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연령대 공감시킨 ‘나이 먹지 않는 음악’ > 인터뷰 아카이브K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인터뷰

인터뷰

2023.06.10
by 우정호

넓은 연령대 공감시킨 ‘나이 먹지 않는 음악’

페이지 정보

작성일 23-06-10작성자  by  우정호 

본문



 

  

(1부에서 이어집니다.)

 

 

- 자우림에게 인디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김진만 : 일단 교과서적으로는 외부의 간섭 없이 자기들이 음악을 만들고...

이선규 : 어떻게 보면 오히려 영세함을 인디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싶어요. ‘영세하지만 우리는 뭔가 해낼 거야’. 그런 뉘앙스. 좀 슬프죠. 그러니까 그게 인디라는 게 사실 정말 그들만의 철학이 있다면, 인디 레이블 직원이 인디 레이블의 부장이 되고, 인디 레이블의 이사가 되고, 인디 레이블의 대표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보통은 인디 레이블에서 일하던 후배들이 경험 쌓으면 YG나 네이버, 멜론 그런 데로 취직을 하고 “아, 이 새끼 잘 됐네”라고들 하잖아요.

김윤아 : (웃음)

이선규 : 저 사람은 본인의 어떤 경력을 쌓기 위해 인디 레이블에서 일을 했다고 보일 수 있고. 그런데 막상 대기업 가면 그런 인디 레이블에서 하던 일이랑 전혀 다른 일을 하거든요 사실은. 방식도 너무 다르고. 인디는 그냥 정말 존재하지 않는 어떤 포장이고 껍데기인 것 같아요. 사실은 인디 레이블도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도 많아야 되고, 일하는 방식도 조금 대기업이랑 달라야 되지 않나. 

 

그러니까 저희들은 운이 좋아서 처음부터 원하는 시스템으로 잘 됐지만 보통 음악적인 것들은 아티스트들한테 맡기고 비즈니스를 우리가 하겠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거든요. (회사 입장에서) 음악도 조금씩 건드려보고 싶고, 돈 되는 쪽으로. 그렇게 되면서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퇴색하고.

김윤아 : 네. 인디 펜던트 레이블이잖아요. 대자본의 영향력을 받지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저는 인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주체가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 말고 뮤지션 분들의 음악이라고 생각했고요. 같은 맥락에 있고요.

 

-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1집 곡 ‘일탈’은 가사가 파격적입니다.

 

김윤아 : ‘일탈’ 가사가 처음 나왔을 때 방송 금지곡이 됐고. 저희 데뷔했을 땐 웬만하면 다 금지곡이었어요. 심지어 한 앨범에 12곡 있으면 10곡 금지곡 나온 적도 있어요. 별로 중요한 기준은 아닌 것 같은데. 저희 생각엔 그게 그렇게 막 파격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고요. 오히려 그냥 좀 통쾌한 가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지금보다 어떤 의미로는 더 갑갑한 시대였으니까. 오래됐잖아요. 그래서 그냥 뭔가 일탈 행위를 하면서 ‘저 사람을 골탕 먹이고 싶다’는 상상을 하면서, 그런 가사도 있고. (웃음)

김진만 : 처음에 옥탑방에서 윤아가 쓴 가사를 들려줬을 때 선규하고 저도 이 노래 가사가 파격적이란 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어느 지하철역이 제일 사람 많아?” 이러니까 신도림역이라고.

김윤아 : 둘 다. (웃음) 그래서 형들한테 물어봤더니 이구동성으로 신도림역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선규 : 거의 25년 전 곡인데 아직도 페스티벌 같은 데 가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고, 잘 뛰어노는 곡이 일탈이더라고요. 그래서 신기해요, 매번.

김윤아 : 일상생활과 접해 있는 거니까. 가사 작업 할 때 보통은 ‘사람들이 무슨 얘기 듣고 싶어 할까’ 생각은 안 하는데요. 그 노래가 몇 곡 안 되게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겠지?’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고소한 얘기들.

 

- KBS 심의에 걸려서 ‘사회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김윤아 : 사회 부적격 판정이요? 방송 부적격 아니고? (웃음)

이선규 : 금지곡 말고요?

김윤아 : 다른 얘기인데, 음악을 안 했으면 아마 셋 다 사회 부적격이었을 것 같아요.

이선규 : 그건 맞아요.

김윤아 : 어. 그건 확실히...

김진만 : 1인분 있잖아요. (주변에서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 짓자 고개 절레절레) 사회 구성원으로서 1인분. 하기 힘들어요. 음악 안 했으면. 되게 부적응을 했을 것 같아요. 다들 엄청 부적격하니까.

