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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3
by 우정호

노래를 ‘한다’가 아닌 ‘부른다’고 표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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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2-23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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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 백지영 씨는 댄스와 발라드 가수로서 모두 성공했습니다. 비교하자면 어느 쪽이 더 난이도가 높았나요?

 

백지영 : 난이도는 어떤 면에서 둘 다 어렵기도 하고 안 어렵기도 한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노래를 하면 너무 어렵고 내가 마음에 드는 노래를 하면 많이 어렵지 않고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발라드 같은 경우 부르면서도 스스로 정서적으로 좀 힐링 시켜주고 안정시켜주는 만족감이 있다면, 댄스는 말 그대로 신나게 되고. 그래서 두 장르 다 좋아하지만, 저는 댄스를 먼저 하고 발라드를 나중에 하길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 그런가요?

 

백지영 : 따져보면 저에게 발라드 감성은 조금 내재돼 있던 것 같고, 댄스 감성은 없었어요. 춤도 잘 못 췄고. 그리고 막~ 이렇게 노는 스타일이 아니었어가지고. 그랬는데 해야 하니까 배웠잖아요. 배우고 난 다음에는 좀 즐길 수 있게 됐고요. 

 

- ‘백지영 보컬’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백지영 : 이런 질문 수없이 받아 봤어요. 앨범 나와서 기자분들이 인터뷰하면 ‘자기 목소리 색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왜 사랑받는 것 같냐’ 막 이런 얘기 엄청 많이 물어보는데. (웃음) 가볍게 생각하면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목소리가 탁성인데 음역대가 좀 넓어요. 저음부터 고음까지가 음역대가 넓은데 사실 탁성 자체가 드물거든요. 특히 여자 보컬 중에는. 찬휘 언니(소찬휘)가 약간 탁성인데 레인지가 굉장히 넓죠. 그러면서 음색 자체가 약간 ‘한’이 있는데 좀 따뜻하다. 뭐 그런 것 같아요.

 

- 그걸 자각하고 곡을 소화할 때 의식적으로 반영하나요?

 

백지영 : 노노노. 노노노. 그러면 완전 배가 산으로 가는 거지요. 내가 부르면 누군가 찾아내 주는 거지 내가 ‘이러니까 이거 좀 봐주세요’ 그러면 절대로 드러나지 않을걸요. 내가 생각하는 나랑 남이 생각하는 나랑 너무 다르니까.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제 발라드가 사랑받는 이유가 제 히스토리 때문이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만약 그 전에 아무런 이슈 없이 갑자기 발라드로 장르 전환을 했다면, 그렇게 받아들여 주시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의 스토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부르는 발라드가 그들한테 더 잘 스며들고 특별한 거지요. 예를 들어 ‘사랑 안 해’를 발표했을 때, 화류계에서 종사하시는 언니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렇게 많이 우셨다는 얘기를 매니저들이 저한테 많이 해 줬어요. 어떻게 보면 인생의 굴곡이 많으신, 그런 스토리들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을 텐데.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수긍이 갔어요.

 

- 이제는 백지영 대표곡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총 맞은 것처럼’에 관한 에피소드도 듣고 싶네요. 파격적인 제목으로 발표하자마자 이목을 끌었습니다.

 

백지영 : (웃음) 그러니까. 제가 ‘선택’도 별로 안 좋아했고, ‘대시’도 별로 안 좋아했고. 저는 히트곡에 대한 촉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총 맞은 것처럼’도 저는 별로 처음에 좋지 않았어요. 제가 그때 곡을 받고 싶은데 누구한테 받으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시혁이 오빠(방시혁)가 그동안 써온 곡들을 모니터하고 ‘아, 이 사람한테 곡 좀 받고 싶다’해서 그 오빠를 찾아갔어요. 그때 2AM, 2PM 작업하고 있을 때라 되게 바쁘신 때였는데, 오빠도 약간 대화를 통해서 저를 알아보는 탐색 시간을 가지고 난 다음에 자기가 ‘뭐가 왔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발라드를 하나 써 보겠대요. 

