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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by 김작가

오늘의 성공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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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01작성자  by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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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어떤 길을 가야할지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막막했다. 그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모든 기회를 온 몸 불살라 잡았다. 잔나비를 일찌감치 알아본 소수의 팬들이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일당백으로 그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을 다해왔다. 잔나비는 그렇게 성장해왔다. '잔팬'과 함께 가장 바깥에서 가장 안쪽으로 걸어왔다. 그 짧고도 긴, 뜨거웠던 시간을 잔나비가 스스로 기록한다.

 

-잔나비는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기존 밴드들과 달리 활동했다고 들었어요.

 

최정훈 : 네이버에서 ‘뮤지션리그’라는 플랫폼을 만들어서 저희 같은 인디 뮤지션을 발굴했었죠. 한 번씩 네이버 메인에 띄워주기도 하고요. 거기서 열심히 활동했어요. 일주일에 하나씩 커버곡, 저희 곡, 라이브 영상 같은 콘텐츠를 찍어서 올렸죠.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저희 라이브 영상이 메인에 올라간 거예요. 그 후로 꽤 자주 올려주셨어요. 근데 그걸 제가 [슈퍼스타K]에 나왔을 때 친분이 있던 OST 관계자 형이 본 거죠. 사실 딱히 서로를 기억하고 연락할 만큼 친분이 있진 않았는데, 메인에 걸린 영상을 보고 활동 열심히 한다며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몇 주 뒤에 OST가 한자리 펑크가 나서 저희에게 곡을 써달라는 의뢰가 왔죠.

김도형 : 그래서 3일 만에 썼어요.

최정훈 : 3일 만에 써서 드렸는데, 그땐 채택이 안됐어요. 이후에 그 곡이 다른 데 쓰였죠.

 

-어떤 곡인가요.

 

최정훈 : ‘파라다이스’라는 노래예요. 처음으로 OST에 쓰인 곡이죠.

김도형 : OST 나오고 나선 그래도 많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TV에서 계속 저희 노래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이 노래 너희 노래였어?’ 하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어요.

최정훈 : 아무튼 그런 플랫폼이 있다 보니 인디 음악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시는 관계자분들은 항상 확인하셨던 것 같아요. 발굴하는 입장에서 지켜보셨다고 할까요.

 

-그 이후에 OST 작업을 꽤 많이 했어요.

 

최정훈 : 네, 한창 많이 했어요.

김도형 : 소문이 잘 났죠. (웃음)

최정훈 : 그때 그 음악이 영상과 굉장히 좋게 붙어서 그다음부터 여러 곳에서 저희를 찾아주신 것 같아요. 그때마다 될 때까지 곡을 보냈어요. 한 번 보내고 안 되면 어떻게 수정할까 여쭤보고, 아니면 아예 곡을 싹 바꿔서 다른 곡을 보내드리기도 하면서 이틀에 한 곡, 총 서너 곡씩 보냈어요.

 

-OST 작업으로 얻은 게 있을까요

 

김도형 : 저희를 소개할 수 있는 다른 뭔가가 생긴 거였죠. 그때 저희가 밴드를 소개할 수 있는 건 ‘100회가 넘는 버스킹’이었어요. 여기에 OST가 추가된 거예요. 그러자 사람들이 한 번 더 관심을 줬죠.

 

-[슈퍼스타K] 출연 계기가 있을까요. 보통 밴드들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잖아요.

 

최정훈 : 그때는 어린 마음에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슈퍼스타가 한 방에 되고 싶었던. 버스커 버스커나 딕펑스처럼요.

김도형 : 그땐 [슈퍼스타K]에 나오면 인기가 어마어마했잖아요. 그래서 출연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도 이거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니냐고 하셨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나갔는데 다른 의미로 큰일이 났죠 가서. (웃음)

최정훈 : 잔나비로 나갔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저 혼자만 엉뚱한 팀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떨어졌어요. 그래도 생방송 두 번째까진 갔는데. 사실 잔나비가 아니면 하기 싫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제 모습도 그렇고, 창피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어떻게든 팀을 알리기 위해 했죠. 제가 다른 그룹에 속해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방송 보는 사람 중에 단 몇 명이라도 잔나비라는 이름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거 때문에 했어요.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뮤지션리그, [슈퍼스타K] 이런 건 이전 세대의 인디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잖아요.

 

최정훈 : 그렇죠. 욕 무지하게 먹는 거죠. 그중에 하나만 해도 욕먹는 건데...

