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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by 김작가

박진영, 이주노, 현진영의 이태원 키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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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01작성자  by  김작가 

본문



 

(1부에서 이어집니다.)

 

클론은 성공한 댄스 그룹이었을 뿐만 아니라 백댄서이자 안무가이기도 했다. 스트리트 댄서에서 출발, 이태원의 전성시대를 함께 했다. 인터뷰 당시 강원래는 한국 댄서들의 성지였던 ‘문나이트’를 운영 중이기도 했다. 그들이 생생하게 1990년대 댄스 음악계의 흥망성쇠를 증언한다. (강원래가 운영하던 문나이트는 2020년 11월 문을 닫았다.)

 

-처음엔 미군들 위주였던 문나이트가 어떻게 춤꾼들의 성지로 바뀌어 갔나요? 

 

강: 저희가 알기로는 그 문나이트에서 앨범을 내기 위해 춤 연습을 하던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그게 SM의 첫 번째 가수 현진영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현진영 씨가 손님으로 처음 와서 외국 친구들에게 춤을 배우고 있었고, 우린 우리끼리 그 춤을 다 배워서 거길 갔죠. 그렇게 해서 현진영과 와와가 만들어지고, 그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씨, R.ef의 박철우 씨 이런 분들이 와서 노피플이라든가 박남정과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와서 또 춤 연습을 하고 춤을 배워가고 했어요. 이게 알려지다 보니 전국적으로 문나이트를 가면 춤 잘 추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춤을 배울 수 있다, 또는 유명해질 수 있다, 스타가 될 수 있다 하는 소문이 돈 거죠. 한 1991년, 1992년 그 무렵에 확 불이 붙었을 거예요.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이 더 유명하게 만든 거죠.

 

-문나이트에서 현진영 씨를 처음 봤을 때 기억나세요?

 

강: 기억나죠. 완전히 날아다녔어요.

구: 그분은 진짜 한국 사람 중에 토끼춤을 제일 잘 췄어요.

강: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친구가 밤업소도 하고 브레이크 댄스도 했대요. SM 지하에서 헤드스핀하고 윈드밀을 하는데, 우와. 영화 <백야>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11바퀴 도는데 현진영이 12바퀴를 도는 거예요. 춤에 대해서 우린 솔직히 아마추어잖아요. 자긴 프로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건지, ‘잘 세어 봐요’하고 도는데 눈앞에서 12바퀴를.

구: 못 하는 춤이 없어요. 재즈면 재즈, 브레이크 댄스면 브레이크 댄스, 스트리트 댄스면 스트리트 댄스 뭐 전부 다.

강: 그 당시에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최고였던 것 같아요. 우리가 본 사람 중에선.

 

-두 분 눈에도 그렇게 보였으면 춤을 정말 잘 췄단 거네요.

 

강: 근데 단점이 하나 있어요. 춤을 정말 잘 추는데 멋을 약간 못 냈어요. 그게 우리 입장에선 좀 안타까웠죠.

 

-현진영 씨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당시에 이수만 사장님이 자꾸 문나이트에 집어넣었다고 하더라고요. 춤은 잘 추는데 ‘필’이 없으니 흑인들이랑 어울리라고 했대요. 동작을 배우지 말고.

 

강: 그 얘기가 맞아요. 테크닉은 굉장히 좋은데 노는 맛, 즐기는 맛이 없었어요. 좀 기계적이랄까. 신나는 표정이나, 즐겨서 하는 느낌이 약간 모자랐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테크닉으로는 정말 최고였죠.

 

-현진영 씨 말로는 문나이트에서 유일하게 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게 현진영 씨라고 하던데요.

 

강: 당연하죠. 현진영이 디제이와 친하기도 했고, 이수만 사장님이 문나이트 사장님에게 부탁해서 거기서 춤 연습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요. 식구였죠. 잠도 잘 수 있었고, 물도 꺼내먹고 했을 거예요.

