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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by 김해인

2010s 버스커 버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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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01작성자  by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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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 버스커는 대한민국 봄의 소리를 표준화했다. 날이 풀리고 벚꽃이 필 무렵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벚꽃 엔딩’을 찾아 들었다. 봄이 되면 항상 음원 차트에 등장했다. ‘여수 밤바다’의 등장으로 여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버스커 버스커의 음악은 곧 문화였고 상징이었다.

 

 

우연과 필연 사이, 버스커 버스커의 결성

 

장범준, 김형태, 브래드로 구성된 버스커버스커는 우연히, 급작스럽게 결성됐다.  장범준은 상명대학교(천안캠퍼스) 재학시절 대규모 밴드를 결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거리의 악사’라는 뜻을 가진 단어 버스커(busker)를 활용해 ‘버스커 버스커’라는 이름을 지었다. 천안의 거리 공연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대학생을 포함한 약 20명의 멤버들이 있었다. 밴드라기 보다는 집단에 가까웠다.

 

그 중 장범준과 김형태는 같은 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선후배 사이였다. 브래드는 상명대학교의 영어 강사였는데, 평소에 대규모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공연을 즐겨보던 그도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슈퍼스타 K 3’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지역 예선을 참여하기 위해, 장범준은 함께 나갈 멤버를 꾸렸다. 그 중 시간이 되는 사람은 김형태, 브래드였다. 그렇게 대규모 음악 모임 ‘버스커 버스커’가 아닌, 정식 밴드 ‘버스커버스커’로 오디션에 출연하게 된다.

 

인기 프로그램 준우승, 그리고 갑작스러운 공백기

 

방송 초반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대부분 통편집이었다. 우승후보 투개월과 콜라보레이션 미션을 하며 사실상 방송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쳤으나, 투개월에게 패배해 탈락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추가 합격 기회를 얻었다. 기존 Top10에 들었던 예리밴드의 무단이탈으로 생긴 공백 덕분이었다. 슈퍼스타K3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평균 시청률이 10% 이상으로, 케이블 방송에서 보기 힘든 상당히 높은 시청률이었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버스커버스커가 기름을 부었다. 생방송 공연을 하면서 ‘동경소녀’, ‘Livin’La Vida Loca’, ‘정류장’, ‘어쩌다 마주친 그대’, ‘I Believe’ 등을 불렀다. 특히 ‘동경소녀’는 발매 첫날부터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1년 멜론 연간 차트 23위를 할 정도로 사랑받았다. 결국 결승 Top2자리까지 올라갔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겨우 탈락의 위기를 겨우 면한 이들이 이루어 낸 ‘준우승’이라는 성과인만큼, 그 의미는 더욱 값졌다.

 

당시 최고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만큼 톱 3는 방송 이후에도 광고와 행사로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얻은 관심과 예상치 못한 높은 순위 때문이었을까. 버스커버스커는 갑작스레 휴식기를 선언했다. 이에 슈퍼스타 K 3 심사위원 이승철은 “준우승 이후 갑자기 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로 보일 수 있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버스커 버스커는 깊게 고민했다. “그룹의 정체성이나 향후 활동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며 MAMA등의 행사와 광고를 모두 마다하고 공백기를 가졌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정규 1집, 그리고 벚꽃 엔딩이 세상에 나오기 까지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던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 극적인 일화가 있다. 2011년 11월 11일 열린  슈퍼스타 K3 종방연, 장범준은 참가자와 관계자들 앞에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요. 새로운 노래 하려고요. 예전에 쓴 곡이거든요..”라며 노래를 했다. 그 때 현장에 있던  전 CJ E&M 김경진 팀장은 ‘벚꽃 엔딩’을 처음 듣던 그 날을 회상했다. “내게는 그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가성이 마치 출력 높은 앰프를 통해 쿵쿵 쏟아지는 비트라도 되는 양 온몸을 강렬하게 때리는 것만 같았다.” 장범준의 천재성, 그리고 노래의 힘이 처음으로 타인들과 만났던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들의 성공을 확신한 건 물론이다.