김도형 : 배신이죠, 배신. 변절자. (웃음)

최정훈 : 사실 그래서 저희는 어느 정도 활동하기 전까진 인디에 속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희 체제나 시스템이 누가 봐도 명백하게 독립적이고, 시스템이라고 할 것도 없이 소꿉놀이처럼 회사엔 저희 친형 혼자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들도 인디밴드로는 쳐주지 않았어요. [슈퍼스타K]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그걸 깨기 위해 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까지 했어요?

 

최정훈 : 조금 답답했어요. 인디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입장에서 조금 더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면서 ‘너무 제한을 두지 말고 우리가 그렇게 한 번 해보자. 그런 경계가 어디 있어. 지켜야 할 게 어디 있고 지키지 말아야 할 게 어디 있어. 그건 다 스스로 자존심 문제지.’ 했어요. 그래도 주변의 시선은 조금 따가웠어요. 다른 밴드들이나... 그냥 버티면서 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알아줄 거란 생각에요.

 

-잔나비라는 밴드를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군요.

 

최정훈 : 그렇죠. 잔나비라는 인디밴드가 있다는 걸 많이 알리고 싶었어요. 특히 인디 신에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왜 [슈퍼스타K] 하나만으로 그러지?’ 하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했죠.

 

-사실 미디어와 인디가 반대말처럼 여겨지던 시기도 있었어요.

 

최정훈 : 맞아요. 지금도 조금은 그렇게 통용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거죠?

 

최정훈 : 네. 저희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가장 큰 창구였으니까요. 저희 음악이 그냥 묻히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항상 했거든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진짜 피를 쏟고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만들었는데. 그리고 그걸 알리기 위해 공연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미디어라는 좋은 기회가 우리에게 온다면 정말 열심히 해서 그 기회를 잡아야겠단 생각을 항상 했어요.

 

-데뷔곡은 언제 나왔죠?

 

최정훈 : 2014년 4월에 나온 ‘로켓트’였어요. 그땐 곡을 낼 생각은 안 했고 공연만 하려고 했어요. 다른 밴드들이 그렇듯 공연만 하다가 반응이 좋은 곡들을 추려서 앨범을 내자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그냥 신곡을 먼저 한 번 내보고 활동을 하자고 했어요.

 

-녹음은 어디서 어떻게 하셨어요?

 

김도형 : 저희 작업실에서 홈 레코딩 했어요.

 

-밴드도 홈 레코딩이 가능해요?

 

최정훈 : 드럼은 스튜디오를 빌려서 하고 나머지는 다 홈 레코딩으로 가능해요.

김도형 : 요즘은 너무 잘 돼 있어서요.

최정훈 : 그때는 3인조였는데, 밴드라는 사명감도 있긴 하지만 비용도 고려해야 하고... 그리고 그땐 저희가 스튜디오 레코딩과 홈 레코딩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만한 실력이 아니었어요.

 

-힘든 점은 없었나요..

 

최정훈 : 전혀 없죠. 제일 편해요. 제일 쉽고 제일 간단하고.

김도형 : 요즘엔 프리셋이 잘 돼 있어서 LA에 있는 녹음실 사운드를 내고 싶으면 그대로 그 스트링을 쓸 수도 있죠. 홈 레코딩은 제약이 없어요.

 

-홈 레코딩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최정훈 : 요즘 드는 생각은, 스튜디오에서 아무리 백날 녹음을 해봐도 저희가 작업실에서 처음 녹음할 때의 느낌이 안 난다는 거예요. 데모로 녹음할 때의 그 느낌. 그게 홈 레코딩의 장점이죠. 데모로 떠올랐을 때 바로 연주하고 녹음하고, 바로 불러서 녹음하고 했던 그때 느낌이 스튜디오로 가면 잘 안 나더라고요. 누구나 그럴 것 같아요.

 

-앨범 유통은 어떻게 했나요.

 

최정훈 : 저희가 [슈퍼스타K] 나갔을 때 저희에게 굉장히 고마운 분을 만났어요. 신사동호랭이. (웃음) 의외의 인물인데, 신사동호랭이 형이 당시에 밴드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저희 음악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죠. 그때 저희가 싱글 발매를 결정한 후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잖아요. 그때 신사동호랭이 형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유통까지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매니저를 맡고 있는 제 친형에게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신 것 같아요. 어떻게 일을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해서 첫 싱글을 낸 거죠.

