도 많고 발음은 된발음이 많고 그러니까 대체되기 쉽지도 않고. 그런데 이게 모두에게 해당 되는 얘기는 아니고, 저 같은 경우는 한국말로 써야만 제가 전달하고 싶은 게 전달이 되는 것 같기는 해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강남스타일에 ‘이때다 싶으면 머리 푸는 여자’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러니까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때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머리 푸는 여자’. 그러니까 놀 때는 놀고 들 때, 날 때, 유사시에는 굉장히 파이팅 있으신 분이다라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제가 영어서 짧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어로 표현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한창 미국 활동 할 당시에는 제 기존 노래를 영어로 바꿔서 내보이려고 바꿔본 적이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그냥 혼자 느꼈던 미세한 즐거움은 ‘세종대왕 대단하시다’였어요, 정말, 영어에 없는 말이 너무 많아요. ‘주책’ 이런 말 없어요. ‘나잇값’ 이런 거 없어요. 무슨 프라이스 오브 에이지(price of age)도 아니고 없어요. 이렇게 톡톡톡 꼬집는 단어들이 정말 많아요. 

 

- 해외에서 한글 가사 노래를 부르면서 ‘이 내용을 사람들이 알아들을까?’하는 생각도 들지 않으신가요? 

 

싸이 : 그렇죠. 그러니까 그 부분은 좀 애석하지만 덜 전달이 되는 부분이 당연히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직비디오나 안무나 여러 가지 부대 장치들을 통해서 해외팬들이 ‘이 노래는 대략 이런 내용일 거야’라고 추정을 하실 수는 있겠지만. 이게 정확히 뭘 특정하는 건지는 다 알아들으실 수는 없겠죠. 

 

- 싸이의 음악들이 비주얼적인 요소가 많기에, 해외 팬들이 가사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함에도 이미지나 스타일이, 무드 자체는 정확히 전달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싸이 : 얘기하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드네요. 그러니까 제가 하는 주 장르가 댄스음악일 텐데. 그리고 케이팝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장르도 댄스고. 그냥 전반적으로 댄스라는 노래의 특성상, 그리고 특히 요즘 시절에 댄스는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가사에 별 내용이 없어요. 심지어 EDM이라는 장르는 가사 없이도 전 세계인들을 열광시키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굳이 대단한 메시지를 바라지는 않으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한국 시장에서 가지고 있던 몇 안 되는 경쟁력 중에 하나가 댄스음악치고는 참 사연이 많은 거거든요. 거기서 구구절절이 뭐 하나 꼭 말을 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전달이 안 됐을 때 좀 아쉬운 면은 있었지만.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가사가 뭐 대단히 ‘딥’한 뭔가를 전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가사가 더 전달되고 전달되고가 케이팝의 흥망성쇠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현재는 화두나 키워드가 중요한 거지. 그러니까 케이팝이 굉장히 입체적이어서 잘된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이 길 외에 다른 걸 포기한 젊은 친구들이 정말 칼처럼 춤을 추면서 표정의 액팅도 멋지네 해내는데 뮤직비디오도 너무 멋지고. 그러니까 이게 그냥 단순히 음악, 단순히 춤, 단순히 뭐가 아니라 여러 가지들이 유기적으로 물려서 굉장히 입체적이기 때문에 좀 국적을 불문하고 선호도가 생기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2부에서 계속.)

 

 

[사진출처=피네이션]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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