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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1
by 우정호

‘문나이트’ 최연소 댄서 채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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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2-11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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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춤선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 타고난 춤꾼 채리나는 룰라 합류 5일 만에 방송 데뷔 무대에 올라 스테이지를 자신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룰라의 전성기를 함께한 그녀는 삼인조 걸그룹 디바를 결성해 걸크러쉬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댄스 가수로 가요사에 이름을 남긴 채리나는 현진영, 양현석, 박진영, 듀스, 클론, 철이와 미애 등 댄스 가수 등용문으로 알려진 문나이트에서 춤으로 인정받은 ‘최연소’ 댄서였다.

 

 

(아카이브 K는 채리나와 2020년 6월 인터뷰했다.) 

 

 

- 춤꾼의 성지로 꼽히던 이태원 문나이트에서 당시 미애, 김송 씨와 함께 여성 댄서 ‘빅 3’로 꼽힐 만큼 뛰어난 댄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춤을 췄던 건가요?

 

채리나 : (한숨) 우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춤이 너무 좋으니까 그냥 TV 나오는 거 흉내 내면서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응원단장이 된 거예요. 6학년 언니들을 이기고 전교생들 앞 단상에서 제가 센터에 서서 춤을 추게 됐어요. 그래서 그때 ‘어? 내가 춤을 좀 잘 추나? 내가 왜 언니들을 이기고 이렇게 센터에 서지?’하면서 ‘내가 좀 특출난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 더 춤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리고 저희 친오빠 영향이 컸고. 오빠가 춤을 많이 알려줬어요. 그래서 더 추게 됐고, 춤 잘 추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그땐 거기 갈 수 없는 나이인 거예요.

 

그래서 조금은 불법적이지만 춤이 너무 좋아서 나이를 속이고 명동 마이하우스라는 데 초저녁에 갔다가 밤에는 이태원으로 다녔어요. 잘 추시는 분들 보면서 저도 눈으로 보고 배워서 제 스타일로 좀 바꾸는 정도였다고 할까. 제가 기본기 있는 스타일이 아니고요. 중학교 때부터 좀 본격적으로 그렇게 다녔어요. 저희 어머니는 그때 제가 너무 춤추러 다니니까 걱정하셔가지고 저 때문에 병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좋아하세요.

 

- 중학생 때 마이하우스나 문나이트에 진출하신 거군요. 

 

채리나 : 네. 정확하게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다니게 됐고, 1학년 때는 오빠한테 많이 배우고, 비디오 자료들 보고 연습을 했거든요. 그때는 일본 댄서들 비디오 자료를 구해다 보고 연습하곤 했는데, 그런 것도 되게 귀했죠. 그런 식으로 조금씩 춤에 대해서 열정을 갖게 됐어요.

 

- 춤 레퍼런스로 삼았던 아티스트들이 있었나요?

 

채리나 : 마이클 잭슨이죠, 뭐. 그다음에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주(ZOO)라고 일본의 전문 댄서 팀이 있거든요. 춤 스타일이 엄청났죠. 마크(MARK)라던가 이런 몇몇 사람들. 그리고 저희 때는 쟈넷 잭슨. 크~ 예술이었죠. 마돈나 이런 친구... 이런 분. 친구란다. (웃음) 무슨 친구야. 대선배님인데. 하여튼 뵌 적은 없지만. 마돈나, 쟈넷 잭슨 이런 분들 자료를 받게 되거나 뮤직비디오 나왔을 때 춤이 많이 들어 있는 영상이면 너무 좋은 거죠. 되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 친오빠분도 춤을 좋아하셨나 봐요.

 

채리나 : 네, 엄청 좋아했어요. 오빠가 춤을 더 잘 췄어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너무 확 춰 버리니까 자식이라고는 우리 둘 남매가 다인데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하셔서... 오빠가 ‘나라도 그러지 말아야지’ 이래서 오빠는 꿈을 접었고 제가 확 치고 올라가게 된 거죠. 

 

- 이후에는 주로 춤을 추던 무대가 이태원이었나요?