 

-반응이 왔나요.

 

최정훈 : 생각했던 것보단 괜찮았어요.

김도형 : 아예 기대를 안 했거든요.

최정훈 : 아예 반응이 없을 줄 알았어요. [슈퍼스타K]에 나와서 저희가 좋은 인상을 심어줬던 것도 아니고, 음악도 쉽고 간단한 음악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오래 해보자는 생각으로 냈는데, 은근히 좋아해 주셨어요. ‘그 [슈퍼스타K] 나와서 멍청하게 떨어졌던 애들 아냐?’하고 기억하시던데요. 그걸 보면서 저희는 작은 희망을 봤던 것 같아요.

 

-희망을 본 근거는요?

 

최정훈 : 음원 사이트 평점이나 리뷰 같은 걸 계속 봤어요. (웃음) 지금 들으면 조금 창피한 말일 수도 있는데, 퀸 같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난리가 났죠. 너무 좋아하는 뮤지션이고 그렇게 되고 싶었는데. 속으로 ‘퀸 같대’ 하면서. 그런 반응들을 좋아했어요.

김도형 : 진짜인가, 싶었죠.

 

-음원 수익도 좀 들어왔나요?

 

최정훈 : 수익은 전혀 없었죠. 그냥 저희가 생각할 때 반응이 아예 무(無)일 줄 알았는데, 조금은 있었다는 말이에요.

 

-1집 <Monkey Hotel>얘기를 해볼까요. 준비할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김도형 : 정규 앨범을 준비할 때는 저희 팀 분위기가 많이 침체되어 있었어요. 외부인이 오면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숨이 막힐 정도였죠. 음악적으로 자존감도 완전히 낮아져 있을 때예요. 생각보다 반응이 오지 않았으니까요. 팀에 음악적인 색깔도 없고.

최정훈 : 우리가 음악을 오랫동안 하려면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선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활동할 때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가고 하는 게 맞지만요. 그전까진 음악을 만들 때 눈치를 보느라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걸 표현을 못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발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질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많이 곤두서고... 더 잘하자고 북돋웠던 것들이 오히려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결론이 난 거죠. ‘야, 우리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거, 우리가 들으면 좋을 만한 음악 한 번만 만들어 보자. 여태까지 10곡인가 만들었는데 이제껏 음악 만들면서 내가 좋아서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좋아할 수 있는 거 만들어 보자’ 라고 말했어요. 정규 1집을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2015년 말쯤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이제 레트로란 느낌을 내기 시작한 건가요.

 

최정훈 : 그렇죠. 레트로라고 생각도 안 했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밴드 음악이니까 당연히 1980년대, 1970년대 음악을 닮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밴드의 기본이잖아요. 뭔가 앞서 나가는 사운드를 만들지 않는 한 그럴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었더니 사람들은 ‘빈티지 팝이다, 레트로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간혹 저희를 ‘뉴트로’로 묶어서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긴 한데, 저희가 추구하는 사운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1970년대 음악을 참고하고, 그 안에서 재해석을 하려고 했죠.

 

-잔나비가 독특했던 이유 중 하나가 젊은 뮤지션이 1960년대, 1970년대 음악을 한다는 것이었죠.

 

김도형 : 일단은 정훈이가 처음에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하자고 했던 게 컸어요. 단순하면서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요.

최정훈 : 좋아하는 음악이 뭔지는 알겠는데 만들려고 하니까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만들어 보자, 하고 처음 만든 곡이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이었어요. 그 곡을 길잡이로 잡고 발전시킨 앨범이 1집이었죠.

 

-요즘은 ‘뉴트로’라는 말이 유행이에요.

 

최정훈 : 저희는 사실 유행을 피하고 싶었어요. 저희가 1집을 낼 당시엔 ‘힙’한 게 가장 유행이었어요. 힙하고 난해하고, 멜로디도 없고 쿨한, 차가운 음악들이 인기였죠. 저희는 거기 공감할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해도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자고 해서 나온 게 1집이었는데, 뭔가 시기적으로 맞았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유행은 돌고 돌잖아요. 돌고 도는 타이밍에 앨범이 나왔던 것 같아요.

 

-잔나비의 노래는 긴 제목들이 많아요.

 

최정훈 : 처음에 글자 수를 많이 했던 이유는 뭔가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튀고 싶었던 거죠.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 이런 거요.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은 너무나 좋아하고 당시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던 산울림에 대한 오마주였어요.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처럼 길게 제목을 지어본 거죠.