 

-그 시절에 같이 춤을 추러 다니다가 가수가 된 케이스 중 기억에 남는 분은 또 누가 있나요?

 

구: 전 박진영 씨요.

강: 춤추는 사람 중에 연예인이 되어서 가장 흐뭇했던 친구는 성재죠 김성재. 제일 예뻐했고. 성재가 가장 기분 좋으면서도 안타까운 친구예요. 그 친구는 진짜 윌 스미스처럼 될 수 있었을 텐데. 배우도 할 수 있었을 거고. 아까워요.

 

-문나이트에서 우리나라 노래를 튼 적이 있나요?

 

강: 처음엔 안 틀다가 나중에 틀었어요. 1994년 이후? 1995년 그쯤 힙합 바람이 불면서. 우리가 다니던 1990년, 1991년까진 힙합이란 단어를 별로 안 썼어요. 그 이후에 힙합이란 단어가 흔히 쓰이고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에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노래 한 곡 들어있는 PR판을 들고 와서 디제이에게 틀어 달라고 하면 가요도 틀고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 프로들, 꾼들은 신곡 나왔나보다, 이거 되려나, 이거 대박인데? 이런 평가를 하기도 했죠.

 

-문나이트에서 추던 춤이 클론 안무에 가장 많이 반영된 곡은 어떤 노래인가요?

 

구: 클론 때는 없죠. 현진영과 와와 ‘야한 여자’, ‘슬픈 마네킹’이 그랬어요.

강: 클론 때 우리 춤은 다 표절이에요. 다 베꼈죠 우리는. 우리가 짰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거지. ‘난’ 전주에 나오는 춤은 MC 해머. 바비 브라운도 했었고, 윌 스미스도 했었고.

 

-그때 ‘쇼다운’이라는 게 있었다면서요. 그게 뭔가요?

 

강: <쇼다운>이라는 브레이킹 영화가 있었는데, 사운드트랙 중에 ‘Showdown’이란 곡이 있어요. 그 노래가 나오면서 우리끼리 한 판 붙자 이런 거죠. 그땐 배틀이란 단어가 없었고 쇼다운 쇼다운 했는데 정식 용어는 아니에요. 말하자면 춤 싸움, 경연 같은 거죠. 기존 나이트클럽엔 없던 거였어요.

 

-엠씨나 디제이가 유도하는 거였나요

 

구: 아니에요. 우리끼리 한 거죠. 잘하는 사람 하나가 자기들끼리 연습한 걸 뽐내고 싶어서 가운데 가서 춤을 추면 사람들이 비켜주잖아요. 그럼 원이 만들어지면서 그 친구가 끝나는 동시에 다른 친구가 또 들어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예요.

강: 그런 분위기를 우리가 뮤직비디오에 넣었어요. ‘Funky Tonight’이란 곡 뮤직비디오를 보면 중간에 그런 춤 싸움하는 게 나오죠.

 

-쇼다운을 할 때 무기로 사용되는 춤의 장르는 어떤 게 있었어요?

 

강: 일단은 필살기가 하나는 있어야 해요. 대부분 브레이크 댄스 쪽이었죠. 마지막에 ‘프리즈’ 딱 하면 박수, 환호 나오고 어깨 한 번 부딪히고.

구: 우리는 당시에 미대생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비주얼이 강해서 옷에 자존심이 있었어요. 우리 팀 이름이 ‘플렉스(flex)’였어요. 요즘 힙합 하는 친구들이 플렉스 한다고 하잖아요. 우리 이름이 플렉스였어요. 그래서 이태원 자수집에 가서 점퍼에 플렉스 이름 박고 둘이서 딱 입고 다녔죠.