 

채리나 : 사실 이태원 같은 경우는 워낙 하이클래스 분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춤에 있어서는 정말 독보적이신 분들이 많이 몰리고 외국인들도 춤 잘 추는 분들 많이 몰려있던 거고. 명동 마이하우스는 조금 젊은 층들이 프리하게 춤 추고 음악에 맞춰 노는 그런 분위기. 거기서도 유명한 분들 많이 나왔어요. 그 당시 무대에서 정말 화려하게 추던 오빠가 정남이 오빠(김정남). 터보 하시기 전에 막 각기 하시고. 그리고 쿨 재훈이 오빠(이재훈) 같은 분들. 마이하우스 같은 경우는 권투 링 같이 단상을 하나 만들어 놨어요. 거기에서는 춤을 잘 추시는 분들만 출 수 있게 허락을 했어요. 

 

- 쿨의 이재훈 씨도 춤을 그렇게 잘 췄어요?

 

채리나 : 너무 잘 췄죠. 재훈 오빠가 “리나야, 너는 나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제발 오래 살아달라”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저는 오빠의 멋진 모습을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춤 너무 잘 췄고요, 지금도 잘생겼지만 그때는 거의 귀공자처럼 잘생겼고요. 또 유일하게 외제차도 타고 다녔어요. 눈에 확확 튀었어요. 엄청...

 

그러니까 쿨 재훈 오빠 같은 경우는 동작 하나하나 할 때 필이 너무 예뻤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오빠가 활동하면서 보컬에 더 치중을 하다 보니까 그쪽으로 더 조명 받으신 거고, 춤을 너무 예쁘게 잘 췄던 분이에요.

 

- 그 시절 춤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있나요?

 

채리나 : 춤으로는 원래 오빠(강원래)랑 현석이 오빠(양현석), 진영이 오빠(현진영). 여성분들 중에서는 미애 언니. 제가 춤으로서 되게 존경하고 항상 마음속에서도 최고로 생각하는 분들이에요. 저는 춤으로는 미애 언니가 저한테 뮤즈였어요.

 

- 미애 씨 춤을 처음 봤을 땐 어떤 느낌이었나요?

 

채리나 : 미애 언니는 무용단 출신이시기도 하셔서 기본기가 너무 단단하세요. 어떤 춤을 툭 던져놔도 기본기가 단단하다 보니까 다 파워풀하게 소화를 하시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기본기 없이 그냥 눈으로 보고 그 유행에 따라 막 춤을 춘 거지만, 언니 같은 경우는 워낙 기본기가 좋으세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제가 가지지 못한 거기 때문에 더 부럽기도 하고 더 멋있어 보이고. 그리고 아마 미애 언니 같은 경우는 모든 춤이 재즈 기반으로 된 걸 거예요. 그래서 그게 항상 부러웠어요.

 

- 강원래 씨는요?

 

채리나 : 원래 오빠 같은 경우는 허우대가 너무 좋아가지고 딱 서 있기만 해도 포스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빠가 춤을 되게 예쁘게 추는 사람이에요. 파이팅도 있지만 춤 자체를 한 동작을 추더라도 현석이 오빠나 원래 오빠 춤 스타일은 제 눈에 유독 예뻐 보였어요. 그래서 좀 많이 좋아했어요, 오빠들.

 

- 현진영 씨는 어땠나요?

 

채리나 : 현진영 오빠 같은 경우는 제가 한참 이태원 다닐 때 오빠가 데뷔하시고 난 후였거든요. 저를 엄청 예뻐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가수되고 나서 오빠가 엄청 좋아하셨죠. ‘아유, 이 귀염둥이가 가수 됐네’하면서 막 좋아하시기는 했는데. 진영이 오빠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댄스가수 중 솔로 가수로서는 선구자가 아닐까. 노래, 랩, 춤 3박자가 완벽했던 것 같아요. 제 눈에는. 

 

- 양현석 씨는요?

