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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0
by 최승원

학전에서 만난 유리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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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2-20작성자  by  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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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미성과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랑받는 유리상자는 박승화 이세준이 만나 1996년에 결성한 듀오다. 대학교 복학생처럼 친숙한 외모로 ‘복학상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던 이들은 90년대 대학가와 청춘 문화 속에서 피어나 한국형 발라드를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특히,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김광석, 박학기와 같은 선배들과 함께 무대를 서며 큰 영향을 받아 그들의 음악을 완성시켰다.

 

(아카이브 K는 유리상자와 2020년 7월 인터뷰했다.)

 

 

팀을 결성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세준 : 처음에 이분은 박승화 씨가 몇 년째 무명 가수라... (웃음) 무명 가수라기보다는 신인 가수, 몇 년째 신인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고. 저야말로 가수 지망생으로 활동하던 와중에 포항에서 제가 지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 라디오 공개방송에 신인 가수 박승화씨가 왔었어요. 

 

거기서 처음 만났고, 이후로 시간이 흘러 저도 데뷔 준비를 하고 승화 형은 2집까지 솔로 앨범을 발표했어요. 활동을 마무리 하면서, 계속 가수의 길을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이러고 있던 와중에 그냥 둘이 한번 합쳐 보자고 했죠. 

 

저희들보다는 그 당시에 소속사 사장님의 아이디어였죠. 처음에는 의아하기도 했고. 싫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전혀 생각을 안 했던 거라 환영하지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참 서로에게 미안하기도 한데요. 그렇게 해서 한번 시작을 해 봤는데 반응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좋았던 거죠. 그래서 정식으로 ‘유리상자’라는 이름을 달고 듀엣을 한 것이 시작이죠. 

 

박승화 : 제가 계속 신인 가수로만 한 6년을 활동하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대학로에서 콘서트를 하고 싶었었어요. 억지로, 억지로 콘서트를 열었죠. 그때 연주하시는 분들 멤버를 다 만들고 나니까 코러스 할 분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이세준 씨한테 연락했는데. 마침 전역하고 나서,

 

이세준 : 군대 갔다 와서.

박승화 : 네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었던 차에.

이세준 : 가만히 있지는 않았어요. 그거 오래됐죠. 

박승화 : 그때 노래는 안 했잖아. 

이세준 : 네. 

박승화 : 마침 연락이 닿아서 코러스로 참여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흔쾌히 또 와 주었고 그 레퍼토리가 있잖아요. 레퍼토리가 있는데, 팝송들도 많이 부르고 하다 보니까 이 밴드들과 하는 노래 말고 둘이서 기타만 치는 노래들 하면 좋겠다 해서 둘이서만 앞으로 나와서 같이 노래를 맞춰 봤었죠.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제작자들이 듀엣을 제안했죠. 아까도 뭐 이세준 씨가 얘기했지만 처음에는 솔로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들이 많아서 그렇게 탐탁지 않게 생각을 하다가 몇 번 입을 맞춰 보고 기타 연주를 같이 하면서 화음이라는 게 생기니까 거기서 찡한 거죠, 서로. 누가 먼저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듀엣 할래?”라는 말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이세준 :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회사에서 제안했을 때, 둘 다 “OK, 할게요.” 이렇게 얘기는 안 했던 상황에서 그냥 같은 소속사였어요. 연습실을 같이 쓰다가 “아, 이거 혼자 하는 거보다 둘이 하는 게 더 나았다.”라는 마음을 서로 가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합시다. 이런 것도 없었고 약간 성격이 그런 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날 하다 보니까 하고 있더라고요. 녹음하고 있고.

 

박승화씨는 왜 마지막 공연을 대학로에서 하려고 했었어요? 

 

박승화 : 많은 가수들이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었고요. 그리고 선배 가수들, 제가 좋아하는 김광석 씨나 박학기 씨나 너무나 좋아하는 분들이 그쪽에서 공연을 많이 했었고요. 그러니 저절로 저도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큰 공연장보다는 한 몇 백명 정도 들어올 수 있는 소극장에서 가깝게 공연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데 소극장이라는 게 꼭 대학로에만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신촌에도 있었고 종로에도 많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대학로에서 공연해”라는 것이 로망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괜히 우쭐함이 담겨 있는 그런 이야깃거리가 있었거든요. 

