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전형성 깨버린 2NE1의 산다라박 > 인터뷰 아카이브K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인터뷰

인터뷰

2024.03.25
by 우정호

걸그룹 전형성 깨버린 2NE1의 산다라박

페이지 정보

작성일 24-03-25작성자  by  우정호 

본문



 

산다라박은 독특했다. ‘박산다라’라는 네 글자의 한글 이름뿐 아니라, 필리핀에서 데뷔와 동시에 얻은 국민적인 인기를 뒤로하고 한국에서 연습생부터 다시 시작해 가수로 데뷔했다는 이력이 그랬다. 그러나 그 ‘독특함’은 2NE1 데뷔 무대에서 정점을 이뤘다. 긴 머리를 한껏 모아 위로 쳐올린 ‘야자수 머리’는 당시 걸그룹 팬덤에 말 그대로 충격을 선사했다. 이러한 파격은 아이러니하게도 ‘귀여움’과 ‘섹시’라는 두 가지 코드밖에는 없던 케이팝 걸그룹에 ‘강인한 여성상’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2NE1의 이미지메이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카이브 K는 산다라박과 2020년 11월 인터뷰했다.)  

 

 

- 2NE1은 K-POP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명사화되기 전부터 케이팝 가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케이팝 이전엔 '한류'라는 단어가 그 역할을 대체했는데요. 이 단어를 들은 기억이 있나요?

 

산다라박 : ‘한류스타’라는 단어가 나온 게 옛날에 드라마 <겨울연가> 때부터인가. (웃음) 이후에 <시크릿가든> 방영될 때도 한류스타라고들 많이 나와서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저희도 케이팝 가수인데 그게 결국 한류스타라는 말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으니까 좀 재밌긴 했어요. 아, 옛날에 듣던 그 ‘한류’라는 단어가 가까이 있는 거구나. 요즘도 뮤지컬 하러 가면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은 “너 한류스타잖아” 이런 말 해요. (웃음)

 

- 아, 옛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해외 활동 하는 가수는 한류스타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산다라박 : 예. 요즘 뭐 20대, 10대는 K-POP 스타라고 할 텐데, 실제로 3, 40대는 다 한류스타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 필리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H.O.T를 필두로 1세대 아이돌이 한국에 등장했을 때 필리핀에서도 알고 있었나요?

 

산다라박 : 네. 저는 아이돌 1세대 선배님들을 너무 좋아했고, 팠기 때문에 거의 다 알고 있어요.

 

- 핑클 팬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산다라박 : 예, 맞아요. 테이프도 다 있고. 한국 오면 굿즈를 이만큼씩 사고. H.O.T가 더 먼저 나왔는데 H.O.T 수첩 같은 것도 다 샀었죠.

 

- H.O.T의 팬이기도 한 거군요.

 

산다라박 : 근데 사실 핑클 이전에 H.O.T는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난리가 났었죠. ‘H.O.T 빅쇼 HOT’ 이런 거 방송국에서 해주거든요. 한인 비디오 샵에 있었는데 ‘이걸 그냥 돈 주고 저한테 팔아주세요’해가지고 맨날 보고 그랬죠. 원래는 렌트인데, 샀어요. 너무 좋아해가지고. 내용도 거의 다 외웠죠.

 

- 필리핀에서도 한국 아이돌 굿즈를 팔았나요?

 

산다라박 : 예. 필리핀 문방구에 있더라고요. H.O.T 편지지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현지 사람들은 H.O.T가 누군지는 잘 몰랐어요. 문방구 사장님이 그냥 한국 문방구에서 이것저것 수입해와서 팔았는데 그중에 H.O.T 굿즈가 딸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알고 샀는데, 친구들한테는 그냥 캐릭터 그림이니까... ‘캔디’, ‘행복’ 이런 거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수첩이나 그런 게 많았어요. 

 

- 필리핀에 한류가 전해진 건 어느 시점이었나요?

