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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by 김작가

돌아보니 모든 것이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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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01작성자  by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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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이어집니다.)

 

아직 K-팝이란 말이 익숙지 않았던 때, 노브레인은 팝계의 거물에게 주목 받았다.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많은 해외 투어를 통해 한국과 서구의 밴드 수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그들도 환경도 변했다. 이젠 모든 것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 2002년 월드컵으로 인디 씬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당시 노브레인은 어땠나요?

 

이성우 : 그땐 저희가 다들 쉬고 있는 상태였어요. 차승우 탈퇴 후에. 저희는 목동에서 현대

백화점을 짓고 있었어요. (웃음)

 

- 그럼 ‘진군가’는 언제 나온 건가요?

 

이성우 : ‘진군가’를 발표하고 차승우가 탈퇴를 한 거죠. ‘진군가’ 발표하고 도시를 돌면서 공연을 하기도 했거든요. 저희는 대구인가 어디에선가 공연을 한 번 한 게 마지막이었어요. 예선전 때. 그때 크라잉 넛, 윤도현 형, 레이지본이 엄청 잘 됐죠. 저희는 2006년에 좀 했어요.

 

- 많은 분이 2002년 월드컵을 인디 신의 큰 기점으로 말하더라고요. 실제로 거리 응원 같은 것들이 영향을 미쳤나요?

 

이성우 : 2002년 전에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봤어요. 록 공연이든 뭐든 공연장에는 무조건 좌석이 있어야 했어요. 좌석이 있지만 ‘여러분 일어나세요, 록은 다 함께 일어나서 즐기는거야’ 하면서 일으켜 세워서 박수를 치고 놀고 했죠. 그때 안전 요원들이랑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객석으로 다이빙하고 무대에서 뛰고 이러면 무너진다고 하지 말라고. 근데 2002년 이후엔 사람들이 그냥 다 일어나 있는 거예요. 어느 순간 의자가 치워져 있고. 전 그 이후에 공연 문화가 어마어마하게 바뀐 것 같아요. 그때까진 사람들이 부끄러워서 놀고 자유롭게 즐기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다 함께 뛰고 놀고 즐기는 게 되게 행복한 일이란 걸 사람들이 안 거죠.

 

- 월드컵이 상승 작용을 했다면, 반대편에선 카우치 사건이 있었죠.

 

이성우 : 저희는 그때 남이섬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공연 끝나고 가는데 벗었다는 얘기가 들려서 바지만 벗은 줄 알았어요.

정민준 : 저희 홍대 밴드 신에선 저희끼리 장난치고 놀고 그랬던 적이 많아서 처음 그 뉴스를 듣고서 웃었어요 솔직히. 그냥 그렇게 장난친 건 줄 알았죠. 근데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한 줄 은 몰랐어요. 그게 자유분방의 개념 정리를 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무조건적인 자유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그 일을 벌였던 친구도 악의가 있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구나 하고 안 것도 있고. 개인적으론 그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어요. 근데 인디 밴드로서 그걸 언제까지 쉬쉬하고 숨길 수만은 없고 그 사건을 잘 정리하는 것부터 다시 인디가 정리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전 어떻게 하면 그 사건을 찝찝하지 않게 정리할 수 있을까 하고 럭스 친구들과 자주 만나서 얘기하곤 해요. 모든 사람이 다 기억하잖아요. 말로는 안 해도 인디 하면 다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니까요.

 

- 다 아는 분들이었죠?

 

이성우 : 네, 다 아는 친구들이었어요. 그 이후에 저희가 공연을 다니면 저희까지 손가락질 받게 되더라고요. 펑크를 하는 게 부끄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땐 조금 부끄러웠어요.

정민준 : 사실 화도 나고 그랬죠. 피드백 돌아온 게 인디 밴드 안 돼 이런 거였으니까.

이성우 : 그래서 그때 생각한 건, 순진하지만 ‘진심을 갖고 음악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그 진심을 알아줄 날이 오지 않을까’ 였어요. ‘다 그런 건 아니야,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고 그런 생각으로 음악 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고...’ 그런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 그 후로 실제로 인디 신이 많이 침체됐나요.

 

정민준 : 너무 확실하게 그랬어요. 사실 저희는 현장에도 없었고 엄밀히 말하면 관계도 없는데, 성우 형이랑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 옆 테이블에 앉은 학부모가 ‘저런 사람들이 인디 밴드야, 보지마’ 이런 얘기를 하고. 그렇게까지 편견을 가질 수 있구나 했죠.