 

이세준 : 그때는 거기 소극장에서 관객들을 가까이 마주하고 자기가 연주하면서 노래를 하는 것이 진짜 가수라고 생각을 하던 사람들이 많았었거든요. 

 

대학로라는 장소 자체에 특성이 있었을 텐데, 신촌과 종로하고 달랐던 것도 있나요?

 

이세준 : 신촌, 종로하고 달랐던 것은 워낙 공연장이 많기도 했고요. 그렇죠? 대학로가. 그리고 정식 공연장 이외의 공간에서도 지금으로 따지면 이제 버스킹인데, 그때는 버스킹이라는 말을 쓰지도 않던 시절인데, 곳곳에서 서로가 서로의 음악이 다 들리는 가운데에서 야외 무대를 임시로 만들어서 공연들을 그렇게 많이 하셨어요. 

 

삼삼오오 무리 지어가지고.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무슨... (웃음) 시식 코너처럼 여기 가서 이렇게 좀 구경하고 보다가 저쪽 가서 보다가, 저쪽 가서 보다가 이번에는 정식으로 돈 내고 티켓 끊고 누구 공연 보자. 이런 문화가 있었죠. 그게 예전에는 거의 다 통기타 치면서 노래를 하시고. 물론 이제 한 10년 지나니까 거기서부터 그때부터는 춤을 추시더라고요, 젊은이들이. 거기 같은 자리에서. 

아무튼 당시에 저는 고등학생 시절이었는데, 80년도 후반에요. 대학로에 한 번 다녀오면 후유증이 꽤 오래갔어요. 계속 머리는 대학로가 남아 있고, 저는 가수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갖지는 못했지만, 노래 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을 것 아니예요. 여기저기서. 그러면 자꾸 거기서 노래하던 그 형들, 누나들이 떠오르면서 “그 형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 같은데. (웃음) 그럼 나도 거기서 노래해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이 보시기에는 대학로만 갔다 오면 헛바람이 들어온다고 그러셨는데 알게 모르게 그때 제가 꿈을 많이 키웠던 것 같아요. 가수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보다 그냥 나도 대학로에 가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면 좋겠다는 거죠. 그러니 가수가 되면 정식으로 티켓을 끊고 가서 볼 수 있는 공연장에 가서 공연하는 것이 로망이 될 수밖에 없죠. 

 

어렸을 때 영화 보면 두근거리는 느낌이 대학로에서 느끼신 것 같네요. 

 

박승화 : 네. 좀이 쑤신다고 그러죠. 

이세준 : 네. 장군의 아들 보고 나오면 한 1시간 동안은 누구나 다 김두한이 되잖아요. “한번 걸리기만 해봐라.” 이러면서. (웃음) 

 

마지막 박승화씨 무대가 없었다면, 유리상자도 없었을 것 같은데.

 

박승화 :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무대가 아니었으면 솔로 가수로 더 하던지 아니면 이세준 씨도 역량을 펼쳐서 혼자서 더 멋지게 됐든가 그럴 수도 있었겠죠. 

 

이세준 : 유리상자에는 아마 그 이후에도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그 무대 아니었으면 없었을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때 공연장에 가요계 관계자분들이 많이 보러 오셨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야, 저게 제일 괜찮다.” (웃음)

 

박승화 : 쟤네 솔로 안 돼. 

 

이세준 :  네. 제작자 입장에서 승화 형은 2집까지 하고서 안 되니까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고 저는 솔로 가수를 시켜주겠다고 데리고 있었던 건데 “아, 얘가 될까?” 뭐 이러던 차에 “그래, 그럼. 둘이 몰아서 그냥 비용 아끼는 차원에서 해보자.” 그렇게 했을 수도 있죠. 

