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할 수 없는 성시경의 발라드론 > 인터뷰 아카이브K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인터뷰

인터뷰

2023.06.03
by 우정호

규정할 수 없는 성시경의 발라드론

페이지 정보

작성일 23-06-03작성자  by  우정호 

본문



 

 ‘느끼하다’, ‘재수 없다’, ‘잘난 척한다’, ‘건방지다’. 성시경을 향한 지극히 일반적인 대중의 표현들이다. 이 ‘헌사’들은 각각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거칠지 않고 다정하다’, ‘너무나 많이 가졌다’, ‘아는 게 많고 이지적이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솔직하다’. 성시경은 ‘버터 녹는 목소리’가 아닌 ‘토속적이지 않고 고급스러운 음색’으로 대중들의 감정을 매만지며 대한민국 정통 발라드의 대들보가 됐다. 이 23년 차 가수가 흠모하는 ‘발라드’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방법은 솔직하되, 조심스럽다.

 

(아카이브 K는 성시경과 2020년 7월 인터뷰했다.)

  

- 어린 시절 어떤 음악의 영향을 받았나요?

 

성시경 : 제 토양은 대부분 팝이었어요. 예전에 ‘미제 과자 맛있다’고들 했잖아요. 제 귀를 더 자극하고 끄는 음악이 팝이었어요. 각각 다섯 살, 여섯 살 차이 터울 누나가 둘 있어서 누나들이 듣는 음악 영향도 많이 받았죠. 듀란 듀란, 왬!(Wham!), 데비 깁슨, 신디 로퍼, 스티비 원더... 중학교 때는 머라이어 캐리를 좋아하게 돼서 듣다 보니 머라이어 캐리 프로듀싱한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라는 프로듀서를 알게 됐어요. 

 

그러다 그 프로듀서가 프로듀싱한 뮤지션들 음악들도 찾아 듣게 되고. 다들 보이즈 투 맨 들을 때였는데 그때 브라이언 맥나이트 찾아 듣고, 팝을 찾아 들으려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을 정도예요. 얘네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가 너무 궁금하니까. 그래서 중학교 때 미친 듯이 영어 공부를 했어요. 그만큼 팝을 너무 좋아했고. 제가 어릴 땐 막 록 들으면 음악 좀 듣는 거라고 생각하던 그런 시대였거든요. 

 

그런데 전 어릴 때부터 가사가 있고 멜로디컬한 사랑 노래 쪽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감탄보다는 감동을 더 좋아했어요. 당연히 한국 음악도 많이 들었죠. 신승훈, 김건모 선배님 당연히 좋아했었고 그때 대중가요가 점점 발전하면서 더 좋아하기 시작했죠. 서태지와 아이들도 빼놓을 수 없고, 듀스도 나오고 쿨도 나오고. 그때가 황금기였던 것 같아요. 음반 시장도 호황이고 장르도 다양했어요. 가요가 무럭무럭 자라날 때였던 것 같아요.

 

- 팝을 듣기 위해 영어 공부를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네요.

 

성시경 : 그들이 하는 얘기가 너무 궁금했어요. 데이비드 포스터가, 스티비 원더가, 폴리스가 하는 얘기들이. 들으면 마음이 울렁거리는 음악들이었어요. 가사를 알고 나니까 그 음악들이 7배가 더 좋더라고요. 스티비 원더의 ‘Ribbon In The Sky’ 듣고 ‘스티비가 미쳤구나’ 할 정도로 감동받았고. 너무너무 좋았어요. 근데 가사를 알면 너무 좋거든요. 팝을 가사 모르고 듣는 건 요즘 힙합을 가사 없이 듣는 거랑 비슷한 거예요.

 

- 음악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나중에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나요?

 

성시경 : 전혀요. 저는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대학교 입시를 삼수를 했고요. 입시를 세 번을 했는데 성적이 비슷비슷하니까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학교 들어갔더니 남들 3학년일 때 나는 1학년이고. 사회학과에 들어갔는데, 아버지 보면서 내가 직장인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공부해서 교수가 되고 싶은 꿈도 없고, 그러니까 되게 바보 같았어요. 

