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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3
by 우정호

힙합 대부 D.O, 그리고 ‘듀스’의 이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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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7-03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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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에서 이어집니다.)

 

 

- 듀스 데뷔 전 만들어 놓은 곡들이 있었나요?

 

이현도 : 그렇죠. 그러니까, 현진영 선배가 대마초 걸려서 한동안 공백이 있었잖아요. 현진영과 와와도 활동이 중단되고 그때 제가 본격적으로 음악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고 만들었어요. 현진영 선배가 출소하고 나서 제가 건반 샀다고 그러니까 구경 와서는 만든 곡 들려달라고 해서 들려줬어요. ’너에게만‘이라는 노래였고, 말도 안 되는 습작이었거든요. 그런데 현진영이 듣고 ’어? 야, 이거 이수만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내 2집 앨범에 넣자‘ 그래서 ’아유, 말도 안 돼‘ 그랬더니 ’아니야, 녹음해 줘‘ 하더라고요. 그래서 녹음해서 들려줬더니 이수만 선생님도 좋다고 녹음하자고... ’이거 다 네가 만든 거니?‘ 그래서 ’네‘ 했죠. 속으로 ’내가 만든 노래도 음악으로 인정이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더 또각또각 더... (웃음) 열심히 만들었죠. 

 

그래서 세 번째 나온 노래가 ’나를 돌아봐‘였어요. 뭐 언제 쓸지 모르겠는데 빠른 노래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두 번째 노래는 뭔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듀스 1집 노래 중 하나는 그걸 가지고 만들었던 거 같고. 그런데 어린 마음에 모르면 용감하다고, 첫 노래 만들고 나서 ’그냥 썼는데 이게 되네?‘ 뭐 이런 생각이 든 거죠. (웃음) 그래서 자신감도 생기고. 그냥 막 만들어 보자, 이러면서 재미를 더 붙이게 된 거죠. 

 

- 듀스 데뷔 앨범 프로듀싱은 어떤 분이 하셨나요?

 

이현도 : 사실 프로듀서가 없었어요. 최민혁이라고 R.ef 제작하시고, 김종국, 에일리랑 일하시고, 김범수 발굴하신 형이 있는데 그 형이 DJ였어요. 자기도 이제 DJ만 할 게 아니라 음악을 좀 배워서 프로덕션도 하고, 비트메이커도 하고 프로듀서를 하겠다고 하고 있었고, 알음알음해서 제가 빌린 작업실에서 같이 만나게 된 거죠. 그 형이나 저나 감각만 가지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뛰어들어 의기투합했어요. 그 형이 많이 도와줬고, 듀스 앨범에 프로듀서로서 크레딧에도 올라갔어요. 

 

그런데 사실상 듀스 앨범의 프로듀서는 그냥 저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곡 순서부터, 작곡, 프로듀싱, A&R까지 다 혼자 했고, 저는 이런 걸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때 기획사가 굉장히 열악했거든요. 김동구라는 사람이 있었고, 저랑 성재랑 있고. 뭐 그게 끝이었어요. 연락 수단으로 삐삐 하나 있고. 앨범 제작도 지지부진하고 날짜가 계속 밀리는 상황이 됐어요. 그러는 동안 서태지와 아이들은 앨범 벌써 나오고, 방송도 나오는데 저희는 데뷔도 못 하고 있었죠. 

 

결국에는 어떻게 힘들게 투자를 받아서 앨범 제작할 수 있게 됐어요.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작업했던 유대영이라는 DJ 하시던 선배님 있는데, 그 형 작업실을 빌리기로 했어요. 제가 악기가 키보다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 작업실을 돈 주고 빌린 거죠. 그래서 두 달 동안 음악을 전부 완성하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던 그때 최민혁이라는 DJ 형을 만나게 된 거죠.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샘플링할 수 있는 샘플러라는 게 필요한데 저한테는 없었어요. 그래서 샘플링 작업 도와준 게 최민혁 형님이에요. 

 

- 최민혁 씨는 DJ면서 프로듀싱에도 뛰어드신 거였군요.

 

이현도 : 네, 그때는 그러셨죠. 그래서 저도 듀스 하면서 회식하거나 하면 나이트를 가잖아요. 그러면 그 강남 나이트에 민혁이 형 타임이 있어요. 잘나가는 DJ였으니까요. 그럼 가서 ’형!‘ (손 흔드는) 하면 씩 웃으면서 괜히 골려주려고 ’나를 돌아봐‘ 틀어버리고 그랬어요. 

