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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by 우정호

껄렁하지만 잘 생긴 트로피 ‘강남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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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0-16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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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 ‘케이팝은 입체적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싸이 : 그러니까 아까 입체적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더 정확히는, 제가 생각하는 케이팝의 인기 요인이랄까요. 저는 치열함과 치밀함인 것 같아요. 대한민국 대중들이 눈이 정말 높으세요. 그리고 우리는 현재 아시아를 넘어 정말 많은 나라들에서 몇 십억의 인구를 상대로 박수를 받는 자랑스러운 직업군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희의 첫 관문은 한국에서 박수를 받느냐, 아니냐예요. 그리고 한국에서 박수를 받으려면 아주 잘 해야돼요. 왜? 너무 많아요. 항상 경쟁이 심하거든요. 

 

그리고 오래 했다고 계속 박수를 쳐주시는 편도 아니고, 오랫동안 잘해야지 예뻐해 주시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단 롱런하시는 모든 분들은 굉장히 치밀하고 치열하시거든요. 그리고 계속 박수를 받기 위한 많은 아티스트들과, 나아가서 많은 회사들의 정말 치열하고 치밀한 노력의 근간은 엄격한 대한민국 대중인 거예요. 그러니까 잘 해야 돼요. 정말 잘하는 팀들이 많거든요. 옛날에는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 그러면 잘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간단한 구조였다면, 지금은 다 잘하는데 누가 더 잘하느냐의 구조인 것 같아요. 

 

- 경쟁이 전보다도 훨씬 치밀해진 거군요.

 

싸이 : 저도 업계 종사자지만 모르는 팀들도 꽤 있는데 음악 방송을 보다 보면 다 너무 잘해요. 못하는 팀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그러니까 지금이 거의 상향평준화의 끝인 것 같아요. 케이팝을 입시라고 친하면 ‘상향평준화의 끝’, ‘만점자 속출’ 이런 거 있죠. 

 

- K-POP 가수들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상향됐다면 차별점이 있어야겠군요.

 

싸이 : 네. 그리고 본인들만의 세계관도 있어야 하고. 그런 치열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돋보이기 위한 모든 노력들이 집 밖에 나가서 박수를 받게 되는 이유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흥부네 집이 다산을 한 집인데 이 집 애들이 다 1등인 거예요. 1등 한다고 칭찬받는 분위기가 아니고 2등 하면 회초리 맞는 분위기인 거죠. 얘네들이 학교를 가면 다 짱들인 거예요. 그런 거 아닐까. 

 

그러니까 저의 이런 면이 저는 제가 국뽕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진짜 훌륭한 사람 많은 나라인 것 같아요. 각 나라의 국민들도 다 그런 마음으로 사시겠지만. 저는 그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굉장히 강한 우리나라 국민 중에 한 명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훌륭한 사람이 많은 나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참 그 치열하고 치밀한 업계에서 플레이어로서 20년 가까이 하면서 그래도 하나 참 안심하고 사는 건, 웬만하면 저 같은 비주얼의 가수는 데뷔를 잘 안 하기 때문에. 휴식기가 길어도 많이 불안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웃음)

 

- 그 시기에 구글 이사회 의장인 에릭 슈미트를 만난 것도 화제가 됐었는데요, 어떤 얘기를 나눴나요?

 

싸이 : 그냥 뭐 근황토크죠.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구글 거잖아요. 그분이 마침 한국 방문하셨을 때 구글코리아에서 잠깐 함께 시간을 갖는 그런 이벤트를 한 번 제안 주셨던 거죠.

 

- 해외 유수의 명문대학교에서 초청 받아 강연을 하기도 하셨는데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나요?

 

싸이 : 그런데 제 영어는 잘하시는 분들 같이 ‘파라락’ 가는 영어가 아니고요, 그냥 20세부터 23세까지 한 3, 4년 정도에 썼던, 회화가 다인 영어이기 때문에 바로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번역기 돌려서 나와야 되는 여어예요. 영어를 들으면 번역해서 알아듣고 한국말로 대답한 후에 번역기를 돌려서 입으로 나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제가 영어로 하는 모든 것들은 한국말을 거의 직역한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의역도 없고요. 제가 해외 진출하기 전에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끔 그렇게 학교들에서 와서 얘기를 해 달라는 경험이 좀 있었거든요. 그때 했던 얘기를 영어로 바꾼 버전이었던 것 같아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던 점이 해외 진출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걸로 보입니다. 