 

그냥 일단 엄마, 아빠가 공부하라고 하시니까 ‘열심히 공부하자’ 그랬는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도 못 하고. 삼수가 끝나서야 처음으로 ‘나는 뭘 먹고 살아야 하지?’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뭘 제일 좋아하지? 뭘 제일 잘하지? 생각을 해봤죠. 근데 재수 시절에 캐스팅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정재형 씨 있었던 베이시스 사무실이었어요. 뭐 노래를 못하지는 않았으니까. 몇 번 그런 케이스가 있었는데 ‘에휴, 내가 무슨 연예인을 해. 말도 안 돼’하고 생각했어요. 삼수 끝났을 당시 저는 100kg이었고요.

 

그런데, ‘아, 노래를 내가 제일 좋아하지. 맞아, 한번 해 볼까?’ 하면서 1년 동안 열심히 도전해 보고 좋은 기회가 오면 해보고 안 되면 군대를 빨리 가든지 뭐 다른 걸 찾아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 다니면서 유학을 준비해 보든지. 그런데 결국 가수되고 나니까 친구들도 ‘쟤가 가수…?’ 하면서 되게 혼란스러웠대요. 저는 학창 시절에도 계속 반장하고 그런 애였으니까. 그만큼 친구들도 제가 가수가 될 줄은 몰랐대요.

 

- 가수가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성시경 : 지금은 연예 기획사들도 너무 많지만 그때는 아이돌도 많이 없었어요. 가수가 되는 방법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떤 방법이 있었냐면 작곡가 밑에 들어가서 악기 나르고 일 좀 배우든가 해서 곡을 받고 데모를 녹음해서 돌리는 거죠. 그러다 레코드 회사에서 OK가 오면 데뷔 기회가 오고. 그런 시대였어요. 오디션도 거의 없었고, 인터넷도 별로 활성화가 안된 때였는데 막 뒤져서 가요제 찾아보고 했죠. 

 

인터넷 가요제를 하나 찾았는데 되게 특이한 형식이었어요. 박근태, 김형석, 윤일상 같은 유명 작곡가분들이 작곡한 곡의 가이드, 반주, 가사가 인터넷에 올려져 있고, 반주를 다운로드해서 제 보컬을 입혀 AR로 만들어서 업로드를 하는 방식이었죠. 그 음원으로 판단을 해서 상을 주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내게 오는 길’이라는 트랙이 있던 거예요. 가이드 보컬은 이현승이라는 작곡가가 불렀고. 유리상자 형들한테 갔다 까이고 온 노래였어요.

 

- 데뷔곡 ‘내게 오는 길’이요?

 

성시경 : 네. 여러 군데서 까인 곡이었어요. 그래서 인터넷 가요제에 올라와서 그걸 제가 부르게 됐어요. 1등을 하게 돼서 그 회사와 계약을 하게 됐고, 앨범을 내게 됐죠. 그때부터 저의 파란만장한 가수 생활이 시작된 거죠.

 

- ‘내게 오는 길’이 바로 히트했으니 무명 시절이 거의 없었겠군요.

 

성시경 : 그렇죠. 6개월 정도? 아직도 기억나요. 신촌뮤직에 가서 제가 장고웅 사장님 앞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막 들으시더니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 안 될 것 같대요. 그래서 김치찌개나 먹고 가라고. (웃음) 그렇게 식사 같이하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가 성공해서 (박)효신이 콘서트장에서 장고웅 사장님을 만났어요. 효신이가 ‘해줄 수 없는 일’로 먼저 데뷔했고. 저보다 훨씬 유명할 때였어요. 힐튼 호텔 컨벤션에서 공연이었어요. 3,000~4,000명 들어오는. 