 

민혁이 형이랑은 그런 추억도 있어요. 처음 만난 게 고려 오피스텔이라는 데였는데 서부지검 맞은편에 있어요. ’아유, 형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어, 그래. 반가워. 너는 악보를 안 보고 음악을 만든다며?‘ 그러는 거예요. 누가 막 소문을 냈나 봐요. ’네, 그냥 해 봤어요‘하니까 ’그건 나도 그런데, 너 대단하다‘ 그러고. 거기서 ’나를 돌아봐‘ 데모 만든 걸 들려줬어요. 그러면서 서로 좀 잘 해보자고 하면서 형, 동생이 됐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요. 

 

그랬던 사이인데 저도 가수가 됐고, 그 형도 R.ef, 김범수를 비롯해 제작자로도 성공하시고. 마이티마우스의 경우 제가 곡을 써 줬어요. 마이티마우스도 잘 됐고. 90년대 댄스음악, 나이트클럽에 가장 특화돼 있는 캐릭터가 DJ 최민혁입니다.

 

- 듀스의 스타일링은 말 그대로 ’센세이셔널‘했습니다. 그때 착용했던 아이템들 기억하시나요?

 

이현도 : 네, 크고 작은 것들이 있는데. 듀스 가방이라고 해서 옛날 공군이 쓰던 까만 가방이 있어요. 저희가 2~3집 때 많이 매고 나왔는데 그게 유행이 많이 됐었고. 그땐 협찬이나 PPL 개념이 확립이 안 돼 있어서 저희가 간접광고 같은 것도 그냥 엄청 해준 것 같아요. 그냥 지인이 ’좀 입어주세요. 옷 그냥 드리겠습니다‘하면 ’야, 좀 입어주자‘ 그러고. 사실 그 업체들 입장에선 옷 하나 주는 거 이상의 효과를 얻었을 텐데. PPL에 대한 개념이 없어 그냥 입었던 게 많았죠.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 잠깐 유행시켰던 빨간 뉴에라 모자. 거꾸로 쓰기도 했고요. 그리고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라는 청바지도, 퀵실버라고 서핑 관련된 브랜드도... 특히 퀵실버 사장님은 어떤 분인지 모르겠는데 능력이 되게 좋으셨던 게,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를 동시에 협찬했어요, 거의 독점으로. 그래서 처음엔 ’우리 똑같은 브랜드 입기 싫다‘고 했는데 제작자가 입어야 된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성재가 ’그럼 우리는 퀵실버 라인들 중 체크무늬 계열을 우리가 주로 입겠다‘고 그래서 듀스는 퀵실버 체크무늬 위주로만 입었고 이것들도 판매에 일조한 아이템이 됐었고요. 

 

또 뭐가 있지? 이래저래 꽤 많은데. 두건은 사실 다 쓰는 건데 저희가 TV 나와서 썼더니 서울 이외 지역에서는 그거 보고 쓰기 시작한 게 아닐까요?

 

- 듀스 활동하실 때 코디는 있었나요?

 

이현도 : 있었죠. 아니, 저희 세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웃음) 

 

- (웃음) 듀스 특유의 독보적으로 세련된 스타일을 구축한 분이 누구인가 궁금했거든요.

 

이현도 : 듀스 초창기엔 아직 사람들이 저희 음악을 모를 때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알아서 했어요. (코디에게) 이런 걸 구해 와라. 이렇게 요구하고. 그러다 점점 더 성재가 패션이나 컨셉에 대해서 도맡아 하게 된 거죠. 왜냐하면 옷을 너무 잘 입으니까. 

 

저는 그 당시에 흑인 음악 뮤직비디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그야말로 짤다막한 흑인 꼬마처럼 옷을 입었고, 그런 스타일을 추구했었고. 성재는 ’뭐 이렇게 입어도 되지‘하면서 백인스럽게도, 흑인스럽게도 입을 줄 알았고 약간 일본 스타일의 멋있는 것도 많이 섞여 있었어요. 그래서 듀스 2집 때부터 아예 옷이나 앨범 디자인까지도 성재가 다 맡아서 했죠.

 

- 고 김성재 씨는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트렌드에 더 밝았던 것 같군요.