 

-1집에 실린 ‘Goodnight’라는 노래는 테이프 레코딩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들었어요.

 

김도형 : 요즘은 레코딩 기술이 좋으니까 녹음하면서 편집도 실시간으로 가능한데, 테이프는 편집이 힘들어요. 한 번에, 원 테이크로 테이프를 돌리면서 녹음을 하는 거죠. 질감의 차이도 느껴지고요.

최정훈 : 흔히 얘기하는 백색 소음이 나면서 듣기 편안하죠. 어릴 때 음악 들으면서 항상 느껴온 그런 소리가 요즘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서, 그런 소리를 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정하고 딱 한 곡만 그렇게 한 거예요. 제일 악기 수가 적은 곡에서 하자고 해서 인트로였던‘Goodnight’에서 한 거죠. 테이프에는 한 번 녹음하면 녹음은 끊었다가 붙여서 가는 게 불가능해요. 한 번에 쭉 가야 하는 거죠. 그때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음악을 잘했는지 새삼 느꼈어요. 저희는 피아노와 보컬만 두고 열댓 번을 불러도 마음에 드는 게 안 나오는데, 밴드가 전부 함께 연주를 해서 마음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녹음한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에게 생긴 목표가 3집 다음에 멤버가 다 같이 모여서 만들 4집에선 전 트랙을 다 테이프로 받아보자는 거예요. 옛날 사람들이 하던 그 방식 그대로 합주 녹음을 하는 거죠.

 

-단순히 음악 스타일뿐만 아니라 작업 방식, 사운드 측면에서도 옛것을 해보려는 욕심이 있군요.

 

최정훈 :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조금 고리타분한 생각일 수 있지만, 요즘 나오는 음악들이 옛날 음악처럼 저희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오질 않는 거예요. 해외에서 휩쓰는 음악들이라고 해도 잘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와 닿진 않는다고 할까요. 그래서 옛날 음악들을 분석해봤어요.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봤는데, 해답이 테이프 녹음으로 한 번에 합주하는 것에 있었던 것 같아요. 박자가 틀려도 같이 틀리는 거. 거기서 오는 밴드의 에너지를 담는 노력들을 다음 앨범부터 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악기에도 특별한 게 있었다면서요.

 

김도형 : 1970년대 음악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악기도 그때 악기를 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밤새 인터넷 뒤져서 해외에서 구입하곤 했죠. 빈티지 악기가 우선시 되는 장르가 있긴 해요. 지금은 악기를 수천 대 찍어내지만, 그때는 다 좋은 재료 사용해서 수작업으로 만들었잖아요. 그런 차이 때문에 인기가 좋은데, 막상 그 기타로 녹음했는데도 그렇게 빈티지하지 않았어요. 그 시대의 그 공간, 여러 가지가 다 갖춰져야 하는 거예요.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꼭 빈티지 악기가 중요하진 않다는 거였어요. 어떤 음악을 연주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최정훈 : 빈티지한 사운드가 반드시 좋은 건 아니고 단지 우리에게 빈티지 사운드에 대한 좋은 향수가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그걸 따라 하고 싶은 거고요.

 

-지상파 방송엔 언제부터 나온 건가요?

 

최정훈 : MBC에서 DMC 페스티벌에 나오면서 지상파 데뷔를 했어요.

 

-그땐 이름이 좀 알려져서 나가게 된 건가요?

 

최정훈 : 나름대로는 그렇죠. 그전에 공연했던 라인업과 비교하며 ‘우리도 이 형들처럼 나오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전해에 칵스가 나갔던 방송이니까 신기했죠.

 

-어땠어요?

 

김도형 : 너무 떨렸죠.

최정훈 : 마침 그때 돌출 무대가 있었어요. 근데 밴드에겐 돌출 무대가 힘들거든요. 보컬만 나가 있으면 어려우니까요. 제가 그날 주문받은 건, 오프닝이니까 진짜 신나게 띄워야 한다는 거였어요. 카메라 신경 쓰지 말고 앞에 나가서 계속 분위기를 띄워라! 제가 그때 앞에 나가서 끝날 때까지 본 무대에 돌아오질 않았어요. 거의 끝날 때쯤에 한 번 들어왔죠.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웃음)

 

-무슨 노래를 불렀나요.