 

산다라박 : 한 2004년 정도부터 드라마가 유행했어요. 그 이전엔 드라마 <라이벌>이라는 것도 있었고. <파리의 연인>은 시청률이 50%였어요. 그래서 그때 <파리의 연인> 같은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는 <산다라의 로맨스>라는 프로그램을 제가 진행했어요. <파리의 연인>이 진짜 인기가 많아가지고 특집 방송도 했던 거 같아요.

 

- 송혜교, 정지훈(비) 주연의 <풀하우스>가 필리핀에서 인기를 누리던 것도 그 즈음이었나요? 

 

산다라박 : 오! 예, 맞아요, 맞아요. 비 오빠가 필리핀에서 인기 있는 한국 남자 연예인 거의 시초였죠. 그 이후로 이민호를 뛰어넘을 자가 없긴 했는데... <꽃보다 남자>는 정말 못 뛰어넘을 거 같아요. 지금까지도 필리핀에선 ‘이민호, 이민호’ 막 그러는데, 그전에 비 오빠가 있었죠.

 

- 2NE1 데뷔 이전, 산다라박 씨가 처음 한국에 소개된 방송은 KBS <인간극장>이었습니다. 당시 ‘필리핀의 보아’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요.

 

산다라박 : 아니, 그거를 인간극장 때 기자님들이 쓴 거예요. 근데 그런 수식어가 지금까지도 붙게 될 줄은 몰랐어요. 너무, 너무나 과분한 말이어서. 그냥, ‘어린 나이에 해외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한 거 같은데. 그런 별명이 붙어서 다들 제가 그 정도의 실력파인 줄 알았던 거죠. 그래서 처음에 한국 왔을 때, 안무 선생님이랑 다 “니가 필리핀의 보아라며? 춤 한번 보자”했는데 흐물흐물 뭐 이래가지고... 그건 진짜 큰 오해예요. 그게 너무 부담스러운 수식어죠. 

 

- 의도치 않게 붙은 수식어 때문에 부담감도 있었겠군요.

 

신다라박 : 네. 인간극장 보셨으면 저의 실력을 아셨을 텐데. (웃음) 그냥 기자분들이 하나 수식어 만들면 그걸로 쭉 가잖아요. 원래 ‘산다라박’도 아니고 ‘박산다라’인데, 인간극장 PD님이 제목을 그렇게 쓰니까 그게 공식 이름이 돼서 지금까지,.. 

 

- (웃음) 인터넷 검색해 봐도 ‘산다라박’이 아니라 ‘박산다라’라고 먼저 나오는데 말이죠.

 

산다라박 : 네, 왜냐하면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하니까요. 그냥 예명인 것처럼, 활동명처럼 돼버렸죠. 2NE1 데뷔할 때도 너무 자연스럽게 그냥 ‘산다라박’ 이렇게 쓰여있고.

 

- 가수 데뷔 이전에 보아 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요?

 

산다라박 : 아, 예. 당연하죠. 솔직히 그 나이대 여자애들 안티가 많았어요. 왜냐하면 너무 부러운 대상이었기 때문에. 열세 살짜리 어린 여자애가 나온대고 하는데 잘하기까지 하니까 다들 할 말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질투의 대상이 돼버린 거죠. 그런데 사실, 그 당시 아이돌 후배들은 보아 씨를 다 너무 좋아했고, 존경하는 선배님이었고. 저희도 연습생 때 ‘No.1’, ‘발렌티’ 이런 노래들 다 커버도 하고, 연습도 했어요.