 

- 몇 년 전에 ‘서울소닉’이란 이름으로 미국 투어를 가셨잖아요. 그때 어디 어디 가셨죠?

 

이성우 : 2013년에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오스틴, 샌디에이고, 뉴욕, 프로비던스, 캐나다, LA...

 

- 연합으로 가셨던 거죠?

 

황현성 : 네, 그때 총대를 멘 형이 있는데, 그 형이 여러 지원도 받고 사비를 끌어다 한국 인디 신에 있는 밴드들을 미국에 소개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서너 팀이 프로젝트로 미국 투어를 돌았는데 저희가 3회째 였어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로다운30, 저희 이렇게 세 팀이 갔어요. 또 그 당시에 미국 투어를 돌고 있던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3호선 버터플라이를 로컬 에서 만나서 하우스도 같이 쓰고 같이 다녔죠.

 

- 반응은 어땠어요?

 

황현성: 죽였죠.

이성우 : 한 번은 거기 관계자가 ‘너희가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끝나고 나니까 ‘너희 언제 또 올 거야? 다음에 또 와 제발. 너희 공연하고 싶으면 투어일정 다 짜올 테니까 다음에 또 와’ 이러더라고요. 그때 뿌듯했죠. 우리의 목소리, 거친 사운드가 발하는구나.

정우용 : 그리고 워너브라더스 부사장님께서도 저희에게 앨범 제안을 하셨어요.

 

- 시모어 스타인(Seymour Stein) 말씀이시죠? 그때 기사는 많이 나왔는데 결과에 관한 얘기는 없더라고요. 어떻게 됐나요?

 

이성우 : 계약서가 날아와서 검토를 했는데, 계약 조건이 저희에겐 좀 불리한 조건들이 많았어요. 세계적으로 퍼지는 대신 저희에게 오는 수익 같은 건 되게 적게 책정이 되어 있어서 바꿔 달라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다고 해서 결국 불발됐죠.

정우용 : 계약서를 주고받는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변호사를 통해 번역하고 그러면서 기간이 길어지기도 했고, 저희에겐 좋은 조건이 아니었어서.

정민준 : 그 당시에 음원을 녹음하기도 했는데 잘 남아 있어요. 그래미상 받은 프로듀서가 제작을 해줬는데 지금 들어도 엄청난 퀄리티거든요. 그걸 못 넣은 게 저도 너무 아쉽긴 한데, 아까 말했던 계약 조건이 공연할 수 있는 영역을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것이다 이런 거였거든요. 한국에서 하고 싶을 때 못할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정우용 : 달에 가서 공연을 해도 수익금은 우리에게 줘야 한다, 이런 세세한 것까지 다 쓰여있더라고요.

정민준 : 아무튼 음원은 정말 좋거든요. 그래서 제가 만약에 불치병으로 어떻게 되면 퍼뜨리고 가려고요. (웃음)

 

- 저작권 때문에 발매를 못 하는 건가요?

 

이성우 : 아니요, 저작권은 풀면 돼요. 저희가 발표를 안 하고 있는 입장이죠.

정우용 : 사실 프로듀서들이 연락이 안 닿아서. 답이 없더라고요. 음원을 내고 싶은데.

 

- 미국에서 공연할 때는 한국어로 노래를 하셨나요?

 

이성우 : 한국어로 노래하고 멘트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열심히 했죠.

황현성 : 그 시기가 전 세계적으로 밴드 음악보다 EDM, 힙합이 더 커진 시기였어요. 그래서 미국의 클럽이나 펍에도 신세대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라 예전부터 클럽, 펍을 운영했던 분들은 록이 너무 그리웠던 거죠. 근데 동양인이 와서 기타도 엄청 시끄럽게 울리고 드럼도 부수고 소리 지르고 이러니까 신선했나 봐요. 그래서 다들 굉장히 신기하게 보면서 좋아하더라고요.

 

- 공연 규모는 어느 정도였나요?

 

황현성 : 6~700명 들어오는 곳도 있었고 드럭 정도 클럽도 있었고 다양했어요.

정민준 : 몇천 명 들어올 수 있는 데서도 했는데, 한 서른 명 들어왔어요. (웃음)

 

-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에도 초대받으셨죠?

 

황현성 : 거긴 거의 매년 가긴 했어요.

