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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0
by 우정호

발라드라는 나무를 심기에 비옥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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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2-20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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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가수' 백지영의 출현은 센세이셔널했다. 리키 마틴과 제니퍼 로페즈가 라틴팝으로 빌보드를 점령하던 세기말, 국내 가요계에도 라틴 댄스 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짧은 성공 이후, 그녀의 이름은 스캔들 속에 남은 채 가요계의 수면 위로 등장하지 못했다. 

 

수년이 흐른 뒤, 백지영이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사랑 안 해'를 외치며 가요계에 돌아왔을 때, 대중들은 인생의 높낮이가 녹아있는 그녀의 짙은 호소에 감화됐다. 발라드 가수로 변신에 성공에 그치지 않고 내재돼있던 발라드를 향한 진심에 전력을 다했을 때, 백지영은 이미 '디바'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아카이브 K는 백지영과 2020년 7월 인터뷰했다.)  

 

 

 

- 유년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가수가 되는데 영향을 준 뮤지션은 누구였나요?

 

백지영 : 어린 시절에 아빠가 EBS 하고 뉴스, 골프 아니면 안 보셨어요. 그래서 TV를 통해 음악을 접한 적은 없는 것 같고. 초등학교 때보단 중학교 들어가서 음악을 들었어요. 카펜터즈를 들었고, 머라이어 캐리가 그때 나왔고요. 그리고 왬(WHAM!)이라는 남성 듀오를 되게 좋아했어요.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라고 하면 카펜터즈인 것 같아요. 정서 자체가 좀 잔잔하고, 여자 싱어분 발음이 굉장히 정확하면서도 약간 허스키하면서 중저음 톤이었는데 거기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 카렌 카펜터의 창법에 매료되셨던 거군요. 그런데 카펜터즈는 70년대 주로 활동했는데 백지영 씨보다는 연배가 있는 분들이 많이 듣던 뮤지션 아니었나요?

 

백지영 : 네. 어떻게 보면 아주 어렸을 때 음악을 많이 듣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결핍에서 오는 욕심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중학교 때 들리는 대로 되게 많이 흡수했어요. 그 당시 제 또래들은 머라이어 캐리를 너무 좋아했겠지만, 카페에서 우연히 카펜터즈 음악을 들었는데 굉장히 편안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막 찾아서 듣기 시작했어요. 카펜터즈는 지금도 제 플레이리스트에 있어요.

 

- 백지영 씨 발라드 곡을 듣다 보면 알앤비 가수 같은 기교보단 정확하게 부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카펜터즈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백지영 : 그런데 영향은 받았지만 왜,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다른 거잖아요. 제가 카펜터즈의 감성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목소리 음역대나 레인지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어떠한 정서상의 영향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 가수로 데뷔하게 된 과정도 알고 싶습니다.

 

백지영 : 저는 그냥... 몰래몰래 잘 놀고, 공부는 진짜 안 하는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가 없어가지고... 아빠가 ‘여기라도 가 봐라’ 하신 데가 전라도에 있는 백제예술 전문대학이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잠깐 클라리넷을 했었는데 그걸 특기로 그 학교 방송연예과에 들어갔어요. 연기, 뮤지컬, 연극 연출을 방송연예과에서 다 했는데 거기서 방송용 연기, 노래를 접하게 됐어요. 

 

사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는데, 서울에 있는 어떤 분이 캐스팅을 위해서 저희 학교를 자주 오셨어요. 그분이 지금 누구인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오디션 한번 보지 않겠냐고 저한테 사정하셔서 알겠다고 하고. 서울에서 어떤 작곡가한테 오디션을 봤는데 그냥 합격이 됐어요. 제 꿈이 가수는 아니었는데 가수가 된 거였지요.

 

- 스스로 가창력이 있다는 걸 어려서부터, 혹은 방송연예과 시절에도 알고 있지 않았나요?

