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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2
by 최승원

‘동아기획’이라는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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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2-22작성자  by  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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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동아기획에는 어떻게 들어가셨나요?

 

박승화 : 동아기획은 참 우연한 계기로 동아기획에서 매니저를 하던 분이 제가 입대 전에 아르바이트로 노래 하던 곳이 종로 쪽이었는데, 거기 매일 오던 단골 손님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연락을 주고받았죠. 휴가 나오면 만나기도 하고. 그랬던 분이 갑자기 제가 전역할 때쯤에 연락이 닿았어요, 우연히. 그 당시면 광화문 동아기획 그쪽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제대했으면 한번 와 보라고. “너 노래 계속했니?” 뭐 이런 이야기와 함께. 

 

그래서 일단 가봤는데, 동아기획에 그 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 분이 아니셨어요. 아니 사실 닭 잡는 분이었어요. 닭 차를 몰고 다니는 그런 분이었단 말이죠. 

 

이세준 : 닭 잡는 사람이랑, 음악 하는 사람이랑 생긴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박승화 : 그건 아니지만, 그냥 가봤죠. 내가 아는 동아기획에 왜 이 사람이 있지 하면서 말이죠. 그 사옥에 들어갔는데, 포스터에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식, 신영화, 한영애 이런 분들 포스터가 붙어 있던 기억이 나요. 근데 그분이 거기서 매니저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영 사장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빠르게 진행됐죠. 녹음을 하고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어요. 만들어서 들려드렸는데 정말 흔쾌히 내일 계약 하자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이게 꿈인가 싶었죠. 그 당시 동아기획이면 음악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마니아도 형성되어 있었고, 그 패밀리들도 모를 수가 없잖아요.

 

이세준 : 네, 회원카드가 지금도 기억나요. 동아기획 음반을 사면, 회원가입 뭐 신청서 같은 게 있어요. 그걸 작성하고 동아기획에 보내니까 이세준이라는 이름이 찍혀서 회원권이 와요. 그러면 그거 갖고 있으면 동아기획 가수 콘서트 20% 할인되고 항상 소식지 같은 게 오고 그랬었어요. 

 

박승화 : 그것만 있어도 괜히 기분 좋고. 

 

프로로 데뷔하기 전 리스너로서 동아기획 레이블에 대한 이미지는 구체적으로 어땠나요?

 

박승화 : 일단 음반을 사러 가면 동아기획 소속 가수들의 음반을 먼저 사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해 봐요. 여러 가수들이 있지만. 그리고 거기 출신 가수들 거기 소속된 가수들의 음반을 사면 좀 돈이 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어릴 때.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나 뭐 군대 가기 전에 노래를 많이 할 때도 거의 동아기획에 있는 가수들의 음반들이 제 양식들이었죠. 

 

한 앨범에 뭐 10곡, 12곡 들어 있던 그 노래들 하나하나가 지금 뭐 곡도 만들어 보고 또 노래를 하면서 테크닉도 배워 보고 하나하나가 다 교과서였던 것 같아요. 특히 어떤 노래가 너무 좋았다라고 얘기할 수도 없이 모든 곡을 소중하게 한 곡, 한 곡 들었던 노래들인 것 같아요. 

 

이세준 : 당시에 TV에 안 나오는 가수 분들이었어요. 그때는 라디오가 TV보다 훨씬 가요 쪽에서는 영향력이 크던 시절이잖아요. 그러니까 TV 출연을 안 해도 얼마든지 최고의 가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그런 시대였는데 그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게 동아기획이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고 너무 좋아서 음반을 사러 가보면 동아기획 음반이었고. 어느 또 신인 음반이 나왔다 하면 약간 그게 어느 정도의 크레딧처럼 느껴져서 그걸 그냥 듣지 않고도 사서 들어보고 막 그랬던 경험이 있어요. 저도 처음에 승화 형이랑 포항에서 만나고 솔로 가수를 준비할 때 그때가 형이 동아기획 소속이었던 때거든요. 그래서 저도 동아기획에서 음반이 나오고 했었어요. 

 

박승화 : 가수 생활 하면서 동아기획 선배님들한테 배운 건 하나 있어요. 지금도 그게 많이 남아서 사무실 매니저분들하고 좀... (웃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거든요. 방송을 저는 해야 되면 무조건 해야 된다고 저도 어릴 때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배님들이 하는 모습 보니까 “야, 이건 내가 가면 안 될 것 같다”라는 건 정확하게 안 하시더라고요. 

 

“내가 여기 가서 뭐 해, 이런 거.” 그게 은연중에 몸에 베어가지고. 이세준 씨는 그래도 많이 타협하고 방송 출연을 해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매니저들이 저를 설득하려고 살들이 빠지고 있을 거예요. 아주 안 좋은 걸 배운 것 같아요. 그만큼 본인들의 음악에 너무너무 자신감들이 있으셨던 거죠. 자부심들이. “나 이거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뭐 이렇게 표현하면 좋겠네요. 