이성우 : 거긴 가면 홍대 거리처럼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연주하고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모든 가게에서 다 시끄럽게 연주하고 공연하고. 사흘째 되면 미쳐버려요.

 

- 왜요?

 

이성우 : 기가 빨려서요. 너무 시끄럽고 그래서. (웃음) 그래서 저흰 공연만 하고 도망가요.

황현성 :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길을 일자로 온전히 못 걸어갈 정도예요.

 

- 거긴 어떻게 초청받으신 거예요?

 

이성우 : 잘해서요. (웃음) 농담이고. 한 번 가고, 두 번 가고 하다 보니까 ‘노브레인 또 안와?’하면서 계속 가게 됐죠.

 

- 요즘 K-록, K-밴드 이런 건 들어보셨어요?

 

이성우 : K-록은 들어봤어요.

정민준 : 미국 갔다 와서 느낀 건 우리나라가 더 잘한다는 거였어요.

이성우 : 우리나라 밴드 정말 잘해요. 우린 항상 보던 게 외국 밴드들이니까 여기서 볼 때는 저 사람들은 ‘넘사벽’이다,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뭐야, 할 수 있는 거네.’ (웃음) 그랬어요.

거기서 한국 밴드들 공연하는 걸 보니 ‘저 사람들보다 더 잘하는데?’ 그런 생각도 했고요. 물론 넘사벽 밴드들도 있어요. 근데 어지간한 밴드는 한국 클럽 FF 와서 하면 비슷한 거죠. 

황현성 : 예를 들면 SWSX 페스티벌은 콘퍼런스잖아요. 전 세계에서 자신 있는 애들이 지원해서 심사를 받고 오는 건데, 2,000팀 있으면 그중에 정말 색깔 있고 잘하는 팀은 많지 않거든요. 근데 한국에선 주말에 클럽 가서 인디 밴드들 보면 너무 잘해요.

정민준 : 그 사람들은 일상에서 배워 온 어떤 멋이 있고, 우린 창작성이나 정교함, 끈기가 우월해서 길게 보면 우리가 우위에 있을 수도 있겠어요.

이성우 : 그런 의미에서 K-밴드 중에선 잔나비 친구들이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듣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얘네는?’ 저희랑 결이 많이 다르긴 한데 들으면서 뭔가 참고도 많이 되고 공부가 된다고 할까요. 들으면서 가끔 깜짝깜짝 놀라요. 얘네 진짜 멋있다, 하고요.

 

- 예전에 PC통신 시절에 인디 음악 쪽에도 동호회가 활발했죠?

 

정민준 : 형들은 모를 거예요. 전 중학생 때 노브레인 공연을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PC통신 하이텔 들어가서 드럭 동호회에 가입했어요. 문장 한 줄도 한 3초 기다려야 나오던 시절인데, 거기서 ‘노브레인 공연 갈 사람,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디에서 모일 분’ 이렇게 해서 가고 그랬어요. 그땐 PC통신 통해서 멤버들의 취향이나 일상 같은 걸 알 수 있었어요.

 

- 이성우, 황현성 두 분은 원년 멤버인데 PC통신 안 하셨어요?

 

이성우 : 예전에 친구 집에 갔는데 그게 있어서 나도 해보자, 하고 들어가 봤어요. 친구가 타자도 대신 쳐주고 했던 것 같아요.

정민준 : 가끔 멤버들이 들어오는 날이 있어요. 그럼 PC통신 켜놓고 계속 기다리는 거예요. ‘보컬 형 저번에 들어왔는데 언제 들어올까’ 하는 거죠. 말 한 번 걸어보려고.

 

- 그때는 하이텔로 멤버도 구하고 했다던데 그런 적은 없으세요?

 

정민준 : 전 노브레인 말고 제 밴드 할 때 PC통신으로 멤버 구해서 시작했었어요. ‘정민준과

혼수상태’라고.

 

-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노브레인저’라는 걸 봤는데 이건 어떤 건가요?

 

이성우 : 현성이 만든 노래가 만화 주제곡 같아서 저희 회사에 디렉팅하는 형이 아예 쫄쫄이를 입고해보는 건 어떠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파워레인저 옷을 공수해서 입고 무대 위에 올라가고 그랬는데, 뭔가 복면가왕 나온 것 같고 재미있더라고요. 사람들은 누군지 잘 모르고 그냥 이상한 애들 나왔구나,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서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재밌었어요. 예전에 ‘넌 내게 반했어’ 나왔을 때 슈퍼맨 옷도 입고 스파이더맨 옷도 입고 그랬거든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정민준 : 여성 관객분들은 오히려 더 좋아하는 눈으로 보셨어요. 얼굴이 가려져서 잘생김이느껴졌나 봐요. 방송이든 공연이든 너무 많이 해봐서 이번엔 거꾸로 얼굴을 가려보자 하는 거였죠.