 

백지영 : 잘 몰랐어요. 요즘은 노래방을 다들 가시니까 그런데, 처음 노래방이라는 게 나온 게 제가 진선여중에서 은광여고로 올라갈 그 무렵이에요. 저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해보고 제 노래 실력이 좋다거나 그런 건 잘 몰랐고 그냥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교 가보니 가수 데뷔하신 선배들도 있었고,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쟤네들보다 내가 나은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땐 확실하게 가수를 하고 싶다는 꿈이라던가 어떤 목표에 대한 열정 같은 게 없었던 시절이어서 딱히 가수가 될 길을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가 와서 그걸 잡은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가수라는 이 직업을 좀 운명적으로 만났어요.

 

- 그전까진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나요?

 

백지영 : 당시에 아는 그... 나이트 DJ 오빠가... (웃음) 알바를 한번 해보지 않겠냐 그래 가지고. 여러 명이 나오는 가수들인데 그중에 그냥 머릿수 채우는 아르바이트라는 거예요. 소방차 출신 이상원 오빠가 만든 '트로트 보이스'라는 그룹인데 열세 명이었나? 열한 명이었나? 그런 그룹이었어요. 거기서 보이시한 역할을 맡았는데, 녹음 같은 건 아예 안 했고 방송은 몇 번 했어요. 그러면서도 가수가 될 거라는 생각은 별로 못 했던 것 같아요.

 

- 발라드 가수로 십수 년 넘게 알려진 지금과 달리 데뷔곡은 라틴풍의 댄스 음악이었습니다. 본인 의도와는 달랐을 걸로 추측되는데요.

 

백지영 : 네. (웃음) 요즘엔 가수 데뷔하기까지 막 7년씩 연습생 생활하고 막 엄청 오래 연습하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 저는 오디션 합격하고 앨범 나오기까지 1년 반 정도밖에 안 걸렸어요. 1집에 '작은 바램'이라는 발라드가 있어요. 원래 그걸 타이틀곡으로 나가려고 녹음을 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그 곡이 처음부터 저한테 오려던 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가이드 보컬 녹음된 게 왔을 때 가수 제이(J.ae) 씨가 녹음해 놓은 걸 들었거든요. 원래 그쪽에서 그 곡을 내려고 했는데 우리 회사에서 그걸 가져온 것 같았어요. 그래 가지고...

 

- 기획사 간 문제로 번질 여지가 생길 수도 있었겠군요.

 

백지영 : 그때 매니지먼트 사장님이 좋게 말하면 워낙 추진력이 강하셔가지고... 그 곡을 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미국에서 리키 마틴하고 제니퍼 로페즈가 라틴 팝 바람을 불게 하더니 그게 완전 토네이도가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공교롭게 제 앨범에 '선택'이라는 라틴곡이 있었어요. (웃음) 갑자기 바꿨어요. 그래서 그때 영주 언니(홍영주)를 찾아간 거예요.

 

-  안무가 홍영주 씨를요?

 

백지영 : 네. 그래서 안무 만들고 짜고. 그러면서 데뷔하게 된 거예요.

 

- 컨셉을 급작스럽게 바꿔 데뷔하게 된 거군요.

 

백지영 : 네. 그때는 라틴이 뭔지 이게 장르가 차차인지 삼바인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하라니까 했죠.

 

- 이후 발표된 앨범의 '대시(Dash)'에서도 라틴팝 컨셉이 이어졌습니다.

 

백지영 : 맞아요. 저는 그쪽 음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가수 생활 시작했어요.

 

- 그럼에도 라틴 팝 댄스곡들이 나오자마자 전부 히트했잖아요.

 

백지영 : 그러게요. 

 

- 대중들이 댄스 가수로 인식하게 됐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나요?