 

그러면 유리상자라는 이름으로 꿈에 그리던 대학로에서 처음 공연 했던 무대는 어디예요?

 

박승화 : 학전이죠.

이세준 : 97년도에

박승화 : 97년 겨울이었지?

이세준 : 97년도 완전 겨울은 아니고 한 10월이었던 것 같아요. ‘순애보’라는 노래를 9월에 발표 했는데. 이 곡이 정말 의외로 답답한 발라드가 한 달도 안 돼서 반응이 굉장히 많이 올라왔어요. 음반도 많이 팔리고. “우리 공연 한 번 해볼까?”라고 해서

박승화 : 10월이 아니라 더 돼.

이세준 : 12월 3일인가 5일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첫 번째 공연이.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순애보’라는 노래는 남자 둘이 부르는 포크 발라드라서 6개월은 해야지 반응이 올 것 같다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주류라고 하는 음악이 HOT, 젝스키스 뭐 그런 팀들이, 저희보다는 나이는 훨씬 어린 분들이지만 당시 데뷔해서 엄청 인기를 끌고 있었던 때라. 

 

그런 걸 각오를 하고 했었는데 한 달 지나고 나서 음반도 엄청 많이 팔리고 러브콜도 많이 오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우리 공연을 한번 해 봅시다.” 그런데 티켓 오픈을 했는데 전 회가 금방 매진이 된 거죠. 그래서 드디어 학전에서 시작했는데 첫날 두고두고 저희들끼리도 그 얘기를 많이 해요. 첫날 대기실에서 둘이 앉아 있는데 매니저가 분명히 우리 매진됐다고 얘기는 했는데 그게 믿기지가 않는 거예요.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래서 관객 입장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고 대기실과 무대 사이에 커튼이 하나 있었는데, 펼치고 둘이 저랑 승화형이 슬쩍 내다봤는데, (웃음) 보조석 깔고 있고 관객 분들이 무대 앞가지 바짝 앉아 계셨어요. 

 

물론 그 객석 수를 따지면 그렇게 큰 숫자는 아닌데 그래도 자리가 다 차고 보조석까지도 가득 메워주셨다는 걸 우리는 하이파이브 하고.

 

박승화 : 당시 보조석은 사실 불법일 수 도 있어요.

 

이세준 : 그렇죠.

 

박승화 : 소방법 때문에 

 

이세준 :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렇죠. 

 

박승화 : 아무튼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죠.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나름대로 가수들한테 그 극장 안에서 보조석이 깔린다는 건 굉장한 자부심을 느껴도 될 만큼 그런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그러니까 처음 느끼게 된 거죠. 그래서 저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얘하고. (웃음) “우리 보조석 깐다” 이러고서 얘기했던... 

 

이세준 : “공연 잘 하고 있어?” “우리 보조석 깔아~ (웃음)” 심지어 나중에는 저희 공연이 잘 되고 재밌었나 봐요. 다행히. 그래서 공연을 많이 하면서 나중에는 무대위로 앉히기 시작했죠. 저희가 앉고 뒤에 연주자들이 있으면 양쪽 사이드로 두 세줄씩 앉혔죠. 

 

박승화 : 기타 연주하다 움직이면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요. 맞기도 하고.

 

이세준 : 침도 튀기고. 

 

박승화 : 굉장히 답답한 모습이지만 공연장에서 그 모습 자체가 너무너무 자연스럽고 소극장의 매력이 그런 것 같아요. (웃음) 관객 여러분들도.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면서도 그 불편함조차가 같이 막 호흡하는 거죠. 본인들도 같이 공연해 주는 것처럼. 그렇게 됐는 그 모습이 너무너무 매력적이에요. 

 

큰 공연장에서도 해보고, 소극장 무대도 많이 했는데, 소극장만의 매력은 뭔가요?