 

싸이 : 중요하죠. 중요하죠. BTS 친구들을 예를 든다면, 그 친구들도 커리어 중 가장 중요한 순간 중에 하나가 UN 연설이었던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외국어는 저희 직업뿐만 아니라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살면서 굉장히 중요한 순간에 무기처럼 쓸 수 있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처음 미국 갔을 때, 영어를 안 쓴 지 한 12년 만에 가서 갑자기 라디오 생방송을 들어갔거든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국어를 한 3년 정도 했던 외국인이 12년 만에 한국에 와서 갑자기 텐션이 되게 높은 라디오 생방송에 들어가면 한국말 하기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저도 마음 같아서는 너무너무 통역하시는 분하고 같이 가고 싶었었는데, 당시에 제가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구축해놨던 캐릭터 같은 것들을 고려해서 힘들고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더듬더듬이라도 직접 소통을 하는 느낌을 주면 훨씬 더 열광의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처음 갔을 때는 질문을 막 빠른 호흡으로 5, 6개씩 하는 분들도 많았었으니까 그냥 문장 끝만 계속 집중해서 들었던 것 같아요. ‘동문서답만 하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질문이 있으면 보통 문장 끝에 뭘 묻잖아요. 그걸로 대략 이런 질문이겠지 하면서, 묻는 데 물음표 바로 앞 단어만 계속 안 놓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하나 다행이었던 건 제가 진출했었을 당시 이미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12년째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 내용이 대동소이 하거든요. 방송국에서 하시는 질문이 내용이 거의 같기 때문에, 저 ‘새’로 데뷔했을 때 질문하고 거의 같았거든요. ‘그 춤은 어쩌다 추게 된 거냐’. 다 똑같았어요. ‘옷은 왜 그렇게...’, ‘이름은 왜 싸이야?’ 정말 ‘새’ 때 받았던 질문하고 거의 흡사했었기 때문에 그냥 미루어 짐작해서 찍어서 대답한 것들도 많았어요. 

 

- 당시 시청자들은 토크쇼에서 유창하게 출연자들과 농담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는데, 나름의 스트레스는 있었던 거군요.

 

싸이 : 아유, 그럼요. 누구나에게 외국어를 한다는 건 굉장히 스트레스죠. 그런데 외국어를 공개된 자리에서 더듬더듬이라도 하면 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해외 방송, 인터뷰 할 때 굉장히 집중해서 했던 것 같아요. ‘틀린 대답은 하지 말자, 적어도’ 하면서. 

 

- 해외 활동 중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어떤 게 있나요?

 

싸이 : 그러니까 쇼, 무대 다 통틀어서 제가 제일 강렬했던 건 딱 두 가지의 무대였던 것 같은데, 하나는 파리 에펠탑 앞에서 플래시몹을 했을 때. 그때는 정말 놀랐었고요. 그때 이미 해외에서 흥행이 굉장히 잘되고 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놀랐어요. 그러니까 왜 어떤 절경을 보면 내 눈으로 봐도 안 믿어지는 경험 있잖아요. 그러니까 파리에서 에펠탑 앞에 평일 대낮에 한 3만 명이 저를 보겠다고 있는 거죠. 

 

그리고는 MC 해머와 같이 출연했던 아메리칸 뮤직어워즈 시상식 때는 그 공연이 다 끝나고 장내에 계신 모두가 다 기립박수를 쳐주셨고. 우스갯소립니다마는 당시에 미국 음악산업 관계자들도 ‘우리가 그렇게 잊고 지냈던 MC 해머를 저 외국친구가 다시 복귀를 시키는구나’ 그 당시에 의견들도 있었거든요.

 

- 당시 에펠탑 앞 무대를 찍은 영상에서 ‘헉’하면서 놀라던 얼굴이 정말이었던 거군요.

 

싸이 : 네. 제가 연예인 생활을 오래 해서 다른 거는 표정을 잘 꾸미는데 놀라는 건 리얼이에요. (웃음)

 

- (웃음) 에펠탑 앞의 플래시몹을 기획한 건 누구였나요?

 

싸이 : 프랑스 라디오였어요. 그 방송국에서 제일 유명한, 우리나라로 따지면 ‘컬투쇼’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 플래시몹을 기획 했었죠. 번개로 공지를 딱 하고. 그 사람들도 되게 놀랐지만 저도 너무 놀랐거든요. 무지했기 때문에 ‘플래시몹’을 한다길래 ‘그런데 그건 왜 하는 건데?’이러면서 봤는데 많이 놀랐죠, 그때.

 

- 팝의 전설 마돈나를 무대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싸이 : 멋진 분이죠. 제가 봤던 사람 모두를 통틀어 눈빛이 1등이었던 것 같아요. 진짜. 그 분과 이렇게 지척에 있는 순간은 진짜 비현실적이게 되거든요. ‘대명사’ 같은 분이시잖아요. 되게 놀라운 장면이었죠. 무대 게스트로 참여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정말 펄쩍펄쩍 뛰었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아서. 

 

- ‘마돈나’라는 존재감 때문에 크게 보이지만 실제 키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하다는 얘기도 있던데... 