 

채리나 : 오빠는 너무 멋있었죠. 스타일도 멋있었고 그리고... 또 저를 예뻐해 주시기도 하셨고. 그러면 더 마음이 가잖아요. 더 잘 춰 보이고. (웃음) 그래서 더 멋있어 보였을 수는 있겠지만 항상 오빠가 이렇게 문나이트 오시면 (머리카락 손가락으로 꼬며) 이렇게 구석에 서서 계세요. 그리고 제스처, 동작 이런 모든 게 되게 좀 세련돼 보인다고 해야 될까요? 좀 고급스러웠어요, 그 느낌이. 너무 멋있는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 그 시기에 신촌이나 영등포같이 다른 동네에도 춤추는 곳은 있었을 텐데. 문나이트만의 차별점은 무엇이었나요?

 

채리나 : 그러니까 이대 같은 경우는 콜로세움이라는 데가 있었거든요. 콜로세움처럼 이렇게 둥그렇게 돼가지고 단상 위에서 춤을 추는 곳인데. 그냥 춤추는 데랑은 좀 다를 수밖에 없는 게요. 입장이 잘 안돼요. 나중에 조금 풀리기는 했지만. 

 

이태원 같은 경우는 춤추시는 분들이, 전문적인 분들이 많이 왔죠, 그리고 이렇게 서로 막 견제하면서 춤을 추잖아요. 그러면 춤 잘 추시는 분들하고 못 추시는 분들하고 보여요, 눈에. 약간 뭐 ‘나는 좀 춤이 약해’ 그러면 저 구석에 어두침침한 데 서 가지고 이렇게 막 고개만 흔들고 있고. 잘 추시는 분들은 좀 더 눈에 띄려고 앞으로 나와서 막 이렇게 추시고. 

 

뭐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전문적으로 전문적으로 추시는 분들, 댄서분들은 마이하우스 들렀다가 이태원으로 가고. 콜로세움이나 영등포...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거기에는 워낙 젊은 층들이 많이 갔고. 약간 콜라텍 같은 그런 느낌이었고. 유행하는 춤 그냥 음악만 나오면 똑같이 다 따라 추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 룰라에서 같이 활동하신 이상민 씨는 영등포가 주 무대였나요?

 

채리나 : 제가요, 상민이 오빠가 우리 멤버고 리더지만 저는 문나이트에서 오빠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어가지고. 그냥 이대에서 같은 동네 오빠, 동생이긴 했는데 사실 그렇게 마주친 기억이 많지는 않아요. 오빠랑은.

 

- 현진영 씨 같은 경우에는 문나이트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고요.

 

채리나 : 네. 아마 문나이트 첫 단계가 소울 트레인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그때는 제가 초등학생이어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진영 오빠가 그 시절 유일하게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던 춤꾼이었다고. 그래서 소울트레인에서 문나이트로 바뀌면서도 그렇게 됐어요.

 

- 채리나 씨가 문나이트에 다니던 시절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출입했나요?

 

채리나 : 네. 외국인들 많았고 저한테는 너무 동경의 대상들이었어요. 다 너무 멋있고. 그냥 작은 몸짓, 뭐 맥주를 마시더라도 별거 아닌데 막 이렇게 막 음악 흔들면서 막 음악에 취하면서 마시는 그 모습. 모든 게 그냥 어린 나이에는 되게 일명 ‘간지 난다’고 하잖아요.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그게. 그래서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다 담았던 것 같아요. 그때 그런 모습들, 춤선, 장점들. 어린 나이에 얍삽하게 그런 걸 제 걸로 만들려고 엄청 봤던 것 같아요. 얍삽한 건 아니죠, 뭐.

 

- 문나이트에서 김성재, 이현도 씨도 많이 봤겠군요. 

 

채리나 : 제가 굉장히 친했던 오빠들이 듀스 오빠들이었어요. 듀스가 저한테는 좀 특별한 게, 제가 가수하기 전부터 오빠들을 알고 지냈어요. ‘아유, 꼬맹이. 귀여워, 귀여워’ 이러면서 ‘야, 너 춤 잘 추더라’ 이러면서 되게 예뻐해 주셨어요, 두 분 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이렇게 룰라가 돼서 오빠들하고 같은 무대에 서게 됐어요. 저는 오빠들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지금도 그 마음 변치 않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그 애기 때... 애기라는 표현이 좀 어렸을 때를 표현하는 건데, 그때 저를 예뻐해 줬던 거 하나하나 기억하고. 음악적으로나 패션이나 그들의 모든 걸 사랑했어요. 듀스가 저한테는 (엄지 척) 음악도 패션도 모든 거. 그리고 오빠들의 그 성품 또한 제가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문나이트에서는 두 분을 본 적은 많이 없어요. 오히려 오빠들이 ‘야, 연습실 놀러와’ 이러면 연습하는 거 구경하러 가고. 

