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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2
by 우정호

‘임창정식 발라드’에 마음 저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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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1-22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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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처진 눈썹의 천진한 미소만으로 코미디와 신파를 만드는 배우, 지나간 사랑의 흔적을 매만지는 남성들 가슴 깊숙이 ‘공감’이라는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는 가수. 임창정에게 세간은 ‘멀티 엔터테이너’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뮤지션으로서, 그의 멀티플레이어 기질은 심화됐다. 임창정은 유파가 없는 자신만의 보컬 스타일을 창조해낸 발라드 가수이자, 댄스곡으로 데뷔한 댄스 가수이자, 직설적인 가사와 절절한 멜로디로 감동을 정조준하는 싱어송라이터다.

 

  

- 가수, 배우, 예능인, 프로듀서까지 다양한 커리어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중 가수 데뷔는 언제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임창정 : 1995년, 댄스곡 ‘거짓 같은 진실’로 데뷔했어요. 그 앨범의 ‘이미 나에게로’라는 곡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죠. 댄스곡으로 데뷔를 했는데 발라드가 알려져서 발라드 가수가 됐어요. 그래서 요즘도 가끔 ‘문을 여시오’ 같은 코믹 댄스, ‘늑대와 함께 춤을’ 같은 그런 댄스곡을 하는 거죠. 

 

- 어린 시절 영향받은 뮤지션은 누구였나요?

 

임창정 : 조용필. 그 외에 다른 아티스트는 제가 음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거나, 음악적 영향을 줬다거나 한 적이 아예 하나도 없었어요. 어렸을 때 제가 노래를 잘하는 지도 몰랐지만, 음악을 할 수 있게 만든, 제일 많이 영감을 주고 그랬던 분이 조용필 선배님이셔요.

 

- 조용필 씨의 어떤 면모들이 그처럼 큰 영향을 받도록 만들었나요?

 

임창정 :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용필 선배님 활동 초창기부터 봐왔어요. 너무 어렸으니까 음악은 솔직히 잘 몰랐어요. 근데 조용필 노래들은 대중적인 노래들이잖아요. 우리의 애환과 정서들을 대변할 수 있는. 어린 저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건 어마어마한 대중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조용필 노래를 들으면서 웃고 울고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했냐면 80년대 초반 연말 가요대상 시상식에서 조용필 선배님께서 딱 한 번 가수왕이 못 되신 적이 있어요. 그때 며칠을 울었는지 몰라요. 다른 사람이 가수왕이 됐어요. 이용 선배님이었어요. 그래서 되게 미워했어요. 그런데 제가 97년도에 이용 선배님 역할이 돼서 미움을 당하게 됐죠. HOT 팬들한테 (웃음)

 

- 가수와 연기자 중 어느 쪽을 먼저 꿈꿨나요?

 

임창정 : 초등학교 3, 4학년쯤 김범룡 선배님의 ‘바람 바람 바람’을 오락 시간에 한 번 불러봤는데, 사람들이, 선생님들이 놀라더라고요. 노래 잘한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누구나 저는 다 그렇게 노래를 하는 줄 알았던 거죠. 그렇다고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막 이주일 흉내 내고 이런 거 좋아해서 개그맨 되는 줄 알았어요. 

 

중학교 땐, 교회 다니면서 연극 같은 것도 짜서 제가 연출도 하고, 문학의 밤 같은 데서 공연도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냥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 가수가 돼야겠다거나 작곡가가 돼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 처음부터 음악을 꿈꾸신 게 아니었다면 음악 말고 다른 분야의 롤 모델도 있으셨나요?

 

임창정 : 지금 바로 생각나지 않는 거 보니까 그런 롤 모델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막연하게 영화배우, 연기자, 희극인 같은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고. 심형래처럼 되고 싶었고, 그때 당시에 유명했던 개그맨들처럼 되고 싶었고. 

