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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0
by 최승우

1990s 델리스파이스 (Deli Sp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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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20작성자  by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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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스파이스(Deli Spice)는 1995년 PC통신의 음악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펑크와 그런지가 홍대 앞의 주류였던 당시에, 독자적인 감수성과 스타일로 인디 신의 지형을 바꿔 놓은 밴드로 평가받는다. 특히 히트곡 ‘챠우차우’는 인디 신 최고의 송가로 꼽힌다.


인디 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다

 

홍익대학교 인근 지역이 문화적·상업적으로 독특한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 그리고 이는 거대 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문화 생태계, 이른바 ‘인디 신’의 탄생, 그리고 성장과 맞물린다. 각자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대개 1990년대 중후반을 인디 신이 폭발했던 전성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 즈음에 홍대 근처에만 십여 곳의 라이브클럽이 생겨났으며, 무수한 밴드가 등장하고 사라졌다.

당시 홍대 앞에서 주류를 이루던 음악은 펑크와 그런지, 헤비메탈이었다. 크라잉넛, 위퍼, 노브레인 등은 주말마다 그야말로 베수비오 화산 같은 열기로 팬들을 몰고 다녔고, 노이즈가든은 묵직한 몰입력을 뿜어내며 무대를 압도했다. 그러나 이런 강맹한 음악의 홍수 속에서 대세를 조용히 거스르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밴드가 있었으니, 바로 델리스파이스다. 

델리스파이스의 역시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대 초반의 음악 애호가였던 김민규는 더 큐어(The Cure), U2, 알이엠(R.E.M), 더 스미스(The Smiths) 등을 좋아했다. 그때만 해도 프로 뮤지션의 길은 염두에 두지 않았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집에서 기타로 연주해보는 아마추어 뮤지션이었다

 

그 즈음 김민규는 U2의 기타리스트 에지(Edge)의 몽환적이면서도 화려한 사운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관심이 쏠려 있었다. 결국 온갖 고생 끝에 에지의 노하우를 알아낸 그는, 이걸 실제 합주에서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PC통신 음악 모임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U2와 알이엠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밴드 멤버 구인글이었다. 그걸 보고 유일하게 연락한 사람이 블러(Blur)와 뉴 오더(New Order)를 좋아하는 윤준호였다.

 

두 사람은 곧바로 나머지 멤버를 물색했고, PC통신 음악모임에서 알고 지내던 오인록, 류한길이 가세했다. 이중 류한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금방 빠지면서 이승기가 건반을 맡았고, 오인록은 1집 녹음을 마친 뒤 탈퇴하고 최재혁이 새로 합류했다. 사실상 김민규(기타, 보컬), 윤준호(베이스), 최재혁(드럼), 이승기(건반)가 델리스파이스의 1기 멤버인 셈이다 원래는 보컬도 따로 구하려고 했지만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하느니 직접 하는 게 낫다고 판단, 김민규와 윤준호가 번갈아 맡게 되었다. 델리스파이스라는 이름은 요리를 좋아하는 윤준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델리스파이스는 1995년 8월 라이브클럽 ‘드럭’(DRUG)에서 첫 공연을 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데모 앨범도 만들었다. 그리던 중 이들의 라이브클럽 공연을 눈여겨본 한 음반사 관계자에게서 계약 제의가 들어왔다. 신촌블루스, 에코, 신형원, 김경호 등 굵직한 뮤지션들의 음반을 제작한 뮤직 디자인이었다. 앨범 작업에 돌입한 델리스파이스는 1997년 8월 셀프 타이틀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앞으로도 인디 신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델리스파이스 1집의 탄생이었다.

 

델리스파이스의 데뷔 앨범이 처음부터 드라마틱한 반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센 음악’이 유행하던 당시 홍대 앞에서 이들 같은 팝 밴드는 캐릭터가 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PC통신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알려졌고,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도 이들의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집에는 ‘가면’, ‘귀향’, ‘투명인간’ 등 인상적인 곡이 다수 있었지만,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것은 ‘챠우챠우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챠우챠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챠우차우’는 폭발적인 인가를 얻으며 라디오 방송과 대학가의 카페, 술집에서도 들려오는 단골 리퀘스트 음악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리메이크되고, 어디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불세출의 명곡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런 조용한 반응 때문에 1집은 발매된 지 일 년이 넘은 시점까지도 꾸준히 팔려서 멤버들도 신기해 했다고 한다.

 

이후 델리스파이스가 주로 활동하던 라이브클럽 ‘마스터플랜’은 공연 때마다 터져 나갈 만큼 사람이 들어찼다. 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 등과 함께 홍대 앞 최고의 인기 밴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뒤늦게 1집 관련 활동을 하느라 2집 준비가 예정보다 늦어질 정도였다. 공중파 방송 출연 등 당시 제도권 매체와 별 인연이 없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이들의 데뷔는 상징성을 지닌다.