 

- 본인 이외에 문나이트에서 최고의 여자 춤꾼은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채리나 : 저는 미애 언니라고 단언컨대 말씀드릴 수 있어요. 미애 언니. (엄지 척) 파워풀하게도, 예쁘게 추는 법을 다 알고 계시고. 저한테는 미애 언니가 추시는 게 교과서적이었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제가 못 한 거, 단단한 기본기도 갖추고 계셨고. 뭐 저한테는 단연 최고였고, 그 후에 이제 채영이 언니, 유채영 언니 지금 고인이 됐지만. 채영이 언니 같은 경우도 가끔 이렇게 뵈면 너무 예쁘고 너무 춤을 예쁘게 추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는 아마 그 두 분이 제 눈에는 가장 제 취향이지 않을까. 

 

- 고 유채영 씨도 문나이트에 왔나요? 

 

채리나 : 언니도 몇 번 오셨죠. 자주는... 그러니까 저같이 완전 죽순이 수준은 아니고요. (웃음) 저는 진짜 뭐 금, 토, 일 다 갔으니까요. 그런데 저 정도는 아니지만 이렇게 오다가다 뵙고 했거든요. 그때도 너무 예뻤어요. 그리워요. 

 

- 문나이트에서 춤추고 ‘맨하탄 카페’에 들러 식사하는 게 당시 춤꾼들의 코스였다고 들었습니다.

 

채리나 : 그럼요. 치즈 라면 먹으러 가 줘야죠. 제가 지금도 저희 부모님한테 감사하는 거 중에 하나가요. 춤을 허락해 주셨어요. 저희 집이 마포였거든요. 용강동이라는 데서 살았는데 문나이트 까지 거리가 있잖아요. 택시 타고 이태원 가서 문나이트 입장하고, 맨하탄에 들려 밥을 먹고 집에 와야되는 그 비용까지 계산을 해서 매번 3만 원 씩 주셨어요, 그 옛날에. 어머니 입장에서는 제 꿈을 꺾을 수가 없으시니까 ‘OK. 네 꿈을 인정할게. 대신 안전해야하고, 친구들 밥도 사줘야 하니 그걸 계산해서 항상 3만 원씩, 많게는 5만 원씩 챙겨 주셨어요.“

 

- 부모님 입장에서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채리나 : 어머니는 그냥 제가 그걸 안 하면 집을 나가거나, 삐뚤어질 것 같으셨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엄마, 그런데 엄마가 걱정하는 것처럼 나쁜 곳은 아니야. 진짜 춤추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야. 그리고 엄마, 추고 나오면 배가 고파. 그런데 거기 치즈 라면이 너무 맛있어, 엄마.‘ (웃음) 그렇게 말씀드렸던 거예요. 그랬더니 밥 혼자 먹기 뭐할 수 있으니까 친구들 것도 챙겨 주시고, 올 때 안전하게 와야 되니까 택시를 타라고 하시면서 계산을 다 해서 주셨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저라는 사람이 지금까지도 춤으로나 어떤 걸로든 회자될 수 있게 해 주신, 저한테는 스승 같은 분이시면서, 제 멘토기도 하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친구처럼 다 상의하고 다 들어주시거든요. ’엄마, 오늘 이런 일이 있었고.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고.‘ 이런 정말 디테일한 거까지 다 얘기하고 상의했어요. 엄마가 그걸 원하셨어요. 소통하고.

 

-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어머님이 아니었으면 연예인 채리나는 없었겠네요?