황현성 : 그게 만화주제가 같을 수밖에 없는 게, 만화 주제가를 만들었다가 까였거든요. (웃음) 그래서 버려진 노래였는데 재활용이라도 해서... (웃음)

 

- 제가 본 영상에선 MR로 무대에 오르셨더라고요.

 

이성우 : 그냥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면 가서 보여주고 싶단 생각이 커졌어요. 이젠 편해요. 노브레인이 라이브를 못 해서 MR을 썼다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정민준 : 요즘엔 저희가 오히려 MR로 하면 안 되냐고 할 때도 있어요. 우리의 연주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것보단 우리의 에너지를 보여주겠다는 걸로 관점이 더 커진 것 같아요.

 

- 요즘 홍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전에 비해서 클럽은 많이 줄었죠?

 

이성우 : 확연히 줄었죠. 저희가 한창 활동할 때는 한 거리 건너 클럽이 하나씩 있었어요. 홍대만 해도 10개 이상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두어 개밖에 없는 실정인데, 아쉽긴 하죠.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면 좋겠는데... 한편으론 당연한 것 같기도 해요. 인디밴드에 대해 예전보단 관심이 줄어든 건 사실이니까요. 결국 우리가 다시 일궈야 할 곳인 것 같고, 우리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밴드들의 숙제인 거죠. 언젠간 해낼 거라고 믿어요. 밴드가 무대에 오르고 관객들이 모여서 하나의 에너지를 내뿜는 건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에너지니까요. 그런 날이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해요.

황현성 : 그럼 우린 되게 늙어 있을 거야. (웃음)

이성우 : 늙어도 좋아. 그냥 맥주 한 캔 까고 짠하면서 공연 끝나고 뒤풀이하는 거지, 뭐.

황현성 : 예전엔 자극을 받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스트레스 해소, 술 마시는 곳 이렇게 된 것 같아서 아쉬워요. 그렇지만 긴 흐름을 봤을 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시대의 인디는 사실 홍대를 중심으로 가고 있진 않거든요. 이제는 많이 퍼졌죠. 그 현상도 잘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밴드가 유행이 아니라고 해서 밴드가 죽은 것도 아니고, 지금은 다양한 장르를 밴드로 소화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충격받고 그래요. 이렇게 인디가 다양한 형태로 피고 지는 것들도 멋있는 것 같아요. 분명 다시 시끄러운 음악이 유행할 때도 오겠죠.

 

- 노브레인에게 인디란 무엇일까요?

 

이성우 : 인디란...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길, 그리고 저희가 아마 죽을 때까지 들을 이야기 같아요.

정민준 : 노브레인에게 신분증이 있다면 서울시 ‘인디구’ 이런 느낌 아닐까.

이성우 : (웃음) 그렇지. 신분증에 종교란이 있는 나라도 있다고 하잖아요. 저희라면 인디라고 적혀있지 않을까요.

 

- 현재까지 포함해서, 노브레인이 생각하는 인디란 무엇인가요. 요즘은 워낙 모호해지긴 했

죠.

 

정민준 : ‘자작(self-made)’이요. 그러니까 보통 기획자, 감독이 붙어서 아티스트에게 주문하고 만들어지는 앨범이 많은데, 그렇게 안 하고 프로듀서들이 하는 거까지 내가 직접 해서 내는 앨범, 활동을 인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따지고 보면 메이저 가수들도 인디와 다름없는 분들도 있죠.

 

- 인디의 장르도 다양해졌잖아요. 밴드가 아닌 인디 뮤지션들에게도 인디 선배라고 생각하세

요? 예를 들어 볼빨간사춘기 같은 팀이라든가...

 

황현성 : 오히려 볼빨간사춘기의 경우 꽤 맞닿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형태 같아요. 가령 원맨밴드나 솔(soul) 음악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저희가 만날 기회는 별로 없지만 그들을 인디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죠. 그들은 그들의 형태로 인디펜던트하게 하고 있는 거니까요.