 

그래서 나중에 곡이 나왔다길래 갔어요. 가이드 보컬도 안 들어간 상태의 데모였는데, 전주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전주가 없다는 데 깜짝 놀랄 틈도 없이 ‘총 맞은 것처럼~’이렇게 시작한다는 거예요. 뭐? 뭘 맞아? 총을? 그래서 진짜 약간 ‘장난하나?’ 이런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러고서는 완성된 가이드를 들었는데 (웃음) 진짜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막 구멍 난 가슴에 추억이 흘러넘친다는데, 내 머릿속에는 막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고.

 

- 예상했던 발라드 가사와 달라 당황스러우셨던 거군요.

 

백지영 : 그러니까 저는 약간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그런 발라드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가사가 그게 아니니까. 너무 직선적이고 너무 생각할 여지가 없는 가사가 나오니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총’이라는 단어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가지고 내가 부를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오빠가 나한테 딱 그러는 거예요. ‘니가 나를 믿고 찾아왔지 않냐. 나 한번 믿어 봐라.’ 그렇게 얘기하는데... 믿어야겠더라고요. 그리고 안 믿고 바꿨다가 안 되면 어떡해. 그럼 또 나 때문에 안 됐다고 그럴까 봐. 그냥 ‘아, 그럼 알겠다고’ 그러면서 녹음을 했어요. 

 

그런데 이게 약간 묘한 매력이 있는 게, 보통 녹음할 때 제 목소리가 탁성이 심하니까 이펙트를 이것저것 많이 걸어가지고 뭐라 그럴까, 둥글게 만드는 작업이 있어요. 보컬 믹스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시혁이 오빠는 탁성을 앞으로 쭉 내보내라. 완전 확 들리게. 그리고 뒤에 그 여운이나 이런 데 리버브나 딜레이 같은 것도 최소화하고 완전 본 목소리 위주로 믹스를 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진짜 숨소리도 거의 안 들리고 (노래) 총 맞은 것처럼~ (노래 끝) 진짜 이 톤으로 딱 시작해요. 이펙트가 거의 없고, 공간감 주는 그런 이펙트도 없어요. 

 

그래서 녹음은 잘 했는데, 발표하고 초반에 기자분들이랑 인터뷰하잖아요. ‘제목이 뭐예요?’ 그러면 ‘총 맞은 것처럼이요’ 이렇게 안 나오고 (작은 소리로) ‘총 맞은 것처럼’이요... 막 이랬다니까요. 그래서 녹음할 때 당시에 시혁이 오빠한테 제가 뭐라고 그랬냐면 “오빠, 이거 ’총‘을 ’종‘으로 고치자” 그랬어요.

 

- (웃음) 

 

백지영 : 지금 웃음이 나오지요? 그때는 ’총‘이 더 웃겼어요. 정 이렇게 가고 싶으면 (노래) ’종 맞은 것처럼~‘ (노래 끝) 이렇게라도 하면 되겠는 거예요. 감정이입을 그렇게 못 하고 부른 게 아마 이 노래일 거예요. 내가 총 맞은 기분이 어떤지 어떻게 알아. 그게 이별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다는 건 내가 알겠는데, 그걸 총으로 갔다는 게 저는 정말 이해가 안 갔어요.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제목 물어보면 ’총‘이라는 단어를 막... 뭉그러뜨렸어요. “뭐요? 뭐 맞은 거라고요?”, “’총‘. ’총 맞은 것처럼‘이요...” 이런 얘길 꽤 많이 했어요. 그런데 발표하고 나니까 반응이 순식간에 와 버렸어요. 그때 아, 정말... 대단한 오빠다. 대단한 사람이다. 이 사람한테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구나. 되게 믿음직한 작곡가고. 그렇게 해서 ’총 맞은 것처럼‘이 나오게 됐어요. 