 

채리나 : 없었어요. 절대 없었을 거예요, 아마. 저희 어머니는 확실히 조금 특별나세요.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조금 ’아들, 아들, 아들‘ 하던 세대에 태어나신 분이라 그게 그렇게 서러우셨대요. 아들 위주로만 모든 집안이 다 흘러가고... 그런 상황들을 살아오셔서 ’딸 낳으면 너무 잘해 줄 거야!‘ 했는데 제가 태어나서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는 안 커 줬죠. 그렇지만 ’네가 하고 싶은 건 해 줄게‘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저에게 ’무슨 일을 하든 할 수 있어, 너. 해 봐‘ 그렇게 파이팅을 많이 주시는 편이에요. 갑자기 우리 엄마가 막 나오네. (혀 차는)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한 번은 저희 아버님이 제가 또 창문 뛰어넘어서 나가는 걸 눈치채시고 사람만 한 선인장을 사서 제 창문에다 세워 놓은 적이 있어요. 못 나가게 하려고. 저는 다다다다 찔리면서도 나갔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엄마와 제가 암묵적으로 약속을 한 거예요. 엄마가 제가 나가면 방문을 잠가놓기로 하셨고, 그러면 아빠가 문을 열려고 하면 자나 보다 하고 안심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아빠를 속였어요. 엄마와 제가 같이. 그러니까 엄마가 엄청 고생하셨어요. (웃음) 미안할 정도로, 지금.

 

- 문나이트에서 연예인이 된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도 부모님이 알고 계셨나요?

 

채리나 : 네. 알고 계셨어요. 제가 다 말씀드렸어요. ‘엄마, 거기에 연예인 누구도 봤다. 누구도 왔다’ 이렇게.

 

- 혹시 거기서 열심히 하면 연예인이 될 수 있을 거란 뉘앙스도 부모님께 얘기하신 적 있나요?

 

채리나 : 아니요. 그런 얘기는 안 했고요. 누구한테 눈에 띄고 싶어서 간 게 아니고요. 저는 제가 좋아서 그냥 간 거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제가 봤을 때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너무 어린애가 왔다 갔다 하면서 춤을 추는데, 오빠, 언니들 눈에는 귀여운 거예요. 그래서 더 튀어 보이지 않았나, 너무 어려서. 그래서 되게 예뻐해 주셨고, 어떻게 보면 보호해 주셨고. 그래서 제가 더 조금 더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었고, 안전하게 춤을 출 수 있었고. 그러다 원래 오빠가 저를 룰라에 추천해 주셨는데... 저는 그것도 몰랐어요. 나중에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제 인생이 좀 어떻게 보면 잘 풀렸죠. 저는 제가 막 튀고 싶어서 춤을 춘 건 아니고요. 너무 좋아서 춘 거예요. 

 

- 특히 문나이트는 독보적인 DJ들이 있어 마이하우스라던가 다른 춤추는 클럽들과 차별된 음악들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채리나 : 마이하우스는 약간 가장 유행하던 팝, 가요가 나왔고요. 문나이트는 가요가 안 나와요. 그냥 힙합, 그리고 가끔 서비스로 예전에 일본에서 되게 유명했던 혼성 댄스 그룹 주(ZOO)라고 있어요. 댄서 입장에서 되게 동경할 만할 정도로 춤을 잘 추시는 분이 있는 그룹인데 그 주 관련된 노래를 가끔 틀어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뮤직비디오 나왔던 동작 따라 한다고 서로 막 흥겹게 놀고. 

 

문나이트는 다른 데랑 음악적인 갭은 좀 있죠, 아무래도. 다른 데선 좀 대중적이고 유행하는 노래 위주로 많이 튼다면 문나이트는 ‘어? 이런... 이 노래 뭐야?’ 이런 노래를 많이 틀어줄 때가 있었고. 그래서 춤이 아니더라도 음악 들으러 많이 오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 문나이트에서는 춤꾼들의 대결 ‘쇼다운’도 펼쳐졌다고 하는데 참가하셨나요?

 

채리나 : 쇼다운이 뭐예요? 아, 그 쇼다운? 매일매일 있는 일 아닌가? 서로 이제 필받으면 되게 새벽에 거의 매일매일 그래요. 그렇게 추고 나면 다른 분들 출근길에 저희는 집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마주치고...

 

쇼다운은 우선 신경전이 어마 무시하고, 서로 간에 막 견제 같은 것도 있고. 저는 그때 너무 어려가지고요. 저는 참여하지는 않고,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제 기억에는 좀 살벌했다고 해야 되나? 그 당시 오빠들 서로 막 튀고 싶어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제작자분들이 많이 또 오셨었거든요. 그래서 즐기는 느낌보다는 좀 경쟁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 연예계로의 오디션 같은 느낌도 있었던 거군요.