 

- 필리핀에 한국 가수 붐이 불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산다라박 : 한국 드라마들이 유명해졌지만 한국 음악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데뷔하고 나서 한국을 알렸다고 해서 많이들 좋아해 주셨죠. 지금은 BTS도 그렇고 다들 많이 알게 됐지만. 팬들끼리는 그런 얘기도 하더라고요. 지금 필리핀 어린 친구들은 2NE1이나 빅뱅도 모르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그러면 그 친구들 언니 오빠 같은 선배 패덤들이 와서 “너희가 지금 어떻게 케이팝을 접하게 됐는지를 꼭 기억해라”그러면서 “지금 한국 아이돌들이 누구를 보고 배웠냐. 2NE1이 있어서 있는 거야”그러고. 재밌더라고요.

 

- 필리핀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필리핀 연예계에서 먼저 데뷔했습니다.

 

산다라박 : 네, 그 프로그램 종료와 동시에 데뷔했죠. 그 방송 나가고 예선전인데 그다음 날부터 밖을 못 다닐 정도로 막 그래 가지고... 그러고 나서 결승전 끝나고 나서부터 영화, 드라마, 뭐 다 시작하게 됐죠.

 

- 이후, 필리핀에서 정상급 인기를 누리다 한국행을 선언했습니다.

 

산다라박 : 네. 한국에 왔죠. 처음에는 배우겠다고 왔어요. 너무 준비 없이 데뷔한 게 싫어가지고, 일단 2005년에 잠깐 6개월을 왔다 다시 가서, 2007년에 아예 들어온 거 같아요. 

 

- YG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가 오디션을 보러 갔던 건가요?

 

산다라박 : 이게 어떻게 좀 인연이 돼가지고 필리핀에서 양현석 사장님도 만나고 그랬어요. 근데 사실 그 당시엔 SM부터 해서 계약하자고 다 연락이 왔거든요. 근데 제가 YG를 선택했고. 지금도 계약 방식은 항상 똑같지만, ‘넌 지금 아티스트로 계약하는 게 아니고 연습 생활을 거치게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도 저는 YG를 택한 거죠. 그 당시 있던 선배님들도 너무 좋았고, 정말 실력파로 좀 거듭나고 싶다는 욕심에.

 

- 쉽지 않았겠군요. 이미 데뷔하고 방송 생활을 3, 4년을 하고 다시 연습생을 택했다는 게.

 

산다라박 : 맞아요. 그걸 버리고 다시 연습생 한 거라서. 다시 하라면 못한다고 얘기해요, 항상. 잘 몰랐으니까 한 거고. 지금은 다들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때는 별로 고생한다는 생각 없이...

 

- 당시 YG에 있던 어떤 뮤지션들을 보고 YG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나요?

 

산다라박 : 일단 뭐 원타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죠. 그때 뭐 거미 언니, 빅마마, 휘성, 세븐 이렇게 많이 있었고. 렉시 언니도 있었고요. 그리고 빅뱅이랑 같이 연습생 생활을 했어요. 그냥 그게 좋았어요. ‘YG 패밀리 패밀리~(YG FAMILY - 우리는 YG Family)’ 그때 보고 아, 멋있다 생각했고. 저는 사실 누가 봐도 SM 스타일인데, 거기에 왜 꽂혔는지 모르겠어요. 나름 되게 갱스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퍼(fur) 입고, 막 다 같이 모여가지고. 그때 ‘브로스’가 더 대세였는데 브로스보다 더 좋아했어요. 

 

- 2NE1은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도 전에 빅뱅과 함께 부른 ‘Lollipop’으로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올랐습니다.

 

산다라박 : 네. 음악방송 1위 후보였나? 광고음악이라 1위는 안 줬던 거 같고. 맞아요. 음원 차트는 1위 했던 것 같고, 뮤직뱅크에서 1위 후보였나. 데뷔 전이었는데 저희는 실감을 못 하고 있었죠, 완전. 그냥 우리는 여전히 연습생이니까. 