 

공연 시작 10분 전에 가서 신촌뮤직 사장님께 인사드리러 갔죠. 제 매니저를 거기 데리고 갔어요. 가서 저 기억나시냐고. 그때 노래 불러서 떨어졌는데. 했더니 기억나신대요. 그 찰나에 효신이 팬들이 “야, 성시경이다, 성시경!”하면서 콘서트장이 아수라장이 됐어요. 제 입으로 얘기하기 좀 창피하긴 한데. 아무튼 되게 기분 좋았어요. 스물두 살 때니까. ‘저 안된다고 그러셨죠?’ 그렇게 얘기하고 싶은 그런... (웃음)

 

- ‘성시경은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확고합니다. 그런 이미지가 부담이 된 적은 없나요?

 

성시경 : 저는 처음부터 앨범을 스스로 만들거나 사운드를 개척해 나가는 타입이거나, 윤상 선배님 같은 올라운드 뮤지션이라기보다는 대본을 연기하는 싱어였잖아요. 그러니까 음악적으로 가둬진다거나 하는 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발라드는 제가 처음부터 좋아하는 장르였고, 자신 있고, 영원히 하고 싶은 장르였어요.

 

 그러니까 ‘성발라’가 된 거예요 비트가 있는 음악도 하고 싶지만 댄스를 추고 싶거나, 댄스가수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혹은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게 포크 싱어가 될 생각도 없고요.포크 싱어는 자기 멜로디와 가사에 메시지를 얹어 내는 사람이잖아요.

 

저도 곡을 씁니다만, 발라드라는 장르에 가둬진다는 게 전혀 부담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계속하고 싶은 노래 장르 중 하나니까. ‘이제 저는 발라드 가수 그만하고 싶어요’라는 말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발라드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좋을 텐데’도 발라드일 수 있지 않나요? 신승훈 선배님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같은 발라드만 발라드는 아닌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성발라’ 같은 이미지 때문에 못 하게 된 음악이 있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건 대중이 판단하니까요. 

 

다른 장르 곡을 부를 때 제일 중요한 건, ‘하고 싶어야 한다’ 같아요. 저는 소속사에서 시키는 음악을 하는 가수는 아니기 때문에. 대중들의 반응을 생각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테니까 사람들이 껌뻑 죽겠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도 고민하는 게 제 기존 팬분들도 중요하지만 새로 오실 손님들을 생각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음악은 계속 변하고 있고 약간 트렌디한 곡을 하려면 기존 팬들은 좀 싫어하실 수도 있고 그러니까. 밸런스를 잡는 게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 발라드는 음악 특성상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는 어렵지 않나요?

 

성시경 : 완전 어려워요. 갈 데가 없어요. 거의 다 갔고. 이제는 멜로디 보다 사운드 싸움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흰 종이에 매직으로 쫙 긋는다고 했을 때, 두 개 그으면 ‘X’인데, 세 개 그으면 별(*)이 되죠. 근데 너무 많이 그으면 어떤 형태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되는 게 멜로디인 것 같아요. 새롭지만 좋아야 된다는 게 너무 어려운 거죠. 좋은 멜로디는 대부분 옛날에 들어본 것 같은 거예요. 아주 새롭기만 하면 또 좋지가 않고… 그래서 저는 ‘사운드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좀 들어요.

 

- 발라드의 장르적 한계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적은 없나요?

 

성시경: 물론 발라드는 진행이 정해져 있고, 그 진행을 바꾸는 장단 같은 것도 한계가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가사쟁이’잖아요. 사회에서 ‘발라드적 감성’이 없어지고 있는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슬픈 발라드의 기분은 ‘단절에서 나오거든요. 너랑 헤어지면 이제 더 이상 너를 못 본다는 거. 이제는 계속 볼 수 있잖아요. 인스타 들어가 보면 헤어진 사람이 지금 누구를 만나고, 요즘 무슨 성형을 했는지까지 보이고. 옛날에는 헤어지면 사별한 거랑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만날 수가 없는 거나 다름없는 감정이었죠.