 

새로운 시도와 전성기

 

델리스파이스는 1집의 기세를 몰아 1999년 2집 [Welcome to the DeliHouse]를 준비했다. 이 앨범에서 델리스파이스는 보다 과감하고 야심차게 음악적 외연의 확장을 시도했다. 노이즈가든의 보컬리스트 박건과 기타리스트 윤병주, 에코의 김정애, 곱창전골의 하세가와 요헤이, 래퍼 주석 등 다양한 세션 연주자와 객원 보컬의 참여도 그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2집은 1집 성공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소포모어 징크스를 벗어난 것은 물론, 폭넓은 시도에도 산만함 없이 균형 잡인 작품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자전거 마니아인 윤준호의 취향이 반영된 ‘달려라 자전거’, 이후 팬들이 공연 때마다 종이비행기 퍼포먼스를 하는 계기가 된 ‘종이비행기’ 등이 2집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0년 나온 3집 [슬프지만 진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무겁고 시니컬한 분위기로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는 소속사였던 뮤직디자인과의 갈등이 큰 원인이었다. 김민규는 소속사와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불합리하게 계약을 했다. 회사와 대화를 제대로 하지도, 우리의 요구사항을 드러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3집은 전과는 다른 이들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준 앨범이기도 했다. 최재혁이 ‘거울2’로 작곡과 보컬에 처음으로 참여했으며, 군 입대로 빠진 이승기 대신 들어온 양용준은 전임자와는 또 다른 그루브 감각이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윤준호는 “회사와의 계약이 3집까지라서 빨리 끝내고 싶었지만, 내용상으로는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앨범”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델리스파이스는 3집 발매 기념 공연을 끝으로 소속사에서 자유로워졌다. 그 영향은 2001년의 4집 [D]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양용준이 탈퇴하면서 3인 체제로 낸 이 앨범은 2집과 3집의 복잡다양한 실험 대신 안정감 있는 기타 팝으로 채워졌다. 정서적으로도 전작의 어둠과 냉소가 사라지고, 특유의 우울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성이 드리워졌다. 그중 ‘생선’이라는 활동명으로 알려진 김동영 작가가 가사를 쓴 ‘항상 엔진을 켜둘께’가 인기를 모았다. 이 즈음 인디밴드로서는 흔하지 않은 전국 투어를 감행하기도 했다.

2003년 5집에서 델리스파이스는 보다 스트레이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직선적인 로큰롤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이승환이 운영하는 드림 팩토리 스튜디오에서 아날로그 레코딩 작업을 하는 등 공을 들였다. 멤버들은 담담하면서 우울한 대곡 스타일의 ‘키치죠지의 검은 고양이’를 최고 트랙으로 꼽았지만, 청자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타이틀곡이 된 ‘고백’이 큰 인기를 얻었다. 김민규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를 모티브로 만든 ‘고백’은 ‘챠우챠우’ 이후 델리스파이스 최고의 히트곡이자 애창곡이 되었다.

5집은 델리스파이스가 정점을 찍었을 때 나온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활동을 마친 멤버들은 한동안 휴지기에 들어갔다. 십 년 동안 해온 밴드 생활에 점차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게 이유였다. 그동안 김민규는 솔로 프로젝트 스위트피(Sweetpae)로, 윤준호와 최재혁은 키보디스트 고경천과 함께 오메가 3(Omega 3)로 각자의 활동에 전념했다. 

활동 중단과 멤버들의 개인 활동

 

2006년 델리스파이스는 3년 만에 6집 [BomBom]을 발표했다. 최재혁이 처음으로 타이틀곡 ‘Missing You’를 작곡한 앨범이기도 했다. 6집은 과거의 감성과 스타일에서 여전히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으로 양호한 평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한창때의 흡인력은 어쩔 수 없이 떨어졌다는 인상을 주었다. 

다시 5년의 공백을 보낸 델리스파이스는 2011년 7집 [Open Your Eyes]로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최재혁이 탈퇴하면서 김민규와 윤준호의 2인 체제가 됐다. 7집은 발매 전부터 1만 장의 예약 판매 분량이 전부 품절되면서 팬들의 여전한 기대를 입증했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델리스파이스와는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밴드의 커리어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변신을 시도한 탓이 컸다.

이후 델리스파이스는 2012년 라이브 앨범 발표에 이어, 싱글을 선공개하며 8집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서 사실상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보이며,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김민규는 2017년 스위트피 4집을 마지막으로 스위트피라는 이름으로는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예전 사춘기 시절 감성과는 달라졌기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그 뒤로는 본명 김민규로 음원을 발표하며 솔로 활동 중이다. 2016년에는 MBC 드라마 <운빨로맨스>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윤준호는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하며 서울디지털대학 실용음악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경인방송 라디오에서 <별빛 라디오>의 진행도 맡고 있다. 전 멤버 최재혁은 에이치얼랏, 옐로우 몬스터즈 등의 밴드를 거쳐 현재 잠비나이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최승우 (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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