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언 > 라이브러리 아카이브K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라이브러리

라이브러리

2023.08.11
by 최승우

2000s 이이언

페이지 정보

작성일 23-08-11작성자  by  최승우 

본문



 

2004년 못(Mot)을 통해 데뷔한 이이언의 음악은 마치 오랜 시간 치밀하게 설계된 건축물처럼 정교하다. 그리고 그 위에는 예민하고 아름다운 서정이 짙게 깔려 있다. 그는 국내에서 누구보다도 독특한 에너지를 지닌 뮤지션이며,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창작자다.


“음악은 코딩보다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았다”

 

이이언의 집안 가훈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울 것.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교사 출신이었는데, 그가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이이언은 이런 교육으로 자리잡은 ‘하이 스탠더드의 윤리 의식’이 자신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고통을 참고 스스로를 갈아 넣어 무언가를 얻는 방식이 몸에 뱄다는 뜻이다.

 

이이언은 “재능이라는 게 노력을 덜 들이고도 잘할 수 있다는 거라면, 나는 음악에 재능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히려 컴퓨터 쪽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확실히 재능을 보였다. 컴퓨터 경시대회나 공모전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컴퓨터로 작곡을 하는 법은 중학교 때 처음 접했다. 거기에 재미를 느껴서 PC통신 음악 동호회 활동도 했고, 용돈을 받으면 화성학이나 작곡, 편곡 등 죄다 음악 이론서적을 사서 부모님께 혼나기도 했다.

 

한때는 판테라(Pantera) 같은 밴드를 좋아하는 ‘메탈 키드’였고, 일 년 정도 기타를 꽤 본격적으로 연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보다 연습을 덜 하고도 진도가 빠른 후배를 보고 ‘될 놈은 따로 있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컴퓨터 쪽에 집중했고, 고등학교 때는 나름 스카우트가 돼서 게임 음악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다만 이때까지는 직업으로 음악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다. 진학도 자연스럽게 이공계(연세대 전파공학과)로 이어졌다.

 

이때까지도 이이언은 음악은 ‘즐거운 부업’ 정도로 여겼다. 대학에서도 음악 동아리가 아닌 문학 동아리에 몸을 담았다. 비로소 음악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3학년 때인 1996년 즈음이다. 이이언은 그 계기에 대해 “프로그램 코딩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건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 사람이 하든 저 사람이 하든 목표나 결과물에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음악은 잘하든 못하든 자신 밖에 할 수 없는 유니크한 결과물이 될 테니, 훨씬 흥미로운 일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원맨 프로젝트 형태로 곡을 쓰면서 점점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예명은 ‘영겁(Aeon)’을 뜻하는 단어에서 따온 ‘이언’을 사용했고, 나중에 솔로 활동을 하면서 성을 붙여 ‘이이언(eAeon)’이 되었다.(그의 본명은 이용현이다) 밴드명 ‘못(Mot)’은 ‘연못’에서 나왔다. 그는 군 생활을 카투사해서 했는데, 휴가 때 집과 근무지를 오가는 기차에서 대부분의 곡을 썼다. 그리고 몇 년 후 멤버를 찾는 구인 광고를 냈고, 2001년 음악적 취향이 거의 일치하는 지이(Z.EE.)가 찾아왔다. 지이가 기타를 맡으면서 이이언은 자연스럽게 보컬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후 이이언은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잡히는 대로 일을 하면서 앨범을 준비했다. 다만 작곡이나 음악 매체의 칼럼니스트 등 음악 관련 일로 한정했다. 그는 “그런 규칙마저 없으면 안정된 삶 쪽으로 점점 기울고, 결국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몇 년 동안 반쯤 백수 상태로 지내다 보니 아들이 음악 하는 걸 반대했던 부모님과도 갈등이 있었다. 특히 완고하고 선비 같은 면이 있는 아버지와 몇 차례 심하게 충돌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음울하고 불안한, 그러나 아름다운 음악

 

못의 데뷔 앨범 [비선형]은 밴드를 처음 구상한지 8년이 지난 2004년에 나왔다. 이이언의 집요한 작업 방식 때문이었다. 그 과정이 눈에 선할 만큼 직물처럼 정교하게 짜인 사운드, 지독하게 내향적이고 느릿한 분위기는 이전의 한국 대중음악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라디오헤드(Radiohead)와 포티쉐드(Portishead) 등의 영향도 언급됐지만, 이이언은 “그것은 우리가 가진 수많은 취향과 애정의 단면이고, 우리 음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Cold Blood’, ‘카페인’, ‘현기증’,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등 음울하고 낯설지만, 한편으로 오묘한 아름다움으로 강한 중독성을 선사하는 음악은 금세 탄탄한 고정 팬층을 만들어냈다. 대표곡 ‘날개’는 뮤지컬 <헤드윅>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감독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밝힌 곡으로, 그가 내한공연 때 한국어로 직접 불러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앨범으로 못은 2005년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 단숨에 주목받는 밴드로 떠올랐다.