 

- 그에 이어 데뷔와 함께 국내 가요시장을 휩쓸더니 곧 해외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산다라박 : 그런데, 해외 활동은 데뷔 직후만 해도 그렇게 많지가 않았어요. 거의 2010년, 2011년부터 본격적이었던 거 같아요. 빅뱅이 일본에서 성공하고 아시아 전체로 인기가 퍼졌는데, 일본 빅뱅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우리가 무대에 서면 아무도 몰랐을 때였거든요. 2NE1 이름을 걸고 일본 진출한 건 2010년, 2011년 정도예요.

 

처음으로 간 해외 무대는 태국이었는데, 그게 아직도 기억나요. 진짜 우리는 데뷔하고 1위하고 막 그럴 때도, 방송 끝나면 바로 사옥 가서 연습하고, 레슨받고 다시 연습하고 이게 일상이었어가지고 아무것도 몰랐는데. 태국에 갔는데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거든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Fire’ 부르는 데 다 주눅 들어서 엄청 틀리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무대에 딱 섰는데, 그 많은 관객과 함성소리가 이게 진짜인지 몰랐던 거 같아요. 몰래카메라 아닌가 하는 느낌이 나고. 그래서 벙쪄가지고 다 틀리고, 서로 부딪치고 그랬던 우리가 제일 못했던 무대로 기억하거든요. 그게 광고모델을 했던 브랜드 행사 초대로 간 무대였는데, 그런데도 규모가 너무 컸던 거예요. 그 이후로는 다른 나라에 가도 다 잘하고 다녔지만 해외 활동의 첫 시작인 그 태국 무대는 완전 망쳤던 기억이 나네요. 2011년쯤부터는 주 활동무대가 해외였던 거 같아요. 그때 다른 가수들도 맨날 비행기에서 만나고. 그 당시는 서먹서먹했죠. (웃음)

 

- 일본 활동 에피소드도 듣고 싶습니다. 

 

산다라박 : 기억 많이 나죠. 일본에서 저희가 투어도 엄청 크게 했었고, 앨범 내고, 콘서트 1위도 했고. 근데 일본에서 항상 비교를 당했던 게 소녀시대나 카라였거든요. 그 친구들은 너무 잘 되고, 대중적으로 음반도 많이 팔고 그랬는데, 우리는 소녀시대만큼 음반도 팔지도 못하면서 뭐 그런 식의 얘기도 들었고. 근데 저희는 일본에서 매니아 층이 있어요. 일본은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힙합, 레게 같은 저희 앨범을 한국보다 더 좋아해 줬어요. ‘Falling in love’ 같은 레게 노래가 나왔을 때 한국에서는 잘 안됐거든요. 그런 노래를 발표하면 음원차트 10위 뭐 이랬는데, 그때는 사장님이 ‘망했다, 너네’ 이럴 정도로 1위만 했으니까... 그러시니까 저희는 진짜 망한 줄 알았거든요.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그러고 나서 ‘그리워해요’ 나오면서 또 좋아해 주셨는데. 일본에서 좋아하는 곡들이 좀 달랐어요. 

 

-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은 곡은 어떤 노래인가요? ‘내가 제일 잘나가’는 두 나라에서 전부 반응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산다라박 : 한국은 ‘I dont care’. ‘내가 제일 잘나가’ 무대는 일본에서도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으셨지요.

 

- 왜 충격이었나요?

 

산다라박 : 스타일링을 한국에서 보여줬던 정도로, 일본으로 따지면 비주얼 록 밴드 정도 수준으로 하고 갔거든요. 그런데 ‘와, 걸그룹이 이렇게 하네’이런 충격을 받더라구요. 그리고 ‘내가 제일 잘나가’ 가사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갔는데, 누가 이걸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런 식으로 써놔가지고. 그런 가사에 다들 너무 충격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일본 연말 시상식 때 동방신기랑, 카라랑 같은 비행기 타고 같이 갔는데, 뒤풀이 자리에서 가수들이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카라 분들이 먼저 올라가서 “곰방와(こんばんは)”이렇게 얘기하는데, 저희가 올라가서는 CL이 “2NE1 데스.(2ne1です。)” 이랬더니 다들 워~ 이러면서 웅성웅성하면서 그런 점으로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2NE1은 걸그룹이 아니었던 거죠, 그들 기준에는.