 

백지영 : 그 당시는 앨범 녹음하면 한 장에 열 트랙, 많으면 열다섯 트랙도 들어갈 때였는데요. 그 앨범이 다 댄스곡이 아니고 그 안에 발라드곡 비율도 어느 정도 있었어요. 녹음하면서 '나는 발라드가 좋다. 발라드를 하고 싶다. 발라드 부르는 게 행복하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1집 때도 댄스곡들인 '선택', '부담'으로 활동을 하고 나서 억지로 '작은 바램'이라는 곡을 세 번째 곡으로 활동을 했어요. 그때 굉장히 좋았어요.

 

그래서 2집 때 '대시(Dash)'라는 댄스곡이 타이틀로 정해질 때도 안 하고 싶어서 얘기했다가 엄청나게 무서운 사장님이 막 두 시간 동안 엄청나게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대시(Dash)'는 타이밍이 모든 게 맞아떨어져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마음속에는 '아, 나는 발라드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기는 있었죠.

 

- 이후 5집이 되어서야 음악 인생 전환점이 되는 발라드 곡 '사랑 안 해'가 나오게 됐습니다.

 

백지영 : 기존에 있던 회사에서 이상민 오빠가 프로듀서로 있던 상마인드로 가기까지 엄청난 일들이 많았어요. 그 이전에 주목받던 이슈가 있었으니까 상민이 오빠가 어떻게 하면 좀 자연스럽게 다시 복귀 시킬 수 있을까 저랑 얘기를 하다가 발라드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발라드 하고 싶다고 하니까 오빠가 "너 발라드 할 수 있겠어 노래 잘 해?"하더라고요. 오빠도 제가 발라드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몇 곡 했는데 오빠가 너무 좋아했어요. '그럼 내가 컨셉을 잡고 곡을 의뢰해 볼게'하더니 박상민 오빠가 부른 '해바라기'라는 곡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더라고요. '너무 좋다'고 했더니 제가 그런 발라드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알겠다고 그러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상민이 오빠가 '해바라기'를 작곡한 박근태 오빠에게 곡을 의뢰한 거예요. 백지영이 부를 건데 해바라기 같은 곡을 써 달라고.

 

그래서 근태 오빠가 '사랑 안 해'의 큰 틀을 잡아 놓고 작사는 차은택 감독님한테 의뢰를 했는데 이후로도 열 몇 번 정도 가사 수정을 했던 것 같아요. 전문 작사가가 아니니까. 그래서 거의 매일 녹음실 가서 한 달을 넘게 녹음했어요.

 

- 이상민 씨 프로듀싱 역량이 새삼 대단하네요.

 

백지영 : 그러니까 상민이 오빠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면, 천부적인 촉과 센스를 가졌는데... 사실 오빠가 전에 제작한 엑스라지라는 그룹도 아이디어는 천재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사암이 되게 파악을 잘 해요. 그런데 어느 한구석이 뭐가 양념이 잘못 하나 들어간 것 같아요. 카레를 만들어야 되는데 카레 가루가 안 들어가고 고춧가루가 들어갔다거나 약간 이런 느낌인데...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아가지고. (웃음) 아무튼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이건.

 

- 확실히, 많은 걸 이뤄낸 프로듀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지영 : 그럼요. 그럼요. 샤크라 어떻게 할 거냐고요. 

 

- '사랑 안 해' 발표와 함께 발라드 여왕으로 올라섰는데요. 댄스 가수에서 발라드 가수로 전환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백지영 : 아까도 계속 말씀드렸지만 마음속으로 '발라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 소극적인 노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랑 안 해'녹음이 끝났는데 어떤 일로 상민이 오빠 회사가 파산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노래가 잘 될지 안 될지는 몰랐지만 노래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커서 상민이 오빠한테 그 '마스터 음원을 나한테 달라'고 얘기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당돌한 얘기인가요. 회사가 파산했는데 소속 가수가 기획사 사장한테 가서... (웃음) 그래서 마스터 음원을 제가 받아서 유통할 회사를 막 찾아다녔어요.