 

이세준 : 극장은 완벽하게 관객과 같이 만들어 가는 공연이에요. 그 관객분들의 호흡 하나하나가 공연에 굉장히 지대한 영향을 끼치거든요. 사실 대극장에서 하면 함성도 더 크고 뭐 장치 같은 것도 많이 쓰고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관객분들의 표정을 살피기가 저희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소극장은 맨 뒤에 앉아 있는 관객의 얼굴도 확인이 되죠. 저희들이 마이크 떼고 잠깐 심호흡 하는 것도 다 그분들한테는 연출처럼 보여질 테고. 저희끼리 이렇게 속닥속닥 주고받는 이야기와 가수가 입장을 하면서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이 다 퍼포먼스인 거죠. 

 

박승화 : 하나가 되는 거죠. 그래서 소극장에서 하면 객석에서 어떤 노래를 불렀을 때 이 노래가 너무 좋았다. 또 아니면 어떤 노래할 때 “아, 이런 한숨 소리. 아, 이거 말고 다른 거 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신호가 와요. 시그널들이. 그러면 다음 공연에 그걸 반영도 하죠. 어떤 노래는 (놀라는 탄성) 하는 가슴에서 나오는 이런 감탄사 이런 거 들을 때. 또 그걸 연주할 때, 노래할 때 할 맛이 난다고 얘기해야 되나요? 그런 느낌도 많고요. 

 

이세준 : 공연하러 간다는 느낌보다 그냥 관객분들 만나러 간다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관객분들께도 “유리상자 만나러 오세요.”라고 많이 소개하고 그랬었죠. 

 

박승화 : 소극장이 하루, 이틀 공연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저희들이 학전에서 시작할 때만 해도 거의 짧아야 열흘, 그것도 한 달 이렇게 공연을 오래 했었죠. 매일매일 직장 다니듯이 극장에 가서 공연하고 또 집에서 자고. 어떻게 그렇게 한 달 동안 목을 쓰면서 목이 상하지 않으면서 공연을 했나 싶어요, 지금 또 생각해 보면.

 

이세준 : 안 좋은 건, (웃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안 좋은 점인데 그때는 그걸 잘 몰랐었죠. 한 달을 해도 다 매진이 되어도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처음에는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행복하니까 돈이 무슨 상관이에요. 다 막 그렇게 했는데 이게 계속 하다보니 좀 생각이 나잖아요. 그러면 세션분들 좀 조정에 들어가기도 하고, 너무 죄송하지만. 들어가기도 하고 티켓 가격을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올리기도 하고. 그러기도 해요. 

 

대학로 소극장 전성기 때 학전 소극장만이 갖고 있었던 어떤 이미지라든지 차별점이라든가 가수 입장에서 느꼈던 것 중 혹시 기억나시는 게 있어요? 

 

박승화 : 그냥 뭐 느낌적인 건데요. 다른 공연장들도 크기나 사이즈는 비슷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해 보고, 초대 손님으로 가보면 학전에 들어갈 때의 그 느낌이 달라요. 왠지 여기는 명품을 하나 만난 것 같은 느낌? 


다른 곳들은 명품이라기보다는 굉장히 다 즐겨 할 수 있는 곳에 편하게 갈 수 있는 느낌. 왠지 학전 정도에서는 공연을 한번 해 봐야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면 내가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다른 어떤 묘한 매력이 있었어요, 학전은.

 

이세준 : 대표님이 김민기 선배님이시잖아요. 그분이 우리 가요계에 굉장히 지대한 영향을 끼치시는 분이 대표로 계시는 공연장일아는 것도 아마 영향을 좀 끼쳤던 것 같고, 그리고 일정 부분 시간이 지난 다음일 수 있겠지만 김광석 선배님이 거기에서 공연을 오래 하셨잖아요. 

 

그래서 뭐 대표적인 통기타 가수인 그분이 거기서 막 엄청나게 공연을 많이 하신 곳이다 보니 다른 가수들한테도 그런 영향을 또 많이 끼친 것 같아요. 특히 저처럼 김광석 선배님 시대 이후에 데뷔한 가수들은 “아, 여기가 김광석 선배님 공연하시던 자리잖아.” 그래서 그... (웃음) 그 무대에 나도 같이, 물론 동시간은 아니지만 마치 뭐라도 된 양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장소죠. 