 

이현도 : 네, 일본에 있다가 영국에 갔다가 왔다 갔다 했대요, 아버지 직업 때문에. 성재가 처음 왔을 때 처음 가르쳐 준 게 일자 청바지 뒤에 수건 꽂는 거, 스카프 같은 거. 그래서 한동안 꽂고 다녔죠. 그게 그때 유행이었어요. 그것도 한 20년 동안 두 번, 세 번 정도 유행이 돌았죠.

 

- 앞서 말씀하신 뉴에라 모자들이 눈에 띕니다. 직접 제작하신 건가요?

 

이현도 : 아니요. 이거는 몇 년 전에 뉴에라에서 콜라보 하자고 해서 한 거예요. 한정판으로. 지금 가격은 별로 안 높을지 몰라도 희소성은 대단하죠. 다시 만들 생각이 없어서 되게 조금 만들었는데 완판됐어요. 이건 듀스 ’여름 안에서‘가 있는 그 인터미션 앨범의 소재 디자인을 모티브로 했고, 이건 3집 ’굴레를 벗어나‘ 있는 [포스트 듀스] 모티브, 이건 듀스 1집에 있는 폰트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을 때 처음 DEUX라고 썼던 펜 글씨를 가져온 디자인이에요. 그걸 만든 디자이너들이 팬심으로 마크나 색깔, 도안을 엄청 잘 뽑았어요. 그야말로 팬이 디자이너가 된 거예요. 

 

- 듀스나 프로듀싱했던 음반들을 봤을 때. 음악 완성도 만큼이나 비주얼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현도 : 뭐... 그렇죠. 보여주고 하는 게 사실 절반 정도 중요하죠. 음악을 감상만 할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노래들을 뮤직비디오나 공연으로 보면 두 배, 세 배 이상 흥겹고 즐겁거든요. 그러니까 음악과 함께 비주얼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제대로 된 쇼를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듀스는 거기에 채워 넣을 게 더 많았던 거죠. 왜냐하면 저희가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고, 춤으로 시작한 사람들이니까. 뭐, 가창력을 전혀 거리가 멀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낼 수 있는 소리를 저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표현했다는 게 맞겠고. 뭐, 각자 개성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우리 노래를 너무 이렇게 R&B처럼 부르거나 ’소몰이‘로 잘 부르면 또 징그러워요. 

 

- 당시 듀스에는 안무를 해주시는 분은 따로 없었던 거지요?

 

이현도 : 그럼요. 프로듀싱이랑 A&R도 제가 다 했는데 안무가가 어디 있어요. 사치죠. 춤 연습할 때 거울도 없어서 저희 집 2층 불 켜 보면 유리창에 비치는 저희 모습 보면서 춤췄어요. 회사에서 안무실도 빌려주지 못했고 되게 열악했죠. 제작자가 삐삐 하나밖에 없었고, 차도 없었어요. 차비가 없어서 연습 못 간 적도 있어요. 회사에서 그건 줘야 됐는데... 사실 저희 집이나 성재 집은 잘 살았거든요. 그런데 괜히 집에 돈 달라 그러기는 싫은 그런 시절 있잖아요. 그래서 돈이 그렇게 없었어요. 

 

- 한마디로 듀스는 작곡, 작사, 안무, A&R, 프로듀싱까지 전부 자체적으로 다 해낸 거였군요.

 

이현도 : 저는 그런 게 다 분업화가 돼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제가 현진영과 와와 활동 중단됐을 시기에 처음 노래 써본 거였고, 그때 음악을 만들고 작사를 하는 게 무슨 학원이 있고, 교과서나 참고서가 있는 게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전 악보도 못 봤고 코드도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완전히 그냥 혼자 한 거죠. 유일하게 배울 수 있는 창구는 그냥 제가 돈 주고 사 모은 CD들. 오리지널 CD 혹은 심의를 거치지 않은 불법 CD (웃음) 그거 들으면서 힙합, 랩, 흑인 음악 흉내 내고 그랬죠. 

 

작사가라는 게 있다는 건 알았는데 편곡자라는 게 따로 있는지도 몰랐어요. 누구한테 부탁해야 되는지도 몰랐고. 지금 돌이켜 보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란 후회도 많이 남습니다마는 진짜 겁 없어서, 몰라서 용감했던 것 같아요.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진짜 없었어요. (웃음)

 

- 듀스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작곡가,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게 되셨지요.