 

- 1집 [Purple Heart]의 대성공으로 2집 [연인(戀人)] 발매 때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이선규 : 우리는 없는데, 주변에서 “2집은 정말 잘 돼야 된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 말씀을 계속 3집, 4집, 5집까지 하더라고요.

김윤아 : (웃음) 대박.

이선규 : 매번 그냥 하는 얘기구나 싶어요.

김진만 : 저희는 오히려 ‘헤이헤이헤이’가 나왔을 때, ‘그래. 원 히트 원더로 남는 밴드가 되는 거겠군’ 생각했었고. 1집 냈을 때는 ‘여기까지 일 거야’ 생각을 했고. 2집, 3집 때도...

이선규 : 사실 저도 1집 나왔을 때 ‘헤이헤이헤이’를 듣던 사람들이 1집을 듣고는 굉장히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 내 앞에서 어떤 평론가분이 같이 술 마시는데 직접 그런 얘기를 했어요.

김윤아 : (웃음)

김진만 : 그렇지. (웃음)

이선규 : “1집은 너무 실망스럽다” 저희 매니저 하던 분이랑 실장님이랑 그런 얘기를 막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실망스럽냐 물어보니까 “‘헤이헤이헤이’ 같은 노래가 없지 않냐”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김윤아 : ‘헤이헤이헤이’의 팬이셨나 봐요.

이선규 : 계속 그런 노래 원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남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은 그랬던 것 같고 우리는 그 안에 갇혀 있기 싫었던 거고.

김윤아 : 진짜야?

이선규 : (끄덕)

김윤아 : (웃음)

김진만 : 그게 오히려 1집에 대한 부담, 3집 낼 때 2집에 대한 부담이 있으면 자우림 특유의 널뛰는 앨범들이 나올 수가 없거든요. 저희가 얘기한 대로 ‘여기까지 낼지도 모르겠구나’ 이런 마음으로 그냥 그때그때 머릿속에 있던 걸 해왔던 게 오히려 지금 와서도...

이선규 : 그리고 저는 1집이 진정한 자우림의 모습이고 ‘헤이헤이헤이’는 저희가 ‘기획을 해서 만든 노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윤아 : 그래서 1집에 ‘헤이헤이헤이’를 수록하지 않았어요. 다른 음악들하고 맥락이 다르고 ‘영화를 위해 만든 곡’이라서. 그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1집을 굉장히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히트곡도 많이 얻었고, 지금까지도 그 앨범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고. 

 

그래서 2집 녹음할 때, 약간 김진만 형님이 굉장히 시니컬하거든요. 그래서 공공연하게 ‘2집이 끝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나고. (웃음) 저도 그냥 ‘2집까지 낼 수 있는 게 어디야’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인터뷰를 가면 기자분들이 “아, 2집이라 아주 부담이 컸겠다. 1집만큼 성공해야 되는데” 이런 얘기도 많이 하셨고.

 

- 앞으로 지속해서 앨범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시점은 언제였나요?

 

김윤아: 그게 어느 날 확 ‘아, 맞다. 이게 이제 지속 가능한 바퀴가 됐구나’라고 느끼는 건 아니니까. 물에 젖듯이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된 건데요. 그걸 알게 된 다음에는 정말 감사함이 가장 컸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게. 큰 빚을 진 감사함이 있어요.

이선규: 처음에 데뷔하고서 한동안은 사람들이 사인을 해 달라거나 ‘사진 찍어도 돼요?’라거나 하시면 굉장히 힘들어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게 없어지더라고요. 그게 그때인 것 같아요.

김윤아 : 응. 비슷한 시기인 것 같아요.

 

- 김윤아 씨도요?

 

김윤아: 네. 제가 모르는 사람이 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싫었었어요. 그래서 적응 안 되고. 길에서 “자우림 씨 팬이에요, 사인해 주세요” 이러면 ‘내 이름은 김윤아인데 왜 자우림 씨라고 부르면서 사인을 요구하지?’ 스스로 좀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아, 이건 모두 정말 너무 감사한 일이다”라는 걸 알게 됐어요, 진짜 마법처럼.

 

- 김윤아 씨는 심야 음악 프로 MC도 하셨지요.

 

김윤아 : 네. (웃음) 사실은 그 심야 음악 프로 MC 할 때까지만 해도 제가 처음 뵙는 분하고 말하는 게 너무 어려운 스타일이라 되게 힘들었어요. 게스트분들하고 얘기하는 게. 진짜 막 뇌를 쥐어짜가지고... (웃음)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어요. 지금은 모르는 분하고 얘기 잘 해요. (방송 MC 활동은) 좋은 부분이 있죠. 연주를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고 그런 건 되게 특권인데. 그분하고 말하고 막 대화를 내가 끌어가야 되고, 막 그게... 낯을 가려가지고. (멋쩍은 웃음)

 

- 자우림의 첫 페스티벌 무대는 어떤 페스티벌이었나요?

