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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
by 우정호

‘백조’ 자우림의 ‘미운 오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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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09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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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자우림’이라는 세 글자가 빛바랜 시기는 단연코 없었다. 자우림은 록을 기반으로 다양한 색깔의 음악적 자아와 캐릭터 물성을 구성하며 세대를 관통해왔다. 때로는 이리 같은 야성으로, 때로는 백조 같은 우아함으로 무대를 휘젓던 이들에게도 말 그대로 ‘미운 오리’ 시절이 존재했다.

 

(아카이브 K는 자우림과 2020년 7월 인터뷰했다.) 

 

  

- 자우림이 결성되던 90년대 중반엔 PC 통신에서 만나 밴드를 만들기도 했지요?

 

김윤아: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는 게 처음 시작된 시기였어요. PC 통신에서 채팅하고. 저희 집에도 통신용 단말기가 있었어요. 다른 동네 사는 친구하고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끼리끼리 모일 수 있는 마당이 열린 거였죠. 그래서 ‘야, 우리 밴드 하자’ 이렇게 얘기하기도 쉽고.

이선규 : 델리스파이스도 비슷한 케이스로 시작을 했던 것 같은데……

김윤아 :저 같은 경우에는 여러 음악 동아리에 소속돼 있었는데요. 거기에 이미 프로 뮤지션들도 굉장히 많이 계셨어요. 그래서 그분들 공연 보러 가기도 하고. 뭐랄까. 멀리 있는 TV에 나오는 가수 같은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나랑 동호회 활동을 하시는 이 분이 서는 무대를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어쩌면 저런 무대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밴드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냥 막 했어요.

 

- PC 통신 사이트 마다 분위기가 좀 다르기도 했나요?

 

김진만 : 나우누리가 약간 매니아스러운 분위기도 있었죠.

김윤아 : 뭐라고 딱 그걸 언어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하이텔이 좀 더 회원이 많고 주류였다면 나우누리는 후발주자였던 것 같고요. 제가 나우누리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유는 특별한 건 없고 그냥 반골 정신이었어요. 통신사도 2등 통신사 좋아하고 그러거든요 제가. (웃음)

 

- PC 통신에서 알게 된 사람들끼리 오프라인에서 모이면 어떤 활동을 했나요?

 

김윤아 : 술을 먹는 거죠. 당연히. 지금은 라이브 클럽이 연주하는 곳이지만 음악을 감상하는 클럽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러면 정말 좋은 장비로 오디오를 아주 크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어요. 옆 사람하고 “야! 뭐해!” 막 그렇게 크게 얘기하지 않으면 안 들릴 정도 큰 레벨로요. 닐 영이 가득하게 울려 퍼지는 그런 공간에서 서로 말없이 헤드뱅잉을 하면서 맥주를 계속 먹는 거죠. 정말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 처음부터 김윤아 씨가 보컬은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이선규 : 원래 제가 보컬을 했었는데, 할 수 있는 노래들이 산울림, 오아시스, 비틀즈...

김윤아 : 충분한데? (웃음)

이선규 : 새 보컬에 대한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별생각은 없었는데, 진만이가 누구랑 같이 보자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보컬을 만나자고 하는데 사실 저도 기분이 좀 좋지는 않았어요. 어디 한번 보자. 그래서 같이 연주를 해봤는데 윤아가 밴 헤일런이랑 딥 퍼플 노래를 불렀어요. 밴 헤일런의 ‘You Really Got Me’랑 딥 퍼플의 ‘Strange Kind Of Woman’을 불렀는데, 이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이성으로 멋있는 걸 넘어 한 인간으로서 너무 멋있어서...

김윤아 : 좋아하거든요. 올드 록.

이선규 : 저런 분이라면 같이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샘솟더라고요.

김윤아 : 감사합니다. (꾸벅) 이선규 씨도 놀라운 보컬리스트예요. 정말이에요. (웃음)

 

- 자우림이라는 팀명은 어떻게 생겼나요?

 

이선규 : 처음에는 ‘미운 오리’라는 이름이었어요.

김진만 : ‘미운 오리’ 이전에는 ‘쵸코크림롤스’라는 남성 3인조였어요.