 

이현도 : 네, 근데 듀스 초기엔 그렇게 전문적으로 곡을 많이 주진 않았고, 가끔 짬짬이 주게 됐죠. 듀스 데뷔하자마자 한창 바쁜데 김광수 형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작자의 시조새 같은 분. 인생의 파도가 높으신 분인데 그 형이 옛날부터 저랑 애증의 관계예요. 어느 날 “야, 현도야. 본승이(구본승) 노래 하나만 써줘” 그래서 내가 “갑자기?” 그랬더니 “아유, 그냥 써 줘”그래서 “알았어요”하고 급하게 뚝딱뚝딱한 게 구본승의 ’너 하나만을 위해‘라는 노래예요. 원래 본승이도 제가 알고 있었거든요. 저도 그냥 춤추고 다닐 때 본승이도 데뷔 전이었고 카페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김광수 형님이 스카우트해서 연기자를 시킨 거예요. 그래서 ’어유, 잘 됐다‘ 했는데, 또 알고 보니까 우리 회사 제작자의 사수가 광수 형 선배인 셈이었죠. 

 

그래서 써준 ’너 하나만을 위해‘가 잘 됐어요, 1위도 하고. 그랬더니 광수 형 회사에선 이게 노래가 좋다기보다는 구본승의 인기로 1위를 한 거라는 식으로 기사를 내더라고요, 굳이. 어쨌든, 현진영과 와와 때 작곡한 ’너에게만‘은 작곡가로서 데뷔한 곡이라는 느낌이었고, 제가 작곡한 곡이 다른 팀에게 줘서 잘 된 걸 본건 구본승의 ’너 하나만을 위해‘라는 곡이 처음이었다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좀 각별하고. 너무 서둘러서 만들었긴 하지만. 그 이후엔 많이 줘서 기억이 잘 안 나요. 아, 현석이 형(양현석)이 지누션 할 때 저한테 도움을 요청해서 미국 가서 같이하자 그래서 OK 했었고요. 지누가 저랑 친구였고, 션은 괌 교포인데 지누션에 스카우트되기 전에 문나이트에서 보따리 장사를 좀 했어요. 옷을 갖고 와서 팔고...

 

- 지누션의 션 씨가요? 

 

이현도 : 션이요. 네. 

 

- (웃음) 그래요? 

 

이현도 : 왜요? 뭐... 태어날 때부터 션은 아닐 거 아니에요. 보따리 장사였죠. 괌 교포.

 

- (웃음) 보따리 장사라는 말씀이 정확히...

 

이현도 : 뭐, 그냥 미국 왔다 갔다 하는 김에 친구들이 부탁하면 몇 개 사 왔다고 할 수 있겠죠. 제가 보기에는 그게 보따리 장사예요. (웃음) 그래서 그런 인연으로 알게 됐어요. 처음엔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옷은 이렇게 힙합으로 입고 얘는 뭐지?‘하고 봤더니 ’양군 기획에 소속된 사람이다‘라고 해서 알게 됐고. 또 나랑 동갑이라길래 친하게 뭐 친구 하자 그러면서 친하게 됐어요. 

 

지누는 옛날에 한번 ’나는 캡이었어‘라는 노래로 폭망하고 미국에 가서 있었는데, 돌아가기 전에 저랑 션이랑도 친하게 됐어요. 그래서 미국 공연 가면 인사도 하고 했는데, 보니까 둘이 YG에서 2인조로 나오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즈음 현석이 형은 ’킵식스‘라는 팀을 처음으로 프로듀싱 했는데 망했어요. 주노 형(이주노)은 영턱스클럽 만들어서 엄청 잘 됐고. 그런 상황에 ’야, 그냥 도와줘라, 지누도 니 친구잖아‘ 그러길래 하게 됐죠.

 

- 작곡하신 곡 중 룰라의 ’3! 4!‘ 역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지요. 

 

이현도 : 룰라 제작자 이상석 형님이라고 계신데 듀스 제작자 김동구랑 아는 사이고 우리 사장이 듀스를 하니까 ’나도 준비해야겠다‘고 해서 만든 게 룰라라는 팀이었어요. 그래서 인사하고 안면을 텄는데 얘들이 우리를 또 선배로 모시고 되게 좋아했어요. 특히 영욱(고영욱)이랑 상민(이상민)이가. 팬심이 있던 연습생이었던 거죠. 그러다 룰라가 데뷔하고 공연도 같이 다니고 하면서 친해졌는데, 실제로 활동 동선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리고 레코드 사도 같은 예당음향이라 이웃사촌 같은 구도였고요. 