 

버스커버스커가 한창 물이 올랐을 때 ‘음악에 집중하겠다’라며 자취를 감췄던 만큼, 처음으로 선보이는 앨범에 힘을 쏟아 준비했다. 장범준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써놓은 100개 가량의 자작곡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틀 곡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벚꽃 엔딩’이었다. 그 누구도 이견은 없었다. 이에 맞추어 앨범의 테마는 ‘봄’으로 잡았고, 어울리고 연관되는 곡 9개가 선택됐다.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 역설적이게도 가장 불완전함을 느끼는 시절이 ‘청춘’이다. 그때 겪는 가장 강렬한 감정은, ‘사랑’이다. 장범준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애틋하고 아련한 사랑과 청춘을, ‘봄’이라는 테마로 1집에 펼쳐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가사를 썼고, 악기소리의 질감이 살아있는 프로듀싱을 통해 솔직하게 작업했다.

 

봄마다 울려 퍼지는 메가 히트곡, ‘벚꽃 엔딩’

 

그렇게 2012년 3월, 정규 [버스커버스커 1집]이 나왔다.버스커 버스커 1집은 그야말로 ‘벚꽃엔딩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발매와 동시에 앨범 전곡이 차트를 도배했다. 오랜 기간 차트 10위 안에 머물렀다. ‘벚꽃엔딩’을 주축으로 ‘여수 밤바다’, ‘꽃송이가’가 전국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다음 해 봄이 되자, 또다시 ‘벚꽃엔딩’이 주요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매년 봄만 되면 차트에 진입하는 좀비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벚꽃 좀비’라는 별명을 붙였다. ‘벚꽃 연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봄마다 꼬박꼬박 타먹는 연금 같다는 것이다. ‘봄 캐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기세는 멜론 2010년대 차트 1위로 이어졌다. ‘10년 동안 가장 많이 사랑받은 노래’라는, 그 인기를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는 훈장을 달았다.

 

버스커 버스커 2집의 연이은 성공

 

‘벚꽃엔딩’이 세상에 나온지 세달 째 되던 2012년 6월, 미니 [버스커 버스커 1집 마무리]를 발매했다. 1집 활동이 모두 끝난 후 1년간의 휴식기를 가졌고, 2013년 9월 정규 [버스커 버스커 2집]이 나왔다. 1집과 마찬가지로 연주와 멜로디, 가사 모두 소박하고 투박한 버스커 버스커가 가진 분위기 그대로였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놀랍게 성장한 장범준의 보컬 실력이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지종은 그의 보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앨범에서는 (이 전 앨범보다) 다양한 보컬톤을 구사한다. 진성 가성을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가사 끝을 날려버리거나 딱 잡아 버리는 등 보컬이 전에 비해 상당히 다채로워졌다. 그 다채로움에 더해 보컬 실력 자체도 확실히 성장한 것이 보인다”

 

타이틀 곡 ‘처음엔 사랑이란게’에 대해 작사를 한 장범준은 “첫사랑이 다른 사람과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서 우리만 특별했던 건 아니고 누구나 만나고 헤어지는구나 싶어서 만들었습니다”라며 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1집 활동에서 한국대중음악 역사 상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대 히트곡으로 크게 주목 받아, 2집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집 역시나 큰 사랑을 받았다. 2013 멜론 뮤직 어워드 앨범 상을 수상했다. ‘처음엔 사랑이란게’는 음원이 공개되고 이틀만에 퍼펙트 올킬(6개의 주요 음원 차트의 실시간-일간 차트 1위)을 했다.

 

버스커버스커의 짧았던 활동과 장범준의 솔로 활동

 

그러나 안타깝게도 버스커 버스커의 활동은 짧게 막을 내렸다. 2013년 12월 16일 활동 중단을 발표했다. 다소 갑작스럽게 모였던 만큼, 각자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멤버들은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흩어졌다.

 

브래드는 미국으로 돌아가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다만 장범준의 작업실 위에 거처를 마련해두고 한 번씩 한국을 오갔다. 김형태는 아트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영상과 만화를 제작하는데에 몰두했다. 장범준은 계속 음악 활동에 집중했다. 2014년 정규 1집, 2016년 정규 2집, 201년 정규 3집을 내며 솔로로서의 활동을 보여줬다. 콘서트, 버스킹, 유튜브를 하며 간간히 얼굴을 알렸다.

 

버스커 버스커의 활동은 짧고 굵게 끝이 났지만, 여전히 봄이 오면 ‘벚꽃 엔딩’이 울려퍼진다. “후에 봄이라는 계절이 사라지면 벚꽃 엔딩을 들려주며 이게 봄이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 멜론 버스커버스커 1집 베스트 댓글이다. 버스커 버스커는 ‘벚꽃 엔딩’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봄이 오는 소리를 표준화했다. 한국 대중음악 봄 노래 계보의 정점을 찍었다.

 

[사진출처=CJ E&M]

 

 

김해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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