 

싸이 : 키가 뭐 중요한가요. 큰 분이지. 리허설 때도 그렇고 평상시에도 굉장히 높은 힐을 신고 있어서 그렇게 실제로 작다라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고. 그 당시 생각해 보면 그 무대 마지막 장면이 마돈나가 저한테 달려와 팍 업히면, 제가 잡고 한 바퀴 돌려 뉘인 상태로 무대를 마무리 짓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마돈나가 “내가 실키한 원피스를 입을 테니까 조심히 들어 달라”하시는데 떨어뜨리면 끝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사력을 다해서 미끄러운 실크 원피스를 버텼던 기억이 있어요. 

 

- 마돈나와의 공연은 케이팝을 대표하는 가수가 팝의 전설과 나란히 선 유의미한 무대였습니다. 이번에는 프로듀서로서의 싸이에게 질문드리는데요. 지금 K-POP은 세계 속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싸이 : 저변확대 중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느 음악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에 매니아층들이 생성이 되고 그게 팬덤으로 발전을 하고, 그리고 그 팬덤이 대중이라고 불리울 만큼 숫자가 커지는 경우들도 있고. 아니면 팬덤이 형성이 돼 있다가 대중적으로 저변확대가 되는 경우가 있고. 그건 가수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하죠.

 

그런데 또 바꿔 말하면, 그냥 우리끼리 시쳇말로 그런 말 하잖아요. ‘길 가는 사람 잡고 물어봐’ 이런 말 하잖아요. 길 가는 사람 붙잡고 BTS 물어보면 지금은 다 알죠. 그런데 길 가는 사람 물어보고 ‘케이팝 가수 누구 알아? 누구 알아?’ 했을 때 들쑥날쑥이겠고. 그런 전 세계적인 대중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져 가는 저변확대 과도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싸이 이후로 BTS도 블랙핑크도 K-POP 가수로서 놀라운 행보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요. 피네이션의 수장인 싸이가 K-POP의 저변을 더욱 넓힐 가수를 만들거란 대중의 기대도 있습니다.

 

싸이 : 대중분들이 그런 기대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사실은 저도 속으로 그런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를 하고 있고요. 그런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BTS도 그렇고 블랙핑크도 그렇고. 물론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지만. 

 

한 가지 뿌듯한 점은 제가 사실은 어느 시점부터 ‘그때 얘기 좀 해줘’에 대해서 전혀 응하지 않았었던 이유가, 저는 케이팝 혹은 그 모든 저의 음악산업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단발성이냐 지속성이 있느냐에 따라서 차등이 되는 것 같아서였거든요. 저는 엄밀히 말하면 한국에서는 감사하게도 지속성이 있었던 편이고, 20년 동안. 해외에서는 지속성이 갈수록 떨어졌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단발성이 강했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지금의 블랙핑크와 BTS가 저 때와 다른 점은 그들은 지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인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 지속성이라는 것은 당연히 팬덤에서 오겠고. 제가 체험학습을 했었기 때문에 저 또한 그렇게 지금 대단한 후배들처럼 지속성을 가지고 오래도록 무대에 설 수 있는 팀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겠죠. 

 

- 피네이션의 디렉터로서 어떤 아티스트를 제작 예정이신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싸이 : 이건 뭐 우스갯소리입니다마는, 제가 한참 강남스타일이 잘됐을 때 사람들이 ‘너 어쩌다 잘됐어?’ 하면 마치 대단한 기획물인 것처럼 말했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냥 그날 그날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게 저희 업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어느 그룹에 비내릴지 모른다’ 이런 것도 있고, 여러 가지 그런 말들이 있는데. 저는 엔터의 아름다움은 예측 불가인 점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교만하게 무언가를 내가 예측하거나 만들어 내거나하기는 힘들고, 그리고 나아가서 이 일은 진화하는 것 같아요. 저도 데뷔했을 때와 지금과 돌이켜 보면 지금도 여전히 20년째 제 노래가 조금씩 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계속 진화하는 생물이 하는 생물의 일이기 때문에 저희 회사에서 나오는 팀도 제가 어떠한 팀을 만들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거는 저는 좀 현재로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을 하고,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내가 겪어본 한도 내에서 여건과 여력이 허락한 한도 내에서 한번 저도 지속성이 있는 그런 케이팝 스타를 만들어보고 싶다. 

 

- K-POP 가수가 지속할 수 있는 그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싸이 : 기본적으로는 팬덤이겠고요. 그러니까 이게 노래가 뜨는 경우가 있고 사람이 뜨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해외 기준으로 보면 노래가 떴던 경우예요. 그리고 BTS는 사람이 뜨고 그다음에 노래가 뜬 거고. 그러니까 저도 분명히 이바지한 바가 있겠고 이번에 BTS나 블랙핑크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또 다른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좀 더 안쪽으로 침투한 느낌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제가 일정 부분 포문을 여는 한 사람이었다 정도였다면, 이 팀들이 본론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 케이팝의 ‘서론격’이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으나 분명 지금의 후발 주자들을 있게 만든 대단한 성과들을 만든 건 싸이입니다.