이선규 : 윤아가 들어오면서 ‘미운 오리’로... 되게 고민 많이 해서 바꾸긴 한 건데.

김윤아 : 저 들어와서도 한동안은 CCR(초코크림롤스)이었어요. 뭐 어쩌다가 이름을 바꿔볼까 했는데 너무 아이디어가 안 나오던 중에 (김진만을 가리키며) 이 분이...

김진만 : 맨 마지막에 나온 아이디어로 하자고 정했어요. 가칭으로.

이선규 : 그러다 저희가 클럽에서 연주하는데, 어느 영화의 엔딩 곡을 불러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거기에 ‘미운 오리’라는 이름으로 들어가는 건 너무 아마추어 같지 않냐, 이왕 이름 제대로 만들어서 가보는 건 어떠냐는 얘길 듣고 만든 게 ‘자우림’입니다.

김진만 : 하루 만에 나왔죠? 내일까지 크레딧에 올라갈 이름을 내놓으라고 해서.

김윤아 : 셋이서 하루 이틀 고민했는데 정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이름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당시 펑크밴드 팀들이 재밌는 이름을 많이 쓰던 시대였으니까. 굉장히 그런 식의 이름밖에는 나오지 않아서 도저히 쓸 수 없겠다...

 

- 세 분이서 같이 만든 이름인가요?

 

이선규 : 윤아가.

김윤아 : 집에 가서 바로 고민해서 만들었어요. 제가 만화를 그리는 활동을 오래 했는데, 색채 중에 쓰기 좋아하는 게 자주색하고 청록색이어서 작업할 때 그런 색을 많이 썼거든요. 우리 음악 이미지가 뭘까 생각하니까 그 생각들하고 잘 어울리더라고요. 어떻게 섞어 볼까 했는데, 머릿속에서 ‘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자주색이고, 나는 숲속에 있어’라는 이미지가 막 떠오르고. ‘아, 그거다’ 해서 한자로 쓰게 됐죠.

이선규 : 좀 생소하지 않나요? 저희 둘은 처음 듣고 시큰둥했어요. 사실.

김윤아 :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대안이 없어서 확정된 이름인데. (웃음) 다행히 지금은 다들 좋아하십니다.

 

- 세상에 없는 단어를 만드신 거네요.

 

김윤아 : 보통은 제가 자 씨인지 아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고...

이선규 : (웃음)

김윤아 : 아직도 ‘저 여자가 자우림 아니야?’, ‘자우림 씨 아니야?’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아요.

 

- 자우림 전신 ‘미운 오리’의 첫 번째 자작곡은 어떤 곡이었나요?

 

김진만 : 저희가 그때 신림동에 있는 옥탑방 작업실에서 여럿 작업했는데... 첫 곡이 뭘까?

김윤아 : 그게 데모를 여러 곡 가져와서 한꺼번에 작업을 해서 한 곡만 뽑을 수는 없고요. 발표된 노래 중에는...

이선규 : ‘밀랍 천사’, ‘일탈’. 자우림 데뷔 앨범 곡들이 그때 거의 만들어진 것들이에요.

김윤아 : 반 정도는 미운 오리 때 하던 곡들이고.

 

- 영화 [꽃을 든 남자] OST 작업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김윤아 : 그게, 만약 영화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면 관객들이 진부해서 코를 풀 것 같은데... (웃음) 저희가 목요일 밴드로 꾸준히 블루 데빌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에 연주를 하는 인기 선배 밴드 ‘유앤미블루’(이승열, 방준석) 형들께서 토요일에 방송 스케줄이 생긴 거예요. 금요일, 일요일에 연주하시던 다른 밴드들도 그날만은 스케줄이 안 됐어요. 

 

그래서 사장 언니가 “얘, 너네 시간 되면 토요일에 와서 연주 좀 해라” 하셔서 “아싸! 토요일에 연주한다!” 하고 클럽에 갔어요. 확실히 목요일하고는 관객석 차 있는 게 다르더라고요. 테이블에 손님이 다 차고. (웃음) 저희가 연주하는 목요일엔 어떤 때는 손님이 안 계신 적도 있어요.

