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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3
by 우정호

룰라 합류 이후 데뷔까지 필요한 기간 ‘단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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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2-13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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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 한국 가요사에서 문나이트는 어떤 역할을 했나고 생각하나요?

 

채리나 : 문나이트가 90년대 음악 스타일도 바꿨다고 봐요. 거기서 탄생한 댄서들이 가요계에 진출하면서, 저 개인적으로는 문나이트가 90년대 대중음악에 전체적으로 가장 영향을 많이 준 곳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이 나왔잖아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도 나오고, 듀스도 나오고, 룰라도 나왔고, 클론도 나왔고. 그 외에 뭐 영턱스, 승민이 오빠 같은 경우는 영턱스 멤버였으니까. 너무나 많은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 문나이트의 댄서에서 룰라로 합류하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채리나 : 어떻게 됐느냐면요. 마이하우스와 문나이트를 밥 먹듯이 다니다가 어느 순간 돌아봤더니 엄마, 아빠한테 너무 죄송한 거예요. 그래서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면서 ‘그럼 기술을 배우겠습니다’ 했죠. 춤이 너무 좋아서 학업을 때려치운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케사랑파사랑’이라는 메이크업 학원을 (웃음) 거기에서 메이크업을 배우고 있었는데, 또 거기서 너무 어린 나이에 잘하니까 일본 유학을 추천해 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 일본 유학을 갈까 할 때쯤 갑자기 룰라 쪽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춤은 조금 끊고 있었고, 부모님한테 너무 죄송해서 기술이라도 배워 볼까 했을 찰나에 딱 연락이 온 거예요. 

 

- 강원래 씨를 통해서 연락이 왔나요?

 

채리나 : 아니요. 룰라 쪽에서. 상민 오빠한테 전화가 왔었나? 뭐...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을 때 제가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었어요. 한창 사구에 빠져가지고. 막 당구를 치고 있는데 삐삐가 왔었나? 그래서 홍대 쪽에서 만났어요. 그래서 처음 대면했을 때 ‘추천을 받았다’ 뭐 이러면서 얘기가 오고 가다 오디션 한번 보라길래 보게 됐어요. 원래 오빠가 추천해 줬다는 걸 그때 듣게 됐고. 그래서 오디션 봤는데 합격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제 기준에는 춤 그만 추고 정신 차리려고 할 때쯤 연락을 받아 하게 된 거죠.

 

-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문나이트에서 춤을 추던 채리나의 존재감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니, 문나이트가 일종의 캐스팅 장소가 된 게 맞겠지요?

 

채리나 : 네, 그렇죠. 왜냐하면 거기에서 제가 추는 모습들을 많은 분들이 봤고, 저의 끼를 거기에서 많이 보셨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룰라 이전에도 저한테 제안한 곳은 꽤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춤이 좋았던 거지 뭐 대단한 꿈이 있었던 게 아니고요. 그냥 세상에서 제일 춤 잘 추는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건방지게, 그냥. ‘나는 기본기 없어. 나는 그냥 내 필(feel)대로 추는데 잘 춘다는 소리 들을 거야’ 막 이러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을 가지고 한창 출 때였죠.

 

- 룰라 말고는 또 어떤 제안이 있었어요?

 

채리나 : 그때 현석이 오빠가 YG에서 미애 언니랑 저랑 둘이서 팀을 꾸리고 싶다는 제안도 받았어요. 그러니까 오빠는 저를 ‘춤 잘 추는 꼬마’, ‘끼 많은 꼬마’라고 꾸준히 생각하셨어가지고. 미애 언니랑 저랑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제가 가요계 데뷔하고 나서는 또 다른 꿈이 생겼었거든요. 그래서 좀 정중하게 거절을 했었어요. 

 

- 어떤 꿈이요? 