 

최정훈 : 그때 저희 역할은 신나는 거였어요. 지금처럼 감성, 발라드 이런 느낌이 아니라 신나는 거였으니까 사람들이 조금은 들어봤을 법한 OST를 불렀죠. ‘Cuckoo’, ‘알록달록’ 두 곡을 불렀어요.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도 나갔죠.

 

김도형 : 그 방송은 저희가 진짜 매주 밤마다 보려고 기다리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막상 우리가 진짜 선다고 하니 얼떨떨했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무대를 갈망하지 않을까요?

최정훈 : 너무 긴장해서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때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불렀는데, 매일 공연하는 곡인데도 2주 동안 그 곡만 따로 연습했어요.

김도형 : 진짜요. 스스로는 역대급으로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마음에 드는 라이브였죠.

최정훈 : 라이브를 정말 잘했어요. 처음으로 나간 음악 프로그램이었는데 시작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가 한참 가요계에 역주행 열풍이 불 때였거든요. 페이스북 같은 데 노래가 올라오면 역주행하고 그러던 때인데, 저희가 마침 라이브도 너무 잘해서 이거 잘하면 기대해 볼 법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방송 나오기 전날까지 ‘우리 내일 이후로 인생이 바뀐다’면서 내기하고 호들갑 떨었던 기억이 나요. (웃음)

김도형 : 우리 밖에 못 돌아다닌다고 했죠. (웃음)

최정훈 : 그때 너무 큰 기대를 해서 그렇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반응 정말 좋았고 저희에게 큰 응원이 됐어요. 그 방송 덕분에 저희 음악이 기존의 2, 3배는 더 알려진 것 같아요.

 

-그날 이후 밖에 못돌아다녔나요?

 

김도형 : 겁나게 다녔죠. (웃음)

 

-잔나비가 대중적으로 폭발하는 분기점이 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최정훈 : 2집을 낸 직후였던 것 같아요. 2018년까지 시간들이 쌓이고 2019년에 2집을 낸 직후에 드러났죠. 이전까지 저희끼리는 우리의 인지도가 안 좋다고 얘기를 했는데, 생각해 보면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공연, OST 참여도 많이 했고, 미디어에도 나름대로 노출이 됐는데 기대한만큼 반응이 있지는 않았죠. 그런데 그렇게 쌓인 노력들이 견고한 기반이 되어서 2집 앨범을 발표함과 동시에 시너지를 일으킨 것 같아요. 그걸 저희가 두 눈으로 목격했죠.

 

-팬덤이 꾸준히 쌓였군요.

 

최정훈 : 저희 팬들이 입소문도 많이 내줬고, 페스티벌이나 공연에서도 어느 다른 출연진이 나올 때보다 더 크게 소리 질러줬어요.

김도형 : 관객 입장에서 ‘이 팀이 이렇게 유명했나? 나만 모르는 거야?’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요.

최정훈 : 팬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줬어요. 그래서 공연장에서는 우리 공연이 제일 최고라고 항상 자부했거든요. 그런 공연을 팬과 함께 만들었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2집에서 빵! 하고 드러난 것 같아요.

 

-페이스북 구독자가 올라가는 숫자를 매일 확인했다면서요.

 

최정훈 : 그랬죠. 버스킹을 할 때마다 무대 옆에 입간판을 세웠어요. 잔나비 페이스북 좋아요 눌러달라고. 그럼 공연을 하러 들어가면서 한 번 보고, 끝나고나선 공연하는 동안 몇 명이 눌렀나 보고, 다음 날 아침에 또 확인하면 하루동안 몇 명이 늘었는지 계산이 되는 거죠. 어디서 할 때 제일 많이 누르고 어디서 할 때 별로 안 누르고, 어떤 곡 위주로 했을 때 많이 눌렀는지 그런 데이터를 체크해서 대중의 선호도를 익혔어요. 방송으로 치면 시청률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죠. (웃음)

 

-그렇게 해서 나온 2집 타이틀곡이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였죠. 원래 이 곡이 타이틀곡이

었나요?

 

김도형 : 타이틀곡은 원래 없었는데... (웃음)

최정훈 : 저희가 너무 좋아하는 곡이 있었어요. 몇 년 동안 품고 있던 곡인데, 그때 그 곡은 조금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지워버리고 새로 쓴 곡이에요.

 

-2집은 사운드에도 굉장히 많은 투자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최정훈 : 타이틀곡은 저희가 원래 하던 팀에서 했고, 다른 곡들은 실험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원격으로 해외에서 제작했죠. 현악기 파트를 내슈빌(Nashville)에서 녹음했어요.