 

- 그렇다면, 가수 커리어 말고 연예인으로서 공식 데뷔는 언제 하신 건가요?

 

임창정 : 연예인 공식 데뷔는 89년도. 그해에 촬영 시작해서 90년도인가 개봉한 <남부군>이라는 영화에서 연기자로 처음 출발했고요. 그 이후에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오디션도 보고 여기저기 작은 역할로 나오다가 92년도에 뮤지컬을 두 편 정도 하게 됐어요. <에리카>, <동숭동 연가>라는 작품들. 그런데, 그 작품을 보러 오셨던 어떤 기획자님께서 저한테 연습실을 내주셨어요. 그 기획사에서 연습을 하고, 95년도에 1집 앨범을 발매하게 된 거죠. 댄스 가수로. 

 

- 기획사에서 댄스 가수로서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신 건가요?

 

임창정 : 아니요. 노래만 연습했어요. 춤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때 당시에는 그냥 문나이트 막 이런 데 돌아다니면서...

 

- 문나이트는 그 당시 댄스 가수들의 등용문이나 다름없었군요.

 

임창정 : 네, 거길 장기적으로 다니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95년도 앨범 나오기 전에 제가 댄스 음악을 하니까 춤 잘 추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춤을 막 같이 추지는 못하고, 워낙 기량 차이가 났거든요. 거기서 소개받아서 댄스팀이랑 결부가 돼서 제 첫 번째 타이틀곡 ‘거짓 같은 진실’을 하게 됐어요. 그때 제 안무 맡으신 단장님이 ‘콜라’라는 그룹 멤버였던 영완이 형(김영완)이셨고. 그 안무팀에서 그때 맡았던 가장 히트하고 있던 곡이 솔리드 노래였어요. ‘이 밤의 끝을 잡고’ 후속곡. ‘늦어버린 아침에 나 거리에서~’ 그 노래(솔리드-나만의 친구)가 제일 유명할 때였어요. 

 

- 데뷔 전 기획사에서 보컬 트레이닝도 받으셨나요?

 

임창정 : 아니요. 아무것도 없었죠. 그냥 폭포에 가서 목청 트인다... 거짓말 보태서 그 정도 수준. 그래야 득음하는 줄 알았을 시기였다고 보시면 돼요.

 

- 그냥 혼자 연습하는 거잖아요.

 

임창정 : 네. 혼자(웃음) 그렇게 혼자 연습하다가 사장님이 이렇게 보고. ‘오, 열심히 하네. 쟤’ 그러다가 뭐 기회 되면 데뷔하고 그러던 때였던 것 같아요.

 

- 예전엔 트레이닝 시스템이라는 자체가 거의 없었군요. 요즘은 가수가 되려면 기획사에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거치잖아요.

 

임창정 : 그래서 요즘 애들이 더 잘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수뿐만 아니라 요즘 애들이 더 빠르고 더 잘해요. 자, 여자 골프를 예를 들어 볼게요. 옛날에는 우리나라 여자 골프 잘 못 쳤어요. 박세리 선수 나온 다음에 박세리 키즈가 나오면서 ‘어? 우리도 되네’ 하면서 인프라가 많이 늘어나고,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키니까 더 잘하잖아요. 실력만 가지고 보면 박세리 시대나 지금이나 아마 비슷할 거예요. 그런데 그 자질을 가진 친구들이 체계적으로 하니까 조금 더 빨리 박세리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박세리 같은 커리어에는 못 미칠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다 빨리 발전하고 하잖아요. 

 

요즘 아이돌이나 후배님들도 타고난 센스들이 다 있는데 그걸 더 체계화시키고 분석해서 ‘너는 이게 더 잘 어울려’ 안내해 주고. 그러니까 더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퍼포먼스들이 더 훌륭하니까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더 멋있어 보이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 노래 부를 때 굉장히 넓은 음역대를 소화하시는데, 연습의 결과라기보단 타고난 부분이 크다고 봐야겠지요?