김진만 : 아예 없을 때도 있었죠.

김윤아 : 딱 한 번이지만. 손님이 안 계신데 연주한 적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 토요일에 신나서 연주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단체로 손님이 오신 테이블에서 어떤 남자분이 오시더니 잠깐 자기 테이블에 와서 얘기를 하자는 거예요. 되게 수상하죠. 가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다른 분들이 오셔서 명함을 주시는데, ‘MBC 영화 프로덕션 프로듀서’라고 적혀있는데...

김진만:더 수상해. (웃음)

김윤아 : 어쨌든 수상하지만 여기는 공공장소고 우리는 셋이니까 힘내서 가봤어요. 무슨 얘기를 하나. 그랬더니, 그 손님들이 영화를 제작 중인데 타이틀곡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거짓말 같죠? 진짜 들은 순간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하는 거지, 지금?’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차근차근 들어보니까 사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한 2~3일 줄 테니까 노래를 한번 새로 만들어보래서 3일 동안 네 곡인가 세 곡 만들었는데, 그중에 ‘헤이헤이헤이’를 고르셨어요. 그 노래가 영화 타이틀곡으로 쓰였는데, 뭐 영화 타이틀곡으로 쓰인다고 해서 그게 다 히트곡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와, 드디어 우리 이름을 찍은 CD가 나오겠구나. 영화 크레딧에 우리 팀 이름이 올라가겠구나’하면서 완전 기뻐했죠. 그다음은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 노래가 그해 여름에 되게 히트를 했어요. 자우림 역사상 가장 음악 프로그램에서 순위가 높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1위 후보가 된 적이 없거든요. (웃음)

 

- 그럼 MBC 프로덕션 분들은 원래 유앤미블루를 보러 온 거였네요?

 

김윤아 : 그렇죠. 원래 유앤미블루 형님들 팬이셔가지고 보러 오셨는데 난데없이 엉뚱한 연주를 억지로 발랑 까가지고. (웃음) 그런데 다행히 뭐가 마음에 드셨는지 의뢰를 해 주셔서.

김진만 : 지금 생각해 보니까 뭘 보고 저희한테 그런 제안을 했는지 좀 의심스러운 게, 그때 저희가 하는 음악들은 다들 이렇게 거의 바닥만 보고 연주하는 그런 음악이었거든요. 굉장히 어둡고.

김윤아 : 내용도 어둡고.

이선규 : 뭘 보고 우리한테 그런 제안을 했는지 수상하네요.

김윤아 : 이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정말 수상한 게, 영화는 로맨스 영화거든요. 왜 그랬지? (웃음) 로맨틱한 노래는 하나도 없었을 텐데.

이선규 : 그래서 녹음하면서도 영화 쪽에서는 ‘헤이헤이헤이’가 엔딩곡으로 쓰인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더 좋다. 유앤미블루 노래가 더 좋은데 왜 이걸 엔딩으로 쓰느냐’ 그런 얘기를 우리 앞에서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김진만 : 당연히 있어야지. (웃음)

김윤아 : 옛날에는 데뷔하면 방송국에서 다 인사 다녔잖아요. 저희도 쫓아서 뭐 “안녕하세요. 자우림입니다”하고 다녔는데, 저희 있는데 CD 이렇게 만지시면서 “아니, 이 노래를 하지 왜 이걸 했어? 얘네 뭐 어디에서 이런 애들을 데려왔어?” 그런 느낌으로 말도 많이 듣고. (웃음)

 

- 블루 데빌은 어떤 클럽이었어요?

 

이선규: 블루 데빌이 나름 홍대에서는 제일 다양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보통 클럽 가면 클럽만의 색깔이 있어서. 일종의 장르라고 그러죠. 그런 걸 선호하는 사장님이시거나 또 그런 리더가 있는데, 블루 데빌은 오히려 사장님이 이런 음악, 저런 음악 워낙 다 좋아하셔서.