 

-발매직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차트 1위에 올랐어요.

 

김도형 : 너무 충격을 받았죠.

최정훈 : 너무 믿기지 않는 일이라 오히려 담담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도 해요. 그 순간에 조금 더 좋아할걸. 내가 왜 그렇게 담담하게 했을까. 좋은 일인데도 ‘이거 그냥 얻어걸린 것이니 어른들 말씀처럼 이런 거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자’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소리 한 번 막 질렀어야 하는데 싶죠. 부둥켜안고 소리도 지르고 해봤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못 보낸 게 조금 아쉬워요.

 

-잠깐 1위하고 사라진 게 아니라 상위권에 오래 머물렀잖아요.

 

최정훈 : 그래도 1위 찍는 순간이 있잖아요. (웃음) 딱 그날 그 순간의 기쁨이 있었을 텐데, 그걸 애써 숨기려고 하고... 안 믿기도 했어요. ‘좀 이상한데?’ 그랬죠.

 

-상위권에 머무는 동안 심경의 변화도 있었겠어요.

 

최정훈 : 점점 이상했어요. (웃음)

김도형 : ‘뭐지?’ 싶었어요. 뭔가 조금씩 달라졌어요. 공연장에 가면 사람들이 저희 노래를 저희보다 더 크게 부르는 거예요. 관객들 소리도 더 커지고.

최정훈 : 어떤 면에선 좀 통쾌하기도 했어요. 차트에 알박기하듯이 머무르고 있던 그 노란색 표지 앨범을 우리 멤버 다섯과 하나뿐인 직원이었던 친형 이렇게 여섯 명이 만든 거예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죠. 물론 주변에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그 앨범을 기획하고 만들고 제작하고 홍보하는 노력은 우리 여섯 명 말고는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나온 노래를 사람들이 큰 소리로 따라 부른다는 게 뭔가 통쾌했어요. 관객들이 그렇게 부르는 노래가 우리 머리에서 나온 거잖아요. 사실 남들이 ‘좋은 회사 들어가서 하지 왜 그렇게 하냐’는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 말을 다 무시하고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혼자서 다 해냈구나, 이러려고 우리 형이 고생하고 도형이가 고생하고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고생했구나 싶었어요.

 

-인디 음악가가 음원 1위를 한다는 게 결코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김도형 : 그런 면에서 뿌듯한 기분이 컸던 것 같아요. 우리는 인디니까.

최정훈 : 인디로서 1위를 한 게 컸죠. 거기에 밴드로서 1위를 한 게 무척 뿌듯했어요.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아무리 발라드지만 록을 기반으로 만든 곡이거든요. 인디와 록... 이 두 가지는 많은 사람이 저희를 많이 말린 포인트였어요. ‘밴드 하지 마라, 인디 하지 말고 좋은 회사 들어가라.’

 

-결국은 뜻을 이룬 거네요. 이후에 인기를 체감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김도형 : 저희 어머니께서 절교한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왔대요. ‘너희 아들 잔나비냐’고요. 그분께서 너무 힘들 때마다 저희 노래를 듣고 많이 우셨대요. 자기 메마른 감정을 다시 찾게 해줬다고... 지금은 다시 베스트 프렌드가 되셨어요. (웃음) 그런 게 재밌었어요. 저희가 알려짐으로써 어머니는 다시 친구를 찾고.

최정훈 : 저는 제주도에 공연하러 갔을 때 생각이 나요. 그 전에 갔을 땐 다 같이 노는 분위기였거든요. 근데 그날은 사람들이 다들 카메라를 들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낯설었어요. ‘내가 이들의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거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단독 공연의 규모도 커졌어요.

 

최정훈 : 올림픽홀에서 했어요. 2019년에도 하고 2020년 초에도 전국 투어의 일환으로 했죠. 2,800석 정도였어요. 전국 투어는 총 2만석 정도의 규모였고요.

 

-매진이었나요?

 

최정훈 : 네.

 

-격세지감이었겠어요.