 

임창정 :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목에서 내는 것과 두성을 남들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것 같아요. 노래를 하는 이 근육이 발달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축구도 마찬가지고, 야구도 마찬가지고, 자꾸 훈련을 하면 거기에 특화되듯이 선천적인 어떤 게 있어야 박찬호도 되는 거라고 봐야죠.

 

- 발성 체계를 이해하는 이해력도 타고난다는 말씀이죠?

 

임창정 : 그렇죠. 그게 센스인 거죠, 센스. ’아!‘ 내 목이 이렇게 돼서 이렇게 나오는구나. 이런 식으로 하는 거보다 ’아~,‘ 이렇게 했더니 더 쉽고 ’아‘ 이런 식으로 했더니 이런 목소리가 나는구나. 류현진이 공을 이렇게 던졌더니, 이렇게 들어가더라. 그게 센스인 거죠. 그래서 ’참 센스 있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축구 선수 보고도 ’어? 정말 센스 있다‘고 하고. 

 

- 1집 타이틀곡 ‘이미 나에게로’를 작사, 작곡하셨지요? 작곡은 어떻게 익히셨나요?

 

임창정 : 네, ‘이미 나에게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든 곡이에요. 작곡은 누가 따로 가르쳐 준 건 아니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남부군>이라는 영화에 캐스팅이 돼서 촬영하고 출연료를 받았어요. 50만 원을. 그걸 학원에서 50% 떼어가고, 이십삼만 얼마를 세금 제하고 받아서 아빠를 갖다 드렸더니 아버지가 거기 보태서 키보드를 한 대 사주셨어요. 뭐 리듬 누르면, 무슨 보사노바에서부터 쫙 나와요, 리듬 눌러놓고 코드를 딱 치면 그냥 노래방 반주 같은 그런 느낌이 되는 거죠. 그 키보드를 사주시고 나서 겨울방학 내내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어요. 그거 치느라고. 그때 만든 노래예요. 

 

코드 같은 건 어떻게 알았냐면 그 기타 책 있잖아요, 포크송 책. 거기 기타 그림이 있잖아요. ‘C, D, E, F, G, A, B, C’ 뭐 이렇게 있잖아요. 그럼 그 C를 쳐 봐요. ‘도 미 솔~’ 오, 이게 코드가 C라는 거구나. 기타를 칠 줄 알았으니까 키보드에 있는 같은 음을 눌러봤어요. ‘도 미 솔~’. 그전에 기타의 C가 계이름이 ‘도 미 솔’인지 몰랐어요. 이렇게 대입해서 눌러봤더니 ‘도 미 솔~’, 그리고 순서대로 D, E, F, G 코드를 다 찾아냈어요. 세븐 코드도 다 그렇게 찾아냈어요. ‘아 이게 이렇게 호환이 되는 거구나’ 생각하고 코드 눌러가면서 제가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코드에 계속 눌러본 거예요, 뭐가 어울리나, 전부. 그렇게 찾아서 만든 첫 번째 곡이 ‘이미 나에게로’. 초안이 됐던 거죠. 그걸 나중에 좀 세련되게 바꿨고.

 

- 임창정은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돼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싱어송라이터’로 확고히 자각하고 계셨던 게 맞나요?

 

임창정 : 그렇죠. 항상. 그렇지만 처음부터 제가 쓴 곡으로만 활동할 수는 없었죠. 왜냐하면 히트곡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서 활동해야 안정적으로 음반이 팔리니까. 회사 입장에선 돈이 걸린 문제니까. 그래서 싱어송라이터라는 이미지를 먼저 내세울 수 있었던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악기를 특별히 잘 다루는 것도 아니었고. 춤추면서 먼저 나왔고, 그러다 갑자기 ‘이미 나에게로’가 길거리에서 떠서 그냥 서서 발라드를 부르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발라드 가수’가 돼버린 상황이었어요. 