 

싸이 : 제가 K-POP에 이바지한 가장 큰 부분은 빌보드 순위에 유튜브가 반영되는 변화에 일조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되게 재밌는 건 강남스타일 때는 빌보드 순위에 유튜브가 반영이 안 됐었어요. 그리고 2등이었던 거니까 유튜브가 반영이 됐었으면 굉장히 오랜 기간 1등을 했을 거예요, 그 당시에. 그때는 빌보드 집계 방식에 SNS가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 빌보드에서 그 이듬해에 유튜브가 워낙에 인더스트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니, 라디오의 일부 포션을 빼고 유튜브를 집계에 넣겠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찾아보시면 나올 텐데 그 발표를 하는 빌보드 발 기사에 제 사진을 썼어요. ‘싸이의 케이스를 보니 바이럴이 음악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 유튜브를 일부 포함시키겠다’고 하면서.

 

왜 제 사진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덕분에 그 당시 미국 라디오에서 저를 엄청 미워했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러니까 그 후에 ‘젠틀맨’부터 저도 유튜브의 적용을 받았고, 그래서 ‘젠틀맨’이라는 노래가 5등을 할 수 있었던 거고. 그러니까 강남스타일에 대해서는 그 이상의, 한 사람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그 이상의 트로피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딱 하나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만약에 그때 유튜브가 반영이 됐으면 완전 다른 상황이었을 거다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뿌듯함도 있는 거죠. 어쨌건 그 집계방식이 바뀌는 과정에 제가 일조를 했고, 그 혜택을 저희 후배들이 보고 있으니까. 

 

- ‘강남스타일’이 나왔을 때 이미 K-POP이라는 단어는 존재했지요?

 

싸이 : 있었죠. 엄청 많았죠. 실제로 2012년에 벌어졌던 일을 오늘 대부분 얘기를 해서 사실은 좀 멋쩍은 부분이 있어요. 이게 어제 일도 아니고 그저께 일도 아니고 조금 시간이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항상. 그래서 저도 그게 멋쩍어서 사실 이런 내용의 인터뷰를 잘 응하지 않았었던 건데 앞으로 당분간 또 이렇게 그 당시를 추억하는 걸 공유할 기회는 흔치 않을 것 같네요.

 

분명했던 건 오늘 말하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강남스타일이라는 사건은 아, 진짜 큰 트로피였던 것 같아요. 박재상이라는 개인에게도. 과거에 젖어 살 필요는 전혀 없지만, 벽장에다 딱 진열해 보면 폼 나는 잘생긴 트로피였던 것 같아요.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 마지막으로, 싸이는 어떤 가수로 기억에 남고 싶으신지 알고 싶습니다.

 

싸이 : 저요? 유쾌했던 가수로 남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예전에 한 차례 이런 얘기 어딘가에서 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꽤 진지하게 매년 아름다운 은퇴를 꿈꾸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오래 할 줄도 몰랐고 제 인생계획표에 없었던 직업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뭐 딱히 대단히 다른 일이,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이야, 내가 그래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 비주얼에 이 정도면 과식도 이런 과식이 없네, 진짜’하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예를 들어서 누군가의 눈에 ‘저 사람이 예전 같지 않아’라고 보이는 시점이 오기 전에 그만두고 싶다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꽤 어렸을 때부터 그 생각이 있었어요. 있었는데 제가 강남스타일 담긴 6집 앨범 내기 전에 그 생각이 한 번 세게 왔었고 그만둘 뻔했었거든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농담으로 내가 뭐 해외 진출할 것도 아니고 내가 여기서 이렇게 해가지고 우리나라에서 막 큰 데서 콘서트 이렇게 꽉꽉꽉 채워서 하고 이러면 됐지. 이제 회사 만들고 후진양성을 좀 해야 되지 않나.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마는 어떤 가수로 남고 싶냐에 대한 대답이 여기서부터 나오는 건데. ‘새’로 등장을 했었잖아요, 제가. 그래서 ‘새’ 같은 노래로 퇴장을 하고 싶어서 만들었던 노래가 ‘강남스타일’이었어요. 그러니까 조금 속된 말로 얘기를 하면 ‘양스러운 노래로 왔다 양스러운 노래’로 가고 싶었거든요. 좀 날라리 같은 노래로. 그랬는데 그 노래가 그렇게 이상한 일이 벌어져서 지금까지도 가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는 거죠.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냐. 유쾌했던 가수. 시원하게 놀던 가수. 그리고 공연을 참 잘했던 가수. 

 

 

[사진출처=피네이션]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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