 

최정훈 : 그렇죠. 예전엔 10명도 안 왔는데... (웃음)

 

-단독 콘서트는 페스티벌과 다르게 내 팬들, 우리 잔나비 팬들만 눈앞에 쫙 있는 거잖아요. 2,800석이면 보통이 아닌데 그 광경을 보니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김도형 : 일단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너무나 감사한 기분이 먼저 들어요.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들을 이렇게 보면 뭔가... 그 수많은 관객을 보고 무대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우리 좀 재미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최정훈 :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숨을 못 쉴 것 같은 기분이 딱 들어요. 저희는 등장할 때 재미있게 하는 걸 좋아해서 퍼레이드 카처럼 생긴 걸 타고 무대에 처음 나왔거든요. 그 영상을 보면 멤버들 표정이 장난이 아니에요. 한 명은 긴장해서 얼어있고 저는 울기 직전이고. (웃음)

김도형 : 다들 가슴에 뭔가 있는 게 느껴졌어요. 노련하게 하지 못하고. (웃음)

 

-첫 단독 콘서트가 어디였죠.

 

최정훈 : 텅스텐홀이라고 공연장이 아니라 카페 같은 곳이었어요. 관객은 한 30명 정도 왔을 텐데...

김도형 : 친구들이었죠. (웃음)

최정훈 : 저희 팬이라고 플래카드 들고 오신 분들은 4명에서 많아야 8명 정도였어요. 나머진 다 친구들이었어요.

 

-그럼 100배가 넘는 규모의 단독 공연을 한 거네요.

 

최정훈 : 차근차근 올라온 것 같아요. 초반에는 페이스북에 있는 저희 형 전화번호로 연락해서 ‘표 살게요’하고 예약하면 끝인 시스템이었거든요. 표를 판다는 게 무의미할 정도였죠. 그렇게 공연을 계속했어요. 계속 단독 콘서트를 만들고 만들면서 지금 열 몇 번째 한 것 같은데, 조금씩 규모가 커졌죠. 한 번에 규모가 커진 건 아니었어요. 올림픽홀 공연하기 전에 1,500석, 2,000석 규모에서도 했었고... 차근차근 된 것 같아요.

 

-처음으로 나간 페스티벌은 어디였나요?

 

최정훈 : 2014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었어요. 페스티벌마다 신인 뮤지션을 뽑아서 가장 작은 무대의 오프닝을 맡겼는데, 저희가 2014년 펜타포트의 루키에 뽑힌 거죠.

 

-오프닝이면 시간대는 어떻게 되나요?

 

최정훈 : 오전 11시 반에서 12시 사이에요. 12시 전에 끝나죠. 관객들이 비몽사몽 오셔서 즐긴다기보다 한 바퀴 쓱 둘러보고 가는 그런 분위기예요. (웃음)

 

-페스티벌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 기분은요?

 

김도형 : ‘나 준비됐으니까 빨리 누구든 와라, 나 다 받아들일 준비 됐다’ 그런 기분이었어요.

최정훈 : 정말 ‘뭐라도 해, 다 봐줄 테니까 빨리 놀자!’ 이런 거. 워낙 이른 시간이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놀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또 어떤 페스티벌에 나갔나요.

 

최정훈 : 난지한강공원에서 하는 렛츠록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지산 록 페스티벌... 거의 모든 페스티벌에 다 나간 것 같아요.

 

-오프닝 무대로 시작해서 시간대도 점점 메인으로 갔겠군요.

 

김도형 : 그렇죠. ‘드디어 점심시간을 넘겨서 할 수 있구나’, 그다음엔 ‘이제 조금 해가 저물고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시간대가 됐구나’ 하면서 조금씩 바뀌었어요.

최정훈 :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공연을 재미있게 잘하고 관객반응도 너무 좋았어요. 관객들에게 잔나비 다음번엔 시간 4시로 바꿔 달라고 SNS에 올려달라고 그랬죠. (웃음) ‘꼭 올려주세요’ 그랬는데 정말 다음 해에 그쯤 했던 것 같아요.

 

-시간대별로 관객 반응도 다른가요?

 

최정훈 : 완전히 다르죠. 밤에는 피곤한 단계를 넘어서 이제 갈 데까지 가보자 하는 심리가 있고, 저녁 시간대에는 오히려 조금 피곤해하는 것 같아요. 공연하기 좋은 시간대가 해질녘인데, 그 시간대에 관객들은 약간 피곤한 거죠. 낮 시간에는 평균적으로 괜찮고.

 

-관객들이 페스티벌을 즐기는 방법이 따로 있던가요.

 

최정훈 : 타임테이블을 보고 공부를 해와요. 이런 순서로 공연을 보겠다, 계획을 세우고 세트리스트를 미리 예습해 오죠. 그래서 어느 타이밍에 뛰어야 하고 어느 타이밍에 뭘 해야 하고 그런 걸 익혀 와서 완벽하게 즐기고 가요.