 

곡은 항상 쓰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도 잘 때 전화기를 항상 머리맡에다 두고 녹음 항상 할 수 있게끔 해요. 그래서 잠자다 멜로디 떠오르면 깨서 꼭 녹음하고 다시 자고. 새벽쯤에도 항상... 아침에도 일어날 때쯤 멜로디가 떠오르는 편이라 항상 그렇게 멜로디를 체크하고 녹음하고. 가사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제 전화기에 순간순간 생각나는 거 다 메모해 둬요. 노래 제목이라든지 나중에 영화 제작하면 제목으로 갈 것들. 전부 메모해 둬요. 글도 다 메모해 놓고.

 

- 창작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나요?

 

임창정 : 삶의 경험이죠. 간접 경험. 친구나 주변 사람이 겪은 일들, 내가 겪은 일들, 보편적으로 보니까 비슷비슷하더라고요. 거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내가 상상도 하고. 여러 가지 좀 혼합돼서 나오는 것 같아요.

 

- 직설적인 가사로 전달되는 ‘임창정 표 발라드’는 그 뚜렷한 특성으로 하나의 장르처럼 구분될 정도입니다. 이러한 곡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가요?

 

임창정 : ‘소주 한 잔’이라는 노래 때문에 그렇게 본격적으로 네이밍이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김형석 형님의 프로듀싱을 받으면서 그 당시 최고 작사가, 작곡가님들과 일하면서 다 남의 노래를 불렀거든요. 초창기 3집, 4집, 5집에서 특히. 그렇지만 그 앨범에도 제가 작곡, 작사한 노래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10집 정도부터 제 노래들 비중이 커졌어요. ‘소주 한 잔’이라는 노래 멜로디를 만나게 됐을 때, 유명한 작사가님한테 작사를 맡겼어요. 그래서 “오늘 녹음인데 가사 좀 보내주세요” 했더니 “어? 그거 언제 언제까지 아닌가요?” 그러시더라고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었는데 그게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돼 갖고... 

 

저는 이제 녹음 끝내고 바로 해외 촬영을 나가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스케줄 때문에 그날 꼭 녹음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래서, ‘그럼 일단 녹음실로 가자’그러면서 차 안에서 그 가사를 제가 썼어요. 그게 그 짧은 시간에 차 안에서 가능했던 게, 아까 말씀하신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돌려치지 않고 미사여구 쓰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직설적으로 써 내려갔던 거. 그때 남자들은 술을 한잔 먹으면 전화기가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에, 그 자체를 잃어버린 사랑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짓들을 하고 있더라는 말이죠. 그래서 그 모양을,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게 된 거예요. 

 

작곡가님이 보시더니 발라드 가사에 ‘여보세요, 나야’ 이러고 있는 게 좀 이상한 거죠. ‘그대 어디 있소~’ 원래 이런 상황이어야 되는데, ‘여보세요, 나야~’ 안 어울리는 거 갖고, 제목도 ‘소주 한 잔’ 이렇게 해 갖고 가니까... 그랬더니 ‘일단 올려나 볼게요’ 하시더라고요. 그런데도 ‘별로다’ 그러셨는데, 저는 괜찮았거든요. 그래서 그 가사 녹음한 상태로 여러 사람들한테 모니터 해봤는데 반신반의했어요. 그런 느낌인 거죠. 결과론. 그 노래가 잘 됐으니 지금 그 가사가 좋은 거죠. 

 

제가 쓴 다른 제목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저지른 사랑’ 제목 처음에 보고는 제 주변 모든 사람들이 ‘너무 트로트틱하다’, ‘발라드인데 너무 올드하다’ 그랬지만 결과론적으로 지금 보면 참 잘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고. 사실, 진정성과 그 당시의 어떤 기류들을 잘 뽑아낼 수 있고, 그걸 전달할 수 있다면 제목은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임창정틱’하고 ‘임창정스럽다’고 얘기하는 것 같고요. 