김윤아 : 그런데 기본은 다 블루스였던 것 같아요. 올드한 블루스도 있지만 블루스에 기반을 둔 음악이면 다 수용하셨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뭐 아까 말한 유앤미블루라든지... 삐삐롱 스타킹도 연주를 종종 와서 했고 황보령 씨, 저희도 있었고. 그런 라인업을 생각해 보면 좀 그런 게 통하는 게 있어요. 우울한 블루지한 음악도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 블루 데빌 사장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김윤아 :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셨고요, 머리가 굉장히 기셨고, 겉으로는 엄청 무뚝뚝한데 속으로는 너무 여리고 정이 많아서 한 번 마음 주면 끝까지 자기 사람으로 챙겨주시는 스타일의 사장님이셨어요. 어떤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선배 뮤지션 분들하고도 친분이 있으시고 뭔가 서포트하는 역할을 오래 해오셨어요. 선규 형에서 저로 보컬이 교체됐을 때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형들한테 마음을 많이 주고 계셔서 새로 제가 들어오니까 꼴 보기 싫으셨나 봐요. (웃음) 

 

되게 펑크하고 스트레이트한 음악을 하다가 제가 들어가니까 뭐라 말할 수 없는 좀 이상한 방향으로 갔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어느 날 저희를 조용히 불러다가 버섯 칼국수를 사주시면서 “아, 윤아가 잘하고 좋은데 나는 원래대로 선규가 노래하는 게 더 좋다”그러셨어요. 스트레이트하게. 그래서 “뭐 어떻게 할까?” 그랬는데 다들 싫대요. 그래서 “그냥 우리는 이대로 할래요” 그랬더니 또 그냥 “알았다” 하셔서... (웃음) 

 

그러셔서 계속했는데. 저희가 데뷔하고 이렇게 여기저기서 연주하는 걸 가장 기뻐해 주셨던 분 중에 한 분이고, 아직도 제 마음속의 은인 중에 한 분이에요. 이현숙 사장님.

이선규 : 제일 마지막으로 뵀던 게 DGBD에서... 드럭이랑 블루 데빌이 합쳐지면서 DGBD라는 클럽이 생겼거든요.

 

- 그 당시 블루 데빌 말고 잼머스라는 클럽에서도 공연하셨지요?

 

김윤아 : 잼머스는 굉장히 열린 클럽이었던 기억이 있어요.

김진만 : 이름 자체가 잼머(잼 하는 사람)... 잼머스(Jammers).

김윤아 : 손님들이 와서 음악 들으시다 원하면 얼마든지 잼 할 수 있는 그런 컨셉의 클럽이었고요. 그래서 저희도 놀러 가서 음악 듣다가 잼을 한 적이 있고. 그리고 저희는 팀을 결성한 이후에 홍대 앞 클럽들이 서로 친선 교류하면서 뭔가 클럽 데이 같은 컨셉으로 열었던 행사에서 연주했던 기억이 있어요.

 

- 그 시절 홍대 앞 뮤지션들의 페이는 어떻게 책정됐나요?

 

이선규 : 일단 저희는 블루 데빌에서 페이를 받은 적이 없지.

김진만 : 페이는 없고 대신 클럽 열쇠를 주면서 낮에 와서 합주하고 싶을 때 합주해라 그러셨죠. 그리고 공연 날은 냉장고를 개방해 주시죠. 저희가 맥주를 막 하하하... 이 맛에 막...

김윤아 : 사장님이 나중에 후회하셨을 거예요. 왜냐하면 끝나고 나면 셋이 그냥 조용히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맥주를 먹고 집에 가는데, 뒤를 돌아보면 테이블 가득히 맥주병이 쌓여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물론 지금은 누군가 연주를 하는데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사람들이 알지만. 그런데 그때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고, 

 

저희 입장에서는 연습실비를 내고 어디 가서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리고 공연장을 빌려서 공연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리고 돈을 내지 않고 쫑파티를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획기적으로 감사한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크게 감사한 일이었죠. 지금하고는 좀 다른 세상이었으니까요.

 

- 공연 페이가 없다면 생활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김윤아 :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두 분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김진만 : 보습학원에서.

김윤아 : 저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일주일 내내 했고. (웃음)

김진만 : 저는 회사 입사 시험에서 떨어진 적도 있어요.

