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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by 최승우

1990s 캐스커 (CAS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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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23작성자  by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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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가진 기계음악’처럼 캐스커(Casker)를 잘 표현해주는 수식어는 찾기 힘들다. 이들의 음악은 전자음악에 가졌던 선입견을 쉽게 날려버린다. 일렉트로닉을 중요한 소스로 삼으면서도, ‘좋은 음악’에 대한 근본을 늘 탐구하며, 캐스커는 이십 년 동안 누구보다도 뚜렷한 영역을 만들어왔다.

 

전자음악에 매료된 로커

 

일렉트로닉, 즉 전자음악을 포괄적으로 보면 그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다만 일렉트로닉이 대중음악의 핵심으로 들어온 시기는 대략 1980년대부터로 본다. 신시사이저(synthesizer)라는 마법의 상자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음악 활동의 범위와 가능성은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특히 듀란 듀란(Duran Duran), 뉴 오더(New Order),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등 신사이저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신스팝 밴드들이 약속이나 한 듯 1980년대에 줄줄이 등장하면서, 전자음악은 팝 시장에서 세계적인 흐름을 이끌었다. 캐스커의 이준오도 초등학교 때 신스팝 밴드 아하(A-ha)의 음악에 꽂힌 게 처음으로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계기라고 한다.

 

서울 출신의 이준오는 십대 때 부산으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동세대의 음악 좋아하는 청소년이 으레 그랬듯 그도 록에 빠졌고, 처음에 잡은 악기는 기타였다. 이후 퍼즈건(Fuzzgun)이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는데, 당시 부산에서 100회 이상의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전자음악으로 넘어온 지금도 공연 때 기타를 잡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로커였던 이준오가 전자음악으로 영역을 옮기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그가 군대에 간 사이에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이 새로운 팀을 만들고, 앨범을 내면서 서울로 진출했다. 1998년 인상적인 데뷔 앨범 [Skinny Ann’s]로 인디 신의 신성으로 주목받았던 앤(Ann)의 전신이 바로 그들이다.

 

혼자 남게 된 이준오는 혼자서 데모라도 만들어보겠다는 심산으로 작업을 했다. 표현하고 싶은 음악적 아이디어는 있는데 연주자들이 없어서 선택지가 적었기 때문에,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컴퓨터로 옮겨갔다. 또 그 당시 접한 포티쉐드(Portishead)의 음악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도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이준오는 밴드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전자음악에 매료됐다. 기타까지 팔아가면서 신시사이저도 구입했다. 그 당시만 해도 신시사이저는 상당한 고가의 물건이었기에 꽤나 고생했지만, 그는 “그때는 어떻게든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준오는 전자음악의 매력을 “팔레트가 무한하다”고 표현했다. 밴드나 다른 오케스트라 음악 같은 경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정석처럼 내려오는 공식이 있지만, 전자음악에서는 그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철저한 설계로 만들어진 것이든,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소리라도 음악이 될 수 있는 게 전자음악이었다.

 

캐스커라는 이름의 첫 데뷔

 

당시 PC통신 하이텔에 ‘21C 그루브’라는 전자음악 동호회가 있었다. 달파란, 데이트리퍼, 모하비, 프랙탈 등 한국의 1세대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구심점으로 삼던 곳이었고, 이준오 역시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접했다. 이들은 단순한 동호회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생산적인 문화 집단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1999년 기획한 국내 최초의 일렉트로닉 컴필레이션 앨범 [techno@kr]도 그중 하나였다.

 

[techno@kr]은 한국 테크노 뮤지션들의 순수 창작곡들로 구성된, 음원을 보내면 주최측이 선별해서 수록하는 일종의 공모전 형식의 앨범이었다. 이준오는 이 앨범에 캐스커라는 이름으로 ‘Persona’라는 곡을 수록했다. 그의 공식적인 첫 작품이었다. 캐스커라는 이름은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의 여주인공 캐스커(Casca)에서 철자만 바꿔서 따왔다. 이준오는 만화 스토리 작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을 정도의 만화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다만 캐스커의 이름은 큰 의미를 가지고 지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1990년대 말, 20세기 끄트머리의 세기말적 코드를 타고 전국적으로 테크노의 붐이 일어났다. 방송가와 나이트클럽에서 연일 테크노 음악이 흘러나왔고, 홍대 근처의 클럽들에서도 레이브 파티가 유행했다. ‘21C 그루브’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과 파티를 기획했고, 이준오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참여했다. 그는 “당시 어지간한 클럽 무대는 다 한 번은 올라본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 뒤 이준오는 불독맨션, 포춘쿠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등의 공연이나 음반에 참여했다. 또 독립 음악 방송국에서 일렉트로닉 채널을 제작하거나 VJ로 활동하며 영역을 점점 넓혔다. 특히 불독맨션의 라이브 세션으로 참여한 것은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됐다.

