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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by 우정호

‘살아있는 음악’ 강조하는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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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2-05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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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 이어집니다.)

 

 

- 선생님 곡 <봉우리>는 1984년 LA 올림픽에 참가했으나 메달을 따지 못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아쉬운 사연을 다룬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민기 : 그 노래가... 송지나라는 애가 있어요. 걔한테 말린 건데. 

 

- SBS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한 작가시죠. 그 이전부터 다큐 작가로 더 유명했고요.

 

김민기 : 걔가 제주도 여자 아인데 되게 똘망 똘망해요. 처음에 작가로 입문한 게 양희은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 대본 작가로 시작하면서 양희은이랑 음반 작업하고 그러느라고 나보고 ‘아저씨, 아저씨’하고 그랬죠. 그러다가 MBC에서 처음으로 입봉을 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 입봉 프로그램으로 84년 LA 올림픽 관련 다큐를 만들어야 된다고. 이걸 구성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면서 ‘아저씨’ 그러면서 칭얼대면서 애교도 부리고 그래 가지고. 내가 “대부분 TV 프로그램이 금메달리스트를 다룰 거 아니냐. 넌 반대로 가봐라. 거기서 떨어진 놈들을 한 번 해봐라”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2, 3일있다 다시 찾아와서는 “그렇게 할 테니까 아저씨가 주제곡 해주세요”하더라고요. 내가 말 던졌다가 책임져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된 거지요.

 

-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위한 최초의 기록’인 그 다큐멘터리는 이후 몇 년 동안이나 회자가 됐습니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을 위한 무대를 만든 ‘학전’의 주요한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입니다.

 

김민기 : 그래서 얘기했던 게, 오버그라운드는 경영 기획에 따라 금세 날아가는 유행들이고 그라운드 아래 있는 지하수 같은 게 우물이 되고 다 그러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지켜야 한다고. ‘언더’ 같은 빛바랜 용어로 칭하지 말고. 그게 생명력이에요. 지켜져야 하고.

 

- ‘끝자락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바와도 같은 얘기로 들리는군요.

 

김민기 : 그런데, 돈 앞에 장사가 없어서.

 

- 성공한 사람만 주목받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조명 받지 못한 존재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우신 거지요?

 

김민기 : 그렇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조명 받고 있는 오버그라운드라는 것들이 재미가 없어요. 그건... 조명이 꺼지면 사라지는 것들이고 하니까. 그림 그릴 때부터 생긴 버릇, 그러니까 일종의 리얼리즘이라고 봐야지요. 그러니까 훨씬 지저분하고 찌그러지고 그런 것들이 그릴 대상이 되는 거지, 이미 화장하고 라이트 받고 그런 것들은 금세 사라지니까. 살아있는 것들이 자꾸 보이는 거지요. 

 

- 그런 대상들이 더 드라마틱해서가 아닐까요?

 

김민기 :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요.

 

-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시각도 같은 관점으로 보이는데요. 대중음악사가 완성되려면 주류 음악뿐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음악도 조명돼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김민기 : 나는 주류를 부정하는 게 아니고, 이야기했지만 주류나 미디어는 해왔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겠지만 그럴수록 저쪽 구속의 어떤 한쪽을 놓으면 안 된다 이거지. 그런데 서태지 음악 나오고 나서 디지털 음악, 컴퓨터로 만든 음악들이 나오면서 연주자들이 많이 없어진 거예요. 전부 다 찍는 음악(미디 음악)으로... 

 

- 선생님께선 미디로 음악 만드실 생각은 없으셨나요?

 

김민기 : 아니, 내 음반에도 미디 많아요. 그러나 음악의 생명력이 아날로그에 있다는 얘기고. 그 부분을 놓치면 안 된다 이거지.

 

- 아무리 미디 음악의 세상이지만, 아날로그 스킬을 제대로 습득한 분들 음악이 더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니까요.

 

김민기 : 길게 봐서 그렇게 되겠죠. 사실 피아노도 현악기에서 온 거지만, 기타도 그렇고 오리지널 현악기 음원을 들어보면 ‘끽 끽’하고 이렇게 끌리는 소리가 있지요? 슬라이드 소리가 아니라 손가락 옮기느라 ‘끽 끽’하는 소리가 들어있는 음원하고 기타를 미디로 찍어놓은 음원하고 천지차이일걸? 김광민인가? 내가 음반낼때 와서 피아노 치는데 피아노가 하도 후져가지고 이게 조율이 자꾸 풀리는 거예요. 그러까 이 새끼가 페달을 걸어놓고 이렇게 치더라고. 그래서 그 음반 들어보면 페달 밟는 소리가 있어요. 피아노 치는데 페달 밟는 소리가 들어가야 될 거 아니에요.