 

- ‘헤이헤이헤이’가 한 방에 히트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김윤아: 그 노래 히트한 거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에요. 정말 이게 아직도 되게 미스터리해요. 어떻게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좋아했을까 싶은 게, 가요 해법의 노래가 전혀 아니고 그냥 되게 생 블루스거든요. (웃음) 그리고 가사도 되게 반복적이고. 기승전결이 있는 게 아니라 블루스 코드가 흘러가는 노래잖아요.

이선규 : 음악업계에서는 노래가 히트할 수 있는 특정한 요소들이 있다고 그러거든요, 이게 댐핑이 들어가고 뭐가 떼창이 왁 나오고… 거기에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는 노래인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희는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김윤아 : 네.

이선규 : 굳이 설명을 해보면, 나는 그런 노래를 뭐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굉장히 어리고 청초해 보이는 여자애가 눈웃음을 지으면서, 귀걸이도 이렇게 치렁치렁하고, 뭔가 볼거리는 많았던 것 같아요. 저런 건 좀 처음 본다,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 그 음악이 그렇게 사랑받을 줄이야. 그래서 그 당시에 그런 얘기 많았어요. ‘저 밴드 길어야 1~2년이다. 틀림없이 쟤는 솔로로 나가고 남자들은 어디 취직하겠지.’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것도 되게 상투적이고 당연한 거잖아요.

김윤아 : 데뷔 10년 차까지도 그런 얘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해체할 때가 됐는데..,’ 그런 느낌으로. (웃음)

 

- 첫 공중파 방송 데뷔 기억하세요?

 

김윤아 : 네.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MBC에 아침 홈쇼핑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김진만 : (웃음)

김윤아 : 그때는 공중파에서 다 물건을 팔았어요 아침에. 그런데 저희 데뷔한 영화가 MBC 프로덕션에서 제작하신 거라 MBC에서 많이 양해해서 출연을 하게 해 주셨는데. 그래서 아침 생방송에 나가서 차량용 냉장고를 파실 때 옆에서 한두 마디씩 거들다가 생방송으로 ‘헤이헤이헤이’를 들려드린 게 저희 첫 방송이었어요.

 

- 방송 무대 데뷔는 언제였나요? 인디 뮤지션으로서 공중파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없었나요?

 

김윤아 : 제목이 ‘MBC 인기가요 50’인가. 가요 프로그램이었어요. 저흰 너무 감사하죠. (웃음)

이선규 : 저희는 그런 게 없었는데 다른 분들 중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김윤아 : 대부분은 아니에요. 일부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셨던 분들도 계실 수 있어요. 뭔가 순수함을 벗고 상업 시장으로 갔다. 이걸 섭섭해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또 옆에서 ‘와, 여기서 잘 돼서 나갔으니까 얼마나 좋아’ 그런 생각 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음악계나 인간사회나 다 사람의 비율이라는 게 비슷하잖아요. 누가 잘 됐을 때,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다 그렇죠.

이선규 : 옛날에는 홍대와 여의도와의 어떤 관계가 너무 확실해서 벽이 높았어요, 지금보다.

김윤아 : 그래요?

이선규 : 그래서 또 그만큼 경계하고 그런... 서로 의식하는 게 좀 있었어요.

 

- 90년대 후반엔 자우림을 비롯해 여성 보컬 팀들이 꽤 있었지요?

 

김윤아 : 잠실에 ‘주주클럽’. 그리고 저희보다 선배들이시긴 하지만 ‘삐삐밴드’도 계셨고, 뭐 ‘줄리엣’이라는 팀도 있었고요.

김진만 : ‘더더’도...

김윤아 : ‘더더’도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고.

이선규 : ‘러브홀릭’.

김윤아 : 그건 조금 한참 뒤인 것 같기는 한데. 90년 대쯤에 전 세계적으로 여성 보컬리스트가 메인인 팀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또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이 등장하면서 록의 형태가 전보다 굉장히 유연해져서 장르가 넓어지고 그러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보컬들이 나오면서...

김진만 : 돌로레스 오리어던.