 

휴대폰도 없을 때는 좋아하는 사람 사는 집 창문에다 돌 던지고 나오는 얼굴이라도 보거나, 우연히 만나면 심장이 막 떨어질 것 같고. 혹은 전 여자친구가 새 남자친구랑 지나가는데 나는 혼자고, 돈도 없고. 그런 가사가 너무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달라요. 사람들이 다 커넥트가 돼 있어요. 발라드의 핵심이 ‘닿을 수 없음’이고 끊어졌을 때 부르는 노래잖아요. 끊어지고 볼 방법이 없으니까 내가 혼자 집에서 보고 싶다고 부르는 거예요. 

 

지금은 그냥 SNS로 다이렉트 메세지 보내서 ‘야, 너 보고 싶어’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가볍고, 트렌디하고, 기분 전환에 좋고, 섹시하고, 진지하지 않고, 빨리 소진되는 그런 음악이 사랑받는 것 같아요. 전주 30초 나오면 벌써 ‘크으~’ 하다 지나가면 벌써 다른 거 보고 있다니까요. 그런 감정인 세대에게 예전의 발라드 감성 노래를 부르면 그게 얼마나 늙수그레하게 느껴지겠냐는 거죠. 그래서 발라드는 가사도, 감성도 변화할 거고. 내가 전에 하던 발라드의 맛은 점점 없어질 거라는 생각은 좀 들어요.

 

- 이를테면 발라드의 생존위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성시경 : ‘국밥’으로 치면, 국밥이라는 음식은 안 없어지겠지만 예전에 할머니들이 막 솥에다 장작불로 몇십 시간씩 끓여서 만드는 식이 없어질 수는 있다는 얘기죠. 국밥은 계속 먹을 수 있지만 옛날 그 맛이 좀 안 날 것 같다는 느낌. 만드는 방식이나 맛의 트렌드가 변할 것 같다는 생각. 장르 자체는 계속 사랑받겠죠. 저도 그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라드를 무조건 좋아하는 것 같아.

 

- 한국에서 발라드는 왜 그렇게 사랑받을까요?

 

성시경 : 그건 정말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우리 민족은 한(恨)이 있어서 그렇다던가,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라 음역이 좀 화려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거나. 그런 걸 충족시켜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좋은 발라드는 항상 사랑받는 것 같아요. 노래방 가서 부르기 좋아서 그런가?

- 다른 장르와 비교했을 때 발라드는 다양한 연령층이 좋아하는 장르임은 분명합니다.

 

성시경 : 그렇죠, 뭐. 우리가 막 전 국민이 레게를 좋아하지는 않죠. (웃음) 지방 갔는데 어르신들이 막 다 레게 머리로 따고 있고 (고개 까딱 까닥 움직이며) 막 이렇게 하고 있고. 노랑, 파랑, 빨강 옷 해 입고 “야만(Yaman)!” 이러지는 않죠.

 

- 한국 감성이 담긴 발라드 장르라는 뜻인 ‘한국형 발라드’라는 말은 유효할까요?

 

성시경 : 저는 유효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예를 들어, 존 레전드의 ‘All Of Me’라던가,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라던가 자세히 들어보면 그게 딱 우리나라형 발라드는 아니에요. 우리나라 곡은 특이하게 꼭 한번 터져요. 개운하게. 뭔가 (목 만지며) 여기가 찢어져야 돼요, 제가 맨날 “‘희재’를 50살 넘어서 원키로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원키로 불러야 좋아하시니까. 그래야 ‘노래 잘한다’ 그러고. 

