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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5
by 최승원

1970s 세샘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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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2-15작성자  by  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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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샘트리오는 1978년 발표곡 ‘나성에 가면’의 성공으로 히트 가수 반열에 오르며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정상급 작곡가인 길옥윤의 눈에 띄어 데뷔한 이들은 보컬 권성희의 풍부한 성량이 돋보이는 즐거운 분위기의 라틴 음악을 구사했다.

 

길옥윤 만나 태어난 세샘트리오

 

세샘트리오의 홍일점인 권성희는 1970년대, 마리아 칼라스 같은 오페라 프리마돈나를 꿈꾸며 동덕여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러던 중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 낮에는 음대생으로 수학했고, 밤에는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었다.

 

권성희가 처음 방송 무대에 선 건 아버지의 지인인 KBS 전 관현악 단장 김강섭이 진행하던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몇 차례의 방송 기회를 받아 나간 무대들에서 그녀의 노래가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이 덕분에 당시 최고급 무대 중 하나인 엠버서더 호텔의 트리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공연에 올랐다.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부르며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돈을 벌었다. 

 

권성희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입성하자 재학 중이던 동덕여대 성악과 학과장은 그녀가 소위 ‘딴따라’로 전향하는 것에 대해 한사코 말렸다. 당시 권성희는 졸업 후 유학을 다녀오는 조건으로 동덕여대 조교수 자리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성희는 명동과 소공동의 내로라하는 레스토랑과 극장식 식당의 무대에 지속적으로 오르며 가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77년, 무대에 오르던 트리오의 리더 전항이 ‘라틴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제안했고, 라틴 기타 연주 실력자인 홍성복을 영입했다. 이 라인업으로 1977년부터 서울 시내 살롱가에서 무명 생활을 1년여 가량 이어갔다.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인 길옥윤은 무명 생활을 하던 이들 트리오를 눈여겨보던 중 음반 녹음을 제안했다. 그룹 이름 ‘세샘’은 ‘세 개의 맑은 샘’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길옥윤이 직접 지어줬다.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준 ‘나성에 가면’

 

권성희, 전항, 홍신복으로 구성된 세샘트리오는 1978년 히트 레코드를 통해 1집 [세샘트리오 노래모음집]을 발매한다. 원래 [길옥윤 작편곡집]으로 제작된 음반으로 길옥윤이 작곡한 9곡과 리더 전항이 작곡한 2곡 ‘봄이 와서’, ‘나의 아버지’, 패티 김이 작사한 번안곡 ‘바람 따라 별 따라’를 수록했다.

 

무엇보다 세샘트리오를 대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준 곡 ‘나성에 가면’은 밝은 분위기의 가벼운 템포감이 느껴지는 라틴 팝 스타일에 권성희의 시원시원한 음색이 어우러진 곡으로 당시 큰 인기를 얻게 됐다. 원래 ‘나성에 가면’의 원제는 ‘LA에 가면’이었는데,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에서 노래 제목에 영어를 쓰지 못하게 하던 심의 규정 탓에 길옥윤이 고심 끝에 LA를 ‘나성’으로 고쳐 재녹음을 하였다. 그러나 ‘나성’이라는 어감이 대중들의 입에 잘 맞았고, 큰 성공까지 이어지게 됐다. 

 

곡의 밝은 분위기와 다르게 ‘나성에 가면’은 이별 노래다. 당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결정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당시의 이민은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별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가사에 애절한 감성이 담겨있었다.

 

‘나성에 가면’의 대성공으로 세샘트리오의 권성희는 패티 김, 박경희를 이을 대형 가수의 탄생이라는 평을 받았고, 엄청난 인기 탓에 스토커까지 따라다니며, 보디가드를 고용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함께 차 한 잔만 마셔주면 3억을 주겠다는 제안도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 ‘젊음의 계절’이라는 곡으로 참여한 세샘트리오는 국제가요제로 확대 편성된 가요제의 엄청난 인기로 인해 국내 예선에 참가하여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는 가수로 활동했던 배우 장국영이 처음으로 서울을 찾았던 가요제였다. 본선에서 입상하면서 세샘트리오는 데뷔하자마자 큰 주목을 받았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다 

 

1981년 2집 [오해야 오해/영원한 사랑]를 발매했지만, ‘나성에 가면’ 만큼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1집의 명랑한 라틴 팝 스타일에 남성 멤버들과의 하모니가 어우러진 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2집 발표 후 돌연 기타리스트 홍신복이 탈퇴했다. 

 

탈퇴 이유는 당시 정황상 리더 전항과 홍신복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앙금이 남아있던 것으로 추측됐다. 1981년 모 방송국의 녹화장에서 주먹 다툼을 벌인 일이 기사로 공개되기도 했다. 홍신복은 세샘트리오 탈퇴 후 ‘무지개 트리오’라는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홍신복의 탈퇴 후 세샘트리오는 전항의 동생이자 남성 듀엣 쉐그린의 멤버 전언수를 영입했다. 이로써 세샘트리오의 2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홍일점이었던 권성희가 1983년 솔로 가수로 독립했고, 전항, 전언수 형제의 사촌 동생 전미수를 보컬로 영입 잠시 활동을 이어가다 결국 해체했다. 

 

이후 전항, 전언수 형제는 ‘나성에 가면’ 제목처럼 실제로 미국 LA로 이민을 떠났다. 전항은 미국에서 목사로 봉직 중이며, 동생 전언수 역시 미국에서 음악 카페 ‘쉐그린’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솔로로 독립한 권성희는 1983년부터 40년간 가수로서 방송 활동을 이어갔다. 가수 활동과 별개로 30여 년 동안 주로 노인과 소외계층을 비롯해 불우이웃, 소년소녀 가장, 군경을 위한 무료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2009년부터 봉사단체 한국 연예인 한마음회 회장을 맡아 노인 등을 위한 공연을 열기도 했다. 2012년 제20회 대한민국 문화 연예대상 연예부문 공로상을 받았다. 올해로 70세를 맞이한 권성희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방송 등에 간간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시 주목받은 ‘나성에 가면’ 

 

2014년 개봉한 영화 <수상한 그녀>는 865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흥행을 기록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심은경이 세샘트리오의 ‘나성에 가면’을 불러 큰 화제가 되었는데, 영화에 성공과 더불어 ‘나성에 가면’까지 함께 히트하며, 다시금 회자됐다. 2015년 3월 28일 방송된 KBS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작곡가 길옥윤 편에서 그룹 S의 강타와 이지훈이 ‘나성에 가면’을 무대로 선보이기도 했다.

 

  

[사진 출처=네이버지식백과, 브라보마이라이프]

 

 

최승원 아카이브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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