 

그러다 중간에 룰라 표절 문제 생기고 나서는 지금은 작고하신 예당음향 변 사장님(변두섭)께서 저보고 ’어떻게 좀 니가 프로듀싱 좀 해줘라‘하고 부탁을 하셨어요. 저도 뭐 얘들 워낙 친하고 좋아했으니까. ’야, 그럼 미국으로 와서 우리 같이 음악 작업하자‘ 그래서 룰라가 미국으로 오게 됐죠. 

 

- 룰라는 ‘3! 4!’가 힘든 시절을 끝내게 해 준, 은인같이 생각했던 노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현도 : 저는 솔직히 생색내기 싫은데 냉정하게는 제가 은인이죠. 룰라 애들 미국 왔을 때 제가 LA 한인타운 가서 김치부터 밑반찬도 사주고, 방에 불 켜주고. 미국은 처음에 빈 집에 들어가면 불이 없어요. 전등을 사서 켜야 돼요. 얘들은 그게 한국처럼 당연히 있는 걸로 알았던지, 나중에 리나(채리나)가 맨날 그 얘기 해요. 첫날 미국 와서 막막하고 집도 어두운데, 오빠가 전등 사 와서 불 ‘탁’ 켜준 게 너무 잊을 수가 없다고. 저는 잊었거든요. (웃음) 저도 되게 많이 챙겨줬어요. 

 

그러면서 집에서 음악 뚝딱뚝딱 만들어서 빨리 가서 앨범 녹음하고. 그런데 그 앨범에 ’아자‘라고 되게 이상한 노래가 있어요. 버스타 라임스(Busta Rhymes)의 ’우하(Woo Hah!! Got You All in Check)‘라는 노래가 있는데 상민이가 표절한 거예요. ’우하!‘하는데 그 노래를 ’아자!‘ 그랬어요. 그래서 나중에 알고 나서 내가 ‘야, 너 아직 덜 혼났구나’ (웃음) 

 

- 정리해 보자면, 댄서로 데뷔하셨는데 가수를 거쳐 프로듀서가 되신 거군요.

 

이현도 : 춤이라는 건 음악에 대한 몸의 표현이죠. 음악을 듣고 그냥 ’너무 신난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뭘 해보고 싶었어요. 저희 세대가 MTV 1세대이기도 했고. 뮤직비디오를 보면 춤이 같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몸으로 음악을 할 수 있는 게 춤이니까 그걸 먼저 했던 거였죠. 음악을 직접 하는 건 전문적이고 장비도 필요한데, 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또, 영상들 보면서 어떤 호기심이 생겼던 적 있어요. 뚜껑에 막 버튼 달렸는데 그거 누르면 드럼 소나는 그런 이상한 기계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드럼 머신이었죠. 그땐 그런 걸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혼자 상상 속에서 동경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현진영과‘ 와와 들어간 시기에 악기를 처음 사서 눌러보기 시작했죠. ’코르그 오원더블유(KORG 01/W)‘라는 모델인데 명기가 됐어요. 지금도 쓰이긴 하는데, 그 당시엔 이 모델이 가장 좋은 악기라고 쳐주거나 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이거 소리 애매한데?‘ 이런 느낌이 있었고.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듀스 곡 중에도 그 악기 소리가 들어가 있나요?

 

이현도 : 많죠. ’나를 돌아봐‘ 스트링 소리도, 피아노 소리도... 드럼 소리 빼고는 이걸로 거의 다 했죠. 그리고 뭐 리드 소리도 그렇고, 많아요. 듀스 음악을 만드는 데 이 머신이 혁혁한 공을 세웠죠. 지금도 활동하는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도 초창기에 이걸 되게 많이 썼어요. 이게 유니크한 사운드니까 남들이 듣기에도 ’야, 이 소리는 이거 뭐야? ’할 만한 소리들만 골라서 기가 막히게 썼어요. 넵튠스(The Neptunes)라는 2인조 프로듀싱 팀을 퍼렐 윌리엄스가 했는데 이 사람들 곡을 안 받은 사람들이 거의 없거든요.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퍼프 대디, 토니 브랙스턴... 그런 사람들 곡 프로듀싱할 때 거의 여기서 소리를 다 뽑아서 썼어요. 

 

- 악기 기종은 어떻게 선택하시게 된 건가요?