 

전에 브라이언 맥나이트 같은 가수도 한국 가수들한테 곡 주고 그랬거든요. 근데 한국이 그 감성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마이클 볼튼은 또 되는 거지. 싸비(후렴구)가 터져주거든요. 하여튼 한국형 발라드는 한국에만 있는 것 같아요. 일본과도 좀 달라요. 일본은 좀 덜 터져요. 일본 쪽은 여운을 많이 남기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여운 필요 없어요

 

- 소위 ‘울먹일 정도로 감정을 담아 부르는 창법’도 한국형 발라드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성시경 : 아니요, 울면 안 돼죠. 우린 울지 않죠. 울기 바로 직전까지만 부르죠. 그리고 변진섭 선배 처럼 되게 쿨하게 부르시는 분도 계시고. 진짜 탁월한 사람이에요. 목소리도 그렇고. (신)승훈이 형의 경우는 완전 뭐 세심하면서 또 다르시고. 창법은 각각 성격 차이인 것 같아요. 그나마 제 쪽이 울긴 하는데, 조성모도 그렇게 불렀던 거 같고. 이경섭 씨가 그렇게 시켰으니까.

 

- 어떤 마케팅 논문에서는 ‘발라드 가수 조성모, 성시경의 마케팅 비용 차이’를 비교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성시경 : 뭐, ‘안 들여도 성공한다’가 아니라 제 케이스는 못 들인 거니까. 저는 조성모처럼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는 없었어요. 거긴 돈도 많이 들였는데. 우리 회사는 그 정도의 자금력이 없었어요. 전 제가 항상 주인공인 저예산 뮤직비디오 찍어가지고. 그런 식으로 저나 효신이(박효신) 같은 애들이 나왔죠. 

 

그땐 또 그런 게 붐이기도 했는데요, 뮤직비디오가 없이는 활동할 수가 없는 거였으니까. 찍긴 찍어야겠고, 돈은 안 들이고 싶고. 회사에서 저 처음 활동할 때 타게 해준 차가 스타렉스였는데 CD 플레이어가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사서 붙였다니까. 그래서 저는 ‘비싸게 찍는 뮤직비디오 필요 없어. 노래로 승부하는 거지’ 했던 게 아니라 그때도 ‘부럽다 조성모는. 예쁜 여배우에 남자 배우 데려다가. 설원에서 막 폭발물도 나오고. 나도 저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죠. 전략이 아니었어요, 절대.

 

- ‘감정 이입’은 역시 발라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나요?

 

성시경 : 예를 들어, 노래를 할 때 ‘그런 날이 올 줄 믿지 않았어’라는 가사를 부른다고 치면요. 앞, 뒤 멜로디의 흐름보다도 ‘믿지 않았어’가 중요한 거예요 곡 쓸 땐 그런 게 중요하겠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어제는 비가 촉촉이 왔어. 저 비와 같은 내 눈물이~’ 이런 가사가 나오면 제 안에서는 어제 그냥 비가 막 내린 거예요 저한테는 그런 게 중요해요. 조성모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백지영도 노래를 그렇게 하는 사람이에요. 음정과 박자도 중요하지만 일단 곡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 역할이 돼서 실제로 감정을 느끼는.

 

- 작곡가 주영훈이 “요즘은 ‘크라잉’이 없어졌다‘는 얘길 했습니다. 예전처럼 ’헤어지면 우는‘ 노래를 쓰면 요즘엔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고.

 

성시경 : 어제 싸이 형을 만났는데, “시경아. 요즘은 처음에 그렇게 되게 세세하게 안 부른대. 그냥 '빡' 부르지.” 이게 같은 얘기인 것 같아요. 감정을 서서히 올리는 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자기 입장이 분명해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다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시리어스한 걸 사람들이 안 좋아한다니까. 누가 울면 불편하다니까. '왜 울어 불편하게' 이런 거죠. 우리는 누가 울면 불편해도 '왜 울지? 뭔가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이런 세대였는데.

 

- '한국 발라드 가수 계보'를 따져보면, 성시경 씨조차 막내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 이후 계보는 뚜렷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성시경 : 속상하게 생각합니다. 이건 시장의 변화도 한몫을 하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서로 뭉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음악 프로를 하면 선후배가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또, 선배가 콘서트를 하면 게스트로 후배들을 그렇게 많이 불러주셨어요. 