강: 예전에 우리가 대학로에서 요즘 버스킹 하듯이 춤을 추면 애들이 놀랐어요. ‘저렇게 키도 크고 옷도 잘 입는 애들이 브레이크 댄스를 춘단 말이야?’ 하면서요. 처음에 공중제비라는 동작이 있어요. 딱 돌아서 딱 멈추는 거예요. 그렇게 들어와서 우리가 하이파이브하고 서 있으면 아무도 못 막았어요. 우리가 겁나서.

구: 되게 잘하는 줄 알고.

강: 우리는 할 거 다 했거든요. 근데 또 다른 기술이 있을 줄 알고 아무도 안 막는 거죠. 나중에 끝나고 인사하면 애들이 “너네는 춤 안 추냐” 그래요. 그럼 “우린 할 거 다 했어.” 했죠. 그래서 이주노 씨 자서전에도 ‘강원래, 구준엽은 옷만 잘 입었지 춤은 못 췄는데 인기가 많아서 기분 나빴다’는 글이 나와요. 당시 문나이트에서 춤을 좋아했던 프로 댄서들이 우리를 경계했던 이유도 이런 거였죠. “쟤들은 강남 애들이야, 문나이트에서 라면도 먹었어.” 라면이 그때 500원이었거든요? 500원짜리 먹었다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미워했어요.

 

-왜요?

 

강: 돈 많다고요. 그 사람들은 첫차 타고 가는데 우린 집에 갈 때 택시 타고 간다고 하고. 그때 열악한 친구들은 옷 한 벌로 연습복하고, 밤업소에서 일할 때 또 입고하는데 우리는 옷도 맨날 갈아입고 하니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때 프로 댄서들의 미움을 사서 힘들었어요.

 

-어쨌든 쇼다운이 당시 문나이트를 드나들던 춤꾼들에게 자극이 됐겠어요.

 

강: 그렇죠. 텔레비전에서 봤던 걸 실제로 볼 수 있네, 하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문나이트가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도 많이 올 때는 웬만한 하수들은 거기서 춤을 못 췄어요. 고수들에게 눌릴까 봐 겁이 나서. 안 그래도 되는데 그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문나이트에 들어가서 바를 지나가면 큰 스피커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한여름에는 선풍기가 있었어요. 그 앞에는 아무나 못 섰죠. 고수들만 있는 자리였어요. 구준엽 씨 같은 경우는 거기 딱 버티면서 “왔냐?” 이러고.

 

-비공식적인 상석이었다는 거군요.

 

구: 거기서 선풍기를 쐰다는 건 이제 짬밥이 좀 된다는 거죠. 그 선풍기 뒤에 에어컨이 있었거든요.

강: 그때 양현석 씨가 그 앞에 있던 사진도 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 그때 머리를 하고. 그럼 주변에서 다들 양현석 씨가 한 스텝 추는 걸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다 하나 딱 하면 환호하고 양현석 씨는 바빠서 이만, 하고 집에 가고 그랬어요.

 

-이미 스타가 됐는데 거길 갔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네요. 지금은 그럴 수 없잖아요.

 

강: 그렇죠. 양현석 씨는 어릴 때 자기가 좋아했던 음악을 듣고 편하게 춤을 췄던 곳이니까, 그립기도 하고 그때 그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 왔겠죠. (이)주노 형도 그 앞에 있을 수 있던 형이죠.

 

-문나이트에서 스타들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죠?

 

강: 그렇죠. 힙합으로 바뀌면서 세대도 바뀌고 의상도 바뀌었어요.

구: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면서 미국인들이 안 오기 시작했죠.

강: 나중에는 라틴 음악으로 바뀌었어요. 리키 마틴(Ricky Martin) 때문인지는 몰라도, 1997년, 1998년부터는 완전히 음악도 바뀌었고, 결국 2000년대에는 문을 닫았죠.

 

-두 분도 음악이 바뀐 이후로 안 가신 건가요?

 

강: 전혀 안 갔죠. 그때쯤 저희는 홍대 쪽으로 옮겼어요. 홍대에 있던 클럽 엠아이(M.I.)에서 테크노, 레이브 음악을 듣곤 했어요.