 

채리나 : 방송에서도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 한국의 티엘씨(TLC) 같은 그룹을 만드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그래서 미국에 건너가서 현도 오빠랑 상의를 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솔로를 하라고 제안을 주셨고, 또 다른 회사에서도 저한테 제안을 좀 많이 주셨었어요, 감사하게도. 그런데 저는 ‘제 꿈을 향해서 가겠습니다’ 그렇게 돼서 현도 오빠랑 상의를 했고, 현도 오빠가 비키 씨를 소개시켜 줬어요. 저는 현도 오빠만 믿었어요. 현도 오빠가 추천해 주는 사람은 OK였고요. 그리고 지니 같은 경우는 성재 오빠 댄서를 하려고 한국에 들어와 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제가 데리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셋이 한번 해 보자’ 해서 같이 하게 됐고, ‘디바’라는 팀을 준비했어요. 제가 원하던 티엘씨 같은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좀 해 보려고 했죠. 왜냐하면 또 음악이라는 게, 저희가 하고 싶은 음악이 있고 회사가 원하는 음악이 있으니까. 그 중간지점을 찾기가 좀 많이 힘들기는 했어요. 그래서, 티엘씨 같은 음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머릿수는 똑같이 세 명인 걸로. (웃음) 그렇게 만족하면서. 

 

- 룰라 데뷔 무대는 굉장히 급작스러운 합류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채리나 : 아니, 그게 홍대에서 당구 치다가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그랬잖아요. 그러고 나서 정확하게 5일 있다가 무대 선 거예요. (웃음)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보통. 그런데 워낙 급하게 정환이 오빠(신정환)가 군대를 가야 됐고, 연습 시간은 없고. 

 

그런데 처음 룰라 제안을 받고는 거절했어요. ‘춤이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저는 듀스를 좋아했고, 힙합을 좀 펑키하게 하고, 뉴잭스윙을 좋아했거든요. 룰라가 싫어서가 아니고 스타일이 제가 추구하는 쪽과는 달랐어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저희 집 주소를 물어물어 알아내셔서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어떻게 설득하셨냐면, ‘우선은 룰라를 하고 자리 잡으면 네가 나중에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안무도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하시더라고요. 우선은 급하셨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알겠습니다’ 수락하고 3일 정도 안무 외워 올라간 게 아마 룰라가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하는 날이었을 거예요. ‘비밀은 없어’ 무대 서면서 정환이 오빠랑 저랑 같이 교차로 작별 인사와 새로 영입됐다고 인사하는 그런 인수인계 자리가 된 거였어요. 그 무대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그냥 앞이 까맸어요. 그것도 태어나서 처음 하는 방송인데 갑자기 생뚱맞게 생방에다가... 막 진짜 갑자기 안무도 3일 만에 외워야 되는 거였고. ‘틀리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데뷔했죠, 진짜. 

 

- 룰라 활동 초창기, 머리에 둘렀던 ‘수건 패션’은 본인 아이디어였나요?

 

채리나 : 지금 그것도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제가 한창 두건을 많이 쓰고 다니기는 했었어요. 약간 보이시하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런데 당시에 주위 분들도 그렇게들 많이 했었어요. 터번 같은 거나 두건을 많이 쓰시기는 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가 송월타월에서 색깔별로 타월을 사다 주셔가지고... (웃음) 이걸로 그냥 해 보자 해서 하게 된 거예요. 그전에는 좀 남는 원단으로 이제 터번을 만들어 쓰고 그러다가... 아, 수건 쓴 건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조금 창피해요. (웃음) 

 

- 스타일링에도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채리나 : 네. 관심 많아요. 그런데 데뷔 초창기에는 제 의견이 많이 반영되지는 않았어요. 이제 햇병아리고 아직 하라는 대로 좀 해야됐던 것도 있었고. 

 

- 수건 패션 이외에도 짧은 머리에 까만 피부 톤에... 강렬한 스타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채리나 : 죄송해요. 많이 놀랐었죠? (웃음) 사실 제가 머리가 되게 길었거든요. 그런데 팀에 보이시한 느낌이 좀 필요하다 그래서 머리를 삭발하면 안 되겠냐는 제안을 처음 받았고. 삭발까지는 아니더라도 짧은 커터는 O.K 했어요. 팀을 위해서 해야 하는 부분인 거니까요. 그렇게 보이시하게 머리를 자르게 됐고 스타일도 그렇게 되다 보니까 사람이 행동도 더 그렇게 되더라고요. 좀 더 터프해지는 것 같고. 

 

어쨌든 그땐 긴 머리를 싹둑 자르니까 약간 눈물이 찔끔 났어요. ‘으~ 나 머리 자르는 거 너무 아까워~’ 이랬어요. 왜냐하면 한창 꾸미고 싶은 나이였거든요. 막 예쁘게 하고 싶고 그럴 나이였는데. 하지만 그때 또 모습이 임팩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옛날 그 모습 보면 재미있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웃음) 

 

- 이효리 씨나 가희 씨가 채리나 씨를 롤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는데 들어 보셨나요?