 

물론 녹음 과정에 그만큼 힘을 많이 쏟아서 더 애정이 컸을지도 모르죠. 이 노래가 녹음이 정말 너무 힘든 거예요. 가사를 보니 '보통 여자의 마음이 이렇겠구나. 그런 여자의 독백이겠다'싶어서 여자의 독백 연기를 한번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녹음을 위해 연기 공부까지 했던 건가요?

 

백지영 : 네. 연기를. 주변에 아는 친구들 중에 연기하는 애들이 있어서 선생님을 소개받아 찾아갔어요. '연기를 왜 배우려고 하느냐. 연기자 준비를 하는 거냐'면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게 아니라 발라드를 더 잘 부르기 위해 노래에 감정을 깊이 채우고 싶어 연기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좋게 생각해 주신 것 같아요. 그랬더니 초보반이 아니라 실전반, 연기 데뷔를 앞둔 사람들이 있는 수업에 저를 넣어주셨어요. 거기 이천희 씨도 있었고, 민기(이민기)도 있었고 그 또래 연기자들이 거기 다 있었어요.

 

- 굉장히 높은 수준의 클래스였군요.

 

백지영 : 임주환 씨도 있었고. 그 반에서 걔가 연기 제일 잘했거든요. (웃음) 그런 반에 제가 들어가서 그 친구들이랑 같이 연기 수업을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물꼬가 팍 터지게 된 계기가 있어요. 연극 '4월 9일'에서 부인 역의 독백 대사를 외워서 선생님 앞에서 연기를 하는 거였어요. 이 역할의 부인이 너무 불쌍해가지고 울음이 터져 나오는데... 내가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눈물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연기를 마무리하고 나서도 한 5분 이상 그 자리에서 계속 울었어요. 그런데 그게 막 뭘 해소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신 거군요.

 

백지영 : 네. 그동안 지나왔던 내 세월 속에서 억눌렸던 감정 같은 게 약간 해소가 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하면서 연기자들 마음을 조금 이해했어요. 나는 이때 내 감정이 최고조였기 때문에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건 연기 아니라고 했어요. 너는 울면 안 된다고. ‘관객들이 울어야지 네가 우는 건 연기가 아니고 그냥 너’라는 거예요.

 

아..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슬프긴 했지만, 이걸 매개체로 내가 울었던 거지 이 ‘연기’에 완전히 몰입한 건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런 감정의 아주 세밀한 부분들을 다루는 걸 그때 연기 수업하면서 되게 많이 배웠어요. 녹음할 때도 보통 가사를 받으면 그 가사에 제 나름대로 분석을 하잖아요. 숨이 들어가야 될 부분도 찍고,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도 감정의 흐름을 좀 많이 생각하는 편이 됐어요. 그러면서 확신이 들더라고요. 노래를 부르는 데 있어 좋은 땅이 된 거구나. 발라드라는 나무를 심기에 너무 좋은 비옥한 땅이 됐구나.

 

- 발라드 가수들은 결국 연기자가 감정 컨트롤하듯 연기를 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백지영 : 모두 다 다를 거예요. 모두 나 같은 생각으로 노래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사람이다’ 생각하지 않고. 슬픈 영화를 보면서 막 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 배우에게 공감하고 동화되기는 하지만 그게 나는 아니잖아요. 내가 영화를 보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발라드 곡 가사도 그냥 영화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부르는 편이에요.

 

- 감정적으로 객관적인 거리를 둔다는 얘기군요.

 

백지영 :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못 할 때도 많아요. 예를 들어 제 단독 콘서트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다가 완전 너무 심하게 몰입해가지고 울면서 부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나중에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면 노래에 과몰입 한 게 아니고 ‘나’한테 몰입된 상태예요. 그 노래로 인해 떠오르는 내 상황들, 감정들.

 

- 하지만 발라드 가수로서는 어떠한 감정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백지영 :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2부에서 계속.)

 

 

[사진출처=트라이어스]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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