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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2
by 우정호

1970s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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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02작성자  by  우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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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는 국내 최초의 사이키델릭 여가수다. ‘신중현 사단’의 일원으로, 1971년 데뷔했다.‘대한민국에서 가장 사이키델릭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꿈속을 헤매는 듯한 부유감, 혹은 뇌의 한 부분을 찌르는 듯한 찌릿한 전자음, 현란한 색들이 자유롭게 교차해대는 어지러운 이미지. ‘사이키델릭(Psychedelic)’의 표상들이다.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 ‘환각제를 복용하여 환각 상태에 있는 것’으로 등재됐다. 그렇다면 ‘사이키델릭 록’과 같은 음악은 취한 이들의 전유물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사이키델릭은 LSD같은 환각성 마약(Psychedelic drug)에서 유래했다. 사이키 델릭 록은 '마치 환각제를 복용했을 때처럼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을 말한다. 그리고 이 사이키델릭 록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시기인 1960년대에 한국에 전파됐다.

 

‘한국 사이키델릭의 여제(⼥帝)’라는 칭호를 가진 가수가 있다. 신중현의 총아이자, 그가 표현해내고자 했던 사이키델릭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보컬리스트 김정미다. 한국 사이키델릭의 역사를 쓴 희대의 앨범 [NOW], 그리고 ‘봄’, ‘바람’, ‘햇님’, ‘간다고 하지 마오’ 등의 곡을 남긴 그녀는 몽롱하면서도 벨벳 결 같은 음색으로 대중음악계를 사이키델릭으로 물들였다.

 

사이키델릭 여제(⼥帝)의 탄생

 

김정미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부터 고전무용과 모던발레를 배우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면서도, 또래들에게 인기 있던 포크송보단 제퍼슨 에어플레인 같은 저돌적인 사이키델릭 록 음악에 심취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김정미는 신중현과 조우했다. 당시, 신중현은 가수이면서도 펄 시스터즈와 김추자 같은 여성 보컬리스트들을 연이어 성공시킨 정상급 음악 프로듀서였다. 김정미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유니크한 중저음 목소리는 신중현이 추구하던 사이키델릭 록에 잘 어울렸다. 그녀는 단번에 신중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신중현 사단’의 새로운 디바로 낙점됐다.

 

김정미의 데뷔는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1971년 12월, ‘소주병 테러 사건’으로 얼굴에 부상을 입은 김추자를 대신해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김추자 리사이틀’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당시 김정미는 여전히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김추자 양은 상처뿐인 몸을 무대 위 의자에 의지한 채 자신의 쇼를 말없이 응시했고, 그 앞에서 김정미 양이 김추자의 노래를 그대로 불렀다.” 1971년 12월 자 주간경향은 당시 무대를 이처럼 묘사했다.

 

같은 해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신중현 SOUND VOL.2]에서 김정미는 여섯 곡을 불렀다. ‘아니야’와 동명의 영화 OST 곡 ‘대합실 여인’ 등이 실린 이 앨범에서 김정미는 담백하면서도 몽환적인, 이전에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의 보컬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김정미 독집 음반 [김정미 최신가요집]이 발매됐다. 흘려내듯 가벼운 음처리가 돋보인 대중적인 넘버 ‘간다고 하지마오’, 사이키델릭 록이 진하게 묻어난 ‘나 생각나네’, ‘가나다라마바’, ‘못 잊어’와 같은 곡들이 수록됐다. 김정미의 청아하면서도 섹시한 목소리는 마치 사이키델릭의 정수를 꿰뚫은 듯했고, 이 앨범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제2의 김추자’ 아닌 ‘제1의 김정미’

 

김정미는 김추자와 자주 비교되곤 했다. 김추자의 대역으로 무대에 데뷔한데다, 신중현의 뮤즈이자 소울, 사이키델릭 록 가요를 부르는 비주얼 댄스가수였다는 점에서 그랬다. 둘은 나이도 두 살(김추자는 1951년 출생)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데다, 심지어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였다.

 

그러나 김정미는 김추자와 달랐다. 육감적이고 소울 가득한 보컬 스타일을 구사했던 김추자와 달리, 김정미는 몽환적이면서 때로는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창법을 구사했다. 본능적이고 야성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김추자에 비해 김정미는 사이키델릭 음악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정제된 춤 선을 보였다. 또한, 김추자의 노래들이 밴드 반주 위에 보컬을 표면적으로 부각시키는 식이었다면, 김정미가 부른 곡들은 보컬과 연주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밴드 사운드에 가까웠다.

 

신중현은 “김추자에 비해 성량은 다소 떨어졌지만 음폭은 오히려 넓었던 김정미만큼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이해하고 소화해낸 가수는 없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자서전 ‘록의 대부 신중현’에서 “사이키델릭 뮤직은 김정미에 의해 국내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됐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사이키델릭 뮤직이란 환각 음악이 아니다. 히피 사상이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향했듯, 그녀의 음악 역시 마음의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타일 확립한 3집 [바람], 그리고 한국 사이키델릭의 클래식 4집 [NOW]

 

한편, 1973년 3집 [바람] 발표와 함께 ‘제2의 김추자’와 같은 언어는 사장됐다. ‘바람’, ‘나도 몰래’, ‘아름다운 강산’ 등의 한국 사이키델릭 록의 고전들이 포진된 이 앨범은 평단의 호평과 함께 대중성까지 거머쥐었다. 타이틀곡 ‘바람’이 방송사와 주간지, 그리고 대중가요 노래책의 인기차트 상위권에 등극하는 등 히트를 기록하며 ‘김정미’라는 이름을 대중음악사에 또렷이 새겼다.

