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청춘의 감성을 세련된 음악으로 녹여낸 전람회는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팝 발라드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재즈를 본격적으로 대중가요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들의 아련한 감성이 담긴 히트곡들은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고 있다. 

대학가요제를 휩쓴 스무살 듀오
 

어릴 적부터 학구적인 집안에서 성장한 김동률은 중고교 시절 부모님이 학업 외에 오직 피아노 연주만 허락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동률의 취미는 피아노 연습이었고, 음악적 역량을 어릴 때부터 키울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김동률은 공부를 잘하고 음악이 뛰어난 학생으로 지역에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휘문고등학교 동창생이었던 김동률과 서동욱은 원래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동률이 서동욱과 코드가 잘 맞는 친구라고 생각하여 자신이 쓴 노래를 서동욱에게 들려주었고 서동욱의 감상이 김동률이 느낀 감정과 일치하여, 그때부터 절친이 됐다고 한다. 이후 김동욱과 서동욱은 학교에서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을 했고, 그들의 준수했던 학업 성적으로 연세대학교에 같이 입학했다. 

연세대학교 입학 후 미식축구에 빠져있던 서동욱에게 김동률은 대학가요제에 나가자고 제안했고, 곧바로 전람회를 결성했다. 2000년 김동률 닷컴에 서동욱이 남긴 글에 의하면 김동률은 서동욱이 미식축구 시합 중 손가락을 다쳐 베이스 연주를 하지 못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서동욱은 김동률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간 한 시합에서 왼쪽 어깨 탈골, 오른손 새끼손가락 골절을 당했다. 

부상 당일은 불과 대학가요제 예선 며칠 전이었는데, 몸은 망가졌어도 베이스 연주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 먼저 들을래?”라고 김동률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1993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꿈 속에서’라는 곡으로 참가했다. 빼어난 김동률 가창력과 스무 살이 만들었다고 믿기 힘든 높은 완성도를 갖춘 곡 ‘꿈 속에서’는 전람회의 행보에 있어서 그야말로 첫 시작에 불과했다. 당시 대학가요제는 물론 한국 대중음악계에서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세련된 음악을 들려준 전람회는 ‘꿈 속에서’로 그해 대상과 특별상까지 거머쥐었다. 

당시 대학가요제 사회를 맡았던 이수만과 이문세는 자신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갖고 있는 팀이며, 콘서트 현장에 온 것 같다는 극찬을 했다. 무대가 끝난 후 김동률은 ‘꿈 속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가요제를 겨냥해서 만든 곡이었다고 밝혔다. 1993년 대학가요제에 참여했던 그룹 캔의 배기성은 한 인터뷰에서 “김동률만 없었다면 당시 대상은 내 것이었다.”라고 할 정도로 대학가요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독보적이고 세련된 감성 1집 [EXHIBITION]
 

1994년 전람회의 첫 번째 앨범 [EXHIBITION]이 발매됐다. 가수 신해철과 작곡가 김형석이 프로듀싱했다. 수록곡 중 9곡을 김동률이 작사, 작곡했고, 서동욱도 ‘여행’을 비롯한 3곡에 작사로 참여했다. 김동률의 매력적인 저음은 이번 앨범에서 더 안정적인 면모를 보였다. 전람회를 대표하는 곡 ‘기억의 습작’과 아련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하늘 높이’, 그리고 신해철과 함께 부른 ‘세상의 문 앞에서’는 전람회만의 감성을 담은 팝 발라드곡이다. 

특히 ‘기억의 습작’은 김동률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작곡했던 곡이었다. 이 곡의 히트로 당시 6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2012년 영화 <건축학 개론>으로 다시 소환되어 한 온라인 서점에서는 이 앨범 판매량이 영화 개봉 이전보다 70배나 급증하기도 했다. 

수록곡 ‘여행’은 스윙 재즈의 영향을 받은 밝은 분위기의 곡으로, 곡이 시작되기 전 김동률과 서동욱 그리고 신해철의 대화를 들려주며 신선함과 현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무엇보다 이 앨범은 당시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솔직하고 아련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가사들이 특징으로 남았고, 한국대중음악 명반에 선정됐다. 