 

저 신인 때도 유리상자, 플라워, 최재훈 형... 그 밖에도 되게 많아요. 그러니까 선배님들이 게스트를 불러서 '요즘 괜찮은 후배입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그러면 팬분들이 '우리 오빠가 좋아하는 후배라니까' 하면서 귀담아 들어주시고. 그러면서 팬카페 200명, 300명씩 늘어가는 거죠. 선배 가수 팬들이 와서 '이제 나 성시경도 좋아하기로 했어요' 하면서. 뭔가 좀 서로 끈끈하다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있었죠. 

 

발라드 가수 계보가 왜 뚜렷하지 않냐는 건 '요즘 왜 혼밥하는 식당이 생겼나요?'랑 비슷한 질문 아닐까요? 그걸 어떻게 대답해요. 사회가 그렇게 변한걸. '요즘은 왜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안 살아요?'랑 비슷한 질문 아니에요? 핵가족화가 되고 사회가 다 개인화가 돼서 그런 걸. 전엔 지금보다 더 계보를 따졌지만 요즘 친구들은 싫어하는 거잖아요. 막 라인 따지고. '나는 나인데 왜 누구 밑으로 있대?' 뭐 그걸 '선배가 나를 인정해 줬어'하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나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연락은 동생이 하는 거예요. 제가 자주 하는 얘기인데. '형은 왜 연락 안 하세요?' 형이 왜 연락을 해. 동생이 연락해야죠. 밥 사달라고, 술 사달라고, 가르쳐 달라고. 저는 그랬거든요. 너무 좋은 거예요. 저는 누나들만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선배님들을 형, 누나라고 할 수 있게 된 때도 너무 행복하고. 게다가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술 무조건 다 사주고. 형들한테 항상 다 궁금하고. '그거는 형, 어떻게 쓰신 거예요? 그때는 어땠어요? 어떤 음악 들으세요?' 너무 좋잖아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내가 무서워서 그런지 몰라도. 동생들이 나한테 연락을 해야지. 제가 몇 번 노력을 했거든요. 예뻐하는 애들한테. '연락 좀 해' 그러면 다들 바빠요. 제가 신인 때는 선배들 열심히 따라다녔어요.

 

- 스스로를 ‘대본을 연기하는 싱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는 싱어송라이터십니다.

 

성시경 : ‘송라이팅도 하는 싱어’인 거죠. 제가 싱어송라이팅만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저는 남의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연기해서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감독해서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쓴 각본을 연기해서 부르는 것도 다 재미있고 그래요. ’다른 사람의 예쁜 글도 내가 연기해 보겠어’하면서 가끔 내 얘기도 좀 하고. 그래서 꼭 ‘내 메세지를 세상에 내놓겠어’ 하는 가수는 아닙니다.

 

- 곡을 만들기 위해 악기를 다루거나 작곡법을 익히는 건 독학으로 해낸 건가요?

 

성시경 : 건반은 혼자 했죠. 어릴 때 ‘체르니’ 치고 이런 거 말고 가수가 된 후에 곡을 따기 시작하면서 연습을 제대로 했고요. 소극장 공연 준비하면서 연습이 더 많이 됐던 것 같고. 1년에 마흔아홉 번을 했어요. 일본 투어, 미국 투어, 서울 열 번, 지방 몇 번, 그런 식으로. 제가 다 연주하면서 공연하는 게 꿈이었어서. 화성학 같은 건 혼자 공부했죠. 책 보고, 곡 따고.

 

- 발라드곡을 직접 쓰실 땐 어느 부분에 주안점을 두시는지 궁금합니다.

 

성시경 : 좋은 곡이라는 기준을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는 거지만, 왜, ‘황금비율’이라는 것도 있고 좋은 예술 작품은 미학적 수학적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제가 말로 잘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감성적으로도 딱 좋고 수학적으로도 딱 좋은 멜로디가 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쪽으로 치우치면 머리를 쓰는 곡이 되고, 또 다른 한쪽으로 치우치면 너무 뒷정리를 안 한 멜로디가 되고. 그러니까 발라드 쓸 때 저는 그런 걸 신경 쓰는 편이에요.