 

이미 [바람]을 통해 완벽하게 ‘김정미 스타일’을 확립한 김정미는 1973년 한국 역대 최고 사 이키델릭 록 음반으로 손꼽힐 명반 [NOW]를 발매한다. 하늘과 구름,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검은 의상의 김정미가 중심에 있는 앨범 재킷은 사이키델릭 그 자체다. 신중현이 이 사진을 직접 찍었다는 점에서 앨범에 대한 그의 애착을 엿볼 수 있다.

 

오케스트라와 어쿠스틱 기타가 몽환적이면서 절묘한 부유감을 만들어내는 싸이키델릭 넘버 ‘햇님’, 관능적이고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와 대중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바람’은 앨범의 구심점이 됐다. 또한, 한국적인 무드와 사이키델릭 록을 결합시키려는 신중현의 여러 시도 중 거의 완성형이라고 볼 수 있을 ‘나도 몰래’, 신중현 버전에 비해 뚜렷한 보컬과 임팩트 있는 구성의 ‘아름다운 강산’, 풍부한 베이스 음과 발랄한 보컬의 로큰롤 넘버 ‘불어라 봄바람’ 역시 앨범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 앨범은 후에 ‘Add 4 1집’, ‘신중현과 엽전들 1집’과 함께 ‘신중현 3대 명반’으로 평가될 정 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특히, ‘신중현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대표하는 ‘더 멘(The Men)’은 이 앨범에서 절정의 연주를 보이며 김정미를 뒷받침했다. 이 앨범은 2018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58위에 랭크되며 고평가를 받았다.

 

록 밴드 ‘시나위’의 기타리스트이자,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은 “아버지의 음악 세계를 가장 잘 구현한 아티스트는 김정미”라면서 “‘햇님’을 듣고, ‘이건 사랑해서 만든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에 수록곡 전곡이 다 그런 색깔이 담겨있었다”라고 인터뷰집 [뛰는 개가 행복하다] 를 통해 밝혔다.

 

길지 않은 전성기, 그리고 활동 중단

 

4집 [Now] 발표 후 김정미는 전성시대를 맞았다. 주간지 ‘선데이 서울’ 표지모델에 두 차례나 선정됐고, 넘치는 행사 일정은 다 소화해내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1974년, 김정미는 사 이키델릭 록의 기세를 이어가는 [이건 너무하잖아요]를 발매한다.

 

록음악의 문법을 따르면서 대중적인 멜로디를 담은 ’이건 너무하잖아요‘를 비롯해 사이키델릭 록의 냄새가 짙은 ’담배꽁초‘, ’생각해‘와 같은 곡들이 실렸다. 이 앨범은 신중현, 김정미 콤비가 마지막으로 이뤄 낸 마지막 사이키델릭 음반이 됐다.

 

김정미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그녀의 역량이 저하된 것도, 그녀가 추구했던 사이키델릭 록 음악의 대중적 인기가 떨어져서도 아니었다. 1975년 5월, 박정희 정부가 공표한 ‘대통령 긴급조치 9호’로 신중현 사단 곡들이 대부분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김정미 곡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몽롱하고 섹시한 김정미 특유의 목소리는 ‘저속하고 퇴폐적인 창법’이라며 절하됐다.

 

당시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김정미는 “하루아침에 나는 오리지널 노래가 없는 가수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고 한탄했다.

 

같은 해 12월, ‘대마초 파동’으로 신중현이 구속됐고 음악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던 김정미 에게도 여파가 미쳤다. 심지어 그녀는 대마초를 피웠다는 정황이 없었음에도 경찰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후, 2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그녀는 1977년 김영광, 김용선과의 음반 [난 바본가봐]를 발표 했다. 이 앨범에는 원조 사이키델릭 록 여제 제니스 조플린의 ‘Move over’를 리메이크한 ‘난 정말 몰라요’가 수록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트로트 곡으로 채워졌다. 사이키델릭 여제는 그렇 게 평범한 트로트 가수가 됐다.

 

이 앨범의 미미한 반응 이후 1978년, 독집 [처음 만나/저녁 목장]을 마지막으로 김정미는 미 국으로 떠나며 홀연히 대중음악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녀의 재평가는 의외의 장소에서 이뤄졌다. 2011년 그녀의 4집 앨범 [NOW]가 미국에서 재 발매되며 영미권 리스너들에게 그녀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이후 의미 있는 반응이 이어졌 다. 2013년 영국 영화 [더블 : 달콤한 악몽]에, 2018년 미국 영화 [덕 버터]에 ‘햇님’이 엔딩곡 으로 수록돼 해외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2018년 개봉한 한국 영화 [마약왕]에 ‘바람’이 수록돼 소소하게 화제를 끌었으며, 2021년 파리에서 열린 ‘샤넬 2021/22 공방 컬렉션’에서 국내 톱모델 수주가 쇼의 일환으로 ‘햇님’을 불러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했다.

 

 

우정호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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