 

이세준 : 그 안에 스타가 되고 싶어서 음악을 하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셨던 것 같아요. 

 

박승화 : 그런 사람은 없었죠. 

 

이세준 : 진짜 내가 좋아서 하는 거고 내가 좋아하는 내 음악을 사람들이 좋아하면 땡큐인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웃음) 그런 것이 건방지다기보다는 진짜 자신감과 자부심, 음악 본질.

 

박승화 : 그게 굉장히 멋있게 보였어요.

 

동아기획에서 앨범이 발매 됐을 때, 형태가 어땠어요?

 

박승화 : 첫 앨범에 김현철 씨의 곡으로 제가 데뷔를 했죠. 제가 그 매니저 덕분에 김영 사장님이랑 얘기를 나누고 나서 곡을 그때만 해도 제가 곡 쓰는 게, 곡을 만드는 게 자신이 없을 때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곡을 받아야 되는데 아무래도 가깝게 있는 분의 곡을 받자 했는데 그 당시에 김현철 씨가 딱이었죠. 그래서 김현철 씨 작업실 가서 들어보고 이 노래 하자 해서 녹음을 하게 됐죠. 노래를 들어보면 중간 간주 부분이 연주가 아니고 허밍으로 “우우~~ 워우워~”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걸 김현철 씨가 했어요. 그래서 그 음악이 잘 안된 것 같다고. (웃음) 가끔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많이 하죠. 거기서 왜 해.

 

이세준 : (웃음)

 

박승화 : 그런 식을 곡을 주고 받고, 공연 때 코러스로도 참여 많이 했고, 연주로도 참여 많이 했죠. 선배님들 중에서는 박학기 씨가 하모니카 연주하러 많이 갔었던 것 같은데. 

 

신(Scene)에서 앨범이 나올 때 거의 패밀리 안에서 다 해결이 된다고 보면 될까요?

 

박승화 : 아무래도 제가 잘 기억이 안나는데, 많이 그랬을 거예요. 가까운 곳에 이 연주, 저 연주 하는 분들이 다 계시니까. 신촌 블루스 엄인호 씨한테 부탁을 했어도 가능 했고, 옛날 동아기획에 들국화가 있을 때는 제가 없었거든요. 그때는 손진태씨가 기타 세션으로 날리고 있는데, 손진태 씨한테 기타 연주를 다 맡길 수도 있었겠죠. 굉장히 그런 일은 많이 있었을 거예요. 

 

들국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어떠셨나요?

 

이세준 : 저는 팬이었죠. 그 당시에는 뭐 100%는 아니지만, 당시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박승화 : 싫어도 좋다고 그래 (웃음) 그런느낌. 왠지 내가 들국화를 안 좋아하면 왕따가 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죠.

 

이세준 : 정말 새로웠어요. 분명히 한국 사람이 연주를 했다고 하지만, 한국 사람이 한국 말로 노래를 하는데, 가요가 아닌 것 같았죠. 믿어지지 않는 혁신적인 음반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평론가와 팬들이 대한민국 역대 최고 명반을 꼽을 때 자주 회자되는 음반이기도 하고. 그정도로 들국화 1집은 충격 그 자체였죠.

 

비록 음악 스타일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사람도 정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앨범은 들국화 음반이었어요. 말이 안된다고 하면서 계속 들었어요. 친구들이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고.
 

동아기획 하면 김현식 선배님을 빼놓을 수 없는데. 김현식 선배님을 어떻게 보셨나요?

 

이세준 : 정말 끝까지 기억에 남는 노래와 뮤지션은 시대의 흐름으 잘 탔다거나,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사람이 아닌, 그러니까 김광석 형님하고 김현식 선배님은 음악의 결이 굉장히 다름에도 본질이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뭔가 그분은 노래를 할 때 일부러 멋지게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저한테 쏴버리는 분들. 그걸 맞고 저는 쓰러지는. 그런 지점이 두 분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박승화 : 그리고 보니까 노래할 때 정말 기교가 좋은 가수들보다는 그 기교를 안 부리면서 노래를 정통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 두 분은. 김현식 씨의 목소리, 그 샤우팅이라는 그런 단어를 저는 김현식 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알았거든요. 약간 좀 목을 턱 조이면서 배로 힘 있게 내지르는 이런 모습을. 

 

김현식 씨 노래를 들으면서 아, 이게 샤우팅이라는 거구나 알게 됐는데 그런 거조차 어떤 큰 기교라기보다 그냥 감정, 감성을 내세워서 본인이 즐기면서 그냥 했던 것 같아요. 특별한 기교보다는. 

 

이세준 : 내일이 없는 듯이 노래를 하셨죠.

 

유리상자가 결성된 후 어떤 롤모델이 있다고 들었는데 얘기 좀 해주세요.