 

이현도 : 그냥 낙원상가 가서 ‘뭘 사야 되지?’ 했는데, ‘이게 새로 나온 거’라고. 대림 악기였나, 코스모스 악기였나. 대림 악기에서 샀던 것 같긴 하네요. 거기서 ‘저 이게 뭔지 좀 봐도 돼요?’ 그러니까 ‘어, 이게 새로 나온 거야. 이거 좋아. 이게 유행이야 이제’ 막 이렇게 된 거예요. 그전엔 ‘야마하 DX’, ‘야마하 SY’ 뭐 이런 시리즈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저도 많이 봤어요. 합주실에서도 보고. 옛날에 그룹사운드라고 해서 송골매, 건아들 이런 분들 나오실 때 보면 이 악기들이 꼭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왠지 그건 제가 보기에 ‘흑인들은 저거 잘 안 쓰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했었죠. 사실 많이 썼는데.

 

- 당시로선 악기 값도 비싸지 않았나요?

 

이현도 : 네, 그 당시 물가로 100만 원이 조금 안됐어요. 그럼 엄청 비싼 거죠. 와, 이거 하나 사고는 진짜 두 달 동안 너무 행복해서. 이거 하나 있으면 다 되는 줄 알고, 진짜. 자다가도 깨서 보고 두 달 동안 그 위에 먼지 들어갈까 봐 수건 덮어놓고 했어요. 뭐, 다 그런 거 있잖아요. 처음 샀을 때. (웃음) 이 모델은 시퀀싱도 있었고. 그래서 이걸로 뚝딱뚝딱... 괜히 막 말도 안 되는 노래 만들어 보고, 그게 시작이었죠. 

 

- 듀스 시절 래퍼로도 활약하셨는데, 래퍼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시작하셨던 건가요?

 

이현도 : 제가 정체성이 래퍼는 아니었고요. ’래퍼가 될 거야‘라는 생각도 처음부터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 백인 음악에서 중간에 기타 애드리브 막 들어가듯이, 흑인 음악에도 양념처럼 리듬감 있게 막 지껄이는 게 있는 거예요. 그게 랩인 줄은 알고 있었죠. 89년도 돼서야 그래미상에서도 랩을 따로 부문으로 지정해서 시상을 시작했지, 88년 서울 올림픽에 호돌이 나오고 할 때까지만 해도 랩은 하나의 장르로 취급 못 받았을 만큼 위상이 낮았어요. 그랬는데 그걸 들으면서 저도 음악에 넣어야겠다 생각은 했었죠. 근데 이게 영어로만 있었으니까 ’한국말로 랩이 될까?‘ 하면서 도전해 보고 싶었던 거죠. 

 

랩은 라임이 있어야 되는데, 한국말로도 이런 그루브랑 박자감이 있는 말이 되게 전체 문장을 해보자고 접근했죠. 그전에 있던 유일한 랩은 김삿갓(홍서범 – 김삿갓) 아니었나요? (웃음) 사실 그건 그야말로 박자감 있는 내레이션, 읊조림이겠죠. 어쨌든 미약하게나마 라임을 끼워 맞추기로 한 게 듀스 1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난 알아요‘(서태지와 아이들 – 난 알아요)에는 라임이 없었거든요.

 

- 한국 힙합 애호가들은 ’한국 힙합의 첫 주자가 누구냐‘는 얘기가 나오면 입을 모아 듀스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난 알아요‘에서 랩이 먼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이현도 : 90년대 대한민국 대표 아이콘은 서태지인데, 흑인 음악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음악은 아니었죠. 랩이나 그런 걸 차용은 했는데, 깊이는 없었어요. 중간에 록 베이스가 들어가고, 멋있긴 한데 흑인 음악에선 그런 톤 원래 안 써요. 93년에 이런 얘기 했으면 난리 났을걸요. 서태지 팬들이 ’니가 뭔데!‘ 그러면서. 우리가 한 2~30년 돌이켜 봤을 때, 객관적인 시선에서 서태지 씨는 록의 유전자가 있는 로커예요. 그런데 랩이 그때 유행하니까 ’나도 한번 만들어 볼까?‘하면서 만드신 건데 그게 엄청 잘 터진 거죠. 그다음 행보를 보면 그렇잖아요. ’하여가‘라든지 ’발해를 꿈꾸며‘ 전부 록, 밴드 음악으로 점점점 더 가고 있는 거였고. 