 

하여튼 그런 존재하는 소리가 플레이에 있으면 좋겠다 이거예요. 물론 계산해서 다 집어넣을 수도 있지만. 피아노 페달 소리도 들어가고, 소리가 좀 풀릴 때도 있고 현장에서 만들 수 있는 그런 살아있는 소리가 소중한 거 아니냐. 오리지널은 이런 거란 말이죠. 그걸 계산해서 만들면 이미테이션인 거고.

 

- 김광민, 이병우 같은 훌륭한 연주자들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분들이시죠.

 

김민기 :학전 시작하고 앨범 선금 받아 음반 넉장 만들면서 병우도 그때 막 귀국할 때였거든요. 소위 버클리 1세대라고 해야 하나. 귀국할 때 미리 연락을 해서 “이곡, 이곡 준비해가지고 와라” 그래서 ‘가을 편지’를 녹음했고, 광민이는 ‘봉우리, ’아침‘ 이런 곡들하고. 그 음반 녹음할 땐 정말 녹음실도 못 빌렸어요. 무슨 돈이 있어서 녹음실을 빌려. 여기저기서 돌아다니면서 그냥... 그 음반은 그래서 병우하고 광민이가 일을 해줬지요.

 

학전 콘서트를 할 건데 병우도 꼭 쓰고 싶어요. 탁월한 건 재일(정재일)인데 재일이는 너무 상종가라서 부르기 어려울 거 같고... 광민이는 지난번에 했었지. 막 유행 따라가는 그런 사람들 말고 이런 연주자들이 얼마나 소중하냐 이거예요. 예를 들어 록 같은 건 4/4 박자 비트로 때려 부시는 거지만 이런 연주자들은 메트로놈으로는 나올 수 없는 그런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요.  

 

- 확실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된 옛날 음반과 요즘 나오는 음원들과는 감흥이 많이 다르겠군요.

 

김민기 : 많이 다르죠. 77년인가, 78년인가. 양희은 ‘상록수’들어가는 음반을 녹음하는데, 그 시절 한국 녹음 기법에서 ‘멀티 트랙’이라는 개념이 처음 들어왔어요. 그 이전에는 스테레오로 녹음하고 거기에 가수가 더빙하는 식으로 했었는데, 멀티 트랙이 들어오면서 녹음에서 메트로놈이라는 게 78년에 처음 들어왔어요. 그때 창식이 형(송창식)이 음반 녹음할 때 도왔는데, 창식이 형 하는 말이 “야, 이 메트로놈 박자 안 맞는데?” 그러더라고. 말이 안되지요. 메트로놈은 물리적으로 딱딱 맞는 건데. 

 

그런데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창식이 형 이야기가 맞아요. 녹음을 멀티 트랙으로 잡을 땐 어떤 (박자의) 기준치가 있어야 하니까 메트로놈이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가령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가 뭘 지휘한다고 하는 건, 메트로놈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음악이 흔들려야 되는 거지. 어떨 때는 당겨지고, 느려지고. 그래서 그렇게 라이브의 중요성을 거듭 이야기하는 거예요. 옛날 명반은 ‘여기 빨라지는데’, ‘여기 느려지는데’ 이게 다 있거든요. 사람 호흡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기계가 아니니까. 그래서 서툴게 들리는 한이 있더라도 라이브가 소중하다는 거지요. 살아있는 음악이니까.

 

- 십 년 전쯤 인터뷰에서 눈여겨 본 뮤지션으로 ‘루시드폴’이라고 답하신 적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뮤지션을 꼽을 수 있을까요?

 

김민기 : 그때 걔가 여기서 콘서트 했을 거예요. 지금 현재 쭉 작업 해온건 재일이(정재일).

 

- 그밖에 또 있을까요?

 

김민기 : 내가 잘 모르니까... 뭐 음악 쪽으로는. TV 볼 시간도 없는데 뭐. 