김도형 : 먼저 공부를 해 온 사람이 주변에 알려줘요. 지금 다 같이 앉고, 언제 뛰라고. 그럼 옆에서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뛰고 재밌게 노는 거예요. 그러니 분위기가 너무 좋죠.

최정훈 : 깃발 들고 다니는 분도 계세요. 모든 세트리스트를 다 꿰뚫고 계시면서 공연을 컨트롤하는. (웃음) 무대 위를 저희가 컨트롤하면 무대 아래는 그분들이 하세요. 호루라기 불면 그때부터 슬램하고 그런 거죠.

 

-어떤 곡이 관객 반응이 가장 좋죠?

 

최정훈 : 제일 뜨거운 노래는 저희 곡 중에 ‘Jungle’이란 곡이에요.

김도형 : 우리 노래도 슬램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죠.

최정훈 : 모든 곡을 통틀어선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가장 반응이 좋죠. 다들 큰소리로 떼창을 하고. 저희 곡이 떼창에 알맞은 음역대 같더라고요. 너무 좋아요.

 

-페스티벌이 인디 신에 끼친 영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최정훈 : 페스티벌과 클럽 공연이 인디 신의 중심축 같아요. 클럽 공연은 횟수도 많고 촘촘하게 있다면, 페스티벌은 1년에 몇 번씩 굵직굵직하게 있는 거죠. 그걸 분기로 많은 대중과 리스너들이 와서 어떤 밴드가 활동하는구나, 어떤 음악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잔나비에게 페스티벌과 일반 공연의 차이점이 뭔가요.

 

김도형 :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놀이터에요. 다 준비된 놀이터. 놀이공원 가는 것처럼 전날부터 설레고요.

최정훈 : 저희는 모든 일을 전투적으로 해요. 스포츠처럼요. 이게 문제이기도 한데... 그래서 페스티벌 갈 때도 이 악물고 갔어요. 얼마나 잘 노나 봐라, 하면서 다 때려 부숴! 하면서 놀았죠. 그렇게 놀고 땀 흘리면서 무대에서 내려올 때면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게 눈 녹듯이 사라져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가장 의미 있는 장소가 어디죠.

 

김도형 : 저희 다섯 명이 처음으로 공연을 시작했던 에반스라운지요. 공연하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드럼 치는 결이가 합류해서 엄청 촌스러운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연주를 했는데, 그때 마치 운명처럼 또 이런 친구가 우리에게 왔구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진정한 그룹사운드가 완성됐다고 느꼈어요.

최정훈 : 전 작업실이요. 멤버들과 형과 동고동락하면서 지낸 곳. 그 안에서 모든 게 다 일어났어요. 모든 생각도 거기서 하게 됐고, 모든 노래도 다 거기서 썼고요.

 

-잔나비가 생각하는 인디란?

 

최정훈 : 음악과 그 외적인 부분을 통틀어서 뮤지션 본인의 손길이 얼마나 닿는지에 따라 인디냐 아니냐가 결정이 된다고 생각해요. 프로듀싱부터 홍보, 기획, 마케팅 같은 것들이요. 장르적으로 비주류 장르면 인디고 주류 장르면 인디가 아니고 이런 게 아니라요. 만약 인디 뮤지션을 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부딪쳐 보는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경험을 떠나서 정말 재밌을 거예요. 흥미진진한 일들이 펼쳐지니까요. 눈을 부릅뜨고 살면 인디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지루하지는 않거든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누군가 잔나비를 찾아본다고 하면 언제의 기록을 봤으면 좋겠어요?

 

최정훈 : 2018년이요. 너무 재밌고 행복했어요.

김도형 : 진짜... 어떤 공연이든 최선을 다했던 해예요.

최정훈 : 좋은 곡들이 뒤에 딱 쌓여 있었고, 내기만 하면 됐었죠. 공연도 정말 재밌었고요. 꽹과리치는 모습도 꼭 봤으면 해요. 제가 공연 때마다 마지막으로 꽹과리를 치는데, 그건 저희에게 초심의 상징이에요. 저희가 처음 공연할 때 클럽 사장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떤 선배 밴드 공연을 보고 감명받아서 똑같이 따라 한 게 꽹과리거든요. 그걸 지금까지 친단 말이죠. 그래서 의미가 깊어요.

 

 

[사진출처=페포니 뮤직]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김작가 일일공일팔 콘텐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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