 

이선규 : 우리는 쌈지 페스티벌 했었어요.

김윤아 : 네. 쌈지 페스티벌. 맞아요.

이선규 : 쌈지가 지금은 없어졌고.

김윤아 : 의류 브랜드 쌈지에서 만든 페스티벌이었어요. 

 

- 기억에 남는 페스티벌 무대는요?

 

김윤아 : 저희가 낮 페스티벌 무대에 섰던, 대만에서 열렸던 페스티벌이 기억나요. 해수욕장에서 낮에 여름에 대만이 얼마나 더운 줄 아시죠? 진짜 고생했어요. 땀이 정말 비 오듯. 예쁜 옷 입고 갔는데 얼굴이 막 다 쏟아지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이선규 :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덥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야,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재작년에 저희가 펜타포트를 여름에 했는데, 대만에서만큼 덥더라고요. 우리나라 너무 더워졌어요. 더워죽겠어요.

김윤아 : (웃음)

 

- 일본 ‘섬머소닉’ 페스티벌에서도 한국 뮤지션 최초 헤드라인으로 초대되셨지요?

 

김진만 : 헤드라인이었어?

이선규 : 그러니까.

김윤아 : 헤드였어요. 헤드긴 했는데 그때 동일 시간대에 그린데이가 다른 쪽에서... (웃음)

김진만 : 이렇게 무대가 여러 개 있잖아요. 아주 제일 메인 무대는 아니었지?

김윤아 : 네. 작은 무대의 헤드였는데 저희가 타임 테이블 나온 거 보고 “왜 우리를 헤드를 줬지?! 나 그린데이 못 보러 가잖아!” (웃음) 그런 느낌이었고 그날 관객도 많지 않았어요. 다 그린데이 보러 가서. 저라도 그린데이 보겠어요.

김진만 : 맞아요.

김윤아 : 오히려 낮에 공연하고 다른 팀들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돼서 조금 아쉬웠어요.

 

- 페스티벌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곡은 어떤 곡이에요?

 

김윤아 : 음... ‘하하하송’, ‘일탈’, ‘스물다섯 스물하나’... 다양해요.

김진만 : ‘매직 카펫 라이드’.

 

- 일본에서도 앨범을 내고 활동하셨지요.

 

김진만 : 2001년쯤에 일본 기획사 어떤 분이 자우림한테 꽂히셔가지고 ‘나는 이 팀을 무조건 일본에서 성공시키겠다’ 해서 굉장히 구애를 하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알았으니까 해 보겠습니다’ 했고. 그래서 2001년, 2002년에 일본에서 일을 많이 했었죠.

김윤아 : 한류라는 말 자체가 없었을 때. 굉장히 옛날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데 그때 일본 클럽 투어 같은 걸 했는데 되게 힘이 한 단계 커진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말이 안 통하는 관객들 앞에서 연주로만 표현을 해야 되니까.

 

- 9집 곡 중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김윤아 : 노래를 작업하는 과정이 곡마다 다 다른데요. 어떤 노래들은 말하고 음이 딱 처음부터 붙어서 머리에 빵 떠오르는 곡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노래가 딱 그래요. 그냥 집 앞에서 걸어가다가 꽃이 이렇게 질 무렵이었는데 ‘바람에 날려~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게 다 한꺼번에 나와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집에 와가지고 바로 적어내려갔던 곡이거든요. 뭔가 타이밍이 시각적, 청각적인 자극이 맞아떨어질 때 팡 터지는 순간이 그 순간이었어요.

 

- 대학 축제에서 유독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인기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왜 그럴까요?

 

김윤아 : 스물다섯 스물하나. 자기 얘기니까. (웃음)

 

- 현재 대중음악이 록이 주류가 아님에도 오랫동안 자우림이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이선규 : 뭘까요?

김윤아 : (웃음) 우리 음악이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가 공연을 하면 항상 너무 다행히 늘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연령층이 되게 다양해요. 그래서 저희보다 연상이신 팬분들도 많이 계시고 지금 10대 학생들도 자우림 듣기 시작하는 친구들도 꽤 많거든요. 왜냐하면 이렇게 넓은 연령대를 다 공감시킬 수 있는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자우림의 강점이 아닌가 생각이 되고, 사운드가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은 팀이라는 것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진출처=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공유하기

© www.archive-k.com
Total 76 / 5 page
검색 열기 닫기
게시물 검색

인터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