 

- 결과론적 얘기지만, 소주 한잔 가사를 처음 쓰셨을 때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분명 있으셨던 거지요?

 

임창정 : 네. 항상 그런 느낌은 있는데요. 반은 성공하고 반은 성공하지 못해요. (웃음) 그런데 성공한 것만 여러분들께서 들으시니까 다 성공한 것 같은 거죠. (미소) ‘이미 나에게로’만 해도 그 당시에 그렇게 속사포 같은 발라드가 없었어요.

 

- 3집 타이틀곡 ‘그때 또다시’가 히트하면서 대중들은 임창정을 ‘발라드 가수’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임창정 : 처음 멜로디를 들었을 때, ‘나는 이제 가수로서 성공을 하는구나’ 했어요. 그 곡이 나오기 전 1, 2집을 발표했는데, 2집은 좀 안 좋았어요. 그런데 이후에 예능하고, 영화 하면서 여기저기서 사랑을 좀 많이 받았고, 3집도 그 시기에 나왔거든요. 형석이 형이 피아노 치면서 딱 들려줬을 때, 그 멜로디를 듣고 ‘아, 나는 이제 발라더로서,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탁 들었어요. 멜로디 듣고 제가 불렀던 것보다 형석이 형이 피아노 앞에서 이렇게 흥얼흥얼 거렸을 때 그 감동, 그 소름이 더 컸어요. 그래서 제가 가사를 쓰고 불러서 녹음을 했어요. 

 

그리고 그 앨범으로 완전히 활동하기 전에 이문세 형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가서 인터뷰를 한 거예요. 그러면서 ‘다음 주에 나올 노래입니다’하면서 그 노래를 틀었어요. 그리고 전국적으로 방송을 탔을 거 아니에요. 모니터 결과가 ‘가사가 너무 어렵다’, ‘멜로디에 비해 가사가 안 온다’ 그러더라고요. 그땐 이미 CD랑 테이프만 안 찍었지 이미 방송을 탔어요. 못 고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당시 우리 사장님께서 과감히 “창정아, 네 가사도 좋은데, 바꾸자”, “방송 나간 거 어떻게 합니까?”, “다음 주에 우리가 TV 방송하니까 라디오 한 번은 괜찮을 거다” 그러고 박주연 씨한테 맡겼어요. 그런데 저는 불만이 많았어요. 써도 될 것 같은데. 

 

그런데 며칠 만에 박주연 씨 가사가 나와서 그걸 읽어 보고 느꼈어요. 이게 프로구나. ’당대의‘라는 수식어를 받을 수 있는 명인이구나. 김형석, 박주연 조합이에요. 안 되는 게 더 이상하죠. 그냥 제대로 걸렸죠. 그다음에 형석이 형의 사심이 담긴 ’결혼해 줘‘가 히트하고, 발라드 가수로 이미지가 계속 이어지고, 그렇지만 댄스 가수로 데뷔를 했으니까 후속곡으로 ’늑대와 함께 춤을‘ 하고....

 

- 박주연 작사가의 ’그때 또다시‘ 가사를 처음 접했을 때, 직접 쓴 가사와 어떻게 다르다고 느꼈나요? 

 

임창정 : 5만 배가 더 좋았어요, 제가 쓴 가사보다. 박주연 씨 가사랑 비교해서 보니까 제 가사는 진짜 어렵더라고요. 좀 직설적이고, 시적이지 않고... 그 이후 저도 영향을 좀 받고 중화를 시켰어요. 요즘 제 가사 보면 옛날보다는 조금 더 시적이고, 암시적이에요. 

 

- 그렇다면 ’소주 한 잔‘ 시절 가사들도 지금 다시 보시면 좀 더 직설적이라고 느끼나요? 