 

채리나 : 전해 들었어요. 가희 씨 같은 경우는 무슨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얘기했었다고 해서 팬이 전해줬고. 효리 씨 같은 경우도 최근에 팬이 캡처해서 보내줬어요. 뭐 얼마 많지는 않지만 오래된 팬들이 아직 있거든요. (웃음) 그래서 이렇게 보내주면 ‘아, 진짜 이랬어?’ 그러면서 찾아보게 되는 거죠.

 

- 이효리 씨나 가희 씨한테 질문해야 마땅하겠지만, 이분들이 채리나를 롤모델로 삼은 이유가 뭘까요? 

 

채리나 : 보이시함? 여자들이 봤을 때도 보이시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항상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기는 하지만, 여자 팬밖에 없었거든요, 솔직히. 한 만 명 있으면 한두 명이 남자분이고 진짜 거의 다 여성분들이 저를 좋아해 주셨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랑 전혀 스캔들이 날 것 같지 않게 생겨서 편하게 좋아하는 언니가 아닐까. 뭐 그런 얘기를 농담 삼아 하곤 해요.

 

- 90년대 초중반, 나이트클럽 등에선 항상 룰라 노래가 나왔습니다. 클럽에서 본인 노래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럴 땐 어떤 느낌일지도 알고 싶습니다.

 

채리나 : 그런 적 많죠. 클럽 같은 데 가면요. 연예인이 오면 그 음악 틀어줘요, 자꾸. 민망해 죽겠어요. 그럼 나가서 춤을 추라는 얘기인 건데, ‘어떻게 해야 되지? 여기서 숨어야 되나?’ 막 이렇게 돼요. 그런데 음악을 틀어주는 입장에서는 어떤 연예인이 왔다는 걸 그렇게 표현해 주면, 그 연예인이 기분 좋아할 줄 알고 틀어주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사실, 알아주길 바라는 연예인분들도 계시니까요. 그런데 저는 음악 나오면 좀 창피해요. (웃음)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 노래가 나왔을 때 분위기 보면서 흐뭇하기도 하죠. 와~ 막 안 추던 사람까지 나와서 춤을 추거나, 포인트 안무를 같이 막 줄 서서 엉덩이를 막 치거나 하는 광경을 보면요. 이렇게 지금 대중적으로 사랑을 이렇게 받고 있구나. 저 포인트 안무를 저렇게 우르르 추고 있구나. 그럼 너무 감사한 일이긴 해요. 

 

그런데 주위에서 막 바람 잡아서 ‘야~ 춰줘, 춰줘,’ 이런 식으로 등 떠밀려서 춘 적은 있거든요. (웃음) 겨드랑이 땀 엄청 나요, 그럴 때는. 막 신나지가 않고 되게 창피해요. (웃음) 공연이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술 마시고 하는 자리니까. 저 생각보다 부끄러움 좀 많거든요. 

 

- 룰라 곡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를 하나만 뽑는다면?

 

채리나 : 저는 ‘3! 4!’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 곡. 정말 아직도요. 공연을 지금도 가끔 하지만 ‘3! 4!’ 인트로를 들으면 울컥울컥해요. 너무 힘든 시기에 현도 오빠가 손을 내밀어줬고, 이 음악이 아니었으면 저희는 아마 재기를 못 했을 거고요. 제목에는 삼전 사기라는 뜻도 있어요. 그래서 너무 특별하고. 댄스곡이지만 노래 가사가 의외로 좀 슬퍼요. 힘든 경험을 많이 하셨던 분들이 들었을 때는 좀 뭉클뭉클한 가사들이거든요. 그 노래가 가장 애착이 가고, 그 노래 들을 때마다 미국에서 고생했던 기억도 많이 나고. 

 

현도 오빠가 저희 손잡아준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좋은 곡을 주신 거예요. 그때 누가 알았겠어요. 요즘 대학생들이 ‘쓰리 포 게임’을 할지. 이현도 참 대단한 사람인 거예요. 저한테도 그 자랑하던데요? ‘야, 세월이 이렇게 지나서 누가 쓰리포 게임할 줄 알았어?’ 막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웃음) 대단하신... 대단하신 분이에요.

