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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2
by 최승원

1970s 서지숙 (Ji 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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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22작성자  by  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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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당대의 유명한 연예인 가족 사이에서 태어나 끼와 재능을 물려받아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을 펼쳤던 가수 서지숙. 2010년대 이후 시티팝 열풍과 맞물려 세계적으로 유명한 LP 컬렉터들의 열렬한 디깅(digging)으로 세상에 다시 알려진 그녀는, 가녀리고 담백한 창법과 청아하면서도 날카로운 팔색조 음색으로 주목받았다. 유니크한 음색으로 소울, 훵크, 보사노바,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수의 자작곡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가 바로 서지숙이다. 
 

 

1959년 태어난 서지숙은 1960년대 유명 작곡가 서영은의 자녀다. 서영은과 그의 형제들은 당시 유명한 연예인 가족이었다. 첫째 서영은, 그리고 둘째이자 당대의 전설적인 코미디언이었던 서영춘, 셋째 서영수, 넷째 서영환은 모두 ‘무궁화악극단’의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음악적 재능이 풍부한 가족들이 드나든 탓에 녹음실 수준의 가정환경에서 자란 서지숙은 일찍이 그녀의 재능을 선보였다. 4살 때부터 뛰어난 고전무용 실력으로 KBS TV에 출연했다. 

 


 

‘지숙과 조커스’ [경부고속도로]로 불과 15세에 데뷔  
 

1969년 라틴풍 색채가 강했던 밴드 ‘조커스’는 수준 높은 연주 실력과 하모니로 서울의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인정받았다. 1971년 서지숙은 고작 15세 나이로 밴드 조커스와 함께 ‘지숙과 조커스’라는 이름으로 데뷔해 앨범 [경부고속도로]를 발매했다. 이때부터 아버지 서영은의 ‘서영은 기획작품’ 시리즈로 그녀는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시작한다.

 

또한, 가수 이길봉과 함께한 앨범 [다시 내 품으로- / 꿈속의 나오미] 중 ‘꿈속의 나오미’를 통해 앳된 목소리에도 훌륭한 보컬 테크닉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같은 해 삼촌 서영춘과 함께한 앨범 [여자의 가는 길 / 오복바람]을, 이듬해인 1972년에는 [어머니의 눈물/부모]를 발매했다. 

 

수록곡 ‘부모’는 작곡가 서영은이 시인 김소월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곡으로 1969년 가수 유주용이 부른 곡이다. 이 곡을 서지숙이 부르며 원곡과 다른 감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서지숙은 이 시기에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음색과 기교를 겸비한 것은 물론, 감정 전달력까지 뛰어나며 인정받았다. 

 

 

일본에 널리 알려진 그녀의 목소리 [Love Message], [So Crystal]

 

1972년, 아버지 서영은의 7집 제작 앨범에 수록된 ‘어머니의 눈물’이 일본에서 주목받으며, 아버지를 따라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5세 때 ‘NHK 신인 선발대회’에서도 입상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고, 도쿄무용학교와 브라더 음악 학원 졸업 후 도쿄 상미 음악대학에서 재즈를 전공했다. 

 

1979년에는 재일교포 일본 프로야구 선수 장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터질 듯한 이 가슴에>에서 학창 시절 장훈의 애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81년 일본의 혼성 4인조 라틴 그룹 ‘실비아&로스 마쵸스의 보컬과 퍼커션으로 활동했고, 1982년 ‘미즈하라 아키코’라는 예명으로 정식 데뷔했다. 데뷔 후 애니메이션 <전설 거인 이데온>의 주제가 ‘Selling Fly’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같은 해 일본의 킹레코드에서 취입한 앨범 [Love Message]가 백만 장을 돌파하여 랭킹 4위를 기록,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성공을 이뤘다. 

 

[Love Message]는 캐롤 킹 (Carole King)의 ‘It’s Too Late’부터 마빈 게이(Marvin Gaye)의 ‘What’s Going On’,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마이클 프랭스 (Michael Franks)의 ‘It’s Never Too Late’,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과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Summer Time’ 등을 편곡하여 전곡 영어 가사로 녹음된 앨범이다. 특히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Antônio Carlos Jobim)의 'Garota de Ipanema (The Girl From Ipanema)'를 편곡한 ‘Bossanova Medley’는 신선한 곡 전개로 인해 주목받았다.   