 

임창정 : 네, 그렇죠. 지금은 ’아니, 이렇게 힘들게 살았다고, 세상을?‘ 이렇게 느끼는 거죠. 내가 그때 가졌던 감정들이 가사에 너무 직설적으로 그대로 들어있으니까. 제가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 가사에 되게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노래를 다시 들으면 아, 그 시절에 이렇게 방황했구나. 진짜 힘들게 살았구나. 그걸 한 번 삼키지 못하고 이렇게 직설적으로 토해냈구나. 이렇게 아프게 살았구나. 그게 다 느껴져요. 그래서 요즘에 가사 쓰면서 드는 생각이 10년 있다 이 가사를 다시 보면 내 아픔을 눈치 못 채게 써야 되겠다는 생각은 해요.

 

- 발라드 곡과 댄스 곡을 소화하시는 데 있어 난이도 차이가 있나요?

 

임창정 : 네. 발라드가 더 어려워요. 많이 어려워요. (한숨) 5년이 안 된 일인데, 음악방송 나가서 두 곡 라이브를 하는데요. 첫 번째 곡을 라이브로 곧잘 했어요. 두 번째 곡 하는데 그게 목이 안 풀렸는지 정말 그 한 3~4분이 한 30시간처럼 느껴졌어요. 가수를 몇십 년을 했는데도, 무대를 정말 수천 번을 섰는데, 만 번 이상 섰을 건데도 그 3분이 목소리의 떨림 하나까지 다 느껴지면서... 그래서 결국 방청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번 다시 불렀어요. 노래를 너무 못해 갖고. 

 

발라더의 퍼포먼스는 순간적이고, 고급 져야 되고, 자연스러워야 돼요. 발라드는 그 3분을 부르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의 10%라도 표현해 내기가 힘든 것 같아요. 댄스곡의 경우 발라드랑 뭐 많이 차이 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차이가 좀 있어요. 일단 나 혼자 추는 게 아니고 우리 안무가들하고 같이 맞추잖아요. 그러니까 시선도 좀 분산이 되고, 나한테만 시선이 집중된다고 해도 동작 자체가 많으니까 그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못한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거죠. 동작을 좀 잘못해도 ’아, 저렇게 일부러 하는 건가 보다‘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노래는 못하고 잘하고가 바로 나오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 다른 건 NG 내고 다시 찍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노래는... 녹음할 때도 요즘엔 그나마 나은 거예요. 나중에 기계로 후반 작업들 하잖아요. 옛날에는 그냥 날 거예요. 날 거. 어느 정도냐면 지금은 두 번을 보완하거든요. 녹음할 때 한 번 끝나고 한 번. 녹음할 때 일단 튜닝을 다 하고, 끊어서 부르고. 녹음 끝나면 기계로 다 만지고 어느 정도 되게 잘하는 것처럼 만들고. 그게 음원으로 나오죠. 

 

그런데 옛날에는 녹음할 때 튜닝 없어요. 그래서 노래를 한 30번을 다시 해야 돼요. (노래) ’니가 없는데도~ 니가 없는데도~‘  하면 “다시.” (노래) ’니가 없는데도~ 니가 없는데도~‘ “아, 다시.” 이걸 계속하는 거예요. 지금은 (노래) ’니가 없는데도~‘ 그러면 “어? 이거 느낌 좋은데? 피치 올리고 계이름 맞춰.”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옛날에는 느낌도 좋아야 돼고 음역도 딱 정확하게 맞아야 돼요. 발음 틀리고 그런 거 없어요. 

 

제 노래 중에 ’러브 어페어‘라는 곡이 있어요. 그때는 릴 테이프로 녹음을 했기 때문에 여러 번 녹음한 거 중에 하나 고르는 게 아니라 이거 녹음했으면 했던 거 지우면서 엎어서 가는 거였거든요. 어떤 부분이 좋아도 다른 부분이 아니면 날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싸비(후렴구) 파트 부르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는데도 지우자고 그러니... (한숨) 잘한 거 같은데도 어디 조금 느낌 안 좋으면 다시 지우고. 