 

박승화 씨는 김광석 씨하고도 인연이 있으시죠? 뮤지션으로서.

 

박승화: 학전에서 공연도 같이 했었고요. 사실 박학기 씨와 많이 가까웠었는데 알고 보니까 박학기 씨와 김광석 씨가 또 너무 친한 친구 사이여서 제가 아까 얘기했듯이 1집, 2집 솔로로 활동할 때 가수는 가수인데 뭐 무대가 없었어요. 그럴 때 박학기 씨가 저를 많이 불렀죠.

 

이 무대, 저 무대, 본인이 하는 무대에 저를 불러서 옆에서 기타 치고 코러스도 하고 그러다 보면 제 시간을 또 마련해 주셔서 제 노래도 한두 곡씩 부르고. 그런 모습을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김광석 씨가 어느 날 본인도 공연을 해야 되는데 그런 식으로 저랑 같이 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셔서 김광석 씨 공연에도 가서 똑같은 포지션으로 코러스를 넣고 기타를 치면서 공연도 많이 햇죠. 그러면서 지방도 같이 다니고.

 

또 박학기 씨, 김광석 씨 공연이 차이점이 많은데, 일단 목소리는 기본이고. 김광석 씨 공연은 너무너무 잘 돼요. 관객이 많이 오니까. 

 

이세준 : 차이점이 잘 되고 안되고야?

 

박승화 : 어. 

 

이세준 : (웃음) 

 

박승화 : 잘 되고, 학기 형 공연에는 연주를 해줬으니까 세션비로 용돈을 주시는데 광석이 형이 훨씬 더 많이 주시더라고요. 

 

이세준 : (웃음) 

 

박승화 : 이만큼 차이 나요. 

이세준 :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웃음)

 

김광석 씨 1,000회 공연 저는 본적이 없지만, 본적 있으세요?

 

이세준 : 아, 저는 처음으로 봤던 공연이 동물원 콘서트였어요. 광석이 형이 동물원 시절에 1집 ‘거리에서’ 그 노래하고 박기영 선배님이 부르신 ‘변해가네’ 이런 노래가 히트를 하고서 동물원의 첫 콘서트를 갔는데 제가 워낙 좋아하는 상태에서 가서 본 거죠.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본인이 처음 본 콘서트 그 가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그 순간은. 그런데 마침 그게 동물원이었고 광석이 형이 리드보컬이시니까 노래를 대부분 부르셨는데 와아~ 이건 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지?” 저도 솔직히 저희 동네에서는 학교에서는 거의 뭐 가수급으로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으니까. 

 

사실은 약간 기대감과 함께 나하고 조금 견주려는 그런 심리가 좀 정말 건방진 생각이지만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딱 공연 시작하는 순간 무릎을 일단 꿇고 그다음부터는 이제 경배하게 되는. (웃음) 너무나 훌륭한 보컬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이 나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나를 시선 한 가운데에 놓고 저 이야기들이 다 내가 겪은 이야기 인 것 같고, 나에게 벌어질 일들 같고. 뭐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착각인데, 더 크게 생각하면 커다란 감동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가창의 기술이나 이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네요.

 

이세준 : 그건 아니에요.

 

박승화 : 가창의 기술 같은 건 사실 없던 것 같아요.

 

이세준 : 스타일이지. 

 

박승화 : 네. 스타일. 그냥 키가 작고 기타 하나로, 목소리 하나로 나오는 그 쩌렁쩌렁함이라고 할까요? 단전에서 나오는 그 알찬 목소리가 듣고 있으면 빠질 수밖에 없어요. 목소리가 마치 이렇게 퍼져서 나가는 게 아니고 그대로 와서 내 귀를 딱 때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요. 듣고 있으면.

 

이세준 : 맞아요. 처음 공연 할 때는 굉장히 고운, 그리고 허스키하면서도 막 부드러운 목소리와 지금은 그냥 너무나도 흔한 것이 되었지만 굉장히 안정적인 바이브레이션. 그런 것들에 매료 됐죠. 그르고 공연장 가서는 그런 테크닉이 중요한 게 아니구나. 그리고 이 가수가 나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느꼈죠. 그 이후로 다른 공연도 많이 가 봤는데 모든 공연에서 그런 걸 느끼는 건 아니더라고요. 김광석, 동물원이라는 팀만이 가진 아주 독보적인 매력이 있던 거죠. 