김윤아 : 그렇죠. ‘크랜베리스’ 보컬. 그전에 여자 보컬들은 보통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을 많이 하시고 록 성향의 음악들은 ‘하트’나 ‘프리텐더스’ 같이 하드한 록 하는 팀 말고는 잘 없었거든요. 그런데 90년대 말 접어들면서 밴드의 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여성 보컬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그게 국내에도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남자 보컬들도 그 전 세대의 헤비메탈이나 하드록을 할 때보다 진입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어요. 어느 쪽이 좋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보컬리스트들이 자기 스타일대로 음악을 하는 걸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예요. 그때가 기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선규 : 그전에는 남자고 여자고 간에 다 마초적이고 이런...

김윤아 : ‘와악!’ 이런 느낌이 ‘이게 록이야’라고 사람들이 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부드러운 톤으로)흐어어~’ 이렇게 불러도 밴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한 거죠.

 

- 첫 번째 레이블인 난장 뮤직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김진만 : 저희는 그냥 앨범 내준다고 하니까  “얼씨구나”하면서.

김윤아 : “아싸! 도장 가져갈까요?” (웃음) 대중음악을 안 하던 레이블이었거든요. 국악하고 재즈만 하시던...

이선규 : 유덕수 선생님, 김광민 선생님 계셨던 난장이었는데, 여기서 저희가 데뷔한 이유는, 역시 MBC랑 사운드트랙 계약을 했던 연으로 자연스럽게 소개를 받았어요.그 첫 번째 레이블도 저희한테 굉장히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으로 아무 터치가 없었어요.

김진만 : 너무 안 했어. (웃음) 아예 안 했어, 아예.

김윤아 : 아무것도 터치 안 하고 그냥 “너네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시고. 그런데 그 레이블 자체가 엄청 음악적으로 내공이 있는 스튜디오도 가지고 계시고, 구성원들도 다 전문가들이셔서 많이 저희를 끌어주셨던 것 같아요. 데뷔 했을 때 저희는 레코딩에 대한 걸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굉장히 가족처럼, 본인들 일 것처럼 굉장히 전력으로 도와주셔서 잘 됐던 게 아닐까. 저는 지금도 굉장히 감사하는 부분이고요. 

 

그래서 난장 뮤직하고 2.5집까지 같이 일을 했고 3집도 사실 난장이 큰 레이블에 흡수가 되면서 같이 가는 식으로 티엔터테인먼트로 옮겨갔는데요. 그때 박정현 씨 계셨고 ‘롤러코스터’도 계셨고. 그래서 다행히 굉장히 음악적으로 아무 터치하지 않으시는 레이블들하고만 일을 해 왔어요. 타이틀곡 선정할 때도 아무도 뭐 이게 모자라니까 더 써 와라, 이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래서 정말 다행히 멋대로 이렇게 오게 됐죠.

김진만 : 지금까지도. 타이틀곡 좀 회사에서 골라주시지.

김윤아 : 아무도 골라주지 않아. (웃음)

김진만 : “어느 곡 타이틀곡을 하실래요?” 그러면 “그걸 우리가 정해야 돼요?” 이런 분위기였어요.

 

- 레이블 난장 뮤직이 방송 활동도 활발하게 이끌었나요?

 

이선규 : 아니요. 그런 것까지...

김윤아 : 그런 건 안 했어요.

김진만 : 거의 MBC였죠.

김윤아 : 네. 처음에는 거의 MBC였는데 노래가 좀 알려지면서 방송 3사를 다 바쁘게 다녔고.

김진만 : ‘이소라의 프로포즈’도 했었고.

김윤아 : 안 나간 방송사 없었죠. 우리 1위 후보 때도 KBS 프로그램이에요.

김진만 : 아, 맞다.

김윤아 : 레이블에서 되게 힘들어하셨던 기억이 나는 게, 점잖은 일만, 조용조용한 일만 하시다가 너무 바빠지시니까...

이선규 : 난장 뮤직도 일을 대중음악 쪽으로는 처음 하다보니 저희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을 것 같아요.

김윤아 : (웃음)

 

 

(2부에서 이어집니다)

 

 

[사진출처=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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