 

그걸 계속하다 형석이 형이 “이거 느낌 좋으니까 그냥 가자” 그래갖고. 2절 싸비(후렴구)에 보면 클라이맥스 부분에 (노래) ’자꾸만 흐르는 나의 눈물이… 우리 단 한 번~‘ 이 부분이 플랫이 돼서 들어가 있어요. (노래) ’단 한 번~‘ 이 음이 아니고 (노래) ’버언~~‘ 이런 식으로. 그때는 그런 방식으로 녹음하니까 너무 어려웠던 거예요. 그 라이브 무대도. 고칠 수가 없으니까, 날로 나가는 거니까 너무 어렵죠.  

 

- 라이브 무대, 특히 90년대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은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임창정 : 맞아요. 가사도 틀리고. 저는 가사 많이 틀렸어요. 지금이야 프롬프트 시스템이 잘 돼 있지만. 프롬프트가 있어도 틀려요, 저는. 감정이입하고 부르다 보면 저쪽에서 프롬프트를 안 넘겨요. 가사 생각 안 나는데. 그러면 그쪽에서 보고 돌리라고. (웃음) 저는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지금도 라이브를 하고 있으니까 그 무대 기술의 발전을 다 봐왔어요. 

 

- 가수로서 아날로그부터 디지털까지 다 겪어보신 거군요. 

 

임창정 : 네, 그러니까 레코드에서부터 테이프, CD, MP3, 지금까지 왔죠. 뭐가 나올 때마다 그게 영원할 줄 알았어요. CD가 영원할 줄 알았고. 

 

- ’임창정 발라드‘는 부르기 어려운 노래가 많기도 합니다. 의도된 건가요?

 

임창정 : 어... 모르겠어요. 그런 게 하고 싶은가 봐요. ’쉽게 써야지‘ 하다가도, ’이렇게 쉽게 쓰면 듣는 분이 안 울 텐데. 여기서 이 음역대로 가 줘야 그 사람의 가슴을 후벼팔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을 내 음악 속으로 데리고 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부르기 힘들지만 녹음실에서는 되니까. 녹음실에서는 끊어서 부르니까. 힘이 받쳐주니까 그렇게 하는 거예요. 라이브 할 때 부를 생각 안 하고. (웃음) 그렇게 나온 노래가 ’내가 저지른 사랑‘이에요. 라이브 안 할 생각으로 한 거예요. (웃음)

 

- 녹음 기술이 진보하면서 멜로디를 더 과감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임창정 : 아니, 그렇지 않아요. 저는 녹음할 때 최대한 많이 만지지 않고 내 목소리를 최대한 담으려고 해요. 정말 정말 부득이하게 ’여기는 좀 고쳐야 돼, 이건 느낌이 좋으니까.‘ 그 정도만. 웬만하면 내가 현장에서 녹음한 목소리 그대로 들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녹음 시간이 좀 길어요. 이게 각자 녹음 스타일이 있는데, 저는 통으로 가는 거 반, 또 끊어서 가는 거 반.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웬만하면 저는 여러 단락을 한 번에 부르는 게 조금 더 느낌이 좋더라고요. 흐름이라는 게 있으니까.

 

- 뮤지션으로서 댄스와 발라드 중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런 질문은 너무 유치하고요. 어느 쪽이 더 즐거우세요? 

 

임창정 : 그건 다 즐거워요. ’연기와 노래 중 어떤 게 좋으세요?‘라는 질문을 5만 번 받았는데, 다 똑같은 대답만 했어요. 다 즐거워요. 댄스 하다가 발라드 하고 싶고, 발라드 하다가 또 춤추고 싶고 막 그래요. 처음에 저한테 하셨던 질문이랑 좀 통하는 부분인데, 가수를 처음부터 하려고 했나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나요? 그게 아니라 저는 그냥 연예인이 되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뭐 희극인도 되고 싶었고. 그냥 저~기 오는 연예인이랑 사담 나누면서 밥 먹을 수 있는 게 제 꿈이었어요. 그럼 저도 훌륭한 연예인이 됐다는 얘기니까. 조용필 선배님과 사담 나누는 게 꿈이었던 거죠.