전람회 최대의 히트곡 ‘취중진담’ [EXHIBITION 2]
 

1집의 성공 이후 김동률과 서동욱은 1994년 11월에 군 입대 후 제대와 동시에 2집을 발표했다. 1집보다 음악적으로 더 성숙해진 2집에서는 김동률이 수록곡 9곡을 모두 작곡했고 프로듀싱까지 직접 담당했다. 또한, 스탠더드 재즈 느낌이 물씬 풍기는 ‘J’s Bar에서‘, ’유서‘는 서동욱이 작사에 참여했다. 

특히,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의 영향을 받은 곡 ’고해소에서‘와 타이틀곡 ’이방인‘에서 김동률은 섬세함과 호소력이 풍부한 가창으로 전람회의 음악적 성숙도를 높였다. 본격적인 재즈를 느낄 수 있는 ’Blue Christmas’ 역시 전람회의 색깔과 완성도를 끌어올린 곡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히트곡 ‘취중진담’은 솔직 담백한 가사 외에도 드라마틱한 곡 전개와 수련한 멜로디까지 전작 ‘기억의 습작’을 뛰어넘는 전람회의 대표적인 곡으로 남았고,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사운드적으로도 관현악단의 도입과 실력 있는 세션 맨들이 참여하여 고급스러워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전람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졸업]
 

전람회의 고별 앨범 [졸업]은 정규 앨범이지만 총 5곡이 수록된 스페셜 앨범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김동률과 서동욱이 교실 칠판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앨범 재킷은 그야말로 전람회로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졸업식’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독특한 점은 이 앨범은 김동률이 중고생 시절 만든 곡들을 편곡하여 수록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타이틀곡 ‘졸업’은 김동률이 중학교 3학년 때 완성했다고 믿기 어려운 아련한 감수성이 담겨 있다. 

특히 김동률이 직접 지휘한 현악 연주와 넥스트(N.EX.T) 김세황의 기타 연주는 곡 분위기를 더욱 웅장하게 만들고, 신해철의 코러스가 곡의 풍성함을 더했다. 피아니스트 겸 가수 노영심의 피아노 연주와 김동률 특유의 바이브레이션과 저음만으로 어우러진 ‘첫 사랑’, 1991년 휘문고등학교 ‘한티가요제’의 수상곡이었던 ‘다짐’과 전람회를 처음으로 알린 대학가요제 수상 곡 ‘꿈 속에서’를 새로 녹음해 담았다. 

마지막 곡 ‘우리’는 어떠한 기교 없이, 김동률과 서동욱의 장난스러움과 솔직한 가사로 대미를 장식하는 곡이다. 1997년 1월 앨범 발표 후 그해 3월의 고별 콘서트를 끝으로 전람회는 해체했다. 고별 콘서트에서 마지막 곡 ‘졸업’을 열창하던 김동률은 끝내 눈물을 흘리며 전람회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전람회의 고별 콘서트에 등장한 신해철은 전람회 1집에 참여했던 곡 ‘세상의 문앞에서’를 함께 부르고, “전람회를 정리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람회 두 사람이 어떤 인생, 어떤 음악을 할지 계속해서 따듯하게 지켜봐 주기를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전람회도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큰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으로 신해철을 꼽았을 정도로 전람회 음악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으로 남는다. 

많은 아쉬움을 남긴 전람회의 해체에 대해 김동률은 한 인터뷰에서 “전람회 해체는 2집이 발매된 직후 결정한 일이었다”며 “해체의 가장 큰 이유는 동욱이에게 음악은 잘할 수 있는, 수많은 것 중 하나였지만, 내게는 음악이 전부였기 때문”이라고 밝혀 각자의 나아갈 길이 달랐음을 알린 바 있다.

이후 김동률은 솔로 활동과 패닉의 이적과 함께 한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 롤러코스터의 이상순과 함께한 그룹 베란다 프로젝트와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제공하는 등 음악 활동을 이어갔고, 서동욱은 기업인의 길을 걷고 있다. 서동욱은 김동률의 솔로 앨범에 코러스와 2008년 카니발의 공연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고, 김동률과의 우정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편 2023년, 무려 4년 만에 새 싱글 [황금가면]을 발표한 김동률은 여전히 의욕적인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벅스뮤직]

최승원 아카이브 K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