 

채리나 : 네. 맞아요. 그래서 더 치열했던 기억이 나요. 저는 부끄러워서 그런 거 못했어요. 저는 되게 소심하게 제 필대로 그냥 구석에서 이렇게 추는 거지. (웃음) 막 나서가지고 ‘우와~’ 막 이러지는 않았어요. 

 

- 문나이트 쇼다운에서 가장 많이 추는 춤은 비보잉이었나요?

 

채리나 : 아니요. 아니요. 전혀. 그런데 그런 건 있죠. 지금 유행하는 제스처, 흔들림 뭐 여러 가지 동작들을 하지만 비보잉 할 때 함성이 많이 나오기는 해요. 그러니까 막판에는 비보잉도 좀 하고, 뭐 나이키도 했다가, 브레이킹 다른 거 윈드밀 돌았다가... 이런 거는 거의 춤 잘 추시는 분들의 기본적인 동작 정도로 여겨졌을 정도로 다 하시니까. 그런데 그게 박수가 많이 나오긴 하죠. 점수도 많이 따고.

 

- 쇼다운이 시작되는 상황도 궁금한데요. 각자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쇼다운 분위기로 바뀌는 건가요?

 

채리나 : 아니요. 아니요. 디제잉 하시는 분이 사인을 주세요. 거의 30년 전 기억이니까 오래된 기억이긴 한데 뭐 ‘찌끼 찌끼 찌끼’ 사인을 좀 줘요. 그러면 슬슬 추다가 분위기가 붙을 것 같다고 하면 이제 DJ 분이 음악 선곡을 유도하셔가지고 좀 불붙게 되는 경우들이 많았던 기억이 나요. 너무 어릴 때라 그 기억이 자세히 나지는 않아요.

 

- 문나이트는 채리나 씨에게 어떤 공간이었나요?

 

채리나 : 제 인생을 바꾼 공간.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학교도 때려치우고 배움도 짧고 할 것도 없었을 것 같아요. 어찌 됐든 춤이 좋아서 여러 가지 결단을 내렸던 건 있지만, 아마 제 인생을 바꾼 공간이 저는 문나이트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콩당콩당거리는 생각들이 많이 집약된 그런 곳. 그리고 제 인생에 절대 잊을 수 없는 가장 핫한 추억. 문나이트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춤을 잘 추고 싶어서.

 

- 채리나 씨에게 춤이란?

 

채리나 :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춤이란 저에게 프라이드. 어디 내놔도 그건 내가 안 밀릴 자신 있어, 약간 이런 거만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저한테는 춤이란 추억, 예전의 추억이 돼버렸어요. 지금은 몸이 너무 늙어가지고, 그렇게 안 되니까. (웃음) 

 

가끔 팬분들이 막 DM이나 이런 거 보내서 ‘언니, 누나’ 이러면서 뭐 유튜브에 영상 봤는데 댓글에 ‘누나, 춤선이 예뻐요. 진짜 춤은 최고예요’, ‘다시 해 주세요. 빨리 무대 나와주세요. 집에서 개만 키우지 말고 제발 음반 내주세요.’ (웃음) 막 이런 게 되게 많아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어도 그 예전에 채리나는 사람이 뭐... 두루두루 춤도 노래도 좀 랩도 좀 두루두루 잘했다는 그 기억을 퇴색시키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실망을 주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쉽게 도전을 못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세월이 또 많이 지나버렸고 그러다가 제가 웅크러지게 되고 이런 이제 전개가 흐르기는 하는데. 저는 춤을 매우 잘 추지는 않았지만, 기본기도 없었고 그냥 제 필대로 춤을 췄지만, 그래도 춤은 좀 예쁘게 췄던 사람, 이렇게 기억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그래서 실망 줄까 봐 이렇게 도전을 못 하겠더라고요, 이제는. 또 암기력도 떨어지기도 했고요. 

 

 

(2부에서 계속.)

 

[사진출처=MBC]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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