 

듀스는 처음부터 흑인 음악 했어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 철없을 때는 오죽하면 록에서 나오는 기타 소리가 싫었을 정도였어요. ’쟁쟁쟁쟁‘하고, ’탁 쿵! 탁 쿵!‘ 뭐 이런게 나오면 무조건 다른 소리 먹어 버리죠. 이게 안 나와야지 다른 소리들이 나오는데.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애들이 그래서 제가 별종이라고는 생각했어요. 다들 메탈리카 좋아하는데 저는 그런 걸 그냥 하나도 관심 없었어요. 뭐 ’잉위 맘스틴(Yngwie J. Malmsteen)‘이다 ’잉베이 말름스틴‘이다 그러면서 서로 싸우고. 막 누가 기타를 더 빨리 칠 수 있냐. 뭐 ’미스터 빅이 빠르냐, 잉위 맘스틴이 빠르냐‘ 이러면 팍 비웃으면서 나이트에 춤추러 갔죠.

 

- 록 음악 같은 백인 음악보다 흑인 음악에 끌리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이현도 : 아니요 따로 없어요. 그냥 록 음악에 대해서는 나이 들면서 입맛이 바뀌듯이 귀가 열렸어요. 사실, 어떤 장르의 음악도 좋으면 좋아해요. 진심으로 그런데, 어렸을 때만 해도 음악적 인식의 틀이랄까, 패러다임이 좁았던 거죠. 그런 음악적 인식의 범위가 지금은 천천히 넓어지는 느낌인데, 그때는 젊은 혈기에 하나에 확 꽂혀서 다른 장르는 차단하고 이쪽만... 왜냐하면 이쪽만으로도 궁금한 게 너무 많았으니까. 

 

그게 매력이 있었어요. 지금 돌이켜 보니까 저는 어쿠스틱 보다 드럼머신, 샘플러 같은 쪽에 더 꽂혔고, 기타처럼 줄로 튕겨서 진동으로 소리를 느끼는 것보다, 전기가 들어가서 누르면 ’삐‘하고, 자기들이 조합해 놓은 그런 톤이 만나서 나오는 파형이 좋았어요. 기타로 ’짠짠짠‘ 반주할 수 있는데 저는 그냥 신디사이저로 ’빱빱밥‘하는 게 더 멋있게 들렸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추구하는 사운드는 록의 반대였죠. 

 

- 그런데, 흑인 음악의 어떤 점들에 매료됐나요?

 

이현도 : 글쎄요. 질문을 위해서 이론적으로 확립을 해서 말씀드릴 수는 있는데, 그냥 ‘훅’ 끌렸어요. 그러니까 음악을 좋아하던 꼬마한테 드럼 소리부터 좀 다르게 들렸던 거죠. 마이클 잭슨 빌리 진(Michael Jackson - Billie Jean) 같은 음악 드럼이 ‘뚜구치키 뚜구치키’하거나 막 ‘쿵 펑 쿵 펑’은 아니잖아요. ‘칙’ 하고 ‘펍’하는 느낌인데, 지금으로 따지면 이퀄라이징에 컴프레싱 넣고, 뭐 로우를 더하고 미디를 더 압축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이전에 소리의 질감이랄까,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백인 록과는 또 달랐어요. 록의 스펠링도 잘 모를 만큼 어렸긴 하지만, 그냥 들으면 흑인 음악 쪽이 더 좋은 거였죠. 그리고 춤의 경우도 그랬어요. 백인 춤에서 파생된 재즈댄스가 있잖아요, MBC 무용단들이 추던 춤. 그 춤의 경우 어떤 틀을 유지하는 기조가 있는데, 흑인 춤의 경우 오히려 그걸 다 깨부수면서 헐렁헐렁하고 사선으로도 움직이고, 자기 탄력에 의해서 막 다리를 덜렁덜렁했다가 공중에 돌리고 하잖아요. 이론적으로도 확립되지 않았는데, 이게 엉터리처럼 보이지 않고, 더 범위가 넓어 보이고 자유로워 보이여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흑인 음악에서도 항상 그런 걸 느꼈어요. 백인 음악, 예를 들어 록은 ‘투쿠치키 투쿠치키 따다다다딱’하는데 흑인 음악은 예를 들어, 지금으로 말하면 스밍인데, ‘투쿠투쿠 타카투쿠투쿠’하는 그런 그루브감이 그냥 좋았어요, 꼬마 때부터. 더 들썩들썩한다고 할까? 또 백인과 흑인의 생김새가 다르니까 성량이나 목소리도 다르잖아요. 울대가 달라서 구강 구조가 달라서. 그 흑인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어? 이거 어떻게 하면 저런 목소리 낼 수 있지? 목이 가야 되나...?’ (웃음) 그러면서 그런 소리를 엄청 동경했죠. 