 

- ’총 맞은 것처럼‘의 도입부는 마치 영화 속 독백 대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백지영 : 생각해 보면 그게 뭐 오빠가 막 ’여기는 이렇게 들리게 해야지‘하고 작정하고 작업한 게 아니라 어떤 예술혼으로 나왔을 거 아니에요. 되게 추상적으로 설명하고 추상적으로 얘기하고 이해시키는 편이었어요, 저한테는.

 

- 방시혁 씨도 백지영 씨 안에서 그런 모습을 캐치하고 그런 파격을 시도했을 것 같네요.

 

백지영 : 뭐... 네. 오빠도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너한테 되게 어울린다. (웃음) 

 

- 발라드 가수로서 무대 위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어떤 것들인가요?

 

백지영 : 부르는 사람의 몰입도.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도 그렇고 제 자신의 만족도를 위해서도 그렇고요. 듣는 대상을 항상 인지하고 불러야 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궁금했어요.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노래를 한다‘말고 ’노래를 부른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거기에 대해 되게 궁금했는데, 대상이 있어서 부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내 이름이 ’백지영‘이지만 상대방이 부르는 거고, ’나‘라는 정확한 대상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지영아‘ 부르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이유는 노래를 듣는 정확한 대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듣는 사람에 대한 인지. 그게 저한테는 중요한 것 같아요.

 

- 2006년 SBS 드라마 <나도야 간다>를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OST 곡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습니다.

 

백지영 : 제가 물론 <나도야 간다>, <황진이> OST도 불렀지만, 어떻게 보면 본격적인 시작은 <아이리스>라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거든요. 정태원 씨가 제작하신 작품인데 그분이 저하고 사적으로 알고 지낸 시간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분이 드라마 제작하시는 분인지도 몰랐어요. 제 학창 시절 완전 너무 친한 친구가 그분 비서였어서 그분을 알게 됐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드라마 제작하시는 분이더라고요. 그때 정태원 사장님이 저한테 OST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길래 저도 그전에 몇 번 작업을 했으니까 좋다고 대답했는데, 시놉시스 받아봣더니 어마어마한 스케일인 거예요. 

 

- <아이리스>는 2009년 KBS에서 방영 당시 엄청난 제작 규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백지영 : 되게 스펙터클하고 완전 블록버스터한데 남주인공은 이병헌에 여주인공은 김태희네. ’야, 이거 잘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랬는데 사실 제대로 작업할 시간적인 여유가 되게 부족했어요. 아마 드라마 제작 막바지에 저희한테 말씀을 하신 것 같았고. 제 기억에는 그래요. 그분 기억은 또 다를 수 있어요. (웃음) 시간도 촉박한 와중에 제가 이례적인 독감에 걸린 거예요. 그러면서도 곡을 받았는데, 다 마음에 안 들어.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다 너무 뻔하고... 여기서 울라고 싸비 쓰고, 여기서 몰입하라고 벌스 쓰고, 브릿지 넣고 너무 막... 너무 다 싫은 거예요.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에 ’어? 우리 옛날에 받아왔던 곡 있는데‘ 그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은 ’잊지 말아요‘도 나중에 부를 타이밍을 보려고 약간 킵해 둔 상황인데 그걸 다시 소환한 거예요. 그게 이현승이랑, 김도훈 오빠가 같이 작업하신 거였거든요. 저희가 받아서 ANR 팀에서 갖고 있던 노래였는데 시간이 촉박하니까 독감 걸린 상태에서 이 노래로 OST 녹음을 했어요.