 

 시퀀싱도 맞추면서 대구(對句)도 맞추면서. 그런데 너무 뻔하지는 않아야 되고. 이건 사람마다 쓰는 방법이 다르지만, 대충의 감정으로 멜로디를 툭툭 정리해 놓고, 뒷정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좀 더 수학적이고 면밀하게 짜놓은 다음에 감정을 넣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한쪽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마음으로 감정가는 대로 싹 했는데 이게 수학적으로 안 맞으면, ‘아, 이 길은 아니고, 이렇게 가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면서 감정을 넣을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거죠.

 

- 작사에 관해서도 궁금합니다. 가수 입장에서 작사가의 가사가 입에 잘 안 붙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성시경 : 제가 요즘에 주장하는 바는, 안 붙는 가사는 없어요. 가수가 붙이면 돼요. 예를 들어 제일 높은 음 발음인데 '이'가 되거나 하면 노래하기 어려운 경우는 있지만. 보통 가사가 잘 안 붙어도 가수가 소화해서 붙이면 살아나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한번 오케이 한 가사를 부를 땐 가사가 안 붙는다고 안 찡얼대요. 

 

그런데 저는 불러보고 나서 오케이를 하는 게 아니라 글이 좋으면 오케이를 하거든요. 그다음부터는 내가 잘 붙이면 되니까. 연기자가 작가한테 계속 대사 고치라고 하면 그건 좋은 연기자가 아니잖아요. 그 작품을 하기로 했으면 존중을 해 줘야지. X라 멋있죠, 지금? (웃음)

 

- (웃음) 멋있네요. ‘외워두세요’를 함께한 작사가 박주연 씨와 작업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성시경 : 작곡가보다 저작권료를 더 많이 받았던 분이죠. 최고 히트 작곡가보다 작업이 많으셨다는데. 저는 김형석 씨와 친해서 주연이 누나(박주연)한테도 ‘누나, 누나’ 하거든요. 형석이 형이랑 '외워두세요'라는 곡도 같이 하게 됐고.

 

저보다는 조금 윗세대세요. 제 누나들이 듣던 유행가들 중 제일 잘나가는 곡들의 작사가셨던 거죠. '외워두세요'는 가사가 먼저 왔어요. 형석이 형이 오라 그래서 갔는데 진짜 약간 울고 있는 거예요. '시경아' 그래서 '왜?' 그랬더니 '이거 읽어 봐.' (웃음) 그래서 봤는데, '모두 다 받았죠. 그냥 있어준 것만으로...' 와... 그냥 온몸에 전율이 온 거예요. 그 곡이 멜로디가 화려하지 않거든요. 가사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문득 돌아보면 같은 자리지만'(윤상 –’이별의 그늘’)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그런 게 센스인 것 같아요. 막 심장을 후벼 파는 가사. 그러니까 멜로디 없이도 글만 읽어도 너무 좋은 가사. 그런 걸 너무 많이 써내신 분이죠.

 

- 예전 인터뷰에서 ‘서른다섯 살 무렵엔 김광석처럼 소극장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고 하신 적도 있습니다.

 

성시경 : 그건 싱어로서의 어떤 바람 아니었을까요? 싱어라면 관객들과 온라인 소통보다도 무대 위에서의 교감이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물론 고된 녹음 과정도 너무 의미가 있지만, 글이라는 게 읽힐 때 살아있는 것과 같이 노래도 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현장에서 불릴 때고, 그게 노래가 살아있고 숨이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오롯이 무대에 혼자 올라 관객과 뭔가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는 뜻이죠. 기타 한 대, 모니터 스피커만 있으면 천명이 오든 만 명이 오든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게 너무 멋있었고. 악기를 할 수 있는 모든 가수의 꿈 아닐까요?