 

2007년 공개한 두 번째 앨범 [이상한 계절]에서 못은 여전히 우울하지만 1집보다는 덜 불안한, 상대적으로 명쾌한 음악을 선보였다. 한희정이 ‘서울은 흐림’의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등,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특유의 분위기 안으로 들여오는 시도도 했다. 이이언은 “1집은 일단 우리가 원하는 음악을 완성시키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면, 2집은 대중과의 교감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밝혔다. 다만 교감한다는 의미는 비스니스적인 전략이 아닌, ‘사람들이 어떤 위로를 구하고 있는가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부연했다.

 

[이상한 계절]은 2008년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허클베리핀의 [환상…나의 환멸]과 함께 최우수 모던록 음반 부문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전성기를 맞는 듯했던 이들은 홀연히 떠나기라도 한 듯 갑자기 활동을 중단했다. 이이언이 성대 폴립(성대 결절의 전 단계) 판정을 받은 게 이유였다. 목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다가 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마침 지이도 회사의 스카우트를 받고 취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못을 떠났다.

 

이이언은 음악을 시작한 지 십 년 만에 반강제로 휴가를 가졌다. 쉬는 동안 미국에 있는 친구 집으로 여행도 가고 좋아하는 게임도 원 없이 했다. 대학원(한국예술종합학교 뮤직테크놀로지 과정)에도 진학했다.


“0과 1은 무한한 가능성이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이이언은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고통을 잘 참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은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몰아쳐야 겨우 남들만큼 할 수 있었고, 그게 익숙해지면서 삶의 태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부분을 타협하기 시작하면 내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 같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솔로 앨범을 만들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하는 작업 스타일의 부작용이 거의 위험 수위까지 달했고,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이언은 그 시간에 대해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며 “앨범 만들면서 8㎏이 빠졌다. 씻지도 않고 외출도 안 하고, 하루 한 끼를 편의점 도시락으로 먹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그와 절친한 소설가 천운영이 “이이언이 앨범을 들고 나타났을 때 마치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람, 혹은 죽음 직전에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사람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2012년 나온 첫 솔로 앨범 [Guilt-Free]는 바로 이런 죄의식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제목이다. 이이언은 처음에는 못 시절보다 자유롭고 가벼운 시도를 해볼 요량으로 솔로 앨범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제목은 역설적인 의미가 되고 말았다. 앨범의 수록곡은 대부분 초반의 2년 이내에 만들어졌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큼 물고 늘어지는’ 강박을 버리지 못했고, 때문에 세부적인 공정에 그 이상의 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Guilt-Free]에는 이런 5년 간의 지난한 과정에서 나온 황량한 우울과 고독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게다가 못 시절에는 디지털로 작업한 소리까지 아날로그의 질감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면, [Guilt-Free]는 디지털 소스가 좀 더 두드러지게 배치된 앨범이었다. 이는 대학원 공부로 시야가 넓어진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한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이언은 “0과 1로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건 무한한 가능성이지만, 아주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막연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책상을 만들 때 나무를 깎고 짜 맞춰서 만드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라면, 자신의 작업은 원자 단위에서 시작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수록곡 ‘Bulletproof’의 뮤직비디오도 직접 제작했다. 무려 사진 1만 컷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붙인 스톱모션(stop motion) 방식으로, 무려 일 년 반의 시간을 들였다. 이는 비디오아트, 현대미술 등 다원예술에 대한 그의 평소 관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같은 해 이이언은 미술작가인 친동생 이이립(Eerip), 디자이너 양희민과 함께 공동 작업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2012년 연말 이이언은 EP [Realize]에서 극단적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전자음이 사라진 자리를 온전히 어쿠스틱 악기들로 채웠다. 그러면서 신곡 ‘My Little Piggy’ 외에 자신의 곡 ‘Bulletproof’, ‘세상이 끝나려고 해’, 다프트펑크(Daft Punk)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등을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해체해서 재조립했다. 이이언은 “본질을 둘러싼 외피를 변화시키면서 본질을 잘 드러내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8년 만에 5인조 못으로 돌아오다

 