 

- 선생님께서 90년대 발표하신 네 장의 음반들은 70년대 발표하신 기존 포크 곡들과 비교해 다양한 악기가 편성되는 등 사운드가 풍부해졌습니다.

 

김민기 : 가령 <철망 앞에서>라는 노래가 있는데, 동익이(조동익)한테 편곡을 맡겼지. 그랬더니 역시 드럼 찍어서 들어오고. 그 당시 풍조니까, 그 당시에는 다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광민이는 메트로놈을 안 쓰더라고요. 물론 병우도 메트로놈을 안 쓰고. 

 

- 작곡하신 노래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을까요?

 

김민기 : 전부다 싫어.

 

- 왜요? 

 

김민기 : 넉 장 음반내고선 다 잊어버렸는데요. 그런데 그런 게 있어요. 전에 어디서 한번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쟁이’라고 할까요. 누군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느라고 얼마나 그냥 막 속에서 지지고 복고했겠어요. 겨울이면 내복 입는 게 필수잖아요. 결과물들은 여러 번 입은 내복 같은 거예요. 퀴퀴한 냄새가 난다는 거죠. ‘쟁이’들은 했던 걸 잊어야죠. 했던 걸 버려야 돼요. 

 

- 그럼에도 선생님 곡 ‘봉우리’는 시대의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민기 : 진공관 앰프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 음반 LP가 회자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원래 음원을 LP로 튜닝해서 만들었다고. 내가 그래서 속으로 좀 웃은 게... 그 노래 녹음했던 게 조동진의 하나 음악 녹음실이었는데. 녹음실에 조그마한 환풍구가 있었거든요. 밤에 녹음하는데 밖에 지나가는 찻 소리, 뭐 강아지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이런 게 다 들어가 있어요.

 

- ‘봉우리’를 수없이 들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김민기 : 나만 알지요. 들으면 ‘개소리 나네’, ‘화장실 소리네’하면서. 

 

- 당시 녹음실이 그렇게 열악했나요?

 

김민기 : 연습실이나 마찬가지였지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소리가 있는지 모를 거예요. 나만 알 수 있어. 하도 밖에 잡소리가 많아서, 가령 노래 사이에 잡소리들 때문에 지운 흔적이 많아요. 그러니까 노래가 나올 때는 뒤에 ‘웅웅’ 소리가 있다가 잡소리 지운다고 ‘웅’소리가 갑자기 꺼지면 괴이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남겨둬야 하는데 잡소리가 하도 많아서 계속 잘라냈지요. 그러니까 믹싱이 엉망이지. 

 

- ‘봉우리’를 진공관 앰프에 LP로 플레이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김민기 : 그러니까 진공관 앰프에로 그 노래를 들으면 소리들이 더욱 뭉뚱그려져요. CD로 들으면 지워진 게 명확하게 나온다고요, 지워진 게.

 

- 리스너들 입장에선 의도를 가진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김민기 : 전혀. 그게 아니야. 없는 살림에 그렇게 한 거예요. 그런데 ‘봉우리’를 발표하고 났더니 조용필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발표하더라고. 봉우리를 듣고 바로 그 작업을 했던 거 같아요.

 

- 조용필 선생님께서도 ‘김민기는 외길을 걸어온 존경하는 뮤지션이다’라고 오래전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조용필 선생님과도 만나신 적 있으신가요?

 

김민기 : 술 잘 먹더라고. 강헌이라고 있잖아요.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어디다 올렸더라고. 그런데 2차에서 조용필이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강헌이가 그러는데. 내 기억에는 ‘아침이슬’이 아니고 ‘친구’였어요. 조용필이 나보다 한 살 많거든요. 그날 친구 먹자고 해가지고. 그때까지 내가 깍듯하게 존댓말을 했었거든요. 친구 하자고 그러면서 ‘친구’를 불렀던 거 같아요.

 

- ‘킬리만자로의 표범’에도 ‘봉우리’처럼 내레이션이 등장하지만 분위기가 다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내레이션이 저 높은 산 꼭대기 위에서 승자의 고독을 뱉어내는 느낌이라면, ‘봉우리’의 내레이션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김민기 : 그날 술 많이 먹고 했는데.

 

- ‘봉우리’는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낮은 목소리라고 느껴집니다.  

 

김민기 : 깨져본 놈들을 위한 곡이니까.

 

 

 

[사진출처=학전]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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