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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0
by 우정호

발라드란 ‘의도치 않게 이뤄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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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0-30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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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 한국 발라드 작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박주연 작사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폴킴 : 저는 지금까지 심지어 노래를 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대단한 가사를 쓴 분들께 충분히 감사를 표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발라드 가사를 쓴다는 것은 정말 깊은 슬픔을 담는 의미 있고 멋진 일인데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내고 계시다는 인지가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박주연 선배님께서 쓰신 가사들을 노래 없이 이렇게 쫙 읽은 적은 처음인 것 같은데 뭐랄까. 독백 같기도 하고. 이야기들이 이렇게 읽으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이렇게 읽으면 또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는 건데. 제가 느끼기에는 정확하게 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짜여져 있는 것 같고, 덤덤한 것 같은데 슬픔도 담겨 있고, 되게 쉬운 말인데 그 노래를 부르려면 본인이 떠올릴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아야 될 것 같고. 그래서 좀 뭐랄까. ‘어른 같다’고 해야할까요.

 

- ‘어른 같다’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폴킴 : 꼭 나이가 많아야지만 다 겪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 여러 가지를 다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흉내낼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흉내는 낼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 그 지점을 표현해내려면 겪은 것도 많아야 되고. 그리고 아마 자아성찰이나 평소에 가사를 쓰기위한 생각들을 굉장히 많이 하셨을 것 같고요. 그런데 사실 그게 되게 귀찮은 일이거든요, 제 생각에는. 이게 직업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만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직업이라고 해도 감정 소모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참 섬세하신 분이구나. 그리고 ‘어? 이렇게, 되게 좋네. 이렇게 따라가야겠다’ 이런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 오셨길래 이런 가사를 쓰셨지?’ 이런 것들이 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 박주연 작사 곡 중 본인에게 특별한 노래가 있나요? 

 

폴킴 : 며칠 전에 어머니랑 밥 먹다가 테이블에서 윤종신 선배님 노래 ‘오래전 그날’을 어머니가 흥얼거리셔서 ‘이 노래 뭐였더라?’하면서 찾아 들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랑 둘이 앉아서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는데 어머님은 그 노래 가사를 윤종신 선배님이 직접 쓰신 줄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막 제가 가사를 읽어보고 나서 “엄마, 그런데 정말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건 선배님이 쓴 글은 아닌 것 같아” (웃음) 했거든요. 이 곡은 향수를 일으키는 곡이고, 어떻게 보면 그냥 ‘교복’이라는 단어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그냥 한편의 그림이 이렇게 훅 지나간 것 같은 노래였죠. ‘아, 이거 되게 뭔가 운명적이다.’ (웃음) 뭐 이런 생각도 좀 들었고요. 

 

- 박주연 씨 가사와 다른 발라드 곡 가사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폴킴 : 확실히 시대적 차이는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냥 저의 오만함일 수도 있는데, ‘과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 가사를 있는 그대로, 이 의도한 대로 느낄 수 있을까? 환경이 너무 달라졌는데.’ 이런 생각도 좀 들었고. 저는 제 가사가 되게 굉장히 직설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편인데 선배님 글은 막 일부러 아름답게 꾸며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투박하지도 않고. 그냥 무심하게 툭 던진 것 같지도 않고. 뭐랄까. 화려하다고 할 수 없지만 고급진 것 같아요. 제 표현으로 묘사하자면. (웃음)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작사하는 게 직업이 되다 보면 곡에 어울리는 내용이라든지 혹은 뭔가 히트곡을 만들고 싶다라든지 여러 의미에서 글을 계속 써야만 하시는 거잖아요. 그냥 저처럼 그날 뭔가 쓸 만한 게 있으니까 쓰는 게 아니라 계속 쓰셨어야 될 텐데, 뭔가 억지스러움이 없다랄까요?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렇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얼마나 좋은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 ‘시대적 차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요즘 발라드 가사와의 차이를 느꼈나요?