 

 

가수 조용필의 편곡에도 참여했던 일본 프로듀서 이리에 준이 이 앨범의 전곡을 프로듀싱했고,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 시미즈 야스아키 등 일본의 정상급 세션 뮤지션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이 앨범으로 서지숙은 킹레코드 히트상을 수상했고, 당시 시상식에는 일본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그녀에게 축전을 보내는 등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1983년 [지숙이가 보내는 Love Message]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앨범을 발매했다. ‘분홍빛 편지’, ‘두 손을 잡아요’, ‘머나먼 고향’ 등 한국 정서에 맞는 한국식 가요들과 일본 반 [Love Message]에 수록된 ‘Summer Time’과 ‘It’s Too Late’, ‘Bossanova Medely’ 곡을 일부 한국어로 개사하여 새로 실었다. 같은 해, 12년 만에 귀국하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에는 일본에서 시티팝 스타일의 정규 앨범[So Crystal]을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는 서지숙 본인이 작곡에 참여하며, 그녀의 음악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서지숙은 1980년대 일본 시티팝 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가수 아란 토모코와도 관계가 있는데, [So Crystal] 앨범에 아란 토모코가 작사로 참여했고, 서지숙은 아란 토모코의 대표곡 ‘Midnight Pretender’가 수록된 3집 앨범 [浮遊空間(부유공간)]의 코러스로 참여했다. [So Crystal]에서는 전작의 스타일을 이어가면서 한층 더 감미로운 음색이 부각됐다.
 

 

꾸준히 펼친 그녀의 다양한 음악 세계


한국으로 돌아온 서지숙은 퓨전재즈를 위한 시티팝이 강세였던 일본의 음악 스타일과는 다른 한국식 가요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1985년 발매한 앨범 [목마른 입술]에서는 한층 더 성숙해진 음색을 선보였으며, 이 앨범엔 당시 독재 정부가 강제로 지정해 앨범마다 수록해야 했던 건전가요 역시 삽입됐다.

 

이듬해 1986년 발매한 앨범 [사랑이었어 / 사랑을 알게 될 때]는 기존 그녀의 음악 스타일과 다른 시도가 엿보였다. 곡 ‘사랑이었어’와 ‘사랑을 알게 될 때’, ‘거울 앞의 소녀’ 등은 기존의 한국적인 스탠더드 팝 바탕에 서지숙의 본래 음색을 살린 곡들로 채워진 반면, ‘대전 부르스’, ‘나도 모르게’ 등에서는 전형적인 트로트 창법을 구사했다. 한국 대중들이 트로트를 선호했던 당시의 시대적 영향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1989년 발표한 새 앨범 [Love Theme]에선 그녀의 전공인 퓨전재즈의 색채를 드러내기도 했다. 보사노바 리듬을 살린 ‘나의 로미오’, 일본에서 발매했던 [So Crystal]의 수록곡 ‘Just You’re Mine’의 한국어 버전인 ‘네잎 크로바’등이 수록됐으며, 그녀의 색깔이라 할 수 있을 시티팝 장르가 묻어난 앨범이었다.

 

1990년에 발매한 앨범 [풀잎위에 새긴 이름 / 어느 한순간에도]를 통해서 그녀의 음악 색깔을 이어 갔다. 직접 작곡한 ‘어느 한순간에도’, ‘슬픈 연인’은 그녀의 음악적인 기반인 퓨전재즈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그녀의 커리어 중 큰 성공을 안겨다 준 앨범 [Love Message]의 수록곡 ‘Love Duet’과 ‘Bossanova Medly’를 다시 수록했다.  

 

1994년 발매한 앨범 [Total Sound 94]에서는 또 다른 음악적 시도를 선보였다. 당시 한국 대중가요에 불기 시작했던 댄스 팝 열풍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앨범으로, 수록곡 ‘투정’과 기타 연주가 들어간 파워 팝 계열의 곡 ‘그 무엇이 맘에 들어’, 시티팝 스타일의 ‘All Love Is Fair’, ‘사랑하기 전에’와 ‘그 무엇이 맘에 들어’의 비트감 있는 댄스 리믹스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에서도 그녀의 82년도 앨범 [Love Message]의 수록곡 ‘It’s Too Late‘를 다시 담았다.

 

1997년에는 빠른 비트의 댄스곡과 트로트 등이 가미된 앨범 [97’ 서지숙]을 발매했다. 기존 그녀의 음악 스타일에서 본격적으로 성인가요로 접어드는 작품인 이 앨범을 끝으로 더 이상의 앨범 활동은 없었으나, 2008년 통기타 언더가수로 활동하던 듀엣 예니제니의 미니앨범의 작곡, 프로듀스, 디렉팅을 맡았다. 

 

또한, 2009년 디지털 미니앨범 [남자는 여자를 몰라]를 발매했으며, 특유의 유니크한 음색으로 라틴풍의 트로트 장르를 선보였다. 2020년 5월 KBS ‘가요무대’에서 ‘부모’를 불러 대중들 앞에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2020년대에 소환된 서지숙 

 

한편, 2010년대 말부터 국내에서 시티팝의 큰 인기로 인해, 많은 음악 애호가가 시티팝 전성기의 바이닐을 구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힘입어 일본 아날로그 레코드 제조사 ‘동양카세이주식회사’가 1982년과 1984년에 ‘미즈하라 아키코 (서지숙)’로 발매되었던 [Love Message], [So Crystal] 오리지널 앨범을 그대로 복각했다. 한정반으로 생산된 이 앨범은 한국에서도 수입이 이루어지며, 일부 국내 시티팝 마니아들이 서지숙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전 멤버 하세가와 요헤이가 이 한정반을 구해 서지숙에게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Discogs, 하세가와 요헤이 인스타그램]

 


최승원 아카이브 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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