정민준 : 요새 ‘커머셜 인디’라고 해서 아예 프로듀서랑 홍보 수단을 다 계획하고 작전을 짜서 인디스럽게 음악하고 나오는 메이저 지향 팀들이 있는데, 그런 팀을 볼 때는 조금 아쉽긴 했어요. 사운드는 인디 음악 같지만, 순서가 포장이 많이 돼서.

이성우 : 그렇다고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인디밴드다, 인디밴드가 아니다, 이런 건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느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멋지게 음악 하면 되는 거죠.

 

-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을 인디 1세대라고 하는데,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왜 두 팀을 인디 1세대라고 하는 걸까요?

 

이성우 : 자체적으로 앨범을 만들어서 빵! 하고 세상에 내보낸 게 처음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마 많은 사람이 주목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희가 인디 문화를 처음 만들었다, 이건 아니고 그때 꽃피기 시작했기 때문에.

정민준 : 제가 볼 때는 인디의 움직임은 그 전부터 있었어요. 근데 그 시대적 상황에서 가장 속 시원하게 인디의 장점을 보여준 게 크라잉넛, 노브레인이었죠. 한계 없이 모든 걸 자유롭게 뿜어내면서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고 유명해질 수 있었던, 그런 가능성을 보여줘서 인디 1세대라는 명찰이 달린 거 아닐까 해요.

 

- 그럼 왜 홍대에서 시작이 된 걸까요?

 

이성우 : 예전에는 홍대 임대료가 쌌어요. 이대, 신촌이 엄청 비쌌고, 극동방송 그쪽은 가격이 너무 쌌어요. (웃음) 그리고 그때 홍대는 조금 논다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모이는 힙한 장소였어요. 거기다 임대료까지 저렴했으니 금상첨화였죠. 그래서 홍대이지 않았을까 해요. 그리고 홍대는 아직 상권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곳이니까요. 신촌, 이대는 난리였어요. 신촌이 그때 어마어마했죠.

 

- 노브레인에게 크라잉넛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이성우 : 웬수. 쳐부숴야 할 주적. (웃음) 진심을 담아서 한 번 얘기해줘 봐.

황현성 : 진심을 담아서... 죽여 버려야 돼. (웃음) 농담이고요. 조금 오버해서 얘기하면 저희가 저희로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 같은 느낌이에요. 크라잉넛이 없어져 주면 더 좋고 우리가 알아서 해 먹겠지만 (웃음) 크라잉넛이 있기 때문에 크라잉넛, 노브레인 이렇게 자꾸 얘기하고 그런 게 좋더라고요. 가끔 노브레인을 해체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크라잉넛보다 먼저 깨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다시 잡아요. (웃음)정우용 : 저희끼리 농담으로 크라잉넛보단 오래가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정민준 : 아마 노브레인, 크라잉넛은 해체 안 할 거예요. ‘너희가 하기 전에 우리도 안 해’ 이런 게 있어서. (웃음)

이성우 : 좋은 친구이자 함께 해나가는 좋은 동료죠. 있어 줘서 고맙고 같이 해주서 고맙고, 앞으로도 같이 해줄 거라서 고마운. 꾸준하게 저희와 같이 길을 걸어가 주면 좋겠어요. 올해 25주년(2020년 기준)인데 수고 많이 했고, 내년 우리 25주년(2021년)에 축하 많이 해달라고 자랑하고 싶어요.

정민준 : 저희끼리도 20년을 보면 진짜 애증이 생겨서 가끔 극단적으로 그만둘까,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크라잉넛 형들의 한결같은 모습을 보면 다시 마음을 정리하게 되고, 열심히 하게 돼요. 본보기 같은 자극제죠.

황현성 : 아마 비슷할 것 같은데, 저희는 크라잉넛 팬이에요.

 

- 음악적 동질감 이런 건가요?

 

이성우 : 멋있어요. 그 친구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들이 저희에겐 없거든요. 재치 있고 뭔가 치고 빠지는 복싱 스타일 같은 게 저희에겐 좀 부족한 부분이에요. 저희가 한다고 해도 어울리지도 않을 거고요. 공연할 때 나오는 다섯 명의 에너지도 대단하고, 한 명의 멤버 교체 없이 25년을 쭉 달려온 것도 대단하고.

황현성 : 팬들이 저희에게 그냥 있어 줘서 고맙다고 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같이 태어나서, 음악이 비슷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그냥 크라잉넛으로 있어 줘서 너무 멋지고 그래요.