 

폴킴 : 뭐... 그러니까 유행 같은 걸 말한다기보다는. 뭐랄까. 사람은 결국 똑같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 사람들이 나눴을 교감이랑 지금 이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교감은 다를 수 있잖아요, 환경이 다르니까. 그냥 거기에서 오는 그 배경이 옛날이라고 제가 느끼는 것뿐인 것 같아요. 그게 뭐 지금 와서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이렇다기보다는 그냥 꼭 마치 글만 읽었는데도 흑백영화 같은 느낌이랄까요? 

 

- 폴킴 씨도 싱어송라이터로서 작사를 하고 있는데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했나요?

 

폴킴 : 네, 그런데 막 그렇게 깊이 있게 뭔가 글을 혼자 썼다거나 그렇다고 독서를 막 많이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제 노래이기 때문에 제가 가사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과연 남들을 위해서 내가 글을 썼다면 그렇게 못 썼을 것 같거든요. 

 

- 어디에서 작사의 영감을 받나요?

 

폴킴 : 그냥 문득문득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안에서 끓어오르는... (웃음) 정확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기보다는 예를 들어서 늘 만나던 친구인데 오랜만에 만나서 똑같이 소주 한잔을 하고 있는데 그날 따라 그 친구가 더 반가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순간을 막 즐겨야 되는데 그런 순간이 혹시라도 오면 잠깐만 하고 뭔가 적는다든지 뭔가 녹음을 한다든지 이런 습관도 좀 있고요. 

 

- 싱어송라이터로서 작사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순간들이 있나요?

 

폴킴 :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면에서 좀 무뎠던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고, 항상 ‘폴킴 씨에게 음악이 뭐예요?’ 하면 너무 식상하지만 ‘제 삶이요’라고 말을 하면서도 가사가 그렇게 고마운지 몰랐던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가사를 읽고 찾아오는 어떤 느낌들. 되게 오랜만에 내가 이 가사를 읽고서, 이 노래를 듣고서 ‘이런 기분이 들었네’하는 감정들이 더 소중해졌고요.

 

또 1년 차이라도 작년에 들었던 가사와 또 똑같은 가사인데도 올해 들은 가사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면에서 저는 너무 몰랐던 것 같고.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니까 창피하기도 하고요. 사실 박주연 선배님 가사를 읽으면서 좀 창피했어요. ‘이렇게까지 내가 글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도 좀 들었고.

 

- 90년대 초 박주연 씨와 함께 작업을 많이 했던 분은 윤상 씨가 있습니다. 윤상 노래 중에도 와닿는 노래가 있었나요?

 

폴킴 : ‘이별의 그늘’. 사실 제가 윤상 선배님 노래 중 막 좋아했던 건 다른 노래들이었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막연하게 그 노래를 불렀던 이유는, 그렇게 해야지 멋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그게 어떤 부분인데요? 

 

폴킴 : 그냥 선배님이 하고 있는 모든 거. (웃음) 그냥 그런 뭐랄까. 그냥 막연하게 슬픔을 부른다기보다 그냥 되게 이모한 감성이랄까요? 되게 센치하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하고. 굉장히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남성적인 감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섬세한 그런 이야기들. 또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어요. ‘이별의 그늘’도 물론 박주연 작사가님이 쓰셨지만 이걸 혼자서 정해서 쓰셨을까. 아니면 윤상 선배님이 이런 것들을 원하셨을까. 윤상 선배님이 쓰셨다고 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글이라는 생각도 했거든요. 그래서 또 그런 거 보면 분명히 본인이 다 느끼고 가지고 있던 걸로 쓰셨을 텐데 참... 가수에 따라 그런 것들을 참 잘 맞추실 수도 있구나, 뭐 이런 생각도 좀 들었고. 