 

- 소극장 공연도 굉장히 많이 하셨는데 소극장 공연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성시경 : 연출이 필요 없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규모가 소극장이라고 생각해요. 무대에 올랐는데 그냥 마이크 없이도 "다 들리시죠? 자, 다음 노래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공연은 감탄보다는 감동을 받을 수 있겠고. 연출이 가미가 된 큰 무대들은 감탄하러 가는 곳이죠. "우와!"하고 막 뭐가 팍! 터지는. 그에 비해 소극장 무대는 인터랙트가 오거든요. 감동을 많이 받는다는 뜻은 부르는 사람도 감등을 많이 받는다는 얘기고. 그러니까 조금 더 마음의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소극장이 좋죠. 

 

그런데 여러 번 해야 되니까 힘들죠. 팬분들을 위해서도 그렇고요. 예를 들어 콘서트 한번 하면 2만 명 차는 가수가 500석짜리 소극장 공연 3회 하면... (웃음) 나머지 18,500 명은 어떻게 해요? "야, 뭐 하자는 거야? 더 큰 데서 하든가 아니면 30회를 하든가, 인마."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30회를 한다고 해도 코어 팬분들이 계속 와요. 그러니까 고려해야 될 게 많은 거죠. 이적 형님도 소극장 공연 하면 한 달 내내 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번 해야 되는 거죠. 사실, 몸은 힘들지만 행복하죠

 

- 어떤 장르의 노래를 불러도 ‘성시경 색깔’이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성시경 : 제 보컬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데요. 되게 자극적인 노래를 해도 약간 뭉특해지고, 좀 밋밋한 노래라도 성시경처럼 되고. 저는 성격도 실제로 그런데, 막 망가지고, 찢어지고, 부숴버리고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해요. 화나도 좀 조용히 얘기하고, ‘왁!’ 이런 게 싫어요. 

 

지금 몸도 (몸을 구부리며) 이렇게 하고 있잖아요. (몸 쫙 펼쳐 보이며) 막 ‘와악! 야! 들어와!’ 이게 아니라. 저는 좀 예쁘게 뭔가를 만지고 정성스레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록발라드를 불러도 약간 소프트해지고, 약간 밋밋한 걸 불러도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조금 고급스러워지고. 그 대신 좀 엣지가 살아 있는 곡이 좀 무뎌지고. 약간 그건 제 보컬의 특징인 것 같아요.

 

- 가장 ‘성시경스러운’ 목소리가 드러난 노래는 어떤 곡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시경 : 약간 ‘어떤 노래 제일 아끼세요?’와 비슷한 얘기인 것 같아요. 선뜻 대답을 못 하겠는데,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니까. 어쨌든 제 톤을 잘 보여주는 건... ‘당신은 참..’이나 ‘두 사람’이라는 노래가 톤이 잘 들리는 것 같고. 조금 테크닉이 들리는 건 아무래도 ‘거리에서’나 ‘희재’인 것 같고.

 

-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성시경에게 발라드란 무엇일까요?

 

성시경 : 이런 대답하기는 제가 좀 겁나는 것 같아요. 이게 규정돼있는 게 아닌데 정해 버리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성시경에게 발라드란?' 같은 질문은 너무 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성시경에게 노래하는 삶이란?' 이런 질문이 더 좋지 않을까. 

 

노래는 제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계속 하고 싶어요. 기왕 대중가요 하는 사람으로서 히트곡이 또 나와서 많은 분들이 들어주면 좋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애정을 좀 구걸하게 되는 직업인 것 같아요. '내 음악이 완성됐으니 나는 산에서 혼자 이걸 부르겠어'가 아니라 '이걸 좀 많이 들어주고 좋아해 줬으면' 하는 애정을 갈구하는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게 가수의 삶이 아닌가. 좋아해 주길 원할 수밖에 없는 직업. 사실, 이 또한 규정지어 버린 거죠. 안 그런 선배들도 있거든요. '모르면 듣지 마, 씨' 하면서. 그게 또 멋있기도 하고.

 

[사진출처=에스케이재원]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공유하기

© www.archive-k.com
Total 76 / 5 page
검색 열기 닫기
게시물 검색

인터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