 

학전 안에서 그 김광석 선배가 노래하는 거는 재연이 불가능하겠네요. 그 자리에 앉아서 그렇게 들어보기 전에는.

 

박승화 : 그렇죠. 다르죠. 

 

이세준 : 재미있는 것은 제가 공연 갔다 오고 며칠 있다가 친구집에 다녀 왔는데,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노래는 물론이거니와 그 대사 멘트 한마디, 한마디도 똑같은 거예요. 둘이 얘기하다가 “어? 그 얘기 너도 했어?” 그러니까 나는 보면서 분명히 나만을 위해서 해 주는 이야기인데 아니, 얘가 갔을 때도 똑같이 얘를 보고 해 줬단 말이야? 그러면서 배신감도 들고.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썼다라고 생각이 안 들고 처음 공연을 이제 매일매일 하시다 보니까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멘트를 했던 것이 나중에 저희가 가수가 되고 나서도 그때 기억이 되게 뭐랄까, 기댈 언덕 같은 게 됐어요. 저희도 공연을 한참 하면 어제 했던 얘기 오늘 또 하고 막 아까 낮에 했던 얘기 저녁에 또 하기 입이 되게 부끄럽거든요. 민망하고 그런데, 광석이 형도 그러셨는데, 뭐 (웃음) 괜찮겠지. 뭐

 

박승화 : 그러게요. 그런데 공연을 하다보면 그 타이밍에는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그런 호흡이 느껴져요. 그러니까 했던 얘기를 또 하게 되고. 약간의 변형이 일어날 수는 있어요. 그게 바로 관객과 눈을 맞출때 그날그날의 어떤 컨디션 때문에 말이 조금 다르게 나올 수는 있는데 뼈대라는 게 딱 생기게 되더군요, 멘트의 뼈대가. 그래서 매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즐겁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은 공연을 봤던 분들이 또 자리를 메워주시면 저 같은 경우에는 그게 좀 민망해서 같은 얘기를 또 하는 게 지겹지 않으실까. 똑같은 노래를 매일 하는데 그걸 듣고 계시면 지겹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조금 주춤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 팬한테 어떨 때는 물어보기도 하죠. “맨날 똑같은 거 이렇게 듣는데 괜찮으세요?” 

 

그런데 음반 듣는 거랑 똑같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음반 맨날 똑같은 시스템을 계속 듣는데 여기는 다르다. 그렇게도 듣는데 이렇게 공연을 보면서 듣는 거는 그건 다르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말고 공연해 달라고. 그때 조금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 이래도 괜찮은 거구나.”

 

이세준 : 그리고 심지어 이런 말씀도 하죠. “오늘은 저번에 그 이야기 재미있는데 그거 왜 안 하셨어요?” 우리는 “아유, 저분들 욕하겠다, 하지 말자” 이랬던 건데 서운해하시고 그러니까 노래 중간중간에 멘트라는 게 그냥 어떤 노래를 잇는 어떤 형식적인 거라기보다 처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이 다 하나의 퍼포먼스인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이신 거죠. 

 

그래서 노래와 노래 사이에 어떤 정서가 흘러가고 그 정서가 어떤 이야기에 담기고 그래서 다시금 어떤 노래로 이어지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흐름을 이루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괜한 걱정을 한 거죠. 그런 얘기 듣고 나서부터는 좀 더 두꺼워졌죠. (웃음) 그냥 하던 거 하자.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광석이 형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저희는 공연할 때 작가분을 섭외해서 원고를 부탁하고 이러지는 않았거든요. 첫날 첫 공연은 무조건 그냥 즉흥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저희도 모르게 재미있게 나왔던 이야기들이 2회, 3회 가면서 이렇게 정리가 되고 몇 회 지나고 나서부터 끝까지 흘러가고. (웃음) 그랬던 경우가 많았죠. 