 

- 2011년, 2NE1 일본 활동 중 <뮤직 스테이션> 방송 녹화길에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해 취소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산다라박 : 예, 맞아요. 9도였나 (한숨) 그때 시부야에 있었고, 방송하러 가려고 헤어메이크업 하다가 지진이 나가지고 못 갔죠. 방송이 취소되고, 저희가 그때 ‘2NE1 TV’처럼 멤버들이 자체적으로 찍고 있었는데 당시 상황이 기록이 다 됐어요. 민지 양이 메이크업 받는데 다 떠들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다들, 어? 어? 그러다가 막 난리가 나면서. 막 호텔 아주머니랑 손잡고 기도하고 이런 게 다 찍혀있거든요. 근데 진짜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밤새 호텔 로비에서 노숙하고 이런 것도 다 저희가 찍었죠. 너무 무서운 와중에. 다들 1층에 모여있었는데 저희 숙소가 34층이었거든요. 당연히 못 올라가죠. 엘리베이터도 안 되지. 그래서 저희가 그때 영상을 올리자고 했는데 일본 회사 측에서 일본 팬들이 더 상처받을 것 같다고 풀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지금 거의 10년이 지났는데도, 진짜, 눈물 나더라고요. 영상 보면 지금도 떨리고.

 

- 1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큰 지진이었습니다.

 

산다라박 : 네. 정말 쓰나미 오고, 비행기 안 떠가지고 한국에 가네, 마네. 막 난리였대요. 같이 있는 사람들 핸드폰도 안 터지니까 한국 회사에서 이쪽에 계속 전화해 보라 그러고. 그때 제가 미투데이에 하나 남겼던 거 같은데, 핸드폰 전파가 안 터지니까 몇 초 생겼다 없어지고 그러는데 부모님들이랑 팬들한테 알리고 싶은 거예요. ‘우리는 괜찮아요’ 이거 하나 탁 올라갔던 거 같아요.

 

- <뮤직 스테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일본 내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방송이 취소된 점도 아쉬울 것 같습니다.

 

산다라박 : 네, ‘Go away’로 활동할 때 나가려고 했는데, 지진으로 취소돼서 못 나갔고. ‘내가 제일 잘나가’ 활동할 때 나가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다들 오히려 더 잘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어요.  왜냐하면 일본에서 ‘Go away’보다 ‘내가 제일 잘나가’를 더 좋아할 거 같으니 뭐 운명인가 보다라고 얘기를 했던 거 같아요. 

 

- 일본 활동은 한국에서의 활동과 어떤 점들이 달랐나요?

 

산다라박 : 일단 바닥부터 시작하는 거죠. 한국에서 데뷔하고 나서 신문사 인터뷰를 한 번 도는데, 나중에는 자리를 마련해서 한 장소에서 기자회견처럼 진행하거든요. 일본에 가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니까 하루에 뭐 몇십 개씩 인터뷰를 계속해야 하고.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게 있어서 음악방송도 아닌데 아침 방송 나가서 댄스곡 부르고. 그거 하려고 막 새벽 3, 4시에 가서 준비하고. 그리고 음악 방송이 아니잖아요. 그냥 막 아침 방송 같은 그런 분위기인데. 옆에 부엌 세팅돼있고. 어쩄든 문화가 다르다 보니까 그렇게 하는 건데, 익숙지가 않은 거예요. 그러면서 거기서 노래 부르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우리끼리 위로를 하고 막 그랬었죠. ‘진짜 우리 소처럼 일한다’ 그러면서. 

 

 

(2부에서 계속.)

 

 

[사진출처=어비스컴퍼니]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공유하기

© www.archive-k.com
Total 75 / 1 page
검색 열기 닫기
게시물 검색

인터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