 

 그런데 이 OST 작업이 너무 매력적인 이유가 뭐냐 하면, 가수 개인에게는 굉장히 퀄리티 높은 뮤직비디오가 생긴 거고, 두 번째로 홍보효과. 그때 음악감독이 딱 정해져 있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작업해서 제작사에 넘겨주면 연출부에서 편집하면서 노래를 이렇게 삽입하는 그런 작업 형태였는데. 내 노래를 어디를 얼마큼 끊어서 어떤 장면에 쓰는지에 따라 곡 전체를 듣지 않고 드라마에서 잘라서 나오는데도 곡 효과가 어마어마한 거예요. 

 

OST의 가장 큰 매력과 장점은 그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드라마가 일주일에 두 번씩 TV에 나가니까 노래도 계속 나가고. 그 홍보 효과가 엄청난 거죠. 그래서 <아이리스> OST ’잊지 말아요‘가 제가 불렀던 OST 중에서 처음으로 굉장히 빅 히트라고 할 만한 스코어를 기록했어요. 좋았죠.

 

- 이듬해 <시크릿 가든> OST ‘그 여자’로 히트가 이어졌습니다.

 

백지영 :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물 들어왔다‘고 하잖아요. 그때 저한테 약간 OST 물이 딱 들어왔어요. 제가 <황진이>라는 드라마 OST를 했잖아요. 그때 여주인공이 하지원 씨였어요. 그리고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가 들어왔는데 저는 그때 그 작가님이 그렇게 유명하신 분인지도 잘 몰랐고, 판타지 장르의 드라마가 당시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하지원 씨만 보고 결정했어요. 그 배우가 너무 좋아가지고. 그래서 시놉을 주셔서 읽었는데 너무 아쉬운 거예요. 여기서 끝난다는 게. 더 읽고 싶고...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전해성 작곡가가 준 ’그 여자‘라는 노래가 사실은 제 싱글로 녹음을 하려고 했던 건데 원태연 시인이 들어오시면서 가사를 완전히 다시 쓴 거예요. 그 드라마에 맞게. 그래서 원태연 오빠랑 해성이 오빠랑 작업을 같이 하시고 제가 불러서 ’그 여자‘라는 노래가 탄생한 거예요. 이때도 보면, <시크릿 가든>에서 유명했던 ’거품 키스‘ 장면에도 이 노래가 탁 들어가고, 그전에 ’잊지 말아요‘는 <아이리스>에서 ’사탕 키스‘ 장면에 딱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OST 물이 쫙 들어온 거예요, 저한테. 좋았죠.

 

-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쳐 2020년대까지 OST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신데, OST 제작 환경도 그간 많이 변화했을 것 같습니다.

 

백지영 : 제가 처음 시작하던 때는 시스템이 완전 체계적이거나 그럴 때가 아니어서 사실 작업하는 재미는 더 있었고요. 요즘에는 OST 제작사가 따로 생긴 것 같더라고요. 옛날에 작업할 때 사실 느낀 게 뭐냐 하면, ’아, 내 목소리가 약간 드라마의 분위기를 해칠 때가 있는 것 같다‘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사극 OST도 했는데, 막 꽃바람이 불고 달빛이 내려오는데, 여주인공, 남주인공이 막 애달픈 감정을 나누는데 갑자기 내 목소리가 쫙~ 나오면 그 드라마를 너무 좋아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 약간 깨지는 것 같은 거예요. 클로즈업 장면 같은 때는 좀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약간 멀리서 풀샷을 잡는 장면에선 ’굳이 여기 이렇게 넣으였어야 되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몇 번 있거든요. 사실 드라마의 주가 OST가 아니잖아요. OST는 드라마를 빛내기 위해 있는 거고. 물론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긴 하지만. OST가 드라마를 뛰어넘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OST가 한창 잘 되고 나서 여기저기서 막 OST 하던 과도기를 지나, 이제는 조금 더 고급스럽고 드라마에 맞게 OST가 제작되는 상황으로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엔 가수나 가수가 소속해 있는 회사에 제작사가 직접 얘기해서 드라마 시놉시스 정도만 보고 곡을 작업해서 갖다주는 그런 시스템이었다면, 지금은 OST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색깔 같은 걸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의 곡을 만들어서 가수를 섭외해 노래를 부르게 하니까 드라마에 좀 더 맞추는 그런 체계가 잡힌 거지요.