 

이준오는 캐스커의 데뷔 앨범을 만든 계기에 대해 “집에서 밤에 혼자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전자음악이 춤이나 파티의 영역과 완전히 멀어질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 말대로 2003년에 나온 캐스커의 첫 정규 앨범 [철갑혹성]에는 요란한 댄스 비트도, 부담스러울 만큼 전위적인 실험도 없었다. 그보다는 라운지, 라틴 등 다양한 장르의 틀에 건조하고 쓸쓸한 감성이 섬세하게 얹힌 음악으로 채워졌다. ‘일렉트로닉’이라는 선입견 안에서 기대했던 음악과는 사뭇 달랐다는 점에서, 캐스커의 1집은 지금도 한국 전자음악의 특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심장을 가진 기계음악

 

이준오는 캐스커의 1집을 발표하기 전부터 보컬을 영입할 생각이었다. 1집에서도 이소은과 해이(Hey)의 목소리를 빌려온 것처럼, 전제는 여성 보컬이었다. 포티쉐드의 베스 기븐스(Beth Gibbons), 프루프루(Frou Frou)의 이모젠 힙(Imogen Heap)의 영향도 있었다. 그리고 이준오가 ’21C 그루브’에 올린 공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융진이다.

 

융진은 대학 때 러시아어를 전공했지만, 음악을 하고 싶어서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다만 이준오의 말에 따르면 처음부터 그녀가 완전히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음색은 좋았지만 이전까지 음악 활동 경험이 전무했고, 끼가 없어 보여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싶어서다. 그래서 융진은 처음부터 정식 멤버가 된 것은 아니었고, 이후 보컬이 필요할 때마다 같이 하다 보니 어느새 캐스커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진욱(건반)도 가세하면서 캐스커는 3인조가 됐다.

 

보컬이 담긴 곡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면서, 2005년의 2집 [Skylab]은 전작보다 좀 더 보편적인 접근성이 있는 팝 앨범이 되었다. 이준오가 애정을 가진 라틴 음악의 색채, 우울함을 건드리면서도 어둡지는 않은 정서 등 캐스커의 시그니처가 이 앨범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캐스커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가장 많은 앨범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시절 라디오에서 ‘고양이와 나’, ‘7월의 이파네마 소녀’, ‘선인장’ 등을 듣고 캐스커를 알게 됐다는 팬이 적지 않다.

 

이준오는 1집과 2집이 좋은 반응을 얻는 걸 보고 ‘이제 조금 새로운 걸 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2006년 3집 [Between]에서는 탱고 등의 월드뮤직을 전면에 배치하고, 넘실대는 그루브의 흥겨운 클럽 분위기까지 담아내는 시도를 했다. 이준오는 캐스커의 음악적 정체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건 다 한다는 주의다. 특정한 방향성을 고수하지는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진욱이 3집 작업을 앞두고 탈퇴하면서 캐스커는 이준오와 이융진의 듀오 체제가 됐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한 사람은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역할 분담 체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이디어를 충분히 공유하고 상호작용을 거친다는 것이다. 이준오는 “2집 때는 머릿속에 있는 목소리와 실제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았는데, 3집부터는 톤이나 느낌을 융진이의 목소리에 맞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4집 [Polyester Heart]는 캐스커가 파스텔 뮤직으로 소속사를 옮긴 뒤 발표한 첫 앨범이다. 이준오는 “4집을 만들면서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고 말했다. 뭔가 확고한 바닥에 발을 디딘 듯한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결이 다 다르고 팬들의 호불호도 갈렸던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일관된 스타일과 무드가 흐르는 앨범이 됐다.

 

특히 무심한 듯하면서도 견고한 이융진 특유의 보컬은 확실하게 캐스커의 정체성이 되었다. 또한 보컬 외에도 본격적으로 자신의 지분을 확보, 메인 송라이터였던 이준오와 차별화되는 영역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융진은 ‘아무도 모른다’ , ‘비밀’ , ‘빛의 시간’에 공동 작사, 작곡으로 참여했으며, ‘너와 나’는 그녀가 단독으로 작곡/작사한 최초의 노래다. 이준오는 “융진이가 보내준 ‘너와 나’의 데모를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서 밤새도록 들었다”며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고 밝혔다.