2008년 못이 활동을 중단한 이후, 이이언은 “못은 해체한 것은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16년 5인조 밴드로 재편된 못으로 돌아왔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방식으로 혼자 작업을 하는 건 더 이상은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밴드에 대한 일종의 소년적인 낭만이 남아 있는 것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이언은 솔로 활동 때 세션으로 참여했던 연주자들에게 “못을 자기 밴드로 생각하고 기존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 조남열(드럼), 이하윤(건반), 송인섭(베이스), 유웅렬(기타)이 정식 멤버가 되었다. 이들은 캐나다와 네덜란드 유학을 다녀오는 등 전원이 음악 정규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 이이언은 “함께 작업할 때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음악 이론과 용어에 익숙한 멤버를 원했다”고 밝혔다.

 

9년 만에 나온 못의 3집 [재의 기술]은 기존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밴드의 사운드를 적절하게 이식한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이언은 “변화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예전의 것을 전부 버리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방향성을 설명했다. [재의 기술]은 교보문고 핫트랙스의 음반 판매 순위에서 아이돌이 아닌 팀으로는 유일하게 5위 이내에 진입, 팬들의 기다림과 기대를 입증했다. 앨범 발매 이후 3일간 열린 단독 공연은 전석이 단 5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이후 이이언은 한동안 못의 활동과 개인 작업을 병행했다. 박정현 등 다른 뮤지션의 앨범에서 피처링을 하거나, 신중현 헌정 앨범 [신중현 THE ORIGIN]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2018년에는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였던 이능룡과 나이트오프(Night Off)를 결성했다. 이이언과 이능룡이 작편곡을 공동 작업하는 나이트오프는 좋은 방향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프로젝트 유닛의 성공 사례로 호평을 받으며, ‘예쁘게 시들어 가고 싶어 너와’, ‘잠’ 등 인상적인 싱글을 비정기적으로 내놓고 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이이언은 2019년 들어서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예전에는 작업이 길어져서 공백이 생겼다면, 이번에는 아예 음악에서 손을 뗐다. 2018년 말에 찾아온 공황장애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 시기에 음악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 했다. 그는 ‘음악은 내 능력 밖의 일인데 억지로 해온 게 아닐까. 그만두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심각하게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나 9개월가량 음악을 쉬고 나니, 도저히 음악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시점이 다시 찾아왔다. 이이언은 갑작스럽게 밀려온 ‘본능적인 창작욕’에 떠밀려 매일같이 곡을 썼다. 그렇게 해서 2021년 나온 작품이 두 번째 솔로 앨범 [Fragile]이다.

 

전작들과 달리 힙합과 R&B의 색채가 짙은 [Fragile]은 그의 변화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앨범이다. 앨범의 무드도 한결 느긋하고 간결하며, 가사도 문학적인 은유가 많았던 전작들보다 직선적이 됐다. 혼자 파고들며 작업한 1집과 달리 제이클레프(Jclef), 스월비(Swervy) 등 동료와 협업한 것도 차이점이다. 이이언은 “작업하다가 밥 시간에 밥 먹고, 저녁에는 모니터링하면서 맥주도 마시는 등 일상적인 루틴을 만들고,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가두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예전 같으면 생각 못했을 코드 진행과 사운드 등 오히려 더 폭넓은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이언은 수록곡 중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피처링한 ‘그러지 마’를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로 꼽았다. 자유롭고 편하게 작업했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이언스러운’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 이 곡이 빌보드 월드디지털송 1위에 오르며 그는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뮤지션이 되었다. 이이언은 “아미(ARMY)들이 있으니 해외에서도 들어주는 사람이 좀 늘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현실감이 안 느껴져서 평행우주의 이야기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모든 작품은 의도와 우연과 한계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한계’라는 것은 중요하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한계를 지닌 인간은 나약할 수밖에 없고, 그 나약함을 지닌 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이언은 “공황장애를 겪으며 힘들었던 시간에 스스로가 생각보다 더 연약한 존재였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연약한’이라는 뜻의 ‘Fragile’을 앨범 제목으로 정한 이유다. 그런 깨달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는 집착과 강박을 예전보다는 많이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그 나약함마저 자신을 이루는 부분이고, 어쨌든 사람은 그런 나약함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이언은 2집에 대해 “위로의 수준이 아니라 회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연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연약하지만, 그 연약함을 서로 보듬어주면서 다시 앞을 보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깨달음이 그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 것인지, 이후의 행보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최승우 (프리랜스 에디터)



공유하기

© www.archive-k.com


Total 6 / 1 page
검색 열기 닫기
게시물 검색

라이브러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