 

김광석 씨는 1,000번이 넘는 1인극을 하신 것 같은 느낌인데

 

박승화 : 그렇게 이야기 해도 혼자서 다 한 것 같네요. 

 

이세준 : 광석이 형도 관객분들한테 가까이 와 있으면 광석이 형이 할 얘기 관객분들이 다 먼저 앞에서 하고. (웃음) 무슨 얘기가 나올지 아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서 경험하신 분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하다가 누가 말 하면 무대위에서 있는 입장에서 재미있는 얘기해야 되는데 관객 중 한명이 먼저 치고 나올떄가 있는데, 그분도 자기도 모르게 하는 걸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짜증이 날 법도 하고 화가 날 법도 한데 광석이형은 “허허허허” 웃고, 사람이 참 좋더라, 그런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김광석 공연의 폭발적인 인기에 대해서 궁금한데 어땠나요?

 

박승화 : 네. 공연장의 모습 중에 하나. 워낙 많은 분들이 오시는데 그 학전 공연장이었어요. 옆에 문을 떼어버린 거죠. 그리고 더 관객을 앉히시기도 하고, 1층 객석에 옆으로 보면 문이 있어요, 또. 벽에 

 

이세준 : 그러니까 문이 있고 그다음에 작은 문이 하나 더 있고 대기실이 있거든요. 불과 한 두세 걸음 정도 되지만 

 

박승화 : 응 그거를 떼기도 했고, 제가 들은 얘기로는. 그리고 워낙 관객 여러분들이 많이 오시고 싶은데 아이들이 있으면 공연 보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을 따로 봐줄 수 있는 선생님을 모셔서 아이들도 데리고 오면 그 선생님이 공연하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이런 시스템도 갖춰 놨다고 제가 얘기를 들었어요. 그 당시는 못 봤는데.

 

이세준 : 그리고 공연이라는 게 보통 주말에 1회 하고 토요일, 일요일 2회 이렇게 하는데 주중에도 2회씩 하셨잖아요. 주중에도 있고.

 

박승화 : 사실 저희도 가수지만, 김광석 선배가 노래를 살살 부르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온 몸으로 부르는데 그렇게 노래를 한다는 게 정말 타고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그거는 관리로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목이 상하기 때문에. 그런데 늘 그렇게 했단 말이죠. 대단한 거죠.

 

저희는 3회 공연도 해봤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낮, 저녁, 밤 11시공연. 그런데 다음 날 못하겠더라고요. 

 

이세준 : (웃음) 멋모르고 그때는 저희도 이제 좀 잘 될 때라 그 공연 기획하신 분이 욕심이 많았던 거죠. 한 회라도 어떻게 더 끼워 넣으려고.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그래서 했었는데 저희는 둘이 나눠 하는 건데도 “이야, 이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아마 광석이 형도 그때 김민기 선배님의 의중이 많이 반영된 회차 추가였을 거예요. 기획자들의 마음은 다 같으니까.

  

후배 혹은 동료 음악가들에게 김광석이라는 이름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세요? 

 

이세준 : 김광석이라는 사람은 통기타 가수가 어떤 시대에 어떻게 활동을 했고 무슨 노래를 불렀고 어떤 발자취를 남겼다라는 가수 선배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장르. 즉 김광석이라는 장르.

 

물론 포크 안에 답은 대부분이 포함돼 있겠지만, 그 포크라는 범주 안에 김광석이라는 가수를 담아두기에는 너무 큰 것 같아요. 포크라는 말이 김광석을 다 담아내지 못해요. 김광석은 그냥 장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너무나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간 그런 슬픈 이유 때문이긴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은 늙지를 않으시잖아요. 딱 그때 우리 곁을 떠나던 그 시절에 머물러 계시면서 그분은 가만히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늘고 새로운 젊은이들이 유입되고 또 그분들이 나이 들고. 이거는 진짜 음악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축복 아니겠어요? 우리는 뭐 감히 생각도 못 하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박승화 : 후배들한테 그런 이미지로 남아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굉장히 너무 까탈스럽지 않게 노래하고, 컨디션을 따지면서 노래하지 않고 “나는 가수니까 언제든지 노래를 할 수 있는 이런 늘 준비가 되어 있는 목.” 사실 가수로서 노래를 하는 것도 건강해야 되는 거고 목이 일단 좋아야 좋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거잖아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 피곤한데도 목이 쉬었다는 말을 그렇게 들은 적이 없어요. 