 

이준오는 “나는 전자음악의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에, 사운드가 좋다는 이야기는 딱히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느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전자음악이든 어쿠스틱이든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캐스터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존재 이유라는 의미다. 그래서 캐스커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팝과 일렉트로닉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미묘하게 자리를 잡느냐 하는 것이다.

 

캐스커에게 따라다니는 ‘심장을 가진 기계음악’이라는 수식어는 이런 고민과 균형의 결과물인 셈이다. 2011년 5집 [tender]의 경우는 대부분의 곡을 어쿠스틱 기타로 만들고, 나머지 사운드를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전자음으로 먼저 골격을 짜던 기존과는 다른 방식이다. 조원선, 마이 앤트 메리의 정순용 등이 피처링 보컬로 참여해 서정을 더한 것도 특징이다.

 

2012년 6집 [여정]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앨범이다. 캐스커로 보낸 십 년간을 ‘여정’으로 표현한 타이틀처럼, 자신의 시작인 일렉트로닉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좋은 노래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담겼다. 전자음을 실제 연주자가 있는 것처럼 다루는 이준오의 사운드 메이킹, 차분함과 냉혹함, 음산함까지 오가는 이융진의 표현력은 이들의 음악적 역량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다.

재충전, 그리고 각자의 활동

 

인상적인 6집을 내놓았지만, 이 작품은 캐스커는 예년에 비해 다소 긴 휴식기를 가지는 분기점이 되었다. 십 년 넘게 음악을 해오면서 음악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것이 이유였다. 음악을 해오면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막했다. ‘앨범을 내는 게 더 이상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가 가득할 만큼 의지도 여력도 없었다.

 

결국 이준오는 도망치듯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3주 동안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켰고, 그 강렬한 에너지에 이끌려 귀국 후에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융진은 “준오 오빠가 여행을 다녀오더니 갑자기 곡을 ‘슉’ 하고 내놓아서 깜짝 놀랐다. 도시와 사람을 노래하던 사람이 산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2015년 나온 7집 [ground part 1]에는 이준오가 아이슬란드에서 보고 느낀 것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앨범에서 캐스커는 다른 악기의 비중을 줄인 순도 높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초현실적인 풍경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그려냈다. [ground part 2]의 경우, 단일한 앨범이 아닌,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곡들을 모아 구성하는 연작 프로젝트로 진행 중이다.

 

현재 캐스커는 간간히 싱글을 발표하며, 또 솔로 작업을 하고 있다. 예전부토 이준오는 “둘이 한 번 떨어졌다가 다시 붙으면 또 새로운 게 나올 것 같다”며 솔로 활동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준오는 ‘노래 빼고 다 하는 뮤지션’이라는 그의 말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십 년 넘게 커리어를 쌓아온 영화음악가이기도 한데,  <더 테러 라이브>, <더 폰>, <리틀 포레스트> 등이 그의 손을 거친 영화다. 2014년부터는 ‘JUUNO’라는 활동명으로 솔로 앨범을 내고 있으며, 2015년 여행 에세이 <세상의 모든 고독 아이슬란드>로 작가로도 이름을 올렸다. 또 그의 영원한 음악적 우상인 윤상과 프로젝트 팀 노이스(Nohys)를 결성, 2023년 정규 앨범 [ethic]을 공개했다.

 

융진은 2016년 싱글 ‘그런 사람’으로 솔로 데뷔했다. 그 외에 여러 뮤지션의 앨범에 피처링을 하거나, 다큐멘터리 등의 내레이터를 맡았다. 친동생인 개그우먼 이은형과 음원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8년 결혼해 아이를 낳고 육아와 활동을 병행 중이며, 아이가 있는 여성 뮤지션들이 모인 프로젝트 앨범 [엄마의 노래]에도 참여했다. 2023년 8월에는 SNS를 통해 둘째 출산 소식을 전했다.

 

클럽에서 소비되는 EDM의 유행과는 별개로, 한국의 일렉트로닉 시장은 빈말로도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질과 양 모두 빈곤하다. 대부분의 일렉트로닉 뮤지션은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부여받기 힘들다. 이런 환경에서 커리어 내내 양질의 음악을 만들고, 정체 없이 고민과 연구를 거듭해온 캐스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여전히 독보적이다. 그들이 더 오래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라게 되는 이유다.


 

최승우 (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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