 

- 90년대 한국 발라드는 폴킴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폴킴 : 90년대 발라드. 저는 이렇게 가끔씩 들으면 ‘와, 진짜 세련됐다’하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또 저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들으면 ‘아, 올드해’ 막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고. 모든 음악이 그렇듯 그냥 그때 그 음악을 접했을 때를 생각나게 해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들었던 음악들이고 그냥 괜히 그때 뭔가 괜히 학교 가던 길이 떠오를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버스 타고 집에 오면서 세 정거장 일찍 내려가지고 집에 뭔가 걸어오는 것 같은 것도 막 지금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90년대 한국 발라드는 추억인 것 같아요. 지금은 헤어진 첫사랑 그 친구도 생각나고. (웃음) 뭔가 같이 들었던 사람들. 그 음악을 같이 불렀던 사람들도 생각나고.  

 

- 폴킴의 히트곡 ‘모든 날, 모든 순간’도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OST인데요. 굉장히 많은 드라마 OST 장르가 발라드라는 통계도 있는데 그런 왜 그럴까요?

이다.

 

폴킴 : 가장 상업적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웃음) 왜냐하면 보통 대부분의 영상들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고요. 굉장히 로맨틱하거나 아련하거나 그리워하거나 이런 장면들이 많잖아요. 그런 장면들에 가장 어울릴 수밖에 없는 음악이 발라드이기도 하고 또 뭔가 그런 영상에서 가사가 너무 잘 들려서도 안 되고 또 안 들려서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역할을 굉장히 충실히 해 주는 게 발라드가 아닌가. 

 

- 한국형 발라드가 해외의 발라드 음악과 특별히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폴킴 : 정서가 다른 것 같아요. 담고자 하는 이야기가. 물론 한국형 발라드가 아닌 발라드 노래가 뭐 진실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예를 들어 제가 가장 작업을 같이 많이 하는 분이 저희 회사 대표님이거든요. 도니제이라는 작곡가이신데, 그분은 외국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오셔서 팝을 굉장히 추구하시는 분이예요. 힙합을 좋아하시고요. 

 

그런데 저는 인디 음악도 좋아하고 이런 잔잔한 음악들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던 사람인데 같이 작업을 하다 보면 아주 정확히 표현 할 수는 없지만 그 두세 개밖에 안 되는 멜로디부터 해서 항상 대립이 있어요, 형이 원하는 어떤 그런, 무드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꼭 한국적이지 않은 것을 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거든요. 아, 그래서 형이 원하는 것들을 내가 원하지 않았고 또 내가 원하는 걸 형이 원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구나.

 

예를 들어서 이런 것 같아요.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노래로 담는데 뭐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뭐 이런 노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노래 너무 좋아하거든요. 노래 너무 잘하시고 가사도 좋고. 그러니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이 가사를 들었을 때 그리고 이 글을 이 사람이 불렀을 때 떠오르는 장면이 한국이 아니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그냥 번역해서 놓으면 외국 분들도 그 가사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교감할 수도 있지만 한국형 발라드의 가사나 무드는 번역을 할 수 없는... 그러니까 그냥 직역은 할 수 있겠지만 그걸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그런 거 아닐까요? 제가 말해 놓고도 너무 잘한 것 같은데. (웃음) 

 

- 마지막으로, 폴킴 씨한테 발라드란 무엇인가요? 

 

폴킴 : 발라드란... 인생이요. (웃음) 그냥 사는 건 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닌데 발라드 역시 제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저는 제 노래가 발라드라고 생각을 못 했고, 이제 이소라 선배님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잔잔한 음악과 아픈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거든요. 

 

처음 제가 들어갔던 회사에서는 그래서 싫어했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사실 솔로 가수도 잘 나오지 않을 때였고 밝고 신나고 경쾌한 트렌디한 음악을 하지 않으면 가수를 할 수 없다, 유명해질 수 없다, 이런 생각들을 그분들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 그러고 나서 나중에는 밝은 곡들도 하고 싶어서 노력을 했지만 저를 알릴 수 있게 해 준 곡들이 결국에는 발라드 곡들이었고 그것도 제가 원했거나 노렸거나 계획을 했거나 이런 것들이 아니었죠. 그리고 지금 저의 이 순간들도 꿈꿨지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어떤 모습들이기도 하고. 그냥 뭔가 잡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잡히지도 않는. (웃음) 그런 것 같아요. 

 

 

[사진출처=와이예스엔터테인먼트]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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