 

-그럼 두 분도 데뷔하고 연예인이 된 상황에도 클럽을 다니신 거예요?

 

구: 그렇죠. 즐기기도 하고 문화를 알기 위한 목적도 있었고요.

강: 사람들이 입는 옷, 액세서리, 신는 신발, 사람들의 헤어스타일, 사람들이 듣는 음악 이런 걸 알려면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니까요.

구: 외국에 공연 가도 항상 클럽에 가거든요. 가서 보면 그 친구들은 희한하게 춤추고 있고 특이한 옷 입고 있고... ‘초련’도 그래서 만든 거예요. 미국 공연 가서 LA의 클럽에 갔는데 형광봉을 가지고 놀더라고요. 그걸 보고 엄청 연습했죠.

강: 준엽하고 뉴욕에 가서 한 클럽을 갔는데 춤을 엄청 잘 추는 댄서를 봤어요. 그 춤을 보고 머릿속으로 외워왔죠. 그 안무가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였어요.

 

-문나이트가 2000년대에 문을 닫고 여기서 다시 열리기까지 얼마나 걸린 거예요?

 

강: 20년 걸렸네요. 한 19년? 사실은 원래 양현석 씨가 인수하려고 했어요. 양현석 씨하고 프렌즈 댄스팀 했던 (지)영하하고 인수를 하려고 했는데, 건물주가 비용을 너무 세게 불러서 홍대 쪽에 자리를 잡았죠. 그게 ‘NB’에요.

 

-그럼 두 분을 제외하고, 문나이트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람은 누구예요?

 

강: 현진영, 이주노죠. 만약 문나이트라는 영화가 만들어지면 가장 주인공으로 적합한 사람이 현진영 아니면 이주노예요. 이주노가 좀 더 어울리네요.

 

-이유가 뭔가요?

 

강: 현진영은 스타가 되기 위해서 문나이트에 온 거고, 주노 형은 문나이트를 통해서 스타가 된 사람 중 한 명이니까. 그리고 카우보이사장님이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 주노 형이에요.

 

-어쨌든 문나이트는 다른 나이트와는 성격이 좀 다른 곳이었네요.

 

구: 전혀 달랐죠. 진짜 춤을 위해서 거길 간 거예요.

강: 주노 형, 양현석, 준엽이 아무도 술을 안 마셔요. 우리 때 술 마시는 멤버는 저하고 (박)진영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술을 마시러 가는 것도 아니고 춤꾼들에게 진짜 아지트였던 거죠. 한 번은 ‘너를 사랑해’ 부른 한동준 씨를 만났는데, 그분이 제가 문나이트에 있던 사람을 다 안다는 거에 너무 놀라더라고요. 저는 거기 가면 다 인사했거든요. 우리가 나이트클럽 가서는 아는 사람 만날 일이 없잖아요. 문나이트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었죠.

 

-그렇게 들으니 이해가 되네요. 왜 연예인이 되었는데 나이트를 또 가나 했더니 그냥 나이트가 아니군요.

 

강: 우리가 유명해지고 간 게 아니라 유명해지기 전에 모여서 좋아하는 음악 듣고 공유하고 안부 인사를 했던 장소니까요. 지금도 만약에 이태원 문나이트 그 자리에 다시 열고 그때 그 음악을 튼다면 그 멤버들 다 올 거라고 생각해요.

 

-두 분에게 문나이트란 어떤 의미인가요?

 

강: 문나이트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구: 진짜 없어선 안 되는...

강: 지금 나에게 문나이트는 동창회 같은 존재예요. 춤추는 친구들의 동창회겠죠. 반가운 친구들과 다시 만나서 옛이야기 하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곳. 예전에는 그저 빨리 가고 싶은 곳이었고요.

 

 

[사진출처=스포츠 서울]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김작가 일일공일팔 콘텐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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