 

- 한국에서 힙합이 실질적인 메이저 음악으로 올라선 건 활동하셨던 90년대를 훨씬 지나서였습니다.

 

이현도 : 그렇죠. 우리나라 80년대, 90년대에 흑인 음악 장르가 폭발하기에는 사회적 상황도 있고 힘들었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인 수준으로나. 심의도 개떡같이 그냥 제목만 보고 금지시키고 했던 시절이니까. 듀스 ’약한 남자‘는 SBS에서 금지곡이었어요. ’약을 한 남자‘인 줄 알고. 이게 말이 됩니까? (웃음) 노래 좀 들어보지. 힙합이 대중음악으로 자리매김한 건 꽤 지나서죠. 어쨌든 변형된 힙합이지만 지금 2020년대에 힙합이 한국에서 메이저 음악이 됐다는 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춤추던 때나, 한창 현진영과 와와 준비하고 이럴 때를 돌이켜 보면 와, 천지개벽이 된 느낌이에요.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 90년대는 댄스 음악의 전성기이기도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대중의 호응을 크게 얻을 수 있었을까요?

 

이현도 : 그때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전보다 나아졌고요, 장비도 발달하고, 먹고 살 만해지면서 향락의 수준도 올라간 거죠. 그 범위도 더 넓어지고. 그러다 보니까 더 빠른 음악이 소비가 돼야 했겠죠. 그리고, 그 당시 음악을 소비하는 새로운 세대들로서도 자기들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이 트로트보다는 그런 거 아니겠어요? 물론 그보다도 전 세대 생각해 보면 사실, 남진 선생님 ’저 푸른 초원 위에‘(남진 - 님과 함께)도 펑크(Funk)예요. 간주 들어보면. 약간 꺾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한국화된 펑크(Funk)인데, 미8군에서 배운 스타일이고 악기들이 들어있잖아요. 

 

그런 거 보면 그 세대들의 ’댄스 뮤직‘은 그런 거였는데, 우리 때는 테크노, 하우스 비트를 나이트 클럽에서 충분히 들을 수 있었고, 그 음악을 만드는 장비들도 낙원상가에서 수입되고, 그 장비로 그런 음악을 만들고 표현할 수 있으니까 듣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그런 음악을 찾는 거죠.

 

- 후배들이 리스펙하는 힙합의 선구자가 되셨는데,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합니다.

 

이현도 : 힙합이 미국도 저희도 그렇지만 1세대에서 2, 3, 4세대까지 이어지면서 말이 힙합이지 또 다른 장르처럼 변형된 게 많고, 또 '오리지널'에서 진화한 것들도 있고,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알앤비도 옛날 알앤비랑 우리 세대 때 알앤비랑 다르듯이. 

 

그래서 저는 요즘 세대가 힙합을 더 멋있게, 잘한다고 생각하고요. 한국 힙합,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K-힙합이 된 지금 그 주춧돌이 됐다는 데서 저도 요만큼은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가 나오면 초기의 힙합과는 점점 거리는 멀어지겠고, 상관관계도 멀어지겠지만 그런 형태로 더 잘하고 될 거고. 어떤 동질감들도 다 있을 거예요. 비슷한 성향이 있으니까 힙합을 하고 있는 걸 테니까. 후배들이랑 얘기해 보면 '와,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게 있어요. '힙합만 몰랐어도 서울대 가서 박사 했을 건데' 음악을 알아버려 가지고. (웃음)

 

요즘도 이미 잘하고 있는 후배들이 더 뿌듯해요. 우리 영향을 받고 어린 시절에 '와, 멋있다' 이랬던 후배들은 다이나믹듀오, 그리고 제일 어렸던 친구는 도끼. 초등학생 때 제가 만났어요. 그때 조 피디 밑에 소속돼갖고 열심히 뭐 하려고 한다고 인사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런 후배들이 지금 더 멋있고, 훨씬 진화됐고, 요즘 시대에 더 맞을지 몰라도 그들한테는 듀스가 어떤 영향력을 가진 거죠. 그런 걸 보면 '그래, 고마워' 생각하고 싶네요.

 

 

인터뷰 : 아카이브 K

편집 :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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