 

- 실제로 조용필 씨와 사담을 나눠 보셨어요? 

 

임창정 : 네. 음악회에서 만나 가지고. 창피해서 많은 얘기는 못 했지만. (웃음) 

 

- ’발라드 가수는 4분 동안 연기하고 내려오는 직업‘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연기 커리어가 실제로 발라드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나요?

 

임창정 : 연기가요? 뭐 그렇게 큰 연계성은 없는 것 같고, 다른 영역인 것 같기는 해요. 집중력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선 비슷하겠죠. 연기도 집중을 해야 되는 거고요. 그래야 눈물을 흘릴 수가 있는 거고. 노래는 더 집중을 해야 가사를 안 틀릴 수가 있어요. (웃음) 

 

- 가장 ’임창정스러운‘ 노래는 어떤 곡이라고 생각하나요?

 

임창정 : ’소주 한 잔‘이죠. 밖에서 봤을 때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안에서 봤을 때는 ’소주 한 잔‘이 2등이에요. 1등은 ’내가 저지른 사랑‘. 저를 제일 잘 표현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전에 조금 모자랐던 부분, 과했던 부분들 다 정리를 해서 음악적으로도 조금 보완이 되고 잘 다듬어진 노래. ’또다시 사랑‘, ’내가 저지른 사랑‘.

 

- ’내가 저지른 사랑‘과 ’또다시 사랑‘은 30대 남자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발라드 곡인데 30대에 작곡해서 더 와닿게 만든 거겠지요?

 

임창정 : 아니요. 40대 때 썼어요. 44살 때 썼죠. 45살 때도. (웃음) 

 

- (웃음) ’임창정 보컬 스타일‘은 다른 가수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임창정 : 저는 누구에게 배우거나 그렇게 된 건 아니고, 타고난 건 하나 있어요. 제가 성대가 강해요. 목이 쉬어도 노래가 나와요. 콘서트 때 보면 말할 때 분명히 목이 쉬어있거든요. 근데 고음은 또 나와요. 그게 가장 큰 강점인 것 같아요. 부모님께 항상 감사해요, 그래서. 트레이닝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목이, 노래 부르는 근육이 그렇게 타고난 거잖아요. 그래서 노래를 강하게 부를 수 있어요. 강약 조절을 많이 신경 안 쓰고 불러도 돼요, 저는.

 

- 발라드라는 장르로 묶이지만 사실 발라드 가수들은 서로 다른 결들을 가졌는데요. 김형석 씨는 임창정식 발라드를 두고 ’날 발라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임창정 : 네, 저는 처음 ’이미 나에게로‘로 나왔을 때 탁재훈 선배님이랑 같이 항상 묶어서 거기는 일본풍, 저는 중국풍, 그래 갖고 ’오리엔탈 특급‘이라 그랬어요. (웃음) 저도 팝 발라드도 되게 하고 싶고 R&B도 되게 하고 싶고 했는데, 제가 아무리 R&B를 해도 약간 ’뽕끼‘라고 하죠? 그런 느낌이 좀 항상 있어서. 이쪽으로 오히려 특화된 것 같아요. 제가 쓰는 멜로디나 노래 부르는 스타일을 봤을 때. 

 

- 한국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 중 하나가 ’임창정 발라드‘입니다. 왜 그렇게 많이들 부를까요?

 

임창정 : 그러니까. 이게 비슷비슷한 경험에서 나오는 가사들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상황들을 많이 직설적으로 그리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남자들을 사실 많이 겪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공감이 아닐까. 사실 남자들이 그 상황 되면 다 그런 거 있어요. 웬만하면. (웃음) 

 

 

[사진 출처=NH미디어]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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