 

목이 쉰 상태에서도 관객과 그 쉰 상태의 목으로 다 전달을 또 해요. 아“유, 힘들어서 나 오늘 노래 못 해”라는 소리를 못 들어봤던 것 같아요. 지방 다니면서도 그렇게 피곤하고 전날 과음을 하고 공연한 적도 없지 않아 있는데 그래도 공연장에서 보면 도대체 어제 나랑 함께했는지 자체를 모르겠어요. 그만큼 자기 관리일 수도 있죠. 그냥 노래를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모습을 늘 지니고 있는 어떤 가수, 모범적인 그런 모습. 후배들이 좀 많이 따라와 줬으면 좋겠어요. 

 

이세준 : 저는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는 게, 승화 형은 광석이 형하고 뭐 같이 공연도 많이 하시고 추억도 많이 쌓고 이러는데 저는 개인적인 친분은 거의 거의 없죠. 그러니까 인사는 드린 적이 있지만 그분이 기억할 만한 정도의 자리는 전혀 아니었고, 제가 데뷔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만나서 이제 대화를 나누고 이럴 만한 기회도 없었던 거예요. 

 

참 아쉽기는 한데,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인데, 제 데모 테이프. 저도 가수가 되기 전에 제 데모테이프가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녔나 봐요. “이것 좀 들어봐 줘, 들어봐 줘.” 하면서. 그래서 나중에 김광석 선배님도 제 노래를 들으시고 “아유, 노래 잘한다.”라고. 물론 그냥 하는 얘기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얘기를 남겼다는는 얘기를 김창기 선배님한테 전해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더 가까워진 것 같고. 그동안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라는 걸 저희가 10여 년 동안 같이했는데 저 말고 다른 기존 멤버들은 다 진짜 친한 분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만 좀 친분이 덜햇는데, 그 얘기 들으니까 “아, 그럼 나도... 나도 아셨던 거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그 여름 동물원>이라는 뮤지컬을 하게 된 거예요. 그 뮤지컬은 동물원 멤버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 당연히 김광석 선배님도 있죠. 그 캐릭터도. 제가 맡은 캐릭터는 창기 형. 김창기라는 캐릭터인데 그 공연을 하면서 제가 이제 뭐 객석에서만 봐야 했던 혹은 사람들에게 전해 듣기만 했던 인간 김광석의 고뇌와 어떤 역사 이런 것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러고 나니까 광석이 형 노래가 또 달리 들리는 거예요. 부를 때 또 느낌이 또 다르고. 저한테도 참 정말 양파처럼 늘 새롭더라고요. 

 

공연을 1,000회 진행하고 생긴 별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알고 계세요? 

 

박승화 : “혹시 또 해?” 네 또 해였어요. 어떤 의미인지 아실 거예요. “광석이 공연 끝났는데?” 이런 소리들이 막 들려요, 선배님들한테. 그런데 또 며칠 후에 보면 또 포스터가 붙어 있어요. 그걸 보고 주위에서 “야, 또 하냐, 얘?” (웃음) 그러다가 또 해라는 별명을 갖게 됐죠, 또 해. 1,000회라는 게요.

 

그리고 저는 계속은 아니지만 놀러가거나 이런 식으로 갔었죠. 공연 끝나고 나서 살짝살짝 식사하는 자리에도 가보기도 했죠. 

 

이세준 : 그 당시 광석이형 포스터 붙이던 사람 중에 황정민 배우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박승화 : 오, 자리 배치도 하고.
 

 

(2부에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민트박스엔터테인먼트]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최승원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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