 

- 특히 90년대 댄스 음악들의 경우, 부르는 사람들이 힘들어할 정도로 음역을 높인 곡들이 많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채리나 : 룰라에 ‘연인’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노래) ‘바보, 바보, 바보야~’ 그 후렴구는요, 사람이 아주 무대에서 죽으라고 만든 노래거든요. 하필이면 그 당시에는 또 라이브를 무조건 강요했던 시기였어요. 저는 정말 그때가 살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진짜. 그걸 매번 라이브를 했어야 됐고. 상민이 오빠가 만든 노래이긴 한데 그냥 오빠가 만들어 놓은 거에 키를 제대로 재지도 않고 그냥 부르다 보니까. (웃음) 그 노래를 무대에서 하게 되면 공포가 오는 거죠. 음악 방송이 잡히면 그게 좋은 게 아니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마 제가 가장 댄스곡을 슬프게 부른 가수가 아닐까. ‘나 죽어~!’ 이러면서 불렀거든요, 정말. 저도 영상 가끔 보면 ‘우와, 진짜 악착같이 했구나, 내가. 해냈구나.’ 이 생각이 좀 들어요. 그런데 얼굴은 완전 오만상. 어떤 영상 보면 나중에는 너무 제가 오만상을 찌푸리니가 카메라 감독님이 상민이 오빠를 잡아요. (웃음) 화음 넣고 있는 상민이 오빠를 잡고 그러더라고요. 그거 보면 이제 ‘아, 정말 잘 버텼다, 너. 진짜 어떻게 이거 했냐’ 생각 들죠.

 

- 녹음할 때 키를 낮추자고 이의를 제기해 본 적은 없나요?

 

채리나 : 예전에는요, 작곡가들이 음역대가 막 신나게 쫙쫙 뻗어주면 굉장히 신날 거라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높게, 더 높게, 신나게!’ 주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시면요. 키를 낮추잖아요? 신나는 게 약간 덜 해요. 그래서 시원하게 ‘쫙~ 너는 무대에서 죽어라! 달려!’ 이렇게 시원하게. (웃음) 

 

- 채리나 씨 보컬의 경우 재발견돼야 하지 않나 생각될 만큼 역량이 충분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채리나 : 저도 제가 그렇게 키가 많이 올라가는지는 몰랐어요. (웃음) 아닙니다. 지금도 저한테 ‘아, 언니 노래 잘하시잖아요’하시는 분 있으면, 저는 아니라고 해요.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저는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고 ‘그 당시에 여러분들이 따라 부르기 힘든 키, 높은 음역 대 때문에 잘하게 들리는 거예요’라고 말씀을 드려요. 겸손한 게 아니고요, 진짜로. 

 

저는 춤으로 데뷔를 했고, 너무 춤만 출 수 없으니 랩을 좀 시켜주신 거였고, 그래서 랩을 좀 했어요. 그런데 본의 아니게, 현도 오빠가 ‘리나야, 너도 노래를 한 번 해 봐’하고 제안을 해서 노래를 해 보게 됐어요. 오빠가 ‘야, 이 정도면 곧잘 하는 거야’라면서 저한테 솔로곡도 만들어 주셨고. 그렇게 흐르다 보니 지현 언니가 팀에서 나가면서 노래 부를 보컬이 없어서 제가 노래를 부르게 된 거예요. 그런 수순이었던 거예요. 환경에 맞게 할 수밖에 없던 상황. 그러니까 그 상황에 맞춰서 저는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에요. 진짜, 정말로 이거 아니면 안 됐으니까. 

 

- 90년대를 톱클래스 댄스가수로 보내셨는데요. 그러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중요했나요?

 

채리나 : 연습이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보컬 레슨은 받아본 적 없는데 춤 연습은 혼자 연습실 얻어서 할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제 자신한테 부끄러웠어요. ‘아 내가 가수인데... 아무리 댄스가수여도 보컬 레슨을 왜 한 번도 안 받아봤지? 무슨 자신감이었지?’ 그런데 춤은 완벽하게 몸에 밸 때까지 연습을 했어요. 그런 걸 보면 제 가수 생활에서 춤의 비중이 5할 이상이지 않았나 싶어요. 

 

 

[사진 출처=채리나 SNS]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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