 

- 곡이 주인공들 클로즈업 장면에 들어가는지, 풀샷에 들어가는지 전부 모니터링할 만큼 깊숙이 이입하는 작업이군요.

 

백지영 : 그런 느낌이거든요. 남주인공, 여주인공이 나와서 클로즈업 샷을 찍을 때 둘이 교류하는 그 감정이 있잖아요. 그런 감정을 베이스로 저도 노래하는 거니까 그런 클로즈업 샷에서는 제 노래가 들어가는 게 잘 맞는 것 같은데 풀샷에서는 그런 미세한 감정들을 느낄 수 없고, 어떤 좀 광범위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제 노래가 딱 들어가면 뭔가 그거를 해친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 아무래도 여성 보컬이니까 OST 작업하실 때 여주인공 쪽에 더욱 이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백지영 : 제가 OST 작업을 고르는 기준은 저만의 것이니까요. 아무래도 저는 어차피 여자 테마를 하게 될 거니까 여주인공이 누구인지가 저한테는 되게 중요했어요. 그러니까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좀 한이 많아야 더 어울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조금 달라진 건, <치즈인더트랩>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였어요. ’어쩌면 이렇게 톤이, 그리고 스타일링이 이렇게 트렌디하고, 이렇게 감성이 세련되고 젊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 2013년엔 OST에 들어간 곡들로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을 정도로 OST 히트곡이 많습니다.

 

백지영 : 엄청 많이 팔렸어요. 그런데 ’너무 다작했다‘는 마음도 좀 있어요. 원래 그런 거잖아요. 남들 잘 안 하던 건데 어디서 대박이 나면 갑자기 하는 사람들이 막 생기고, 그러면 새로운 인물보단 대박이 난 ’안전 빵‘인 저를 찾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작품이 엄청 많이 들어온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거절 못 해서 한 작품도 있고, 좋아서 한 작품도 있고, 그리고 지금쯤은 내야 될 때이기 때문에 기획상 해야 되는 작품도 있었고. 그렇게 엄청 많은 작품을 한 거예요. 그런데 너무 많이 했어요 그때는.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저도 약간 거를 수 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제 성격 탓도 있는 게, 거절을 못 해. 거절이 안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내가 거절하면 그 작품이 마음에 안 든다는 사인 같고, 돈 더 달라는 사인 같고. 그렇지 않은데. 막 이래가지고 거절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하는 쪽으로 갔더니 너~무 많이 한 거예요. 너무 많이 해서 소모돼버렸어. 사람들이 TV 틀면 드라마 안에서 백지영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나오니까. 

 

- 곡의 퀄리티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너무 많이 해서 흔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신 거군요.

 

백지영 : 맞아요. 맞아요. 그런데 그것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퀄리티가 안 나오는 것도 사실 저는 그냥 넘기는 편이에요. 왜 그러냐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퀄리티 이하로 내려가면 절대 안 되지만, 해야 하는 퀄리티 보다 훨씬 더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장인인데. 저는 장인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이상을 바라면서 타이밍을 놓치기 보다는 타이밍을 선택하는 방법을 찾아요. 예를 들면, 사실 ’잊지 말아요‘는 녹음하고 목소리가 맘에 들진 않았어요. 감기 갈렸는데 녹음을 했어야 했고. 편곡을 더 예쁘게 만질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부족했고. 현승이(이현승)가 그날 디렉팅을 봤는데, 40분 만에 보컬 녹음 끝내면서 (한숨) ’이걸로 나가도 될까요?‘ 막 이랬다니까요. (웃음)

 

그랬는데 그런 노래가 또 히트를 하게 되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퀄리티라는 게 자기만족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누구하고도 타협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퀄리티에 있을 수도 있지만, 너는 그렇게 막 까다로운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OST 작업들 많이 했던 게 퀄리티가 아쉽다기보단 너무 많이 해서 흔해졌다는 게 좀 안타깝다. 그런 거죠.