정우용 : 본받을 점이 많은 팀이에요. 쉬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정민준 :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싸우길 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그래서...

황현성 : 한 번쯤은 싸울까.

정민준 : 한 번쯤 싸우고 싶은 느낌도 있어요. (웃음) 그런 걸 기대하는 분들도 많고요.

이성우 : 사회면에 나오고?

정민준 : 아...(웃음)

 

- 노브레인과 미디어는 늘 맞닿아 있는 느낌이 있어요. ‘바다사나이’ 뮤직비디오가 방송을 타서 음악 방송에 나간 것도 그렇고, 영화에도 나가고. 인디 신의 1세대로서 미디어와 인디 두개가 노브레인에겐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이성우 : 저희에겐 적절한 줄타기가 딱 맞는 것 같아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고 적절하게 밸런스를 잡으면서 해나간 게 맞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다고 저희가 방송 체질도 아니고 예능에 나와서 엄청나게 웃길 수 있는 캐릭터들도 아니라 적절한 선을 찾는 게 약간 숙제였죠. 이제는 그 숙제가 조금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인터뷰도 예전보단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같고.

정우용 : 그러니까 저희끼리의 암묵적인 약속 같은 건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면 방송 이건 어디건 가자는 거였어요. 음악을 들려주기 위한 매개체라고 할까요.

정민준 : 단순하게 생각하면 앨범을 내는 이유는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인데, 인디라고 해서 우리는 미디어 싫어, 이런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장르를 떠나서 미디어와 손잡고 더 많이 보여줄 걸 찾고, 미디어도 우리 덕분에 더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매체가 되고 이런 게 좋은 것 같아요.

황현성 : 크라잉넛이 올해(2020년) 25주년이어서 지금 굉장히 바빠요. 녹음도 하고 캠페인도 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면 지금 많은 오프라인 행사를 만들고 있었을 것 같아요. 아마 크라잉넛 멤버들도 고민이 많을 거예요. 어떻게 미디어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까. 저희도 내년(2021년)에 25주년이 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고민을 할 것 같아요. 오프라인 공연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미디어가 중요한 건 너무나 확실하죠.

 

- 그럼 처음엔 어떠셨어요? 아주 초반에 미디어에 대한 생각이요.

 

이성우 : 낯설었죠. 그땐 저희가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고 싶은 사람인데, 그 시스템 안에 가있으니 아이러니했어요. 뭘 하는 지도 모르겠고. 거기서 우릴 지켜보는 시선은 다 싸늘하고 차가운 시선밖에 없는데, 왜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여기 있어야 하나. 공연장 가면 우와, 하면서 환호해주잖아요. 그러니까 그 공간이 부담스럽고 싫었죠.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데 우리가 가서 구걸하는 느낌도 좀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땐. 

정민준 : 미디어에 계신 분들도 그땐 지식이나 경험이 많지 않아서 저희를 받쳐줄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니 마찰이 많았는데, 요즘은 정말 달라요.

이성우 : 예전에 한 번은 방송국에 갔는데 드럼 의자가 없는 거예요.

황현성 : 그래서 앉은 척하면서 여긴 찍지 말라고 그러기도 했죠. 아예 드럼이 없었던 적도 있어요.

이성우 : MR 방송도 아니었거든요. (웃음) 라이브 방송인데 드럼이 없다고 해서 어떻게 하냐고, 그러다가 급하게 MR 구워서 그냥 MR 틀었어요. 얜 차에서 게임하고 있고. 24년 동안 음악을 하다 보니 많은 일이 있었네요.

황현성 : 세상은 계속 변하잖아요. 저희도 변하고. 그런 걸 조절하고 이용하는 게 옛날엔 타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단어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지켜야 할 자존심은 그런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남아 있는 팬들, 지금까지 같이 늙어가면서 남아 있는 소중한 팬들인 것 같아요. 그들이 저희에게 바라는 건 1, 2집처럼 계속 전투적이고 이런 게 더 이상 아니더라고요. 그 친구들은 저희가 무너지지 않고 계속 있어 주길 바라요. 그걸 보면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느끼고 있어요. 어떻게든 계속 살아남아서 그런 친구들도 초대하고, 그런 게 중요한 자존심 아닐까 해요.

 

 

[사진출처=록스타뮤직앤라이브]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김작가 일일공일팔 콘텐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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