 

이세준 : 1집 녹음할 때 롤모델, 제대로 롤모델이 있었죠. 시인과촌장이었어요. 하덕규 씨, 함춘호 씨가 함께했던. 시인과촌장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냥 듣고 있으면 잠이 올 만큼 마음이 편했던 노래들. 그래서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리메이크를 해서 저희 데뷔 앨범 1번 트랙에 수록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 의아한 선택일 수도 있었는데. 그 마음을 담아서 시작했었고 최근에도 박학기 씨와 함께 ‘사랑일기’라는 노래를 리메이크 해서 발표했어요. 개인적으로도 뭐 하덕규 씨나 함춘호 씨나 두 분 다 너무 좋아하고 친하고 가깝게 지내는 선배님들, 큰형님들이시죠. 

 

박승화 : 정말 가시나무 같은 경우에는 신경 많이 썼잖아요. 노래도 그렇고 연주도 그렇고. 소위 말해서 제작자가 돈을 좀 많이 들여서 녹음을 했어요. 현악기 하시는 분들도 시향도 부르고 해서 열심히 불러서 노래도 마음에 들게 다 불러 놨는데 사실 그 노래가 타이틀곡은 아니었으니까. 저희들만의 기념으로 시인과촌장의 가시나무를 불렀는데 조금은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죠. 그런데 몇 년 있다 조성모 씨가 가시나무를 타이틀곡으로 정하면서 노래를... (웃음) 조금 아쉬웠어요. 우리도 했는데. 

 

이세준 : 그렇죠. 그다음부터 저희가 이제 가시나무 어디서 부르면 "아유~ 조성모는 노래도 참 잘 부르지.” (웃음) 시인과촌장은 아예 모르시고 저희가 부른 건 더 모르시고. 조성모 씨 노래로 처음 알게 되신 분들이 많으시니까. 그런데 그게 되게 좋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좋은 노래를 우리가 알리는 데 실패했지만 “그래, 성모야. 니가 해내는구나.”

 

박승화 : 들국화 노래도 저희들이 리메이크했었잖아요. ‘제주도의 푸른 밤’. 많은 가수들이 했지만 저희들도 꽤 일찍 리메이크를 했는데 이 노래도 역시 성시경 씨가 타이틀곡을 내서 부른... (웃음) 우리도 했는데, (웃음) 

 

다시 학전 얘기로 돌아와서, 유리상자에게 학전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어요?

 

이세준 : 우리 태어난 산부인과 같은 곳이라고 해야하나? (웃음) 우리 유리상자가 “진짜, 우리 스스로가 아, 우리가 정말 가수구나. 정말 가수가 되었구나.” 유리상자라는 이름으로 떳떳하게 대중들 앞에 친척 모임에서도 충분히 이제 얘기를 할 수 있겠구나라고 확신을 준 곳이죠. 저희가 아까 말씀드린 대기실에서 커튼 들춰 보던 그 보조석에서 진짜 태어났어요 유리상자는. 

 

박승화 : 학전이라는 극장을 넘어서, 거쳐서 유리상자로 지금까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아주 고마운 곳이죠. 

 

이세준 : 그리고 소극장이 많이 없어지고, 지금은 학전만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광석이형의 유산이 아닐까.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거기서 1,000회 공연을 하지 않았다면 민기 형에게는 죄송하지만, 아마 장담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굉장히 의미가 크고, 관객들도 그 공연장을 아겨주시고, 동료들, 배우들, 가수들도 얼마나 아끼는지 몰라요. 

 

그래서 많은 가수들이 모여서 학전 공연도 시작했고, 앞으로고 계속될 것 같고요. 

 

박승화 : 학전 가보면 아시겠지만, 거기 김광석 씨 벽화가 있어요. 거기 가면 많은 분들이 거기다 꽃이랑 워낙 담배도 많이 피웠었으니까 담배도 하나 올려놓고 해서 들어가고. 그러니까 그런 모습들 때문에 많은 대중들, 또 음악 하는 분들한테 각인이 되어 있어서 다들 없어지는 이런 소극장이 없어지는 추세에도 학전이라는 곳은 우리에게 계속 남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봐요.

 

이런 질문 많이 받아보셨을텐데, 유리상자에게 제일 소중한 노래는 뭐예요?

 

이세준 : 저희를 처음 세상에 알린 곡이자, 작사, 작곡 호흡을 같이 맞춘 ‘순애보’에요. 그냥 우스갯소리로 저희 식생활을 개선시켜 준 노래라고 말씀드리는데. 음반 낼 때까지만 해도 똑같이 살았었는데 우리 마음속에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은 진짜 저희 어머니가 가족 모임에 가서 “막내 뭐해? 그러면 아, 요즘 노래해. 순애보 몰라?” 이렇게 떳떳하게 말씀하실 수 있게 만들어 준 진짜 너무 고마운 노래죠.

 

 

[사진 출처=민트박스엔터테인먼트]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최승원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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