 

- OST 작업과 본인 앨범 작업을 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백지영 : OST 작업은 부담보다는 즐거움이 많아요. 제 거를 할 때는 즐거움보다는 부담이 좀 커요. 

 

- 어떤 면에서 그렇죠? 

 

백지영 : 지금 시스템의 OST는 사실 음악감독하고 그 드라마 연출자가 ’이 곡이 여기에 어울리겠다‘ 따져보고 어느 정도 가능성을 인정받은 곡들이 저한테 와요. 그래서 내가 불렀을 때 그 드라마의 배우님들이, 그리고 그 장면들이 이 노래를 살려주죠. 그래서 되게 즐거운 작업이고 부담이 덜 해요. 그런데 내 작업은 뭔가... 내가 키우는 식물 같아요. 저 식물 진짜 못 키우거든요. 선인장도 죽게 되는데. 그 마음이랑 약간 비슷해요.

 

- 조마조마한 감정인가요?

 

백지영 : 좀 조마조마한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막 조마조마해서 미칠 것 같은 정도는 아니에요. 잎도 닦아줘야 되고, 물 주는 날짜도 적어놓고 봐야 되고, 어디 하나 좀 까맣게 타들어가지 않나 좀 살펴보고, 그러면서 잎이 싹 벌어지면서 새순이 또 나오고 이러면 막 너무 좋고. 

 

- 백지영 씨는 소위 ’한국형 발라드‘의 카테고리 안에 있다고 평가되곤 하는데요. 록 발라드나 알앤비 발라드와 한국형 발라드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백지영 : 창법? 제가 노래 부르러 놀러 가면 록발라드 되게 많이 부르거든요. ’네버엔딩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사랑할수록‘ 이런 거 다 불러요. 얘기하고 보니까 다 부활 노래인데, ’겨울비‘같은 노래도 다 불러요. 그러면 그 감성의 창법하고 제가 내 노래할 때 창법하고 많이 다르기는 해요. 그리고 알앤비 창법은 제가 배워 본 적이 없고, 시도해 본 적도 없고. 제가 부르는 발라드는 R&B하고도 다르고 록발라드하고도 좀 다르고. 한국형 발라드의 그 색깔은 창법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 변진섭, 이문세, 신승훈, 조성모, 성시경 등 한국형 발라드 계보를 놓고 보면 여자 가수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여자 발라드 가수가 귀한가요?

 

백지영 :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거를. 

 

- 요즘 후배 중 눈여겨보는 발라드 가수가 있나요?

 

백지영 : 발라더? 제가 어떤 프로그램을 보면서 규현이(슈퍼주니어 규현)가 약간 시경이(성시경)를 잇는... 달콤한데 부드러우면서 뭔가 서늘한 느낌도 있는 그런 매력이 있는 보컬 톤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 상투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백지영에게 발라드란?

 

백지영 : (웃음) 백지영에게 발라드란... 셋 중에 둘째 아이. 첫째도 막내도 아닌 둘째 아이. 셋 중 둘째 아이는 혼자 다 커야 되고, 뭐 눈치도 많이 보고. 위에서 치이고, 밑에서 치이고. 저는 이 발라드라는 게 아주 사적인 저의 영역에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백지영이라는 사람의 사적인 생활이 평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데 댄스곡은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발라드는 못 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뭔가 얘한테 나는 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하임이 엄마 백지영과 가수 백지영이 진짜 다른 사람이듯 발라드를 부를 수 있는 백지영은 달라요. 그래서 발라드는 사적인 백지영의 영향을 받게 되니까 나는 얘한테 미안해요. 둘째 애처럼.

 

 

[사진출처=트라이어스엔터테인먼트]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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